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룩스서버컴퓨터 백업 |
文學위의 文學 출판사입니다. PDF로 전환하여 복사기로 책을 만듭니다. 자세한 내용은, '디지털 인쇄'에서 확인해 보세요! |
새로운 리눅스 서버... 일기(3) (日記)
하지만 기계 제작 일이 계속 주문이 들어와서 밀려 있는 상황. 조금 더 야간 잔업을 진중하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 그렇지만 겨울철이다보니 너무 추워서 또한 야간 작업이 힘들었지만 이제 봄부터는 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계속된 기계 주문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을 더 많은 시간을 기계작업시간으로 충당하여야만 한다는 점이었다.이사를 한 곳에서... (3)
2016.02.09 10:38
-노트북 컴퓨터로 찍은 사진-
1. 이사를 한 곳에서 P580 노트북으로 사용하였다.
1층에 세를 놓은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IP Time 공유기에서 무선 인터넷을 쓸 수 있었는데 그곳이 주방 쪽이었다. 이곳에서 식탁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올려 놓고 글을 쓰고 있다.
인터넷을 이곳에 설치 하지 않았으므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젯밤 1시 쯤부터 식탁에 무선 인터넷이 연결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30분 정도 글을 썼는데...
구정 명절에 동생들과 둘 째 조카들이 다녀 갔다. 이 새로운 건물 2층에서 명절을 보내게 된 사실로 인하여 너무도 감계 무량할 뿐이다. 하지만 모든 환경이 달라져서 새롭기만 한데... 무엇보다 건물 내부에 방한 시설이 잘 되어 있다보니 기름보일러를 약하게 놓았는데도 방 안에 한기가 없었다.
이곳에 설치되어 있던 가스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꾼 사실이 너무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연료비의 지출을 놓고 고민했을 터였다. 지금와서 보면 모든 게 흡족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전환한 사실을 놓고 보면 가장 마음에 든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무척 게을러지는 게 사실이었다.
우선 나무를 때지 않다보니 밖에 나가서 화목보일러에 넣은 나무를 장만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자유스럽다. 그런 고민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이상하리만큼 달라지게 느껴졌다.
2. 노트북 580을 갖고 와서 사용하는데 이 사양이 속도가 빠르고 작업하기 편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보니 다시 한번 사양을 살펴 보게 되었다. 사실상 내가 출장용으로 사용하는 노트북 컴퓨터는 P560이었다. 그리고 P580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P580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노트북 컴퓨터였다. 속도가 빠르고 무척 화면이 깨끗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사용하던 노트북 (NT300E5C-A28L)은 노트북 컴퓨터의 LCD 화면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외부 모니터로 연결하여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P580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화면이 LED 화질로 고선명이며 배터리가 많이 사용하지 않다보니 오랜 시간 외부 전원도 없이 작업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이 노트북을 이용하면 될 듯하고...
samsung NT-P580 JSOG/C 의 사용 |
intel Core i5-M520-m560 (2.40GHZ~255 GHz) |
정품 Microsoft Windows7 (64비트)ㅇ하 |
intel HM55 |
NVIDIA Geforce 330~335 Graphics |
15.6형 HD LED non Gloss 디스플레이 (1366X768) |
4GB DDR3 RAM |
|
|
|
|
|
3. 모친을 구정 때 집에 데리고 오려고 하던 계획이 무산되었다. 그래서 모친은 화가 났던 모양이다. 자신을 요양병원에 내 버려 두고 저희들만 편하게 지낸다고 막내 동생을 통해 전달되어 왔다.
하지만 모친의 병세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건 집에서는 도저히 모릴 수 없는 이유였다.
또한 간병인은 어떻게 도질지 모른다고 급구 반대를 하였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명절에 집에 갔다오면 생각이 바뀔 터였고 그렇게 되면 한 동안 똥칠을 하다가 이제막 그렇게 하지 않게 되었는데 집에 데리고 갔다가 오면 또 변하게 될 지 모른다고 우려했던 것이다.
사실 모친은 침내끼가 있는 것같았다. 자신에게 의지가 없다보니 외부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몸을 편하게 하는 쪽으로 변신을 거듭한다. 그것이 어느 날에는 갑자기 돌변을 하여서 습관을 바꾸고 하던 것도 못하게 되는 사태를 초래하곤 했었다. 그리고 또한 밤에 잠을 자지 못하게 괴롭혔었다.
요즘은 기계를 몇 개월 째 한 기계에 매달렸지만 부산의 S.Y 에 납기가 지연되고 있었다.
그로인하여 돈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모친에게 갈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지를 않는다.
4. 이곳에서의 적용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부분을 고쳐 나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것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많은 부분이 저쪽에서의 생활에 길들여져 왔었다.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방식은 이 생활로 전환을 빨리 하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점이었다. 어쨌튼 그 모든 게 달라지게 될 것이며 적합한 상태로 적응하는 도리 밖에 없었다.
물론 돈을 벌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빚을 갚는 게 급선무라는 점은 가장 선결과재였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그만큼 일을 더 많이 하여야 할터였다.
5. 이곳에서는 글을 더 잘 써질 것같은 느낌이 온다.
앞 쪽으로 장용산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무척 마음에 든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9 | 이사를 한 곳에서... (4) | 文學 | 2016.02.14 | 280 |
188 | 탁구 동호회 정기모임 | 文學 | 2016.02.13 | 125 |
187 | 탁구 동호회에서 내일 있을 새로 가입한 신입생 인사말을 하기 위해... | 文學 | 2016.02.13 | 636 |
186 | 뒤 바뀐 전경 | 文學 | 2016.02.12 | 194 |
185 | 밀린 기계 제작에 관한 논답 | 文學 | 2016.02.12 | 156 |
184 | 점심 식사를 하러 J 건축으로 왔다. | 文學 | 2016.02.11 | 164 |
183 | 아들과 탁구를 치면서... | 文學 | 2016.02.09 | 82 |
» | 이사를 한 곳에서... (3) [1] | 文學 | 2016.02.09 | 322 |
181 | 이사를 한 곳에서... (2) | 文學 | 2016.02.09 | 118 |
180 | 이사를 한 곳에서... | 文學 | 2016.02.07 | 253 |
179 | 이사를 할 곳 (2) | 文學 | 2016.02.06 | 132 |
178 | 이사 연습을 한다. | 文學 | 2016.02.06 | 199 |
177 | 지금 있는 곳과 이사를 할 곳 | 文學 | 2016.02.06 | 201 |
176 | 새로운 기계를 제작하면서... | 文學 | 2016.02.03 | 170 |
175 | 기계 납기가 미뤄지면서... | 文學 | 2016.02.02 | 155 |
174 | 기름 보일러로 교체하였다. | 文學 | 2016.02.02 | 623 |
173 | J 건물 1층에 세들어 온 A 라는 사람 | 文學 | 2016.01.30 | 146 |
172 |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7) | 文學 | 2016.01.29 | 155 |
171 | 탁구를 치면서... (6) | 文學 | 2016.01.28 | 96 |
170 | 부산 출장 (101) | 文學 | 2016.01.28 | 217 |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9)
옥천에는 공기 좋고 개발이 한정되어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그런 환경적인 요인 외에 대청댐이라는 수자원 보호지역이라는 특징을 살려서 크고 작은 연수원과 노인 복지 시설이 군 단위부터 면 단위까지 들어선 상태. 외지에서 노인들을 대거 입원시킨 사례가 주변에 흔히 회자(膾炙)되곤 합니다. 모친도 동네에서 병원에 관계자와 잘 아는 사람을 통하여 입원을 시켰을 정도로 선례(先例)가 있었습니다. 다른 병원에 간병인으로 근무하는 아내의 동창생을 통하면 또한 대전에 지인의 시어머니를 입원시켜 주기도 하였을 정도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옥천을 찾는 사람들이 요양병원의 위치를 묻게 되면 그답 알려 줄 정도로 일상화 되었지요. 왜 갑자기 요양병원 타령이냐고요?
저도 모친이 오른 쪽 경동맥 협착증으로 뇌에 이상이 생기면서 중풍, 치매의 합병증으로 장애 5등급 판정을 받게 되어 1년간 집에서 모시다가 증세가 악화되자, 어쩔 수 없이 이곳의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을 집에서 모셔 본 뒤, 너무도 힘든 간병으로 힘에 부치자 마침내 손을 들고 항복하는 사태를 맞게 되어 결국 남들처럼 요양병원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2015년 10월 26일
모친을 이곳에 모친 날짜입니다. 그리고 불과 4개월 남짓. 몸을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누워 지내었으므로 모친의 상태는 점점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근육이 빠져 나가서 앙상한 뼈만 남았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그 모습이 그동안 떠올랐지만 생각만큼 찾아오기 힘들었습니다. 너무 바쁜 나머지 줄 곳 일에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근 1년을 집에서 모셨지만 점점 더 악화되어 결국 이곳에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친의 연세 81세였고 79세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불과 2년이 지난 상태. 하지만 4개월 만에 등창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집에서 모실 때는 내가 강제로 운동을 시켜왔었으며 거동을 할 정도였지만 이곳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전혀 그렇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집으로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온통 모친을 간병하는 데 모든 시간을 빼앗길 정도였으니까요!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근육이 빠져 나가서 뼈만 남아 있는 것처럼 약해 졌습니다. 몸을 지탱할 수 없어서 누워만 있는 상태.
병실에 들어섰지만 모친은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왜소한 체구. 깡마른 얼굴. 백발로 성성한 머리칼, 쭈굴쭈굴한 얼굴 피부, 그리고 오징어처럼 늘어지는 신체는 나약하고 무기력하기만 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대전에서 홀로 지내시면서 독거노인으로 살면서 폐지를 줍던 모습은 간 곳이 없었습니다.
“엉, 아들……. 뭐 하러 왔어?”
“거동을 할 수 있나 보려고……. 집에 가자!”
“안 돼, 나아야 가지!”
“탁!”
탁구장에서 오늘은 여성분과 탁구를 쳤습니다.
A급의 상대편 여성분은 날씬하면서도 몸이 날렵합니다.
흰색의 탁구 볼이 날아오자 테이블 반대편으로 감아올리듯이 쳐서 네트를 넘겼습니다. 그렇지만 모친의 모습이 어느새 어른 거려서 이런 호사스러운 자유를 부리는 게 이상하게도 불효막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내야, 네 형이 나를 이런 곳에 쳐 박아 두고 저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구나!"
그런 소리를 모친에게서 듣고 왔다고 아내에게 넋두리를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양병원에 다녀왔지만 결국에는 집으로 모시고 오는 것을 포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근 1년간 모친을 뫼시면서 편하게 자 본적이 없었을 정도로 밤에는 온갖 주문을 외쳐 대곤 하던 모친이었습니다. 그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발 부탁한다. 살려 주는 셈치고……. 물 좀, 다오!”
“잠 좀 자요!”
“이 번 한 번만 다시 일으켜 다오!”
“새벽 세 시인데……. 잠을 자야 낼 일하지…….”
“눕고 싶어!”
“그냥 누워요!”
“못 해서 그래…….”
“할 수 있잖아요! 어제까지 혼자 잘 누웠고…….”
“안 돼!”
엎어져서 바둥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놔두면 죽는다고 낑낑댑니다. 잠도 자지 않고 깨워 대는 통에 도무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혈압이 머리끝까지 치솟는 듯싶었고요. 얼굴이 화끈거리고 핏발이 섭니다. 누워 있다 보면 천정이 빙글빙글 돌면서 이내 땅으로 꺼져 버릴 것처럼 어지럽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기를 2시간 째. 그러다보면 다시 모친이 깨우기 일쑤……. 아내는 2층으로 내려가서 잤고 간병을 위해 3층에서 모친과 함께 밤에는 시달림의 연속입니다. 참고로 1층은 기계를 만드는 작업장이 있는 공장이었습니다. 한 달에 수입을 올려야만 하는 한계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모친으로 인하여 일을 못해서 적자에 허덕이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 낮에는 장애 노인 복지관을 가게 되므로 모친을 태워 보내야만 했습니다. 옥천 보건소 옆에 있는 장애 복지관에서 승합차에 탑승을 하기 위해 함께 내리는 간병인도 힘들다고 계속 주문을 하는 처지였었지요.
밤마다 모친은 아들이 잠을 자지 못하게 악귀처럼 소리쳐 대곤 했습니다. 낮에는 복지관에서 잠을 재워서 밤에는 자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노인학교처럼 공부를 가르쳐야만 하는데 따르지 않고 피곤하다고 잠을 자서 재우게 되면 밤에는 깨어서 소리치는 것이 다반사였으니까요! 그렇게 밤새도록 모친에게 시달리게 되면 다음 날에는 도무지 일할 수 없을 정도가 되기 일쑤였으니…….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습니다.
일으켜 앉혀 놓으면 금세 뉘어 달라고 소리칩니다.
10분 만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아우성이며,
자장 자장하고 잠 좀 재워 달라고 주문까지 합니다.
똥을 왜 쌌어요.
안 쌌어!
오줌은 왜 싸고…….
안 쌌어!
“탁!”
모친의 얼굴이 그려지면서 자꾸만 볼을 받아 쳐서 상대편 테이블로 꽂아 넣습니다. 내게 오면 금세 받아 쳐야만 속이 시원했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 새겨진 탁구 볼이었습니다.
하얀 볼에 그려진 모친의 모습.
하지만 어려서 보았던 새색시처럼 예쁜 내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늙고 병약했고 이제 도무지 간병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죽는 것을 보아야만 어머니는 살아날까요.
그리하여 마침내 항복을 합니다.
거동조차 하지 못하여 요양병원에 모셔 둔 채, 이제 탁구 실에서 탁구를 칠 수 있을 만큼 무뎌져만 가는 감각이 그걸 허락할 수 있을 줄이야 하고 놀라워 할 따름이었습니다.
4개월 만에 모친은 더 병색이 짙어졌고 문병 온 동생들을 통하여 나를 꾸짖습니다.
“네 형은 왜 나를 여기에 처박아 놓고 저만 잘 산다냐? 네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렇게 흉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구정이 지난 뒤에 나는 요양 병원을 찾아서 모친을 일으켜 세워 놓고 집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엄니, 집에 가서 나하고 탁구치자!”
첨부파일에 대한 설명 - 새로 이사를 한 곳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찍은 사진입니다. 내 모습을 찍었지만 늙고 초라한 얼굴이네요! 이 늙음은 살을 빼고 난 뒤 더욱 피부가 들어 가서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탁구를 칠 때의 내 모습은 그야말로 야생마와 같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첨부파일로 올리고 나중에는 그림도 함께 올리게 될 것이지만 꼬박꼬박 첨부 파일로 넣겠습니다. 이것은 이 게시판에 그림조차 올릴 수 없게 만든 불합리함에 대한 도전입니다. 많은 제약을 갖게 함으로서 알량하게도 자유스러운 권리를 빼앗은 것에 대한 도전. 차라리 피하고 달아나면 될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렵니다. 얼마나 글 쓰는 사람에게 제약을 주는지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목에 칼을 대고 공포감을 조성한다고 글을 쓰지 못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억압을 하여도 내일은 해가 뜨니까요! 또한 다른 곳에서 더 분방하고 자유스럽고 훌륭한 글을 올려 놓을 수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 용서를 빌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게시판에 그림을 넣을 수 있는 게 엄청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태. 이건 곧 암흑입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벽에 부딪혀 가면서 동굴을 탐험하는 기분. 이런 처사를 받고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찾아 오는 이유는 그나마 옥천을 사랑해서 일 것입니다.
-수정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