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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모친의 이사와 짐에 관한 고찰

2014.07.27 22:05

文學 조회 수:17

                                                                    

                                                                                        1

   지금까지 들어간 모든 병원비들은 내 돈으로 지불했었다.

  심지어 막내 동생의 간병비로 준 별도의 돈도 모두 내 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세 째는 재활병원에서 퇴원을 시키기 위해 180만원을 치른 내 돈에 대하여 알고 있을 것이다.

  "병원비를 보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모친을 병원에서 퇴원 시켜서 집에 모시고 며칠 지난 뒤에 마침 내가 없었을 때 찾아와서 그 소리를 아내에게 한 모양이다. 하지만 막내 동생은 돈에 관해서는 알지 못한다. 아니면 모른 척을 하는 것인지...

  병원비가 얼마나 들었고 지금까지 어떻게 조마조마했는지조차 나는 말을 꺼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결국에는 욕을 먹는 것은 최종적으로 환자 부모를 모신 자식이 먹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하는 말이 그랬으니까?

  "병이 든 부모을 모시는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기 위해서는 모셔 본 자식만이 알아요!"

  사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여 왔었다.

  옆에 밭을 경장하는 K.Y.I의 부인은 내 심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 뜻뿐이었다.

  언제나 부모를 모신다는 책임감은 그만한 부담을 감내할 정도로 비용적으로 충당을 요구하여 왔었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최소한의 비용을 충당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루 이틀 모셔야 하는 게 아니므로 가급적이면 최소한의 절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간혹 이 문제가 최고의 쟁점이 되었다.

  "부모가 갖고 있는 재산이 있는데 그것으로 충당하면 되지 않아요!"

  과연 내 부모에게 그럴만한 재산이 있었던가!

  있는 거라곤 살고 있던 전세금과 우리에게 맡겨 놓은 약간의 돈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노후에 불어 닥쳐올 험난한 한파(?)를 충당할 수 있을 지가 의심이 든다.


  현재는 백 세(100살)의 시대였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노후를 위해서 보장을 해 줄 수 있는 보험을 넣어 왔었다. 그것도 적은 돈이 아닌 몇 심 만원씩의 보험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후를 위해서는 생명이 연장되는 만큼 더 많은 노후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은 예전과 다르게 자식들에게 자신의 노후를 맡기지 않으려는 현재의 세태 풍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 비추워 볼 때 모친에게 뇌경색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된 이후 지출되는 비용의 모두를 어떻게 충당하는냐? 하는 점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 때 막내 동생이 한 말 때문에 스텐트 수술을 하기로 결심을 하기까지 했었다.

  "엄마가 재활병원 세면장(화장실 겸용. 목욕탕으로 쓰기도 함. 그래서 크고 넓은 편이다)에서 목이 꺽이는 바람에 힘을 쓰지 못하고 기운이 없는 모양이예요! 스텐트 수술을 해야 할 것같아서..."

  물론 자식으로서 부모가 아프다는데 그 원인을 제거하는데 수술을 아까워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막내 동생이 재촉을 하는 것 같아서 세째 동생에게 말했다.

  "막내가 그러는데 스텐트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는데... 아무래도 수술을 하자!"

  "형 말대로 해요!"

  세 째는 그래도 내가 말하자 따르겠다는 뜻을 내 비쳤다.

  그렇다면 수슬을 하고 그 비용은 누가 부담을 할까?
  나는 막내 동생이 그 돈의 일부를 내 놓지 않을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결정으로 결국에는 스텐트 샵입 수술을 한 뒤에 그 비용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될 것이 뻔했다. 금전적으로 그 돈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내 입장으로서는 충당을 하지 못하여 결국에는 모친의 전세비용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후자금으로 갖고 있어야만 할 돈이었다. 치매, 요양원, 병원비로 더 많은 돈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나는, '과연, 의욕적으로 저돌적인 막내 동생의 주장을 듣고 스텐트 수술을 해야만 할까?' 하는 심가한 고민에 빠졌다. M 병원의 신경 담당 의사는 내게 계속하여 수술을 권유하곤 했었다. 그래서 수술 날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다구쳤혔는데 나는 조금 경과를 보고 난 뒤에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해서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막내 동생은 나에게 어머니의 증세가 나빠져서 수술을 해야한다고 거듭 강조를 하고 있었으므로 수술을 기정 사실로 세째 동생에게 통보를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막내 동생의 권유를 듣지 않았었다. 그리고 재활병원에서도 모친을 퇴원 시켰고 집으로 모셨는데 가장 큰 이유는 병원비 때문이었다. 

  한 달에 150만원의 병원비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세째 동생은 방송국 MC 라는 직장을 잃고 변변한 돈벌이를 못한다고 거듭 뒤로 뺐다. 막내 동생 역시 학원 강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일주일에 두 서번 강의가 있다고 해서 예전의 절반도 되지 않은 수입으로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를 짓는다고 헛된 망상(?)을 내비치고 있었다.  

 

  모친의 수술과 병원비는 모두 내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것을 절약하기 위해서라도 집으로 모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사를 할 때까지 모친이 내게 함께 생활하면서 변화를 갖게 된 이후 오히려 병원에 있을 때모다 많은 차도를 보였다. 물론 그런 이면에는 많은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환자를 집에 모시게 됨으로 결코 쉽지 않은 간병의 부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언제나 모친을 울음으로 애간장을 태운다. 그리고 오줌을 싸고 똥까지 쌌다. 한마디로 자신의 신체적인 통제를 하지 못하였음로 그런 감각이 느렸고 그로 인하여 일어나는 많은 부담은 고스란히 나와 내 아내의 몫이었다.


그나마 모친이 어느정도 걷게 된 것은 기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2


  어제(2014년 7월 26일)는 모친이 이사를 하는 날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모친에 관한 역사(?)는 이렇게 또 한꺼풀을 벗겨내는 악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운명적이라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소리리라!


  아, 모친의 많은 짐을 챙겨 내리면서 아파트 경비실에서 분리수거를 하는 통에 넣는다.

  "혼자 사는 사람이 무슨 짐이 이렇게 많지요!"

  옆에서 아파트 경비가 잔뜩 종이박스와 고무다라에 연달아 버릴 것을 갖고 와서 분리수거 통에서 넣고 있는 내 옆에서 지적을 한다. 그렇지만 좋은 의미로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모친이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는 사실을 반겼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사을 하여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과 쓰레기를 잔뜩 갖고 내려와서 투기하는 게 영 못마땅한 모양이다.

  버리는 물건은 주방에서 나온 것부터 배란다에 있던 그릇 종류부터 각종 주방용 기구였다. 그런데 부억 찬장에 옹기종기 쌓아 놓았던 수많은 식기 세척용 세제, 기름, 포도주를 담근 유리병, 술병, 접시, 접이식 찜질용 도구(연꽃처럼 벌어졌다가 접힘), 카나리야 기름, 콩기름, 들기름, 간장통, 된장통..... 수없이 많은 액체가 담긴 프라스틱 통이 쏱아져 나왔지만 내용물이 들어 있어서 분리 수거를 할 수 없었다. 그 중에 하나는 유리통이였는데 세째 동생이 분리수거를 하지 못한 체 1톤 화물차에 싣으려다가 뚜껑이 빠져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찡그랑!"

  유리 그릇은 박살이 났다. 

  나는 가급적이면 1층 주차장의 1톤 화물차로 내려온 짐 중에 모두를 버리고 싶었지만 아파트 경비의 거절로 모두 옥천으로 싣고 가야만 하는 처지였다. 버린 것은 분리수거가 되는 그릇(쇠, 병, PP 종류, 그 밖에 전기기구-믹서기, 선풍기, 전기 찜질기)을 조금 버렸을 뿐이었다.


  이 해묵은 이사짐은 모두 모친에게는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혼자 살면서 정리하려고 했는데... 내 꼴이 이래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지 뭐냐!"

  모친은 궁색한 변명을 하였다. 그렇지만 일주일이 넘게 우리집에서 함께 살면서 당신의 짐은 전혀 필요치 않아 왔었다.


  사실 사기(도자기) 그릇, 유리 그릇은 분리수거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분리 수거가 되지 않는데 그냥 갖고가시지요!"

  아파트 경비는 60대가 넘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체구의 중년 남자였는데 분리 수거를 위해 1층 주차장 한쪽 편에 만들어 놓은 장소(칸막이가 쳐 져 있고 입구를 통하여 들어가게 되어 있었으므로 출구도 그쪽이여서 밖에서 보면 훤히 보였다. 그래서 옆에 와서 가끔씩 내가 분리 수거를 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지적을 한다. 

새삼스럼게 아파트에 남아 있는 짐을 차에 싣고 이사를 하여야 함은 전세금을 빼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어머니, 전세금을 입원비로 충당하지 말고 앞으로 계속 병치레를 하게 되면 조금씩 써야 해요!"

  이 돈을 나는 조금도 충당하지 않을 것이다.


                                                                                               3


 세째 동생이 남기고 간 LP(레코드)판을 쓰레기로 버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막내 동생과 옥신각신 했다. 방 안에 그전에 쓰던 청소기와 대형 디지털 시계를 부착하고 사용하게 하겠다고 주장하는 막내동생의 주장을 일언지하에 잘라 버렸고...

 방 안에 전기코드가 많아지고 구태여 콘센트가 필요한 붉은색 디지털 기계가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막내 동생은 자기가 구입해서 갖다 주웠다고 애지중지 하는 모양이다.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우리 집에 오기까지 그런 물건이 없어서 잘 지냈던 것을 보면 짐을 오히려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것같아서 내가 싫었다. 그래서 나와 막내 동생과 의견 충돌을 일으켰는데 가장 큰 이유는 LP판에 관한 거였고, 두 번째는 방안에 당신이 쓰던 물건을 걸어 놓게 하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쓸데 없는 물건이었다. 첫 번째 소형 청소기였다. 물론 청소기가 두 개나 있으면 좋겠지만 기존에 쓰던 용량이 큰 청소기가 있는데 구태여 작고 흡입력이 작은 청소기를 왜 곁에 두느냐? 하는 게 내 주장이었다. 그 청소기로 인하여 콘센트가 필요 했고 방안이 너저분해 졌으며 그나마 깨끗해 보였던 공간이 사라졌다. 또한 콘센트로 사용하는 붉은 디지털 전자 벽결이 시계를 벽에 걸고 전기 코드를 설치하면 더 보기 싫고 거추장 스러울 게 뻔했다. 오늘 이사를 오면서 버린 짐들이 오히려 홀가분한 게 아니라 방 안에 다시 재현될 조짐이었다. 그래서 치우라고 했더니 막내 동생이 불만인 듯 소리친다.

  "이게 왜, 싫은데... 엄마가 쓰던 물건이고 애지중지 하던 거라고 다시 설치하려고 하는 건데... "

  막내 동생은 그 물건을 자신이 사다가 모친이 살던 아파트에 설치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반박을 했다. 하지만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오늘 짐을 모두 버렸는데... 다시 또 어지럽게 하고 싶지 않다."
  내 뜻은 그랬다. 어쨌는 내가 옆에서 늘 지켜보면서 지내는 입장이었고 어지러운 짐은 갖고 싶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그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화를 내면서,

  "흥, 이래서 내가 여길 오지 말았어야 했어!"

  그렇게 지껄이는 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결국 막내 동생은 그것을 서운하다고 하면서 저녁을 먹고 훌쩍 떠났다.

  "내가 이래서 큰형을 보기 싫어하는 거죠! 다시 오고 싶지도 않아!"

  그런 말이 직접적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희박하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동생의 마음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갖고 있는 막내 동생과 다른 시각이겠지만 적어도 정확한 판단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었다. 왜냐하면 밤마다 뒤척이면서 소변을 보려고 일어나서 잠을 깨우는 모친의 머리 맡에 붉은 산업용 전자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가 볼 때마다 눈에 거슬릴 터였다. 청소기 역시 쓰지도 않는데  바닥에 늘어진 콘센트와 함께 자리를 찾이하고 있을테고...

  이런 부감감이 싫어서 나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막내 동생이 찾아 와서 부담스럽기만 했던 것은 오히려 나였다. 부담스럽다는 건 무엇보다 빨리 가지 않음으로 해서 이쪽에서 준비해야만 하는 손님 접대였다. 엄연히 병에 걸린 모친의 입장이 아니었다. 

 

  나는 하루를 이사로 소요한 시간이 아까워서 공장에 내려가서 일을 했지만 아내는 내려와서 도와줄 생각조차 않는다. 막내 동생이 와 있었으므로 맞상대를 하기 위해 맥주를 따라 주면서 대화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3층에 올라와서 상 앞에서 앉아 있는 아내와 막내 동생을 바라 보았지만 그것이 약간은 눈에 거슬렸는데 그것은 이사를 끝낸 뒤에 밀린 기계 제작 일을 해야 한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였다.

  막내 동생이 와 있다고 내려와서 함께 일을 하지 않는 아내가 서운했던 것이다.

  무엇이 불편했던지 막내 동생은 가겠다고 한 것을 저녁이라도 먹고 가게 하기 위해 아내가 설득을 했더 모양이다.  끝내 저녁을 먹고 난 뒤에 막내 동생은 훌쩍 떠났다.  아내는 저녁까지 차려줘서 보냈지만 결국에는 지금까지 모든 과정이 동생에게는 원망으로 쌓여 있을 터였다. 

 

  막내 동생은 인천의 본집으로 가지 않고 전라도 임실의 처가로 발걸음을 돌려서 서대전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간다고 연락을 아내에게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아무런 답변도 아내에게 하지 않는다.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건 그만큼 더 힘들었다. 그것은 상대방이 모든 것을 깨닫기 전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이다. 아마도 내 뜻이 영원히 전달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의견 차이로 인하여 느끼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영원히 미궁의 뜻이 아마도 그에게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시골에 내려가서 살지 말기를 그렇게 주의를 하였고 만류하였었지만 결국에는 제 고집을 꺽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농사 일에 대하여 전혀 비젼(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거듭 당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동생은 그런 과정을 밟고 나중에는 빈몸으로 되돌아 올 것만 같은 우려를 나는 어쩌지 못한다.

  만약 내 생각이라면 막내 동생을 불러다가 함께 일하고 수입을 분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참고 인내하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었으므로 나와 싸워서 분난만 야기할 테니까? 그런 불편한 관계를 갖고 정말도 뜻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노릇이다.

 무릇, 사람마다 본연의 다른 인간성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참고 인내하는 성격>과 그렇지 못하고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폭발하는 과격한성경> 이렇게 두 종류로 나뉜다고 가정해 볼 때, 나는 첫 번째에 속하지만 막내 동생은 두 번째에 속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과오를 저지를 때마다 그것이 얼마만큼 큰 부담이 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과오에 대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조그마한 실수를 할 수도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그 실수가 과연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냐?' 하는 점이었다.

  이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성격적인 차이로 보는 견지가 다른 탓에 한가지 사실을 놓고 다른 의견을 갖을 수 있음으로 충동을 일으킨다.

그렇지만 과연 그 발단은 나이가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간에 견해차이가 너무도 판이하게 달라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더 옳을까? 경험이 많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에서 서로간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 차이를 누가 올바를까?

  이것은 인생을 살아 나가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사소한 싸움으로 인하여 자신에게 우호적인 한 사람을 잃게 되어 결국에는 많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약자에게 있었다. 결국에는 나이든 사람은 그를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지도 모를테니까? 물론 그 도움은 전혀 가치가 없을수도 있었다.

  하물며 자기에게 돌아올 밥그릇(이득)을 스스로 걷어 찰 정도로 어리석다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인정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것을 뒤늦게 깨닫는 것과 그렇지 않고 사전에 아는 것과의 차이에 결국에는 인생의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을 터였다.    


 이런 관계의 본연의 내면적인 인간적인 품성을 예로 들 때, 어찌보면 <어려서부터 끈기와 인내로 점철된 사람>과 그렇지 못하고 <자기 고집대로 막무가내식으로 뜻만을 내세웠던 사람>으로 또한 구분할 수 있었다. 그만큼 어려서부터 살아온 바탕이 무척 중요한 듯 싶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이 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열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올바른 판단을 하여 자신의 앞 길을 개척하여 나가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것은 그만큼 여러가지의 경험과 지혜를 총체적으로 발휘하여 위험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두 번째의 사람은 그렇지 못한 듯 계속하여 똑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주변의 충고를 무시하기 때문이겠지만... 

  인생은 결코 실패를 용서하지 않는다. 차라리 실패를 하는 것은 젊었을 때 겪는 것으로 끝내고 나이가 들면 정리를 하고 조금은 안정된 길을 찾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계속하여 최악의 상황으로 직면하게 되어 결국에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나빠질 수 밖에 없으리라!' 는게 내 지론이었다. 그렇지만 막내 동생을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귀농을 선택하고 결국에는 처가로 들어 가겠다고 모든 것을 결정한 모양이다. 


                                                                                            4

  여러가지로 편하지 않는 지금의 내 처지.

  모친은 계속하여 아침저녁에 걷기 운동과 운동기구에서 물리적인 치료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특히 여러가지 불편한 생활로 인하여 많은 시간을 모친에게서 할애하여야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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