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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경매로
옥천 신문에 광고를 냈다. (2)
2008.09.18 00:10
이곳에서는 옥천 신문에 줄광고를 냈는데 가격은 일 만원이었다.
.
위의 그림이 대략적인 지형의 전체 구체도였다. 사실상 오른쪽의 장소가 전선회사에 드럼을 납품하는 곳이었는데 자꾸만 침범을 하여 결국 울타리를 치고 말았다.
위의 그림 중 하단부의 황토색으로 칠해진 곳은 밭이었다. 그렇지만 아래 사진의 경우에는 밭이라기 보다는 건축에 사용되어다가 떼어낸 석고보도, 스치로폼, 그리고 깨진 벽돌이 잔뜻 흩어져있는 쓰레기 더미에 불과 했었다. 그런 곳을 봄부터 개간을 하여 옥수수, 고추, 상추, 콩, 호박을 심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굴삭기로 밭에 있는 체소, 고추나무, 토마토, 배추등을 밀어 버렸다. 다시 땅을 다져서 콘크리트를 부워 가건물을 지어야만 했다. 사실 임대를 하게되어 세입자의 편의를 보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이 몇 평이나 됩니까?"
임대를 하겠다는 사람이 추석 다음날 찾아와서 현장을 둘러보며 물었다.
"스무 세 평 정도..."
"너무 적군요! 저희는 행사용 텐트를 임대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창고로 오십 평정도 필요합니다만..."
"그럼, 옆과 뒤 쪽을 가건물로 지어드리지요!"
옆을 더 넓혀 준다는 점은 결국 예전에 가건물로 사용한 곳에 다시 지어주면 될 것같았다. 그래서 선뜻 의향을 물어본 것인데,
"좋습니다! 더 지어준다면 계약하겠습니다." 그렇게 조건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보증금 500만원을 미리 받았으므로 그 돈으로 가건물을 지어 주워야만 했다. 바닥을 다져서 콘크리트로 깔아서 파이프를 박고 그 곳에 조립식 알판(철판 한장으로 된 조립식 자재. 주로 벽면과 천정에 쓰임)을 붙이고 지붕을 내달아서 가건물을 지어주워야만 했다.
사실 아래 사진중에 밭 옆에 건축 자제들이 쌓여 있는 것은 가건물을 없앴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는 이곳에 교회에서 임대를 하여 사용하였는데 건물이 작았으므로 옆과 뒤 쪽에 가건물을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이사를 하면서 부셔놓고 갔으므로 여기저기 폐건축 자제가 흩어져 심지어 밭을 일굴 때마다 깨진 유리병 조각에 손가락을 베이기 일쑤였었다. 스치로폼, 석고보도, 나무, 조립식 판넬, 유리병, 철망 하며 잡다한 쓰레기가 작은 산을 이루듯 쌓여 있었다. 그것을 치우고 본 건물 벽쪽에 붙여서 처마를 이어달고 필요한 만큼 건물을 이어내주워야만 했다.
30도를 육박할 정도로 무더운 기온이 내져 쪼였다.
이제 다시 노가다(노동일)을 시작하면서 땡볕에서 헉헉대지 않을 수 없었다.
심한 갈증으로 물을 사말째 들이켰다.
한낮의 무더위에 지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라!
이런 더위에 밖에서 땅을 파고 콘크리트 타설을 하게 되면 보통의 인내력같고는 버티기 힘들었다.
도를 닦는 스님의 심정이 있런 것일까?
육체적인 피로는 끊임없이 인내를 요구한다.
올 봄에 300평 내외의 축사 건물을 수리하여 세을 놓을 때도 몇 만원의 돈이 필요했었다. 이 건물을 경매로 구입하여 3,000 만원의 돈을 썼는데 그 돈을 순전히 재료비만 들어간 돈이었다. 기둥으로 들어간 파이프, 에이치 빔(H-빔:철재에 사용되는 용어로 H 형태로 된 10미터 길이의 철재로서 건축, 교량, 기계 등에 사용된다. 역주), 지붕 판넬 값이었다.
아내와 내가 손수 다했기 때문에 인건비는 계산되지 않은 돈이었다. 그러나, 건축을 하기 위해 땡볕에서 태양과 맞다아 드릴 때마다 도를 닦는 심정이었다. 마음과 몸을 비우지 않으면 육체적인 노역에 대하여 결코 견뎌낼 수 없었다. 그것은 생업과는 또한 다른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몸으로 부딪혀 집수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여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비용을 전부 자신이 각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윤과 상반된 작업을 한다는 점에 깊이 혐오감이 뒤 따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만한 돈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작업을 진행 할 수 없는 탓도 있었다.
이번에 가건물을 짓기 위해 들어가는 돈은 세입자가 미리 걸어둔 보증금으로 사용하여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 돈은 빚이었으므로 갚지 않으면 안되었다.
'계약금을 받으면 은행에 정기적금을 들리라!' 그렇게 결심을 하였지만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은 것이다. 그렇게 계약금이라도 세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용될 필요가 있을까? 아무래도 그 돈은 전부 사용될것 같았다.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 이제 흔들리는 시점에 와 있었다. 거기다가 다시 시작된 무보수에 가까운 나의 노역은 전혀 보상받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복잡한 머리 속은 수많은 계산으로 인하여 어지러웠고 육체적인 과로로 인하여 소금이 배출되어 머리가 띵했다.
공허로움. 해탈. 도인의 길
기실 부처와 하나님은 내 안에 있었다.
육체가 고달플수록 그 인내는 깊이가 커서
참으면 참을 수록 부처와 하나님이 된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내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참선은
고행은 바로 일상적인 것이며
행복은 그에 따른 추상적인 받침일 뿐이다.
무릇, 인생이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 위해한 선인들의 뜻에
가까이 하려는 중생이 최고의 도를 깨우침은
바로 일상에 가까운 것이 깨우침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믄 포만감은 아니었을까?
아, 삶의 무게에 짖눌리는 현대인들의
고행은 바로 자신이 호신의 힘을 다하여
깨우침은 곧 직장애서 최선을 다할 때
이루워 질 것이다.
그것은 곧 마음이니까?
그리고 진리이며
사막과도 같아서 만지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갔다.
단지 무언중에 자신에게 느껴지는 업보로서 받아들이고
평범하게 살고저 노력한다면 그것이 마음의 등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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