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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日記)
작년 이만 때....
2009.05.23 09:19
작년 이만 때....
이곳에 밭을 개간하였었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난 지금은 어떻던가!
지난 가을쯤에 옥천 신문의 광고란에 임대를 한다고 광고를 냈었다.
그리고 500만원의 보증금을 받았고 그 돈으로 바닥에 레미콘 콘크리트를 한 차당 40만씩 다섯차를 쏟아 부웠고 창고를 증설하여 임대를 놓았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서버를 '리눅스'에서 '윈도우XP'로 바꾸는 바람에 이곳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으니...
왜 이렇게 감회가 새로운가!
비록 사진은 핸드폰으로 찍은 것이었지만...
1년전과 지금의 변화가 눈물겨운 것이었기에...
1년 전의 일기장을 들춰내어 이곳에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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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집에 세 값을 받다. | 일기ㅁ日記ㅁ
- 창고를 지어 세를 놓고 2008년 10월 1일부로 세를 놓았던 건물에 보증금으로 받은 500만원의 돈까지 모두 수리비용으로 지출하고 두 ... 文學 | 2009-01-04 20:17 | 조회수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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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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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
2009.05.2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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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學
2009.05.24 08:49
두 번 째, 경매로 구입한 대지에서...(2008-06-09 22:36:59,
두 번 째, 경매로 구입한 대지에...
그곳을 개간하여 작은 공터에 상추, 콩, 고추, 옥수수, 호박, 가지, 등을 심는다. 쓰레기는 한 쪽으로 밀어 내고...
가장 흔한 게 상추였다. 사뭇 그곳에 들러 상추를 뜯었다. 두 쪽씩 나오는 잎파리 중에 그나마 크게 보이는 것을 뜯고 다음에 나머지를 뜯는다 어느결에 자랐는가 뜯는 것 만큼 풍성하게 위에 있는 잎들이 돋아 난 뒤에
그 한 잎도 뜯어 밥상에 올렸다.
상추는 그 잎을 그렇게 제공하고
성장을 보장 받는다.
특히 올해는 옥수수를 많이 심었으므로 실컷 먹을 수 있으리라!
씨앗을 사다가 심은 옥수수는 크기가 작고 묘목을 사다가 심은 것은 그나마 크기가 컸다.
그렇지만 씨로 심은 것만큼이나 많을까?
나오기는 더디고 느린게 흠인지라 지금도 땅을 파보면 노란 싹이 나오는 것도 있었다.
"씨를 물에 불려 심었으니 이나마 싹이 나온 것이지..."
아내는 씨를 심었다는 게 대단한 자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씨안 파는 곳에서 옥수수 씨앗을 사다가 물에 불렸으니 그 지극정성이 대단함이다. 묘목으로 심는 것보다 씨앗으로 심는 것이 훨씬 더 많았으므로 그 양으로 따지면 밭 하나를 모두 심어도 남았다. 그렇다가 새로 개간한 밭을 모두 옥수수 밭으로 만들 수 없었으므로 고추도 심고 콩도 심어 보았다.
씨앗으로 옥수수를 심어 놓고 행여 싹이 나오지 않을까?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웠더니 어느새 풀잎같은 옥수수가 점점 커지더라!
처음에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심정을 이제는 보답하는 것처럼 천지가 옥수수구나!
농사를 지어본적이 없었다.
아내와 나는 가급적이면 밭을 만들고 땅을 개간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 도심지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 골목과 연한 담벽에 상추를 가꾸웠었는데
그것을 나눠주던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다.
또한 우리도 그렇게 심은 것들을 여기저기 나누워 줄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
文學
2009.05.24 08:51
옥천 신문에 광고를 냈다.(2008-09-17 00:57:45)
뒷 담에 주위로 빙둘러가면서 놓여 있던 터밭이 동네 정화조 개량 공사를 위해 외주에서 출장나온 업체에게 터매기 공사로 흙을 체우게 되어 콘테이너가 옮겨 놓여 있었으므로 터 밭을 사용할 수 없었다.
충북 옥천군 이원면에는 '코스모링크'(구 동양전선)이라는 회사가 있다. 그런데 이 전선 회사에서 전선을 감을 때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드럼을 전국 각지에서 수거하여 납품하는 업체가 토지를 임대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곳을 경매로 낙찰 받았지만 전혀 사용권을 주장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임대비용으로 두 달을 받았는데 4월치만 남았다. 그런데 '코스모링크' 라는 회사가 노조들이 파업에 돌입하여 벌써 몇 달 째였고 회사측에서도 폐업신고로 운영을 중지하면서 폐드럼을 납품하는 이 회사도 타격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부랴부랴 임대 비용이라도 아낄 속셈인듯,
"월 20만원으로 임대하였는데 그렇게 두 달간 드리지요!"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40만원을 받고 끝이었다. 더 이상 임대를 하겠다는 뜻도 없는 듯하여 4월부터 지금까지 세를 놓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옥천 신문에 부득불 광고를 냈다.
"옥천 신문이지요! 줄광고가 얼마입니까?"
"한 달에 만원입니다!"
옥천 신문은 한 달에 네 다섯 번 정도 배달하는 듯하였다. 대전광역시의 교차로의 줄광고는 6만원이었다. 그래서 비용을 줄일 속셈으로 한 달치를 내달라고 했다.
"창고및 소규모 공장 임대. 건물 78 ㎡ 대지330㎡ 연락처 043-6273-2727 그렇게 넣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온라인 번호는 농협, 계좌번호 456-3628-2729 옥천신문으로 일만원을 입금시켜 주세요!" 하고 여자의 음성이 말했다.
첫 달에는 몇 번 전화가 왔을 뿐 거래는 이루워지지 않았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신청하고 나서 추석이 지난 다음날 전화가 왔는데 바로 집앞에서 한 모양이었다. 창문 밖으로 차가 보였다. 그리고 나와 얼굴을 마주하며 전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집앞이시라고요!"
"예, 보이네요! 창문에서 밖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 내려가죠!"
추석 명절 다음날이었다. 그런데 세를 놓을 장소를 확인차 가족과 함께 온 모양이었다. 차 안에는 부인과 두 아이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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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4
오늘 영동 법원에 갔다.
뒤에 있는 창고가 지어 있는 100여평 정도의 토지가 경매에 나왔는데 이번에 3차였다.
구 건물이 있던 곳에서 좀 떨어진 김청 방향의 4차선 도로변에 자리잡은 신축 건물은 회색빛의 3층 건물 같았다. 2층에서 경매가 열렸는데 법정이 4개정도는 있는 것 같았다. 계단으로 올라서면서 오른쪽의 끝 부분의 법정에서 경매가 열리고 있었으므로 나는 뒤 늦게 도착하여 입찰표를 받아 기록을 하였다.
애초에 사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경매가 3차까지 끌고가자 경매가가 많이 내려 왔으므로 어이가 없었다. 그만큼 경기가 없음을 실감하게 되었다고나할까?
날씨가 무척 추워 진 것일까?
차량이 시동이 켜지지 았았으므로 급히 밧데리를 충천하였으므로 미리 자전거를 타고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기다리고 있는 아내가 있는 국민은행 앞으로 갔다.
"찾았어?"
"얼마?"
"000...."
내가 액수를 쓰지 않는 것은 항상 그렇듯 경매란 것은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쓰면 다른 사람이 나서서 더 많은 액수를 쓰곤 했었으니까?
"조금만 더 찾아와!"
"알았어요!"
그렇게 해서 오전 9시가 좀 넘는 시간에 출발을 하였다.
영동법원에 9시 30분에 도착을 하였는데 과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50분은 걸렸으리라! 어쩌다보니 과속을 하는구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시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용할 가치가 없어서였다. 무엇을 하여 활용할 것인지 다른 사람은 전혀 곤란해 보였지만 내나름대로의 계산대로라면 현재 있는 집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이번 경매 물건에 대하여 무엇보다 활용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창고 건물이 조립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새로 신축한 충북 영동 법원은 깨끗했지만 재판을 진행하는 법정내부는 예전보다 비좁고 의자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람들이 밖에 나가 있거나 서 있어야 했다. 경매를 진행과정, 절차 그리고 진행자들은 낮이 익었으며 단지 새 건물 2층에 자리 잡았을 뿐이었는데 불편함은 예전보다 더했었다. 의자가 적어서 많은 사람들이 서 있어야 했으므로 다리가 아팠기 때문일까?
2007년 12월 4일 충북 영동 법원에서 A라는 번호(대부분 경매는 2007 타경 600호 등과 같이 번호로 구분한ㄷ다.)의 경매자로 참여 하여 두 사람 중에 최고 액수를 써 넣어 집 옆의 창고가 딸린 물건을 낙찰 받았었다.
얼마 전에 낙찰 대금을 지급하라는 통지를 받았는데 2008년 1월 21일까지 였다.
현재 전선 드럼을 쌓아 놓고 있는 업자에게 임대를 한 상태였다. 교회로 임대를 하였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상태였으며 보증금을 주지 못하여 경매신청을 하여 불과 2년 전에 다른 사람이 경매로 낙찰 받았었는데, 취하를 하였지만 이번에는 은행에서(농협, 신협) 부동산 업자인 주인에게 다른 곳과 함께 경매를 당한 복잡한 사연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맞은편이었으므로 사두면 활용가치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경매에 참여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전날까지도 전혀 마음에 두고 있지 않다가 12월 4일날 아침에 갑자기 가겠다고 결정을 하여 부랴부랴 경매 액수의 10퍼센트를 은행에서 찾아서 뒤 늦게 출발하게 되어 '옥천 이원 삼거리'에서 무인 카메라에 신호위반까지 당했었다. 그리고 영동 법원이 이전한 사실도 모르고 구 법원 앞에서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었다. 이전한 장소가 쓰여 있는 안내판을 보고 뒤 늦게 찾아간 법원 경매 법정은 한참 진행중이었지만 다행히 마감을 하지 않았으므로 신청 서류를 들고 나와 생각해 둔 액수를 써 넣으면서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내게 운명적으로 와 닿았다.
내가 적어 넣은 액수만큼 돈을 갖고 있던 것이 아니여서 은행에서 빌려야만 했다. 그리고 어제는 영동 법원에 찾아가서 선정해 놓은 잔금을 치루고 영수증을 받았으며 이전 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군청과 등기로를 찾아 다니면서 꾸몄다. 등록세, 취득세, 등기부에 기록된 지저분한 내용의 은행, 법원, 군 등에서 경매자 앞으로 붙여 놓은 빚에 관한 내용들을 지우는 말소 신청을 하고 그 비용을 치뤘다.
오늘 아침은 그런 첨부 서류(영수증과 필요한 서류... 다행히 법원에서 서류만 제출하면 모든 절차를 대행해 준다)를 들고 다시 영동 법원에 가야만 했다.
아, 나는 몇 년 후의 꿈을 꾼다.
이곳에 인쇄 기계가 돌아가고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만들어 내는...
그것이 이곳을 내게 구입하게 한 것일까?
운명의 여신이여!
당신이 진정 내게 저 곳을 점지해 준 곳이란 말입니까?
우연히 내 것이 된 곳이 내 미래인가요!
그곳에 인쇄 기계가 돌아가고 사업적으로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꿈을 꿉니다.
정녕 그것이 꿈이 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
文學
2009.05.24 08:56
옥천 신문에 광고를 냈다. (2)(2008-09-18 00:10:55)
이곳에서는 옥천 신문에 줄광고를 니곤 했었는데 가격은 만원이었다.
.
위의 그림이 대략적인 지형의 전체 구체도였다. 사실상 오른쪽의 장소가 전선회사에 드럼을 납품하는 곳이었는데 자꾸만 침범을 하여 결국 울타리를 치고 말았다.
위의 그림 중 하단부의 황토색으로 칠해진 곳은 밭이었다. 그렇지만 아래 사진의 경우에는 밭이라기 보다는 건축에 사용되어다가 떼어낸 석고보도, 스치로폼, 그리고 깨진 벽돌이 잔뜻 흩어져있는 쓰레기 더미에 불과 했었다. 그런 곳을 봄부터 개간을 하여 옥수수, 고추, 상추, 콩, 호박을 심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굴삭기로 밭에 있는 체소, 고추나무, 토마토, 배추등을 밀어 버렸다. 다시 땅을 다져서 콘크리트를 부워 가건물을 지어야만 했다. 사실 임대를 하게되어 세입자의 편의를 보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건물이 몇 평이나 됩니까?"
임대를 하겠다는 사람이 추석 다음날 찾아와서 현장을 둘러보며 물었다.
"스무 세 평 정도..."
"너무 적군요! 저희는 행사용 텐트를 임대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창고로 오십 평정도 필요합니다만..."
"그럼, 옆과 뒤 쪽을 가건물로 지어드리지요!"
옆을 더 넓혀 준다는 점은 결국 예전에 가건물로 사용한 곳에 다시 지어주면 될 것같았다. 그래서 선뜻 의향을 물어본 것인데,
"좋습니다! 더 지어준다면 계약하겠습니다." 그렇게 조건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보증금 500만원을 미리 받았으므로 그 돈으로 가건물을 지어 주워야만 했다. 바닥을 다져서 콘크리트로 깔아서 파이프를 박고 그 곳에 조립식 알판(철판 한장으로 된 조립식 자재. 주로 벽면과 천정에 쓰임)을 붙이고 지붕을 내달아서 가건물을 지어주워야만 했다.
사실 아래 사진중에 밭 옆에 건축 자제들이 쌓여 있는 것은 가건물을 없앴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는 이곳에 교회에서 임대를 하여 사용하였는데 건물이 작았으므로 옆과 뒤 쪽에 가건물을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이사를 하면서 부셔놓고 갔으므로 여기저기 폐건축 자제가 흩어져 심지어 밭을 일굴 때마다 깨진 유리병 조각에 손가락을 베이기 일쑤였었다. 스치로폼, 석고보도, 나무, 조립식 판넬, 유리병, 철망 하며 잡다한 쓰레기가 작은 산을 이루듯 쌓여 있었다. 그것을 치우고 본 건물 벽쪽에 붙여서 처마를 이어달고 필요한 만큼 건물을 이어내주워야만 했다.
30도를 육박할 정도로 무더운 기온이 내져 쪼였다.
이제 다시 노가다(노동일)을 시작하면서 땡볕에서 헉헉대지 않을 수 없었다.
심한 갈증으로 물을 사말째 들이켰다.
한낮의 무더위에 지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라!
이런 더위에 밖에서 땅을 파고 콘크리트 타설을 하게 되면 보통의 인내력같고는 버티기 힘들었다.
도를 닦는 스님의 심정이 있런 것일까?
육체적인 피로는 끊임없이 인내를 요구한다.
올 봄에 300평 내외의 축사 건물을 수리하여 세을 놓을 때도 몇 만원의 돈이 필요했었다. 이 건물을 경매로 구입하여 3,000 만원의 돈을 썼는데 그 돈을 순전히 재료비만 들어간 돈이었다. 기둥으로 들어간 파이프, 에이치 빔(H-빔:철재에 사용되는 용어로 H 형태로 된 10미터 길이의 철재로서 건축, 교량, 기계 등에 사용된다. 역주), 지붕 판넬 값이었다.
아내와 내가 손수 다했기 때문에 인건비는 계산되지 않은 돈이었다. 그러나, 건축을 하기 위해 땡볕에서 태양과 맞다아 드릴 때마다 도를 닦는 심정이었다. 마음과 몸을 비우지 않으면 육체적인 노역에 대하여 결코 견뎌낼 수 없었다. 그것은 생업과는 또한 다른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몸으로 부딪혀 집수리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여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비용을 전부 자신이 각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이윤과 상반된 작업을 한다는 점에 깊이 혐오감이 뒤 따르게 된다. 왜냐하면 그만한 돈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작업을 진행 할 수 없는 탓도 있었다.
이번에 가건물을 짓기 위해 들어가는 돈은 세입자가 미리 걸어둔 보증금으로 사용하여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 돈은 빚이었으므로 갚지 않으면 안되었다.
'계약금을 받으면 은행에 정기적금을 들리라!' 그렇게 결심을 하였지만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은 것이다. 그렇게 계약금이라도 세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용될 필요가 있을까? 아무래도 그 돈은 전부 사용될것 같았다.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 이제 흔들리는 시점에 와 있었다. 거기다가 다시 시작된 무보수에 가까운 나의 노역은 전혀 보상받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복잡한 머리 속은 수많은 계산으로 인하여 어지러웠고 육체적인 과로로 인하여 소금이 배출되어 머리가 띵했다.
공허로움. 해탈. 도인의 길
기실 부처와 하나님은 내 안에 있었다.
육체가 고달플수록 그 인내는 깊이가 커서
참으면 참을 수록 부처와 하나님이 된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내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참선은
고행은 바로 일상적인 것이며
행복은 그에 따른 추상적인 받침일 뿐이다.
무릇, 인생이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 위해한 선인들의 뜻에
가까이 하려는 중생이 최고의 도를 깨우침은
바로 일상에 가까운 것이 깨우침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믄 포만감은 아니었을까?
아, 삶의 무게에 짖눌리는 현대인들의
고행은 바로 자신이 호신의 힘을 다하여
깨우침은 곧 직장애서 최선을 다할 때
이루워 질 것이다.
그것은 곧 마음이니까?
그리고 진리이며
사막과도 같아서 만지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갔다.
단지 무언중에 자신에게 느껴지는 업보로서 받아들이고
평범하게 살고저 노력한다면 그것이 마음의 등불일 것이다. -
文學
2009.05.24 08:58
옥천 신문에 광고를 냈다. (3)(2008-09-19 13:22:28)
레미콘 차량으로 4대 반의 콘크리트를 땅바닥에 쏟아 부웠다.
. .
레미콘으로 4대분의 시멘트를 부웠다.
30도를 오르내리는 한낮의 무더운 날씨.
점심 때가 되기 전에 그만 지쳐 버렸다.
머리가 어지럽고 손과 발을 가눌수가 없어서
밀개를 놓고 쉬어야만 했다.
열실신(熱失神).
일사병(日射病). -
文學
2009.05.24 08:59
옥천 신문에 광고를 냈다. (4)(2008-09-21 13:35:51)
가건물로 옆과 뒤편을 이어서 지붕, 벽, 그리고 담을 얇은 철판으로 막아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렇지만 벌써부터 예상과 다르게 건축비가 추가되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많은 비용을 추가로 들여서 세를 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백만원을 상회하여 건축비가 추가로 드러갈걳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바닥에 콘크리트로 4차가 넘게 부웠는데 200만원이 들었다. 포크레인 임대 비용으로 100만원 거기다가 C형강으로 675,000원을 쓰게 되니 기운이 빠졌다. 세를 놓기 위해 보증금으로 받은 500 만원의 돈을 다 쓰고서도 모자랄 것 같았기 때문이다.
"60Χ30mm C형강을 50개 구입하려고 하는데 얼마입니까?"
"개당 22,500 원이니까 백십이만 오천원이네요!"
"어이구 왜 그렇게 비쌉니까?"
"철재 가격이 많이 올랐서 그렇습니다!"
"그럼, 30개만 사겠습니다!"
"육십칠만오천원을 입금시켜주세요!"
"바로 입금 시키죠..."
철재 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전에 같으면 절반 가격에 살 수 있었는데 전혀 내려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가건물로 지어주겠다고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었다.
무턱대고 시작하여 들어가는 재료비를 따져보니 계약금으로 받은 오백만원을 상회하였으므로 나는 다른 자재들을 중고로 사용하기위해 고물상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창고 건물 옆과 뒤편을 조금 이어서 넓히는 데 이렇게 많은 돈이 들다지!' -
文學
2009.05.24 09:01
옥천 신문에 광고를 냈다 (5)-새로운 변화(2008-09-25 21:03:54)
새로운 변화
어떤 식으로든 수입이 창출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글을 쓰는 것은 전혀 그렇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곳에서 수입을 올려야만 살아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적어도 경기가 나빠지면서 거래처의 공장들이 기계 시설투자를 하지 않다보니 주문이 없고 어렵게 납품한 기계는 결제를 받지 못하였다. 서울에서 주문 받은 NC 카팅기계를 만들다 말고 공장 앞의 건물에 세를 놓게 되어 그곳에 손을 보기 시작한지 일주일 째였다.
9월 15일 찾아온 사람은 창고로 임대한다고 하여지만 처음에는 23평 정도는 너무 적다고 했다.
"건물이 너무 좁아서 안되겠습니다!"
"그럼, 다른 곳에 한 번 가 보시겠어요?"하고 내가 300평 건물을 수리한 축사를 생각하고 물었었다. 그곳에는 한 사람이 임대를 하여 거의 다 쓰고 있었으므로 칸을 막아서라도 다른 사람이 들어와야만 했다. 고작 30만원으로는 투자한 돈을 회수하지도 못하였으므로 무척 억울한 느낌이 없잖았으므로 이번 기회에 더 세를 놓아도 무방할 것 같아서다. 그런데 함께 찾아간 그 사람은 건물은 높고 넓은데 너무 멀고 차 길이 나쁘다고 거절했다.
"너무 멀고 차가 다니기에는 불편하네요! 저희는 봄 가을이 성수기이며 자주 왕래하는 편인데 조그만 농로 길로 하루에도 몇 번씩 나닐 계제가 아니군요!"
"알겠습니다. 이 쪽도 저와 집사람이 함께 지은 건물입니다. 그럼, 처음 본 건물 옆으로 좀 넓혀 주면 되겠습니까?" 하고 내가 다시 물었다.
"그래주시겠습니까?"
"그럼요? 여부가 있습니까!"
그렇게 하여 결국 넓혀 준겠다는 내 제의에 수락을 하고 다음날 500만원을 보증금으로 준 것이다. 사실 그 돈이 전부 들어갔지만 어쩌겠는가! 임대는 놓아야겠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들어 올 것 같고 해서 무리하지만 가건물로 처마 밑을 넓혀서라도 공간을 만들어야만 했으니...
그 뒤, 일주일이 넘는 듯싶었다. 이틀이 멀다않고 비가 왔으므로 능률이 오르지 않았었다. 오늘도 오전 내내 비가 내렸으므로 작업을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잡생각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무엇보다 지붕재와 벽체를 고물상에서 얇은 철판으로 구하지 못하였으므로 매우 곤란하였는데 지붕을 절반정도 올린다고 해도 벽과 울타리를 막을 수 있는 조립식 철판이 더 있어야만 했다.
철제 값이 불과 1년 전보다 두 배는 껑충 올랐으므로 자재를 고물상을 찾아 다니면서 중고를 사왔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이제는 중고로 도배를 하는 격이되었다.
"건축 공사할 때 옆에 기둥으로 세우고 위험을 방지하는 파이프 있어요?"
나는 옥천 시내의 고물상은 모두 돌아 다녔으므로 가격에 대하여 훤히 알게 되었다.
"예!"
"얼마입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머리 속에는 온통 다른 곳에서 산 가격표가 가득차 있었다.
고물상 주인 왈,
"요즘 새 것은 비싸서 사지 못하니까 중고 자제만 찾습니다!"
"아, 그렇습니까?"하고 내가 공감자히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새 것은 무려 세 배나 비쌌으므로 감히 엄두를 못내기 때문이다. 고물상을 뒤지며 중고를 찾는 동안 철재 값은 다 외우고 다녔는데 우선 파이프의 경우 저울로 치면 Kg으로 500원이었고 1미터(M)에 2,000원이었다.
나는 일하는 시간보다 중고를 찾아 다니는데 더 혈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파이프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제와 벽체로 얇은 철판재를 찾아 다녀야만 했다.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값이 싼 중고자제를 찾아 다니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가건물로 지은 부속 건물은 내가 구입하기 전에 무허가로 한 체가 있었고 지금도 두 체가 딸려 있었는데 그것을 뜯고 다시 이어 붙여 지으려고 했으므로 종전보다 더 많이 찾이하였으므로 재료비도 많이 들어 갈수밖에 없었다.
대략적으로 보아도 30평 정도는 됨직하였다. 벽체, 지붕, 담장을 모두 한장 짜리 철판으로 둘르고 씌우려는 데 신재는 비싸서 못사고 중고 재료를 찾아 고물상을 이잡듯이 샅샅히 뒤져 보았지만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또한 새로 이사올 사람들은 미리부터 물건을 실고와 창고에 쌓고 여기저기 벌려놓기 시작하여 가뜩이나 어지러운데 이삿짐까지 벌려 놓았으니 더욱 각박한 시간에 쫒겼다.
"28일 돼지 머리 놓고 고사라고 지내야 겠어요!"
"그러시지요!"
"막걸리 한 말에 소주 한 박스면 될까요?"
이사올 사람은 매우 호탕하게 말했는데 오히려 내가 눌렸다. 계약서도 쓰지 않고 선뜻 500만원을 건넨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나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사업적으로 무척 바빠 보였으며 돈도 많이 벌 것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건물이 있다 뿐이었다. 우리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세입자로서 나는 세를 놓는 사람으로 만나서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들은 상대의 생각을 읽었으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다른 쪽을 부러워 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세를 놓으려고 하는 이유는 순전히 내년에는 대학생이 둘이 되기 때문이었다. 기백만원의 학교 수업료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미리 준비를 해 두려는 것이지만 어찌보면 경매로 구입한 문건(여기서 물건이란 토지와 건축물을 일컫는다) 을 다시 세를 놓으려고 세입자의 입장과 요구를 맞춰서 건물을 짓거나 수리할 수 박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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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경매 법원에서 구입한 앞 집의 뒤 바당에 갖종 씨앗을 뿌리다.(2008-04-18 05:11:53)
뒷 담에 주위로 빙둘러가면서 놓여 있던 터밭이 동네 정화조 개량 공사를 위해 외주에서 출장나온 업체에게 터매기 공사로 흙을 체우게 되어 콘테이너가 옮겨 놓여 있었으므로 터 밭을 사용할 수 없었다.
다른 곳을 찾다가 2월에 경매로 구입한 앞 집의 뒤 마당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터밭을 조성하여 상추,아욱, 시금치 등의 씨를 뿌렸다.
충북 옥천군 이원면에는 '코스모링크'(구 동양전선)이라는 회사가 있다. 그런데 이 전선 회사에서 전선을 감을 때 사용하는 나무로 만든 드럼을 전국 각지에서 수거하여 납품하는 업체가 토지를 임대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곳을 경매로 낙찰 받았지만 전혀 사용권을 주장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임대비용으로 두 달을 받았는데 4월치만 남았다. 그런데 '코스모링크' 라는 회사가 노조들이 파업에 돌일하여 벌써 몇 달 째였고 회사측에서도 폐업신고로 운영을 중지하면서 폐드럼을 납품하는 이 회사도 타격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부랴부랴 임대 비용이라도 아낄 솏셈인듯 금산의 농가가 몰려 있는 곳에 700평 정도 밭을 구입해 놓고 지금까지 비워 있던 곳을 건축 허가를 받아서 창고를 짓고 그곳으로 폐드럼들을 옮기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짜피 '코스모링크' 회사에 폐드럼을 납품하지 못하고 있는 관계로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는 입장에서 보면 무척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전을 하여 적자를 만회하려는 발악과도 같은 세 사람의 관계되는 사람들의 행동에 대하여 어찌보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4월 말일부터 우리가 경매로 구입한 위의 장소를 임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