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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시간의 차이

2017.01.09 23:00

文學 조회 수:0

  우선 나를 괴롭히게 되면 시간이 느리고 잠을 자던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상태로 TV를 보고 있으면 너무도 빨리 가는 것같다.

  2017년 1월 9일 월요일이다.

  오늘이 갖는 의미.

  그것은 결과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당연히 건강한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로 사고(思考)할 수 있고 상황 판단을 내려서 스스로 의식을 차릴 수 있는 상황. 그렇게 전혀 가치 추구를 할 수 있다면 바로 오늘을 누릴 자격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금 새로 시작된 하루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나고 생각하면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가치에 대하여 기뻐하고 무한히 사랑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엄청난 의미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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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운해(雲海) 

  아침 6시.
  박 만수(朴萬壽)가 흰색의 1톤 화물차를 집에부터 운전하면서 불과 500m 진행하던 중에 U 턴을 하여 옥천-영동으로 이어지는 국도 4차선 도로에서 우회전을 하여 옥천 IC 로 빠져 나가는 신 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국도와 나란히 철로가 놓여 있었으므로 좌회전을 할 수 없었다. 대신 머리 위에 육교가 놓여 있었지만 직접 올라 갈 수 없어서 교차하는 지점까지 U 턴을 하여 방향을 전환하여야만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옥천 쪽에서 진입하던 4차선 도로에서 우회전을 하여 방향을 틀었던 것이다. 바로 4거리를 표시하는 녹색 표지판에 흰색 글씨로 이정표의 내용을 알렸다.                 


 도로가 갑자기 2차선으로 좁아졌다. 300m 육교(陸橋) 앞이었다. 그리고 방향 표시판에 옥천 IC 방향과 영동 옥천 방향은 좌측으로 나가서 육교 밑으로 우회전을 하여 교차로에서 국도(國道)와 조우(遭遇)하도록 알려 주고 있었다. 하지만 평지가 아닌 교각 아래쪽이었으므로 좌회전을 한 뒤에 재차 곡선을 그리듯이 긴 포물선을 그리면서 우회전을 하여야만했다. 방향 전환뿐만 아니고 높이도 급히 기울었다 그만큼 급경사, 급회전으로 인하여 무척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래서 차량들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서행을 하면서 전복 될 위험을 최소하화하기 위해 조심 운전을 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육교로 올라서기 위해 도로가 높아진 탓이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차량들은 육교로 올라서지 않고 대부분 좌회전으로 빠져 나가서 다시 육교 밑으로 들어서기 위해 우회전을 하였다. 육교 아래에서 교차하는 다른 도로를 타기 위해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빠져나가는 차량들은 대부분 대형 차량이었다. 컨테이너차량, 택배회사차량, 거대한 화물을 실은 추래라, 대형 레커차, 큰 짐을 싣고 내리는 크레인 등 이곳으로 통과하기 위해서 유난히 높은 교각은 20미터 가까운 높이였다. 그만큼 차량의 높이에 구예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높게 건설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는 육교 아래쪽으로 빠져 나가는 지형적인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 300여 미터의 거리를 4개의 교각으로 떠받친 육교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은 많지 않았으므로 전혀 불필요한 것 같았다. 이렇게 이용할 수 있는 차량이 많지 않은 다리를 무엇 때문에 건설하였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 육교 위의 2차선 도로는 언제 필요할까?’
  ‘또한, 필요하지도 않은 도로를 왜 건설 해 놓은 것일까?’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지 않을 수 없었다.   
 
  20미터의 높이의 우뚝 솟은 육교는 보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였다. 특히 양쪽 교각의 끝부분에 지그재그로 높여 있는 철재 기둥과 철재 계단은 7층 높이까지 경사지게 ㄱ자 형태로 세워졌다. 경사가 심해진 첫 번째 직선 부분은 중간에 평탄한 부분을 만들어 쉴 수 있게 하였고 그곳에 지상으로 꽂혀 있는 10미터 쯤 되어 보이는 철재 기둥은 한층 가늘고 높아 보였다. 마치 하늘을 오르는 것처럼 굽이졌는데 국도 쪽의 인도에서부터 올라 오르도록 입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인도용의 계단은 너무 높아서 다리가 아픈 사람에게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길었다. 그것이 뱀처럼 꿈틀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굽이지다가 ㄱ자로 구부러졌던 것이다. 육교의 인도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대단한 인내가 필요할 정도로 아찔했다. 오르는 동안 계단만 바라보아야지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빈약한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해 보였다. 그만큼 철재 계단은 약해 보였고 길었다. 아니 그것이 비용 절감을 위해서 그렇게 세워진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안정상의 견고함이 빠트린 것처럼 위험스러운 형상은 매우 의아스럽다고 할 정도로 빈약한 구조다. 아마도 예산 삭감으로 인한 부실공사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
  육교 위에서는 아래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교각의 상태를 알지 못하였다. 자살을 방지할 목적으로 철망으로 둘러 처진 울타리. 2차선 도로보다 높은 인도의 보도블록. 그리고 인도와 도로 사이에 방지 턱처럼 세워 놓은  파이프 방지 턱. 그야말로 외향적인 치장에는 전혀 신경이 쓰지 않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육교를 건설하였을 것 같은 여러 곳에 드러나는 재차 추가적인 비용이 들었을 것 같은 여러 가지 표시들이 마치 뜯어 고친 것처럼 흔적을 남겼다. 가령, 자살 방지를 위해서 2미터 높이로 쇠파이프를 콘크리트 난간에 박고 그물망을 펼쳐서 철사로 붙들어 맨 볼품없는 외벽 공사, 장치와 움푹 꺼진 2차선 도로와 툭 튀어 오른 양 쪽의 보도블록이 깔린 인도, 그리고 그 사이에 끼듯이 세워져 있는 ∩ 형태의 차단 장치 등은 모두 나중에 재차 시설을 한 것 같았다. 그러므로 교각은 보수 흔적과 외향을 고려하지 않은 보수 흔적으로 건설한지 불과 5년 정도가 지났지만 벌써부터 볼품이 없었다. 철망으로 높이 쳐진 울타리는 갇혀 버린 것처럼 느껴졌으며 인도와 도로 사이의 방지 턱은 너무 높아서 도로를 지나면서는 움푹 꺼져 버린 것처럼 좁아 보였다.
  그만큼 이 육교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고 단지 시설적인 의미로 매우 형식적인 왕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빼버린 그런 저비용의 교량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도 차량들은 이곳에서 육교로 진입하지 않고 좌측으로 빠져 나갔고 이어서 교차로에서 4차로를 탔다. 육교 아래쪽으로는 통과하는 것은 국도(國道), 복선 국철(國鐵), 하천(下川), 우회도로, 둑길, 철길 반대편의 농로길 등이었지만 이웃한 농기구업체에서 사용하는 농기계를 진열해 놓은 공터, 땅콩을 주로 심는 모래밭과 같은 여유 공간도 많았다. 사실상 주목적은 철도와 평행으로 놓여 있는 옥천 영동 간의 경부국도를 넘어서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었다.

  국도 쪽으로 유턴하는 차량들은 방향을 틀어서 빠져 나갔으므로 사실상 이 교각은 무용지물과도 같았다. 그러므로 이곳부터는 육교가 4차선에서 2차선으로 축소되어 그곳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올라 다니는 계단이 없을 수는 없었으므로 철재 계단이 마치 하늘로 오르는 천상의 높이처럼 위태롭게 하늘을 바라보며 놓였고 그 육교 위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숨이 벅찰 정도로 가팔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곳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형식적으로 놓여 있는 철재 계단. 교각 위어 걸 터놓은 상판에는 2차로와 양 쪽에 인도가 단지 형식적으로 가로 놓여 있는 형국. 아래쪽으로 지나가는 철길만 아니었다면 이 육교는 없어도 무방했다. 4차선으로 교차하는 부분에서 교차로를 만들면 간단했을 테니까. 그러므로 이 육교는 철길을 넘기 위한 목적이었고 그만큼 길이가 길어진 것은 아무래도 부득이 취한 조치였을 테지만 사실상 부실 공사처럼 완공된 지 얼마 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서 볼품없는 모양으로 위험천만하게 위용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 놈의 철길이 아니었다면 이 육교가 필요치 않고 교차하는 지점에 바로 이어서 도로를 연결했고 반대쪽으로도 새 도로가 뚫렸을 터였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이 교각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직선으로 나아가던 2차선 도로의 끝에는 불과 1km 남짓한 거리에는 우뚝 솟은 마성산과 장용산의 능선이 벽풍처럼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육교는 바로 터널을 뚫어서 장용산 휴양림과 서대산으로 이어지는 관광(觀光)도로의 포석을 노린 최고의 묘수이자, ‘그야말로 모든 길은 로마로 뚫려 있다.’ 최고의 희망과도 같았다. 그만큼 이곳 옥천이라는 작은 군에서 형편이 닫는다면 가장 우선으로 예산을 책정하여 터널을 뚫고 싶은 주민들의 소망이 그곳에 한껏 부풀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였다. 이곳으로 터널만 뚫린다면 가장 활기를 띠게 될 일거양득의 관광지가 될 게 뻔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최고의 관광지가 그동안에는 한참을 돌아서 몇 배의 거리를 돌게 되었으므로 교통이 좋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아 왔었다고 볼 때 이 도로만 건설되면 두 지역이 한 지역으로 교통이 될 수 있는 그야말로 금상첨화의 기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의 업적이 옥천군의 예산이 없어서 1차 계획만 완성해 놓고 2차 계획으로 터널공사를 예정해 놓은 사실로 끊겨 버려서 몸살을 앓을 정도로 주민은 시름에 빠져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주민의 숙원 사업이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대전과 지하철이 개통되는 게 그랬고, 지형적으로 대전과 이웃한 아주 가까운 거리이지만 언제나 낙후되어 합치기를 고대해 왔지만 충북과 충남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같은 거리의 부강, 조치원은 신도시로 세종시가 들어서고 눈부시게 발전하는 반면 이곳은 해마다 인구가 천 명씩이나 줄고 모든 게 낙후되어 있으며 계속하여 크고 작은 국영업체와 중견기업체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던가. 병합되어 버렸는데, 옥천 조폐창, 옥천 전매청, 국제 기계 등이 그랬다. 그런 시설과 부지 등은 이 육교에서 불과 1km 내외의 거리에 모두 위치해 있었고 그것이 옥천에서 최고의 이슈가 되었던 만큼 이 육교와 연관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리라! 그 모든 설음인 양 진한 안개가 어디선가 피어나면서 이 초라한 육교를 스멀스멀 가두어 버렸다. 그리하여 우뚝 솟은 육교는 안개가 솜털처럼 감싸 안겼다. 아니, 돌아보니 옥천 시내는 모두 안개로 감싸버려서 도무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물이 보이지 않았다.
  안개는 밤 1시부터 슬금슬금 밀려들어 왔고 점점 그 경도가 짙어져서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려 진 것이다. 연극 무대 위에 흰 장막이 드리워진 것처럼 겹겹이 그 정도가 여러 겹의 흰 커튼으로 가로 막힌 것처럼 눈에 찔릴 정도로 자극하였고 사물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어져 갔다.
  하지만 물이 흐르는 것처럼 안개는 여기저기 희롱이라도 하듯이 짙었다 얕았다하면서 눈앞을 자극했다. 어떤 곳은 짙었고 또 다른 곳은 갑자기 밝기도 했다. 자욱하게 흘러 다녔으며 그것이 마치 허공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지상에 낮게 퍼져서 유동체가 되어 춤을 추듯이 돌아 다녔던 것이다. 마치 유동체처럼 살아 움직이면서 모든 것을 붙들어 놓기라도 하려는 듯이 희롱하였다. 이 존재성을 부정하려고 하면 계속하여 떨어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마치 없는 것이라고 부정하면 “나, 여기 있다!”하면서 소리치며 아우성친다. 악마처럼 보였다가 다시 바라보면 천사처럼 온화하고 부드럽다. 또한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 더욱 짙었다. 바람도 없고 습기가 많은 지표. 그리고 안개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조그마한 저수지로부터 커다란 대형 호수인 이곳의 대청호에서는 이 온기를 머금고 갑자기 기온 차이가 많이 나는 밤공기동안에 지상은 차가워 진 반면 호수와 물은 따뜻하여 계속하여 안개를 토해냈다. 밤 동안에 계속하여 안개를 피어오르게 하였고 싸늘해진 기온 차이로 새벽이 되자 일제히 습기를 머금은 모든 곳에 안개를 맞이하여 서서히 요동을 치고 있었다.
  “나는 빛이 싫어요!”
  “달아나요!”,
  “영자 씨, 어디 있어요?”
  “오늘은 글렀어요. 낼 만나요.”
  “왜, 그렇게 야속해요. 전 낼 못 만날 것 같아서……. 그만, 오늘 녹아 버려야겠어요!”
  “왜요?”
  “당신을 만나서 너무 기뻐서…….”
  “그럼, 함께 가요 우리…….”
  안개는 여기저기에서 다가오는 빛을 두려워하면서 숨기도하고, 달아나기도 하고, 또한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자신이 태어난 대지, 물, 나뭇잎, 축축한 습기, 물로 뒤덮인 바위로 숨어들었는데 그것이 너무도 갑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른다. 마치 일제히 전쟁이라도 터진 것처럼 피난 행렬을 이룬 것처럼 지상 위에서 난리를 부렸으며 여기저기 흘러 다니고 있었다. 그것을 틈타서 그 공간을 밀어내기 시작한 빛이 검은 장막에서 빗질을 하는 것처럼 걷혀져 가고 그 위에 다시 아우성치는 안개가 꼬리를 물고 밀렸다가 다시 몰려들었다. 때로는 파도처럼 때로는 구름처럼 하지만 이 유동체는 지상 위를 멀리 벗어나지 않았으며 모든 사물을 덮어 버린 채 아늑한 솜처럼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거대한 바다가 그 위에 새로 펼쳐진 고요함 그 자체였다.
  옥천은 이 장관과도 같은 전경이 안개가 낀 날에는 어김없이 펼쳐진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아래에서 누워 꿈결 같은 잠을 자고 있었지만 조금 높은 곳에 오르면 이 망막한 바다는 곧 모든 것을 장악하고 모든 사물을 투영하지 않고 안개 그 자체만으로 반사하였다. 그리고 이 드넓은 흰 빛깔은 위에 떠오른 태양빛에 놀라서 이리저리 흩어졌고 서로 몰려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으며 군무를 췄다. 하지만 그 속도는 물처럼 빠르지 않았으며 아주 느리고 서서히 빠져 나가면서 태양빛이 빨갛게 물든 빛에 부끄러운 것처럼 온몸에 감추고 있던 사물을 감추면 흰 옷에서 자신의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 새색시처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이 시간은 길지 않았으며 단지 태양이 떠오르고 안개를 비추는 동안만 유용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여기저기 텐트를 쳤고 이 장관을 보기 위해 산자락에서 밤을 지세우기도 했다. 때론 멀리서 왔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소문을 듣고 와서 진을 쳤는데 삼삼오오 가파른 산의 바위틈과 조금 여유 있는 공간에는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서서히 밖으로 나와서 올빼미처럼 눈을 뜨고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 듯이 눈을 비비고 서서 마음속으로 감동했고 쾌재를 불렀다.
  용암사 뒤로 오르면 점차 가파른 바위와 그 사이사이로 비집고 오르는 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평탄한 지역과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삼각대를 펼쳐 놓고 이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는 신과 자연의 경이로운 장면을 찍기 위해 망원렌즈를 낀 카메라맨들이 계속하여 셔터를 눌러 대었다. 그들은 때로는 가족끼리 왔고, 더러는 동호회원들이었으며, 또한 연인사이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날 밤에 왔으며 텐트에서 잠을 자던가 앉아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었다.
  이 사람들과 합류하기 위해서 산 아래 쪽에서 헤매고 있는 A 씨. 그는 신이 보여주는 이 잔치에 자신이 빠질 수 없다는 일념으로 찾아온 티켓을 놓치지 않고 기회를 노려 왔었다.     

 
  하얀색의 1톤 화물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이 진입했다. 좌측으로 유턴하는 도로를 타고 올라와서 좌회전을 하여 교각 앞에 섰다. 이 교각 아래쪽으로 경부 국도와 나란히 경부 철도가 누워 있었다. 교각을 통하여 반대편으로 넘어 가게 되면 철로로 단전된 반대쪽 마을로 넘어서게 된다. 토막 난 4차선 도로는 2차선으로 바뀐 육교부터는 불필요해 보였다. 안개 속에서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많은 차량들이 이 도로의 끝에서 좌측으로 해서 빠져 나가고 있었다. 택배회사의 대형탑차가 대부분이었다. 이곳 옥천은 중간 물류기지가 유난히 많았다. 그러다보니 옥천 톨케이트에서 빠져 나온 차량과 다시 진입하는 화물 탑차의 대부분이 택배 회사차량이었다. 이 지역의 화물집하장에서 물건을 싣고 분류하기 위해 속속히 몰려 들었다가 빠져 나가기 위해 다시 반대 차선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차량들이 육교로 진입하지 않고 방향을 틀어서 교차로를 찾아서 내려가던가 올라왔으며 다만 한 대의 차량이 안개 속에서 육교를 타고 진입했던 것이다. 모든 차량이 유턴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중앙의 2차선으로 넘어오는 차량은 흰색의 1콘 화물차였고 그 안에 운전을 하는 사람은 지리적으로 매우 익숙한 듯이 거침없이 이 길로 들어서고 있었으므로 안개 속에서도 전혀 두려움이 없는 운전 솜씨다. 아마도 이곳 토백이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는 용암사를 찾아 가는 중이었다. 이런 새벽에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을 찾아서 이 길로 진입하는 차량의 십중팔구는 그곳에서 운해를 보기 위해 나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전 날 저녁이던가 야간에 도착하여 차에서 잠을 자던가 텐트에서 이슬을 피했을 테지만 이곳 토백이들과 지형을 잘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고 새벽에 길을 나선다. 하지만 사실상 이렇게 새벽 안개를 뚫고 가는 것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가파른 용암사까지의 경사로를 지그재그로 오르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것이 안개가 낀 날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런 모험을 감행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않은테니까 말이다. 
  어쨌튼 지금 이사람은 대단한 모험가임에 틀림이 없었다. 아니면 머리가 돌았던가! 어쨌튼 그가 운전하는
모습을 잠시 주시해 보자.
  육교 앞에서 대부분의 대형 트럭들은 교각을 넘어가지 않고 좌회전을 해서 국도 쪽으로 연계 도로를 따라 나갔다. 이도로의 한계선이 끊겨 버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도로는 무엇 때문에 필요할까? 매우 위험스럽게 보일정도로 아찔한 높이에 걸쳐져 있는 2차선의 교각. 아무래도 이 교각의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상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 방향이 서남쪽의 벽풍처럼 둘러쳐진 두 개의 산이 맞닿게 둘러 쳐진 산과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2차선 도로는 한 참을 가다가 소정 저수지를 우측에 두고 다시 방향을 틀었다. 그러므로 마성산을 뚫고 지나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산 아래 쪽을 헤매고 다니게 되는 여러 갈래길로 분산되고 마는 것이다.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는 도로는 모두 중심점이 없어서 서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교차로와 회유 도로였다.

   그 뒤부터는 그 끊어진 도로에서 다시 좁은 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는데 모두 중심이 없었다. 멀리까지 이어지는 직선도로가 아닌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연결도로라는 점이었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도로는 막힌 도로였다. 어느 곳으로 가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음을 뜻했다. 이 지점으로 다시 똑바로 나갈 수 있는 도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도로는 왜 이곳에 끊어져 버리고 흐지부지 된 것일까?
   또한 2차선 도로조차 소정 저수지를 끼고 돌연 직선에서 곡선으로 바뀌면서 거미줄처럼 여기저기 흩어지는 다른 농로길과 연결되고 말았으며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다시금 되돌아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정은 무엇일까? 바로 눈앞에 우뚝 솟은 656m 고지의 마성산 때문이었다. 이 산은 커다란 벽체였다.
  그렇지만 이 마성산 중간까지 올라가는 도로가 있었고 그곳 끝에 용암사라는 절이 위치하여 운해를 보기 위해 그나마 힘든 산행은 많이 줄었으므로 마니아들은 심심찮게 이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용암사까지 차량을 갖고 오를 수 있으므로 걷는 수고와 높은 산행은 불필요하여 힘들이지 않고 운해를 구경할 수 있는 최고의 관광지였다.”
  그런 수고로움은 용암사에서 나와 다시 뒤 산을 타고 오르는 동안 지속된다. 하지만 이것은 산을 오르는 마니아들에게는 결코 긴 시간과 수고로움이 아니었다. 산은 경사가 심하고 바위로 곧곧에 장애가 있었지만 그 위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중에 온 사람일수록 더 높은 곳으로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안개는 용암사 아래에 짙게 깔려 있었고 산 아래 쪽에서는 운무가 바다처럼 펼쳐진 장관이 내려다 보였으므로 나무가 없는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산 아래에 펼쳐진 끝없이 깔려 있는 안개 위를 내려다 보면서 마주 보이는 지평선에서 붉게 타 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이 붉은 빛이 점차 밝아져서 결국에는 안개를 몰아내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안타깝게도 직선 도로가 연결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남서쪽으로 우뚝 솟은 마성산으로 관통하는 터널을 뚫지 못해서였다. 바로 그 앞까지 4차선 관광도로가 번듯하게 포장공사를 끝내 놓고 코앞에서 터널을 뚫지 못하여 단절(斷絶)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산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뿔싸, 모든 게 허사로구나!’ 하는 체념의 소리가 그 앞에서 흘러나올 정도로 앞이 꽉 막힌 체 터널을 뚫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도로는 아무래도 막히고 단절되어 그야말로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는 개통도 될 수 없었다. 
  사실상 옥천 군청의 예산이 없어서 끊겨 버린 셈이다. 슬그머니 왕복 2차선 마을 도로와 인접하여 연결을 시켜 놓았으므로 4차선 포장도로가 갑자기 2차선으로 바뀌면서 사방으로 뿔뿔이 뻗어 나가서 본래의 목적인 관광도로라는 명목상의 이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장룡산 자연휴양림과 서대산을 가기 위해서는 직선 도로가 막혀 버려서 우회 도로를 찾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마성산 반대편은 군서라는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옥천과 군서가 산마루 하나를 놓고 엄중하게 단절된 상태였다. 이것이 누가 뭐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간단하게 터널 하나를 뚫으면 옥천과 군서가 하나로 개통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이로 인해서 두 지역은 아주 쉽게 소통 될 것이고 옥천 IC 에서 『장령산 자연 휴양림』과의 거리가 다섯 배 정도 단축되리라고 예상하는바... 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이 도로를 건설한 군수와 지역 위원들은 군민에게 떠벌이처럼 역설했었다. 하지만 공사를 중단하고 터널은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고 계획에도 들어 있지 않은 체 끝나버린 반토막짜리 공사가 되자, 군서까지 지름길을 갖고저 했던 지역 사람들은 실망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입발린 강정처럼 달콤하게 유혹하였다가 결과가 그렇게 절반으로 끝나고 나니 의도하였던 바가 이루워지지 않아서 가슴이 아픈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군서에 농사를 짓는 땅을 갖고 있는 개똥이 아버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군서에 한 번 가기 위해서는 마성산 끝자락인 북 쪽편으로 나가서 다시 한 바퀴 돌아야만 하였는데 그 시간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낭비를 초래하여 왔었다. 그만큼 두 지역을 단절시켜 왔던 경황을 놓고 볼 때 아마도 이 터널은 지역의 숙원 사업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했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지 않는 건 낙후된 지역의 살림만으로는 언제 개통이 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이었으므로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지역 사람들은 언제 개통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이 공사를 염원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뻔히 알면서도 공사를 감행하지 못하는 군의 예산으로는 전혀 계획도 없는 상황이었다.

 불과 2년 만에 군민의 소원 성취는 접어두고 비슷한 위치를 터널공사가 진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속전철 경부선 단축화 사업 2단계였다. 대전에서 서울까지는 1단계 사업이었고 대전에서 부산까지가 2단계 사업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기존에는 대전서 옥천까지는 시간과 예산이 많이 걸리는 지점이었으므로 기존의 철로를 이용하여 왔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일반 열차가 고속전철이 지나가는 동안 옥천 역이던가 대전역에서 기다리던가 대기하게 되는 불편함을 겪어 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2단계 확장 공사가 시작되어 직선화가 이루워 져서 바로 마성산으로 터널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불과 2년만에 모든 공사가 끝나게 되었다. 그리곤 이 단축된 거리를 통하여 고속전철이 운행하게 된다. 

 같은 지점의 터널이 유사하게 마성산으로 뚫리게 되면서 KTX 고속전철은 옥천을 경유하지 않고 지나 가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옥천을 경유하여 경부선 국철을 이용하여 왔었지만 이 공사가 끝나고 터널과 다리 공사가 완공되어 전용선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오래된 낡은 철도로 중복된 철로를 운행하다보니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등은 KTX 가 지나갈 때는 대기 중에 있어야만 했었다. KTX 역시 고속으로 운행하지를 못하는 낙후된 철로로 인하여 그동안 곡선으로 이어지는 철길을 운행하기 위해 속도를 낮추워서 다니는 불편함을 버릴 수 있었다.

옥천을 경우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서 다닐 수 밖에 없었던 오래된 경부선 철도.
이 철로는 고속철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그러므로 2차 사업으로 재기된 공사 중에 마성산의 터널공사가 해당되었던 것인데 그 자리가 마침 장용산 관광도로가 뚫고 지나가야할 터널의 위치와 중복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고속철도로 인하여 그 자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위치가 변경 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게 된 것이다.
  거침없는 고속철도 공사가 위대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옥천군은 예산이 없어서 이 터널을 뚫지 못하여 마성산 앞에서 4차선 도로의 맥을 연결하지 못했는데 고속철도는 먼저 선점을 한 것이다.

  옥천군의 딱한 사정은 불과 500여 미터의 거리를 놔두고 그보다 열 배 정도나 더 먼 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실정이었다. 마음만 있었다면 고속전철 공사를 할 때 사정을 하여 함께 터널을 뚫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예산이 덜 들게 하려는 절감 효과도 있었겠지만 그럴만큼 배짱도 없었다.
아마도 고속전철의 터널을 뚫는 것을 보면서 옥천의 지역 사람들은 모두가 이 기가 막힌 현실에 그야말로 입이 벌어 졌을 터였다. 표현을 하자면 『그림의 떡』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할까?
 
장령산 자연 휴양림으로 이어지는 관광 도로는 이렇게 소정리 저수지 앞에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큰 기대를 하고 찾아온 관광객들은 고속도로 IC에서부터 장령산, 서대산, 그리고 장령산 자연 휴양림을 찾아오는 길을 찾았지만 터널이 없다고 되돌아 가기 일쑤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곳의 관광지도에는 누가 그려 놓았는지 미래의 터널이 버젓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것이 점선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었다. 자칫하였다가 관광지도를 보고 이 도로를 따라 찾아 왔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한 번 낭패를 본 사람들은 분을 삭이지 못할 것이다.
  이 지역의 관광 안내 지도에는 점선으로 도로가 그려져 있었고 실수로 찾아 왔을 것이다. 아니, 그런 지도 타령은 너무도 부딪혀 보면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4차선 도로가 갑자기 끊기고 마을 도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쪽 길을 다녀본 사람들은 안타까운 이런 도로 사정과 연관 지어서 터널 공사가 하루 속히 진행 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랬을 터였다. 하지만 이런 사정에 정통한 사람일수록 군청에서는 예산 타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세대에나 가능한 공사라는 사실도...
  작은 군 단위 예산으로는 아무리 숙원 사업이라고 해도 공사가 늦장 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예산이 부족해서 조금씩 부분별로 잘라서 진행하여 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모든 공사가 한꺼번에 진행되지 못하여 오히려 공사비가 더 들기도 했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터널만 뚫게 된다고 해서 만사가 OK라고 할 수없는 이유. 그건 어짜피 군민은 이해하는 부분이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공사가 지연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만큼 주민들 조차도 크게 표면으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까? 그건 절대 아니었다. 예전의 사례를 보아서 그렇다는 것이지...
  그만큼 작은 군청의 예산을 집행하는 군수, 읍장, 군 위원들에 따른다면 전혀 불가능하다고만 피력할 터였다. 개똥이 아버지는 너무 답답하고 분통이 터져서 군청을 찾아와서 건설과 담당자에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저 말이죠? 소정리 저수지 앞의 도로가 끊긴 부분이 있는데 언제 터널이 뚫려서 군서 쪽과 개통 되나요?”
 “그건 왜 묻죠?”
  “제가 옥천에 사는데... 군서에 땅이 이어서 농사를 짓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돌아서 가는데... 옥천에서 빠져 나간 뒤에 마전, 안남 가는 도로를 타고 가야만 하고... 너무 힘들어서...”
   ‘흥, 지금까지 그래 왔는데 뭐가 힘들다고...’
 담당자는 퉁명스러웠다. 이런 민원적인 사유를 들어 일일히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내색을 하지 않고 얼굴 표정을 일그러 트리면서도 불쾌한 기색을 감춘다. 그리고 완전히 오리발을 내밀어야 겠다고 생각을 한다.  
  “우린 터널을 뚫을 수 없어요! 예산이 없어서...”
 “그럼, 어느 세월에까지 굴이 뚫리기를 기다딜 수 있겠어요? 내 자식 세대나 가야 하남유우~”
  “그야 예산이 확보되는데로 속개되겠죠!”
 이 말을 듣고 개똥이네는 어이가 없었다. 하기사 묻는 자신이 병신이라는 생각에 그만,
 “픽” 하고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고속전철도보다 못한감-유?”
  “그야 그렇죠! 그 쪽은 한참 돈이 많아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던데... 빚으로 잔뜩 짊어지고 하는 사업이라고 알고 있는데... 철도 사업이 적자라고 하면서도 고속 전철은 터널을 뚫고 지나 갔잖아요?”
  “그게 이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왜요? 지들 맘이라고요? 웃기네요! 우리가 뚫지 못하는 걸 고속전철은 뚫고 지났는데 그게 상관이 없다고 봐요?”
  “....”
  갑자기 담당자는 말문을 닫았다. 그의 표정이 일순간 이그러진다. 아픈 곳을 찌르면 더 아픈 법이다. 넘어져서 피가 흐를 정도로 살점이 떨어진 상처가 겹들려서 딱쟁이가 져서 조금 아물어진 곳이 떨어지게 되면 엄청나게 아픈 것이다. 아마도 그런 통증이 이 담당자에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온갖 인상을 다 찌그러트렸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해야 겠다는 투로 소리쳤다.
  “모르면 가만히 계세요!”
  그는 다시 넘어져서 딱쟁이가 떨여지고 피가 다시 났을 때처럼 가슴을 부여 잡고 있었다. 아마도 아픈 곳을 두 번 찔렸을 때처럼 통증도 두 배로 는 것같다. 그처럼 찌푸리는 눈살 때문에 개똥이 아버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는 은근히 비협조적인 담당자 때문에 부화가 치밀었었다. 
  “그런데 아까도 한 사람이 길을 잘 못들었는데 저수지 앞의 끊긴 도로에서 우회하는 도로를 찾더라고요? 글쎄, 여기서 왜 도로가 끊겼지요?” 라고...
  그리곤 그는 그와 있었던 일을 소상이 그 상황을 그려 보듯이 눈을 지극히 감는다.  개똥이 아버지는 자신과 그 사람이 한 얘기를 소상이 떠 올려 보면서 그 때기를 시작했다. 
“여기서 왜 도로가 끊겼지요? 그러지 뭐여요. 언뜻 바라보니 관광객 이더라고요! 또 잘못 들어온 길 때문에 승용차에서 내려 마침 경운기로 퇴비를 싣고 가는 나를 불러 묻던 것이고...” 
“몰라요. 굴을 뚫어서 반대 편 관광지와 연결할 거라고... 말했지요. 그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그럼, 공사가 언제 진행하나요?하지 뭐여요.”
  그러자 맞장구를 치면서 담당 공무원이 말했다.
“그냥, 돌아가면 될 텐데…….”
“어디로 돌아가는데요?”
“요 아래 옥천과 영동으로 가는 국가도(국도)에서 대전 쪽으로 가다가 마전 쪽으로 나가는 도로”
“거기까지 나가게 되면 얼마나 걸릴까요? 반대편으로 가는데…….”
“한 삼십 분은 더 걸릴 겁니다.”
“그러, 아버지 돌 굴러가요! 아들이 산 위에서 소리쳤는데 말이 너무 느려서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고 그만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속담처럼 기다리다가 늙어 죽는 사람이 많을 텐데……. 아예 교통편이 불편해서 관광지로 찾아오지도 않겠네요. 자기들도 산 반대편에 농사짓는 땅이 있고 그곳에서도 이쪽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모두 불편해서 어쩌지요?”
“할 수 없지요!”
“그야 지들 맘이겠죠!”
“누구요?”
“지들이요. 산 위에서 아버지 돌 굴러가요? 하고 소리 지르는 사람.”
“하하하……. 핫! 말씀 듣고 보니 그러네요! 돌아서 가 봐야겠어요. 말처럼 잘 되어 있는지!”
  담당 공무원이 너털 웃움을 지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개똥이네 아버지의 가슴에는 피눈물이 흘렀다. 사실상 이곳에 대한 터널 공사가 언제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야말로 똥 개 맘인셈이다.
  “그럼 그 관광객이 어디로 가는지 보았어요?”
  갑자기 군청의 건설과 담당자가 개똥이 아버지를 잡고 묻자,
  “지는 아무 것도 모르겠시유우... 그냥 길만 알려 주웠구만유우!” 하고 본론만 말하고 그곳을 빠져 나왔다. 하지만 그 당시 관광객은 그 길을 돌아 나오면서 무척 기분이 나빴을 터였다. 사실상 50대 중반의 중년 부부는 야리꾸리한 등산객 차림이었고 모든 장구를 갖추고 이름 있는 명산을 유람하듯이 찾아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은 마성산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다가 옥천군이 올려 놓은 인터넷의 지도를 보았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실망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개똥이네 아버지가 알려 준 곳으로 가지 않고 반대편 쪽으로 향했는데 그곳은 속리산 길이이었다. 이곳에서는 속리산까지 곧장 이어지는 관광 도로가 마전에서 부여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옥천이 중간 기착지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관광객은 가까운 마성산으로 가기 보다 더 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곳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등산객 차림의 부부는 대전으로 나가는 국도를 타다가 마전에서 부여로 이어지는 관광도로에서 방향을 부여 쪽으로 튼 것이다. 부여는 속리산을 가는 중간 기착지였다.
 
  속리산은 꽤 유명한 산이기도 했다. 이쪽의 서대산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획을 바꿔서 그 쪽으로 가는 게 났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쪽의 심술맞은 도로 사정이 여러 가지로 영향을 주웠으리라! 그리고 거리낌 없이 방향을 정 반대쪽으로 바꾸웠던 것이다. 그들 내외의 속사정이야 알바 아니지만 그렇게 속리산 쪽으로 관광객들을 빼앗긴 원인을 보자면 이런 교통 사정도 한 몫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원인 중에 하나가 예산이 없다는 점이었고 위에서(대통령, 국회 위원, 장관)등이 이지역 출신이 전무한 실정이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크고 작은 공기업과 중소기업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게 만든 게 하였다고 볼 수 있었다. 대기업조차 대통령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나라였다. 대우구룹이 그랬고, 크고 작은 공기업이 구조조정이라는 미명아래 대통령의 아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여 개인의 호주머니를 불렸었다. 또한 이 번의 여성 대통령은 남성 못지 않는 대단한 부를 축척하기 위해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르면서,
  “돈 나와라 뚝딱!”
  “금 나와라, 뚝딱!”하며 철퇴를 내렸었다. 그 기세에 그야말로 풍전등화같은 대기업이 줄줄히 말도 안되는 체육 단체에 돈을 기부하였지 않았는가! 그러고보면 이 곳 옥천 지역은 참으로 많은 부분이 다른 지역으로 갖고 있던 공기업을 빼앗기고 정부 보조금에서 삭감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문제를 삼지 않는 호인들이 살고 있었다. 특히나 이들이 선출한 군수, 읍장 등은 너무도 힘을 쓰지 못하는 무능함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심술 맞다. 그러다보니 반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돌담으로 둘러쳐진 마을 회관의 담벼락 앞에서 동네 젊은이들이 놀이로 즐기고 있었다.
  “쾌지나 칭칭 나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쾌지나 칭칭 나네!”
  그 하는 양이 하도 즐거워 보여 하나 둘 씩 동네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참여 하였는데 손에 농악 놀이로 굿거리장단을 치면서 괭가리, 징, 장구를 맨 땅에서 맨 발바닥으로 돌고 돌면서 어깨 춤을 들썩인다. 그러자 이 모양을 지켜보던 마을 이장이 보기에 안스러웠는지 조금 떨어진 곳에 먹을 것도 장만해 놓고 그들을 불렀다. 멍석까지 잘 깔고, 깨끗하고 잘 차려 놓고 그 쪽으로 옮길 것을 권한 것이다. 
  “어이 이리들 와서 놀게나들…….”
  그렇게 성화를 부렸을 때, 그 때부터 불편함을 느끼고 놀이를 하던 사람들은,
“기분이 안 들어서서 싫소!” 하고 놀이를 툭 끊고 각자 제 집으로 돌아가더라고 한다.
  자기 맘이 안 들면 잘 하던 것도 아무리 얼르고 달래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관광지를 찾아 온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도 아주 소소한 문제가 기분을 잡치게 하였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계획을 수정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은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든 것을 준비를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는 관광객이 발길을 돌리는 요인이 된다는 점이었다. 모든 조건이 구비되어 그야말로 천혜의 조건으로 주워진 상황에서 스스로 놀이를 찾아서 즐길 수 있는 게 흥을 돋구고 무난하게 놀이를 즐기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인데 한 번 잃은 실망 때문에 전체가 망쳐 버리는 현상을 아무리 되돌려서 부축이고 높여 보려고 해도 전처럼 흥을 돋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좋은 기분이 돌아 오지지 않게 되는데 그것은 여러 가지 조건 사항이 맞지 않아서라고 하는 편이 옳았다. 이 작은 지역에서 그나마 변변하게 제대로 된 여러 가지 현안 사항 중에 가장 실정에 맞는 현안 문제를 제대로 푼 군수(郡守:한 군의 행정을 맡아보는 최고 직위)가 있을까? 지난 역사적인 사실과 지금 현재의 사항이 모두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다는 점은 힘없고 뒷빽이 없는 약자에게나 당연히 해당이 되는 사항이었지만 예산이 마이너스에서 머물고 있는 작은 군청으로서는 언제나 뒷북을 치고 뒤 늦게 발을 동동 구르는 제스처를 취하기 마련이었다.
이 지역에서 면 년 전 일어 났던 그런 사건이 일 예였다.
한국조폐공사의 옥천 조폐창이 경산으로 이전을 한 웃지 못할 사건. 그리고 그 옥천 조폐창의 매각은 그야말로 최고의 실패자들이 얼마나 무능력한 지방 행정의 약하고 빈약한 모습을 보여준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이 소정리 저수지에서 꽉 막힌 도로를 체 가기 전에 이번에는 직각으로 꺾인 조그마한 소로(小路)로 곧장 들어서면 산 중턱에 위치한 용암사까지 올라 갈 수 있는 가파른 경사가 심하고 뱀처럼 구불거리는 숨이 넘어갈 듯 아찔한 포장도로를 만나게 된다. 그래도 위험하고 경사가 심하긴 해도 걷는 것보다는 차를 타고 가는 게 나았는데 오히려 절까지만 가고 그 다음에는 절 뒤로 오르는 산행 때문에 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알 먹고 꿩까지 먹는 것처럼 느껴지는 용암사 운해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차량을 운행해서 가게 되므로 그렇게 험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코스가 옥천 시내에서 가깝고 또한 너무도 쉽다는 사실로 인해서 안개가 낀 새벽에는 찾아오는 사진작가들의 입소문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보면 쉽게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이렇 듯이 찾기 쉬운 코스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용암사 운해는 유명했고 그로 인해서 한 번쯤은 찍고 싶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했으며 거짓말처럼 용암사로 오르는 차량으로 인하여 산의 중턱까지 단숨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용암사 뒤 산을 타고 10분도 안 되어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높은 고지가 여기저기 역사적인 행적으로 더욱 알려져 왔었다. 바로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의 손 끝에 의하여 그런 역사가 이루워 진 것이다. 

  용암사는 저수지를 끼고 우측으로 직진해서 가다가 45도 경사로 가 급격히 이어지는 산비탈을 지그재그로 몇 번 올라타야 주차장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곳은 높은 산중턱에 위치해서 차량으로 수직으로 오르는 것처럼 아찔한 느낌이 들 정도였었다.
그런 전경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산으로 올라가서 해가 떠오르는 시기에 맞춰 안개가 덮힌 솜털같은 하얀 담요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만했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용암사라는 절까지 차를 타고 가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출사(사진사가 출장을 가서 사진을 찍음)을 하였다는 내용.
 다양한 운해 사진들과 경험담. 그런 내용을 적어 놓은 글 귀가 ‘용암산 운해’라는 검색으로 따뜻한 화롯가의 얘기처럼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하는 인터넷의 실화들. 그런 내용을 먼저 읽어보고 사진으로 접해 본 뒤에 찾게 되는 만큼 이곳의 실제적인 전경은 너무도 눈에 익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성산은 옥천 시내를 동남쪽으로 벽풍처럼 가로 막고 있는 장벽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산중턱에는 용암사라는 사찰이 위치하였고 안개가 끼는 환절기에는 짙은 운무가 자욱하게 옥천 시내를 뒤덮어서 그야말로 운해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전경지라고 알려져 왔었다. 용암사까지 차량을 타고 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다시 비탈진 산행을 하여 바위를 딛고 오르기를 계속하여 적당한 장소를 자리잡고 앉아 망원 렌즈가 달린 사진기를 삼각대에 걸쳐 놓고 출사를 하여 멋진 사진을 찍게 되는 장소를 잡으면 된다고 상세하게 네티즌끼리 알려진 내용들이었다.  

  오늘은 바람도 없었고 습기가 많은 지표로부터 따뜻한 온기가 밤새 식어버린 거대한 대청호에 머물면서 계속하여 안개를 피어오르게 하였고 싸늘해진 밤기운을 맞아 서서히 켭켭히 쌓여서 더욱 짙어진  상태로 지상을 뒤덥어 버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출사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바위 위와 평탄한 곳에 자리잡고 카메라를 삼각대에 세워 놓은 체 날이 밝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뒤 늦게 이런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용암사로 향하고 있는 사람이 안개 속에서 차를 몰고 산길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아직 잠에서 덜 깨었고 그나마 늦은 지각생이었지만 아직 안개 속에서는 낮인지 밤인지를 분간치 못하였는데 그것은 안개가 짙게 내려 앉은 옥천 시내에서부터 차량으로 올라오다보니 날이 밝았는지 도무지 느끼지 못한 탓도 있었다. 평소에 안개가 낀 날은 날이 밝기 위해서는 오전 10시는 족히 되어야만 했었다. 사방에 안개가 낀 탓에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탓이다. 그러다보니 안개로 인하여 흐린 날씨였지만 점점 개어가는 밝은 기운은 유난히 맑았었다. 다만 안개가 끼었다가 걷히면서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어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느끼을 한 번쯤 용암사에 올라가서 운해를 본 사람은 머리 위에 태양이 떠 있다는 사실을 지극히 잘 알고 있었다. 흐린 것 같은 안개낀 날에는 이미 태양이 떠 있었고 아침이 늦게 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개로 인하여 빛이 차단되어 그렇게 느낄 뿐이으니까! 이런 엄청난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서 전혀 미지의 세계를 걷고 싶었던 한 사람이 새벽에 깨어서 용암사를 찾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자네, 옥천이 유명한 게 뭔지 아냐?”
  그가 처음에 이 지역에 이사를 왔을 때 동네 사람이 물었었다.
  “모르겠는데요!”
  “그럼 언제 용암사에 가 보게! 가 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네.”
  그렇게 의미 있는 말을 던졌지만 16년이나 지나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새벽 안개 속에 용암사를 찾아 간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지금 그의 산행은 의미가 깊었다. 용암사는 옥천 시내에서 아주 가까우면서도 걷지 않고 차량으로 오를 수 있는 편리한 교통을 제공하여 그는 처형과 함께 오기도 하였고 외지에서 오는 지인을 데리고 가끔씩 찾곤 했었다. 그만큼 가까운 지역에 이만한 절을 손쉽게 자동차를 타고 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름대로 감동적이었으니까.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러므로 아무 때나 손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을 든다면 이처럼 좋은 지역도 없었다. 단 번에 산 중턱까지 차를 타고 오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새벽 안개 속에서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버린 길을 찾아 나선 것은 위험을 감수하여야만 한다는 사실조차 그는 알 수 없었다. 안개가 낀 새벽 산행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의례 피하고 싶은 운행을 그는 멋도 모르고 집을 나선 것이다.
  축축한 느낌과 함께 짙은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내려서 마치 비라도 내리는 것처럼 온통 물기로 보이는 사물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그는 육교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지만 피하지 않고 어려운 난관을 수수께끼처럼 풀어 나가는 숙제처럼 운명을 받아 들일 때의 심정으로 안개가 자욱한 육교를 넘어 섰다. 그렇게 4차선에서 갑자기 2차선으로 바뀌기 시작한 육교 앞의 2차로는 그에게 그 반대 쪽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라도 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육교를 지난 뒤부터는 너무도 커진 불안감으로 인하여 그는 돌아갈까? 하고 겁을 집어 먹었다. 이제부터는 꿈 속에서 헤메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욱 사물을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다보니 차를 천천히 서행으로 운전을 하여 소정저수지 옆으로 들어서는 샛길을 찾았다.
  육교에서부터 800여미터의 거리를 지난 뒤에 좌측편에 나타난 샛길은 용암사로 오르는 직선 도로였다. 하지만 저수지를 끼고 지나면서 안개가 더욱 심해졌는데 그것은 저수지물에서 피어오르는 물 안개 때문 같았다. 왼쪽은 울창한 나무가 자란 야산이었고 오른쪽은 낚시터로 이용하는 <소정 저수지>가 위치하였다.
검정 칠을 한 듯 시커먼 도로에 녹이 슨 쇠 빛의 낙엽이 축축하게 젖어서 접착체로 붙인 것처럼 눌러 붙었다. 연못은 오른쪽에 인공호수로 위치하였지만 좌측은 낙엽송이 울창하게 자란 야산이었다. 
 
주인공의 등장


지금은 장룡산 뒤편에 계곡으로 가는 도로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었다. 관광객들은 있지도 않는 도로와 터널을 찾다가 결국에는 헛걸음을 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막혀 버린 도로. 앞서 개똥이 아버지가 관광객들에게 길이 없다고 말한 지점이었다. 작은 군청의 예산으로는 산에 굴을 뚫고 터널을 연결하지 못한 곳. 하지만 그곳으로 산길의 초기 진입로 아래로 KT 고속철도의 터널이 마성산을 뚫고 지나간 곳이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다른 소로(小路)가 갈래로 이어졌는데 가까운 곳에 용암사가 위치하는 가장 가까운 직선로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검은 도로는 굽이 진 곳에서 방향을 틀었고 다시 오른쪽 왼쪽으로 ㄱ자 꺾어서 연못과 산자락을 오락가락하였으며 차량이 돌아서는 자리는 산 쪽으로 2차선에 가까울 정도로 넓었지만 연못 쪽으로는 불과 3미터도 체 되지 않았다. 그 구역에 있어서 연못 주변으로 엉성하게 자란 갈대 줄기 끝에 부옇게 핀 뭉쳐 보이는 솜털 깃털이 물기에 축축이 젖은 체 애처롭게 고개를 숙이고 서로 키 재기를 하려는 듯 우뚝하다. 그것이 도로의 경계를 표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선이 자연스럽게 멈추었고 그곳에 갈대라도 없었다면 연못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처럼 물가에 피어난 길고 가느다란 대공. 그 줄기 속은 비었지만 높게 뻗어 올라갔고, 갈대 끝에는 흰 깃털과도 같은 갈대꽃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무겁게 고개를 숙인 체 운전자를 향해 경고를 보내는 것처럼 표시를 내고 있기라도 한 것일까? 갈대 밑동이 에서 뻗어 나온 날카로워 보이는 갈대 잎은 작은 바람에도 사각 거렸다. 또한 줄기 끝에 매달려서 고개를 늘어트린 흰 꽃봉오리. 물기에 축축이 젖어서 애처롭고 측은하여 온갖 슬픔을 머금고 있어 보였다.
한 여인이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자 이 저수지에 빠져 죽었고 그 애통한 모습이 갈대가 되어 연못 주변에 자라게 되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슬프고 처량하게 차량 앞을 가로 막았으므로 이내 도로가 구불거리는 방향으로 가도록 표지판처럼 길가에 표식을 남기고 있었다.
이 모퉁이 길은 안개 속에서 흰 화물 차량이 나아가자, 조금씩 윤곽을 비쳐 보이고는 다시 숨바꼭질을 계속하듯이 사라져 갔다. 연못 주변에서는 갈대가 그 표시를 하였고 그나마 연못을 지나자 그런 뚜렷한 구별도 할 수 없었다. 양쪽 가장자리 모두 작은 잡초들이 시들어 버린 메마른 풀잎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쉭, 쉭……, 쉬이익!”
자동차의 앞창으로 안개 때문에 유리창이 물기로 젖자, 긴급히 『윈도우부러쉬』가 서리가 유리창 앞으로 서너 차례 소리를 내면서 손을 흔들 듯이 움직였다. 김이 서린 것처럼 뿌연 유리창에 고무판으로 닦은 것처럼 자국이 생기면서 밝아 졌지만 그 안으로 뿌연 느낌은 여전했다. 유리 밖의 안개가 다시금 뿌연 김으로 유리창 쪽으로 넘어올 태세다. 하지만 윈도우 『윈도우부러쉬』는 언제라도 움직일 태세다. 운전자가 손가락만 까닥해도 좌우로 흔들리면서 유리창을 닦아 될 테니까. 이처럼 격정이 높은 상태로 운전자는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머릿속이 공황장애를 일으켜서 사물을 분간할 수 없었으며 위치를 찾는 데 중요한 표시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므로 아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머릿속이 온통 불안과 공포로 가득차면서 점점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저수지를 지났지만 그곳 연못 주변에 물안개가 피어올라서 더욱 짙어진 안개로 인하여 이제는 불과 3미터도 분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그나마 10미터의 가시거리를 갖고 있었는데 연못을 감싸 도는 좁은 1차선 농로 길로 접어들면서 아찔할 정도로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일순간 운전자는 잠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방향을 찾지 못한 체 교차로 앞에서 직진을 하지 못하고 좌측으로 향하고 말았다. 도로 갓길에 경계를 삼고 직선으로 계속 오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앞을 분간할 수 없었으므로 계속하여 앞으로 나가게 되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순간 온갖 환영과 착각에 빠졌는데 그것은 1초에 수만 번의 판단과 생각이 떠올랐고 그것을 종합적으로 결정하게 만들었지만 잠시 방향감각을 잃었던 게 실수를 하게 했다고 할 수 있었다. 엉뚱한 길로 계속 진행하는 차량은 언덕을 올라간 뒤에 꼭대기에서 이윽고 내리막을 탔다. 하지만 그곳은 삼청리 마을로 넘어가는 도로였다. 운전자는 1통 화물차에서 잔뜩 핸들을 움켜잡고 앞으로 웅크리고 있는 자세였다.
 
용암사로 오르는 길은 대여섯 번 다녀보아서 어느 정도 눈에 익었었다. 그런데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으므로 전혀 낫선 것처럼 달라 보였다. 그만큼 한치 앞도 분간하지 못하는 안개로 인하여 이상하리만큼 분간할 수가 없었다.
“탈칵”
야간등과 함께 헤드라이트를 켰다.
하지만 반사되어 오는 안개는 물방울처럼 흰 빛깔로 더 눈을 괴롭혔다.
“탁!”
다시 헤드라이트 불빛을 껐다.
형체도 없는 안개.
모든 것을 삼켜 버렸는데 흰 색의 『봉고3』 1톤 화물 차량을 운전하고 650m의 장림산 자락에 위치한 용암사를 오르는 산길이다. 그의 눈앞에 지형을 분간키 어려운 혼란을 줄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저수지를 지나서 교차로 앞에까지 이르렀지만 길을 잘못 들게 된다.
 
주변의 흰 안개가 차량이 지나갈 때만 검은 도로가 보이다가 그것도 잠시뿐 지나가면 희롱하기라도 하듯이 다시 안개로 뒤덮이고 말았다.
그는 차를 멈추고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전혀 알지 못하는 길에 들어 선 것처럼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 번 자신감을 잃게 되자 불안스러운 느낌은 점점 더 자신을 나약하게 만들었다.
마치 앞을 막아서 진입을 가로 막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스멀거리는 희뿌연 연기가 투명한 깊이로 앞으로 차량이 나아갈 때마다 다시 속살을 보이지 않으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흰 장막으로 뒤덮어 버렸다.
‘아, 이곳이 어디일까? 그리고 얼마나 왔지!’
분간이 가지 않았으므로 서행으로 길을 따라 앞으로만 계속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 구분은 길가의 풀숲이었다. 무언가 지형을 알 수 있는 특징이 보이기만을 기대하면서 계속 앞을 살폈다.
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엔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앞 쪽에서 길가에 울타리가 없는 낮은 양철 지붕으로 된 외딴 집이 나타났다. 이곳은 길가에 미닫이 유리문으로 접한 건물만 달랑 서 있었는데 옛날의 주막집처럼 보이던 곳이었다. 그 집을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판단을 했다.
이 외딴집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포장된 도로를 계속 따라 갔지만 저수지 다음에 나타나는 조그만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했구나! 왜……, 그랬을까? 검은 아스팔트로 된 농로(農路)를 구별하는 도로 옆의 풀을 따라서 가다보니 교차로 앞에서 구별을 하지 못하고 말았구나! 뛰어 건너야 하는데…….’
그렇게 추리를 했다. 그렇지만 그토록 짙은 안개가 이제는 두렵게 느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더 다그쳤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돼! 계속 가자!’
그제야 모든 것을 판단하고 어렴풋이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는 차를 반대로 돌려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언덕을 서서히 내려가자 마침내 교차로가 나타났다. 희미하지만 교차로라는 곳을 이제는 감각적으로 인지한다.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용암사겠지!”
그는 신음을 하듯이 소리쳤다. 이것은 자신이 판단한 것이 그만큼 맞는다는 생각에서 일시에 나온 말이었다.
꿈과 현실을 차이가 많았다. 그리고 그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위험과 불안의 공포 분위기였다. 그는 자신이 혼자였고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며 결코 좌절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만큼 겁을 집어 먹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것이었고 모든 것을 마비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이만한 일에 적어도 포기하고 되돌아가기에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굳은 의지를 증명할 수 있어서였다. 아마도 집에서 불과 2km 내외에 불과한 곳을 1톤 ‘봉고Ⅲ’ 흰 색 화물차를 운전하면서 길을 잘못 들었다고 돌아설 수 있기에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할까? 그만큼 그는 오늘 아침의 자신은 편안한 잠을 자고 있을 시각에 위험한 길에서 헷갈리고 말은 상황을 표현할 수 없는 변화로 받아 들였다. 종합적으로 볼 때, 이 상태는 지금까지 56세라는 나이에 경험까지 더하면 전혀 우려할 만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이 상황은 일시적인 짧은 혼란일 뿐이었다.
사람은 가끔 자신이 위기를 느낄 때, 지금까지 걸어온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피할 수 있다고 자부하게 된다. 만약 자신이 조금만 더 젊었더라고 하면 이런 상황에서 되돌아갔을까? 사실 처음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편안하게 집에서 새벽에 잠자는 시각에 일어나서 차를 몰고 좁은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으며 앞으로 더 가파른 산 중턱까지 오르는 위험한 상황을 더 만나야만 할 정도로 위기가 찾아오리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모든 걸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개로 분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쉽게 벗어날 길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럴 마음이었다면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짙은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는 사실은 예견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지만 되돌아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용암 저수지를 지나면 조그만 교차로가 나오는데 그곳이 분간할 수 없었으므로 갓길만을 따라 갔던 게 길을 잘못 들었던 원인이었구나!’ 하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이제는 마침내 교차로를 찾았고 우회전을 하면서 다시 정상적인 방향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마침내 오른 쪽에 전에 찾아 왔던 축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고 다음으로 고속전철의 터널이 위치한 지점이었다.

그리고 이 길에 다다르기까지가 분간하지 못하는 안개로 짙게 깔려 있었지만 점차 안개가 옅어 지면서 분간하지 못하던 상황이 어느 정도 윤곽이 확실하여 산속으로 들어 간 뒤에 경사로를 따라 지그재그로 올라가기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위험스럽지 않았다. 안개가 점차 옅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부르릉!”
엔진의 속도를 높이기 비탈진 도로에서 전진을 하게 한 뒤에 재빨리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1단으로 넣었다. 경사로가 심해지고 있었다. 초기 진입은 2단을 기어로 넣고 시작하였지만 점차 경사가 삼해지자 1단으로 운행을 하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안개는 높아지는 산을 따라 오르지 못하고 점점 낮아 졌고 아래 쪽에서 맴돌 뿐이었다. 그렇게 저속으로 계속 올라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탈길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지만 좌측 우측으로 각도를 트는 곳에서는 핸들에 힘을 주고 속도를 더 줄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방향 전환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높은 곳에 오르는 차량의 등판능력이 아니고 운전자의 실력이 필요한 만큼 계속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위험하다고 다시 멈출 수도 돌아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옥천 지역은 대청호가 가까웠다. 또한 상류지역으로 수자원 보호구역이라는 명목상의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개발이 매우 제한 적이었다. 이곳은 용암사로 오르는 초입이었는데 축사 한 동이 부동산 법원 경매에 처해져서 물건을 보러 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하의 경우에는 일반 부동산 가격의 70% 의 가격으로 수자원공사에서 매입을 하게 된다. 그 경우에는 집이건 축사건 일반 건물이 있는 부동산의 경우 모두 철거를 하여 원시적인 자연 상태로 조성을 하여 전혀 개발을 하지 않고 울창한 숲으로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깨끗한 수자원을 조성하겠다는 수자원공사의 뒤 배경에는 대전광역시, 청주 등의 상수원 보호 구역에 대한 『깨끗한 물』 사업 조성에 입김이 작용하고 있었다. 상수원 보호지역으로서 가장 많은 『수질 관리 보호세』의 혜택을 받고 있는 옥천 지역에서는 이런 불가피한 조치에 대한 철거 사업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개발제한적인 조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력과의 싸움에 있어서 무척 제한적이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이 계속하여 줄고 있는 현실에서 그나마 어떻게 해서든지 적정한 군민의 정족수를 유지하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계속하여 주민들은 줄고 있었고 그로 인해서 지역의 입지 조건과 정부 보조 지원 사업이 약화되는 현실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이 작은 소읍은 개발이 되지 않아서 조용하고 변화가 없이 시골적인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지만 재산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입지조건을 갖게 될까? 하는 불안감은 내심 주민들에게 현안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지역 주민으로 군청, 읍사무소 등의 관공서 인원을 모집하고 가급적이면 이 지역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관급 공사를 선입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미미한 실정이고 큰 공사는 여전히 외지 공사업체가 맡곤 했었다.
그런 지역적인 문제는 아무래도 자기에게 직접 영향이 없는 한 현실적으로 피부에 닫지 않는 사항이었다. 그렇지만 대단한 것이 아닌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어디든지 현존했다. 다만 그것이 말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일로 제한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서 내부에서 방항하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것뿐이었을 정도로 모두들 차분했다.

그곳을 지나면 이제 가파른 언덕이 계속되고 있었다.
수도세를 받아서 옥천 지역에 가장 많이 조성을 시킨다는 실태가 바로 이렇게 원상 복구로 되돌려 놓게 되는 상황이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시골화, 고령화가 되어 가는 주민들의 대부분이 이제는 농노를 처분하여 도시로 나가고 그 집과 가옥이 수자원공사에 매입되어 다시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귀되는 실태였다.
 
울창한 숲. 그렇지만 아직도 낙후되어 있는 전원적인 곳. 자연이 주는 쾌적한 한경은 늘 축축함과 많은 습기를 머금고 여기저기 파고드는 안개처럼 항시 침묵과도 같았다. 그 공기에 머금은 습기만큼이나 다시금 보이지 않는 안개로 모두 뒤덮여 버린 이른 아침의 진풍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만 하는 이곳의 생활.
박만수가 이곳에 정착하기 전에는 도시에서 살았었다. 그러므로 도시 생활에서 적응하기 까지 너무도 낫선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자연이 주는 환경적인 요소가 지형적으로 대전과 12km 떨어져 있지 않은 지형적 특성이지만 안개가 머물러 있는 『세천고개』를 넘어서면 주변 온도가 5도는 떨어졌고 그런 만큼 겨울도 길고 추위도 삼한 편에 속했었다. 대전에서는 12월 말일까지도 온실처럼 둘러싸인 모든 열기의 보호막으로 인해서 그다지 춥지 않았었지만 이곳은 10월경부터 춥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월 15일인 오늘은 한기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런 추위와 함께 아침 안개가 끼었고 그 뿌연 분위기는 아침 9시에는 걷히기 때문에 잠자리에서 항상 늦게 일어나는 그의 생활은 그다지 안개와는 절대적이지 안았다. 대부분 오전 10시쯤에는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비쳐 들었으므로 직접적으로 피부에 닫는 느낌은 그다지 심각하게 피부에 닫지 않았던 것이다.
 
개발제한구역이라는 명목상의 입지 조건.
아마도 이런 통제된 곳에서의 발전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그가 이곳에 이사를 오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부동산 가격이 대전광역시 근교에서 가장 저렴하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이 장점이 최고의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 되지 않아서,
‘아, 수자원 공사의 공해, 발암물질 배출 규제 지역, 상수원 수원지 보호지역, 등의 보호지구여서 제한적인 구역이구나!’ 하는 사실에 깊이 통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사실을 모른 체 지금까지 15년 동안을 살아 왔지만 막상 투기 목적으로 구입을 하였다면 그런 실제적인 『공시 시가』는 변동이 없었으므로 그만큼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예전이나 지금이나 땅 값은 오르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모든 게 후퇴를 한 것처럼 하락하게 된 부동산 가격으로 인하여 낭패를 당하곤 했었다. 그 중에 가장 현실적으로 맞는 건 도시처럼 쉽게 기온차를 못 느끼게 된 점이었다.
 
 
현재도 전혀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고 봐야만 했다. 4차선 도로변에 가까운 주택지에 공장을 짓고 3층에는 주택으로 사용하는 현재의 시점에도 예전의 자신이나 지금의 생활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급격히 변하였고 그것이 자신의 나이가 벌써 56세가 넘는다는 사실로 인하여 엄청난 육체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가 살고 있는 마을에 처음 이사를 왔을 때 보았던 노인들은 모두 죽고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웠으며 자신에게 불어 닥친 56세라는 나이가 갑자기 몇 년 동안 자신을 죽음과 가깝게 내 몰았는데 그것은 고혈압에 대한 새로운 입지와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계속하여 주변에 떠나지 않는 갑자기 불어 닥친 졸도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던 게 얼마나 큰 충격으로 불어 왔고 그로 인해서 한시도 떠나지 않는 자신의 신체에 가해지는 위험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만큼 이제는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었고 그것이 주변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는 사실 등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상황으로 다가 왔었다.
 
주변에서 더 많은 노인들이 죽었고 그 상황은 자신에게까지 세월의 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모든 게 죽음과 연관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단 한 가지였다. 내가 너도 생활에 충실해 왔고 그것이 직업과 연관된 일이 된 점과 지금까지 갖고 있는 기술적인 전문 직업에서 운동부족으로 체중이 많이 늘었다는 사실. 그리고 몸 상태가 비만으로 갑자기 악화된 상황이 자신을 꼼짝 못하게 변화 시켰구나!’
그렇게 인식이 되었다. 그러자, 노인들이 모든 직업을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과 죽음 앞에 초연해 지는 사실 등이 갑자기 현실로 다가 왔다. 그 모든 것이 남이 갖고 있던 상황이 아니고 고스란히 내 것으로 바뀌었으며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졌다. 이 새롭게 불어닥친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고혈압에 대한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라고 인지한다.
 
그가 보아 왔던 이 옥천지역의 노인인구가 점점 더 주변의 사람들이 죽고 이곳을 떠나곤 했었다.
이곳은 낙후지역으로 많은 제제를 받았다. 우선 인구가 해마다 줄어서 무엇보다 땅 값이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은 그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공장을 장만할 수 있어서였지만 대청호 상류지역으로서 수자원 보호구역이라는 최고의 제재가,
‘개발이냐? 보존이냐?’, 아니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구구한 논리만 앞세우는 것처럼 전혀 의미가 없는 평범한 군민 (郡民:고을 군, 백성 민으로 옥천군에 속한 사람들을 의미함)에게는 이런 사실이 전혀 무의미한 법이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도시와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계속하여 속빈 강정처럼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가서 주민의 대부분은 노인들이 남았고 주변에 농공단지와 산업단지가 공해업체는 절대불가라는 방침이 철회되지 않았으므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크고 작은 중소기업체는 현실적으로 이윤을 추구할 수 없어서 도산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공영기업체가 조폐공사였고, 두 번째는 전매청, 그리고 세 번째는 국제기계가 동양기계로 인구 합병된 상황이었다. 원래부터 방위산업체와 범정관리라는 불명예를 뒤집어 쓰고,
‘**에 인수 합병 되었다가 현직 대통령과 사촌 동생이라는 동양기계로 인수 합병 되었는데 산업은행으로부터 160억원이라는 인수 합병 자금을 대출 받아서 자기 33억이라는 자체 운영자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서도 고스란히 동일한 업체를 인수하게 되어 그야말로 최고의 혜택을 받지 않았나?’ 하는 의아심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 일은 앞으로 또 다시 앞서 이곳을 발전을 저해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조폐창의 경산 이전과 같은 전례에서 보아 왔듯이 이곳에서 정치판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성이 있는 회사를 끌고 가게 되는 입김이 작용하였었다. 그 당신 경산은 건물이 완성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를 가고 가게 되어 빗물이 새고 있는 상황이었고 옥천의 조폐창은 신규로 신축한 건물에 막대한 예산을 쏱아 부워 그야말로 3층 높이의 건물에 부지가 6만평에 이르고 주차장, 숙사, 운동장, 등을 모두 조성한 상황이었다. 옥천 조폐창 주변은 마을이 방이 없어서 못 구하는 실정이기도 했으며 주민들은 자취방으로 개조한 방마다 하숙을 하는 사람들로 넘쳐 났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폐창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돈을 숨겨서 갖고 나오다가 들키는 사건이 터지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조폐창 도난 사건이 청문회에 올려지고 경상도의 입김이 작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전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이전 문제가 청문회에 장가앛에 ㅊㅇ에장페 벼니은 사실상 이 지역서살서의 ㅗㄱㄴㄷ거물에ㅂ가엑 않았ㅇㄴ ㅇㅇ유리한 입지 조건이 ㅊㅇ불어 닥쳤고 결국에는 경상북도의 국회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하여 건물과 토지가 모두 공매 처분한 결과 결국에는 종교단체가 이 시설을 16억원에 낙찰을 받아서 현재는 연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국제종합기계의 경우도 첫 번째의 사례처럼 단물만 빼먹고 버리게 되어 모든 부지와 시설이 매각되어 버리는 악순환이 재발될까? 두려웠다.
이 초유의 불안은 오래 전부터 곪아 터진 악성 종양처럼 이 지역에 일파만파로 터질지도 모르는 지진과도 같았다. 한 마디로 이번에는 여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일어나는 소문이 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도 기온차가 심한 날씨가 이어졌고 짙은 안개가 잔뜩 껴서 불과 2~3미터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으므로 차량을 운전해 가면서 조심한다고 서행을 했지만 그야말로 불안이 가중되어서 알 던 길로 어긋나고 말았을 정도였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킬 정도로 짙은 안개는 그야말로 폐 속까지도 침투하여 기침을 일으킬 정도다. 이런 안개 때문에 오전 10시까지도 해가 비치지 않을 때는 불안스러운 기분으로 우울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 안개는 계절적인 영향이 많았다. 봄. 가을철 환절기 때 어김없이 찾아드는 불청객과 같았으므로 좋으나 싫으나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안개 탓일까? 처음에 몇 년간은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무척 고심했었는데 그건 안개가 짙은 날에는 온통 비가 내린 것처럼 축축해 진다는 점이었다. 특히 쇠로된 부분은 어느 것 하나 없이 녹슬게 만들었으므로 사실상 기계를 만드는 일을 하는 박 만수(朴萬壽)로서는 안개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쇠로 된 모든 걸 녹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2월 중순이었지만 안개가 짙게 깔린 소정 저수지를 따라 용암사로 오르는 길로 접어들기까지 거북이처럼 느리게 차를 운행하게 되었으므로 시야가 막혔으므로 시멘트 포장만을 따라 계속 오르기만 하면 되었지만 불안한 느낌은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 왔다.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 좁은 사거리가 나타났다. 하지만 안개 때문에 분간할 수 없다가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다.
‘여기가 어디지!’
낫선 곳에 불쑥 찾아 온 것처럼 전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용암사로 오르는 길이었지만 직선으로 간 것 같은데 방향 감각이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직선이 맞는데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것 같고 나타나야하는 축사와 가옥들이 보이지 않다니…….’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귀신이 들린 것만 같았다. 아무 것도 없는 광활한 벌판에 덜렁 들어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른 곳처럼 낯설었다. 집에서 근교였고 용암사에 간 적도 몇 번 있었으므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한 순간 전혀 착각을 일으켰지만 주변에 나타난 풍경으로 인하여 직진이 아닌 좌회전을 하였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유턴을 하여 돌아오던 길을 되돌아 가서 앞서 착각을 일으켰던 곳에서 좌회전을 하게 되어 경사로를 따라 용암사로 오르는 길을 타기 시작했다. 용암사는 산 중턱에 위치한 절
그처럼 당황한 건 처음이었다.
 
 
 
 
해해촤조쌀짝 싸늘한ㅛㅤㅚㅇ아직 캄캄한 옥천 시내에서 영동쪽으로 조금 가다가 용암사로 가는 소로길롤 갈라섰다. 컴컴한 듯하면서 안개가 짙어서 사물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넓지 못하였지만 용암사로 오르는 구불거리는 급경사의 도로를 타고 오르면서 햇볕이 벌써 중천에 떴음을 깨달아야만 했다. 옥천 시내는 안개로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1톤 화물차를 용암사 주차장에 세우고 걸어서 산비탈을 타고 오르면서 숨이 턱에 차오름을 느꼈다. 급경사의 언덕과 바위가 놓여진 길을 타고 오르는 곳곳에 매듭이 진 밧줄이 느려뜨러져 있었다.
해는 벌써 중턱에 떠 있었지만 8시도 되지 않았다. 옥천 시내는 안개에 휩싸여 산 아래 까막득히 내려다 보였지만 마치 신선이 피운 담배 연기에 묻혀 버린 느낌이 들었다. 산을 타고 오르면서 바위 곧곧에 사진을 찍는 젊은 남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서너명이 한조를 이루며 서로 어울려서 바위위에 삼각대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따금 손으로 들고 찍기도 했다.
 
나는 망원렌즈가 달려 있는 캐논이라던가 고급스러운 사진기로 작품 사진을 찍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내 것은 망원 렌즈가 달려 있지 않은 소니 330만 화소 디지털 카메라에 삼성 센스 노트북 컴퓨터를 어깨에 매고 있었을 뿐이었다.
USB 포토로 소니 카메라와 연결하여 노트북에서 카메라에 찍은 사진을 옮겨 놓고 큰 화면으로 상태를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가을에는 늘상 안개에 휩싸여 있는 아침이었다. 모든 세상이 자욱한 안개에 잠겨 희미하게 보이며 오전 늦게까지 어둠이 지속된다.
이곳 옥천은 대청댐으로 인하여 가을철의 지독스러운 안개는 연례적인 것이었다. 시내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킨 안개가 스멀스멀 깃들어 있는 아침녁은 유독 길었다. 또한 안개비 탓일까? 축축히 젖은 모든 것이 습기가 묻어 나곤 했었다. 이런 환경에서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덜 깨어나고 덜 아침을 본다는 것이 어찌보면 가슴을 답답하게 가로막을 법도 한데...
이런 안개지역은 대전광역시 쪽으로 가다가 세천 고개만 넘으면 씼은 듯이 사라지고 햇“騈Ì쨍쨍 내려 쬐었다. 반대로 세천 고개를 넘어서면 안개로 뒤덮인 마귀할멈의 세계처럼 깊숙히 자꾸만 빠져드는 것처럼 불안스러운 느낌이 들던 기억이 난다. 이곳에 공장을 짓고 대전에서 출퇴근을 1년여 동안 지속하면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형용할 수 없었다. 그것이 이곳 옥천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리라!
 
그런데, 그 안개 때문에 운해(雲海)(를 찾아 새벽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마침내 나도 용암사 뒷산을 타고 올라서 산자락에 터를 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 끼었으니...
 
운해를 찍기 위해 새벽에 산으로 올랐지만 그곳은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운해는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며 폭포수처럼 골짜기를 따라 아래로 쏱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사진 작가들틈에서 내 카메라는 작고 볼품이 없었으며 단지 희미하게 나타날 뿐이었으므로 장황하게 설명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용암사 뒤 산으로 오르면 바위들이 튀어 나온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사진 작가들이 삼삼오오 팀을 이루며 사진기를 삼각대에 받쳐서 운해를 찍고 있었으므로 나는 혼자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뒤 늦게 이곳에 오게 된 것에 심히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멀리 있는 전경을 확대하여 끌어 당길 수 있는 망원렌즈가 부착된 그들의 카메라에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는데 내것은 보잘 것 없는 '소니 MPEGOVIEEX'의 일반 디지털 카메라였기 때문이다. 망원 렌즈가 없다보니 끌어 당겨서 가까이 모을 수 없었으므로 화질이 선명하지 못하였다.
 
이들은 대략 몇 명씩 바위 위마다 모여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운해가 바다처럼 펼쳐진 한 아래쪽을 연속적으로 촬영하였는데 해가 떠올랐으므로 이미 눈이 부셔서 사직 찍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집을 나왔는데 산 아래쪽은 안개에 뒤덥혀 있고 어두워 분간할 수 없었지만 산 위쪽은 해가 떠서 눈부신 운해를 비쳡보였는데 흡싸 새로운 세상을 보는 듯 싶었다. 운해 아래 쪽의 세상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은 침묵과도 같은 운해에 잠겨 있는 고요한 바다였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아들, 탁구라도 쳐서 건강해야지!” 하는 듯 중풍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의 미소가 그곳에 반짝입니다.
 
 
 












시작
탁구장에 가는 이유를 모른다.
슬픔, 고통, 여자에 대한 변절, 이상원의 경우 부인에게 절재되지 않는 생활로 문제가 있었다.
그렇지만 탁구를 치러와서 사람과 만나서 탁구를 치는 동안만큼은 그런 느낌을 잊고 산다.
내 자신도 부산에 기계를 납품하고 난 뒤에 충격적인 사연이 있었지만 탁구를 치면서 슬픔을 잊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엄청난 직업적인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것을 탁구를 치면서 잊게 된다. 

(1-1). 야간에 옥천군 체육센타 탁구장을 찾았다.
(1-2). 박 만수가 이곳에 찾아 오기까지 어떤 시간이 흘렀을까?
(1-3). 탁구를 치고 싶은데 칠수가 없다. 칠 사람이 없었다.

2. 탁구 동호회에 가입하게 된 동기 
 
 체육관이 위치한 곳은 그나마 편도 4차선 도로변에 위치하여 눈에 띄던 곳이었다.
  반대 쪽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도로를 따라서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체육관과 그 옆에 야외 운동장, 다음으로는 문화원 건물이 조금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다. 그리고 그 뒤편은 이곳보다 낮은 지대에 들어선 공립대학교 건물과 시설이 위치한다.
  이처럼 4차선 도로를 접하여 동 쪽과 서 쪽의 풍경이 모두 달랐는데 옥천체육센터 쪽은 사유지가 아닌 군(郡)유지로 개발이 재한 되어 있었으므로 복잡한 건물들이 들어서지 못하여 한적하였다. 

  이곳 체육관이 위치한 곳까지 모두 하나로 보자면 특별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시설로 보였고 바쁘게 사는 평범한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만큼 체육센타 근처의 반경에 든 지역 안에서는 커다란 행사가 있을 때만 차량이 만차를 이루고 사람들이 복적대곤 했었으므로 일반인들에게는 자진해서 가보기 전에는 어떤 운동 경기가 벌어지는 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4차선 도로에서 인접해 있는 체육관 건물은 육중해 보이는 프른색 강화 유리와 회백색 대리석으로 벽면을 장식하였으므로 현대식 건물처럼 외향이 번쩍 거렸지만 실상은 규모면에서 대도시의 올림픽 경기장가 비교했을 때는 아주 빈약했다. 그것은 건물이 낡고 빈약해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만큼 88년도 서울.도쿄 올림픽 경기 때, 새로 지은 대규모 경기장을 보게 되었고 그 경기장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옥천의 체육센타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였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이만큼이나 체육관이 갖춰져 있다는 사실은 필요에 따라서 각종 대회가 개최되어 행사를 위해 모여드는 차량과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런 경우 이 체육센타는 북적대는 사람들로 인해서 4차선으로 왕내하는 차량에서 바라보았을 때 유난히 특별해 보이곤 했었다.

  체육관 건물은 양 쪽편으로 주차장 시설이 된 중앙에 위치하였지만 왼 쪽편이 진입하기 편해 보였다. 그곳에 바로 4차선 도로에서 다시 2차선으로 꺽어진 곳에 경사 15도 올라서는 비타길 위에 차량 50대를 주차할 수 있는 라인이 그려진 주차장이 위치하였으므로 그다지 찾아오기 어렵지는 않았다. 건물과 주차장은 모두 4차선 도로를 왕내하면서 볼 수 있었으며 그곳에 들어선 차량은 전혀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으므로 누구나 빈 곳이 있으면 들어 와서 주차가 가능했다.

  사실상 이곳에 차량을 불법으로 주차할 사람이 많이 않은 것은 주변에 아파트 단지와 개인 주택 상가들이 밀집된 곳에서 떨어져 있었으며 또한 이곳까지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없기도 하겠지만 공용주차장으로서 체육관과 운동장에 행사가 있을 때는 예외였다. 모두 다른 곳에 주차해 달라는 주차원들이 진임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만차였었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괜찮았지만 행사가 있는 날에는 진입하는 것도 힘들었으므로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른 쪽 편은 대형버스가 진을 치듯이 'š드어 찼고 그 위쪽에 다시 4차선 도로변까지 알록달록한 색체로 장식한 관광버스가 늘어서 있던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아마도 그런 선입견까지 고려해 볼 때 체육관의 행사는 때로는 전국적인 규모로 개최되는 것 같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다시 걸어서 체육관의 유리문 앞까지 가기 위해서는 보도불록이 깔린 대략 20미터 정도 되는 공간을 걸어 가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체육관 주변에 원형을 그리듯이 이 경계 사이로 차량이 올라와서 주차해 놓기도 하였고 벤치가 놓여 있는 벚나무 아래에서 몇 사람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앉아서 얘기를 하는 모습도 비췄었다.
  4차선 도로와 옆으로 2차선 도로가 교차로를 이루는 지점에서부터 이곳 체육관까지는 완만한 겨사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곳에 산책로처럼 보도불록과 벚나무가 주변에 심어졌고 또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무 벤치가 놓여 있었으므로 걸어서 올라오는 동안 옆으로 조성된 하단과 잔디밭을 구경하게 된다. 하지만 주차장에 차량이 만차를 이루게 되면 이곳에도 차량들이 불법으로 주차를 그만큼 넓은 보도 불록을 걷는 자유를 빼앗기도 하였다. 어쨌튼 그만큼 체육관 주변은 주차장 주변에 조성된 경계 구역으로 보도불록이 깔려 있다는 사실로 주차장까지 가게 되는 게 무척 거리감을 두웠으므로 겨울철과 비오는 날에는 뛰어다녀야 할 정도로 멀게 느껴졌다. 


  이런 거리감를 통하여 그는 체육관에 처음으로 가는 중에도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다. 차에서 내려서 주차장에서 차선을 다섯 개 정도 걸어 간 뒤에 보도불록으로 깔아 놓은 높이 20센치 정도의 단을 올라 섰고 측면에서 다시 체육관의 정면쪽으로 향해서 걷게 된다. 체육관의 정면은 4 차선도로와 인접해 그곳으로 돌아서기 위해 건축물의 옆으로 비켜서 걸어가야만 했던 것이다.
보드불록과 벚나무 사이로 통과한 뒤에 나무 벤치와 자전거 거치대가 놓여 있는 도로 쪽과 경계를 나뉘었고 이윽고 출구가 나타났다. 출구는 양쪽으로 밀어서 들어 가는 유리문이 두 곳이 있었을 정도였지만 왼 쪽은 잠겨 있고 오른 쪽만 사용하였는데 두 개의 유리문이 또 다시 안 쪽에 똑같은 형태로 막혀 있었으므로 계속 밀쳐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체육센타 건물 맞은 편의 아파트 단지.
 4차선 도로의 맞은 편이 여기에서 바라볼 때는 정면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아파트 단지는 모두 다섯 동으로 나뉘어져 연이서 지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이 곳 체육관과 주변의 한적한 모습이 무척 전망 조흔 곳으로 느껴질 것도 같았다. 하지만 도로 반대편은 체육관이 인접해 있었고 2차선 도로를 건너면 그 아래 을 지나면 2, 3층의 상가 건물들로 음식점, 노래방, 자동차 대리점, 건재상, 슈퍼 할인 마켓, 새마을 금고, 외환 은행, 주유소 등이 옹망쫄마 연이어 1km 정도를 번잡하게 찾이했다. 모두 아파트 단지를 보고 장사를 하개 위한 것이다.

  이 작은 소읍(小邑)에 해마다 유동 인구가 계속하여 빠져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조그마한 이 상황을 벗어나도 시골에 가까울 정도로 발전을 하지 않는 소외된 지역이 많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었으므로 체육시설도 갖출 필요가 있었고 그로 인해서 주민들에게 건강에 대한 자발적이고 생활체육인으로서 동호회 활동을 장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5층의 아파트 단지 중간의 작은 사거리 앞에서 비보호 죄회전을 하기 위해 좌측 중앙선 대기선에서 기다리면서 박 만수(朴萬壽)는 반대편 차선 너머 체육관으로 보이는 건물을 바라 본다. 해는 오후 여섯시부터 이미 기울어져서 어둠 컴컴해진 주변의 분위기가 4차선 도로 변에 연이어 세워진 가로등 불빛으로 그나마 적막감을 감소 시킬 뿐 바람이 거칠게 1톤 화물차를 때려 대고 있었다.

  12월 중반의 날씨가 밤이 되자, 무척 쌀쌀해 졌다. 가을이 되면서 짧아진 햇살은 이제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면서 더욱 어둠이 길어져서 7시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버렸다. 그런 어둠은 음산한 기운을 더욱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이처럼 이곳에 체육관이 들어 선 것은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마땅찮았고 한편으로 현대식 건물로 세워졌지만 대도시에 비하면 너무도 형편없는 모양세를 띄었으므로 전혀 이 체육관의 실체가 얼마나 중요하며 또한 목적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터. 하늘이 청명한 들 어떠리요! 비가온 들 묵묵한 외향으로 동쪽 편으로 태양광 발전을 위해서 판넬을 지붕 위에 올려 놓았고 그것으로 인하여 조금은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이웃집 개가 제 집 앞에서 똥을 싸는 것처럼 관심없었음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런 무뚝뚝한 모양으로 마치 땅 속에서 솟아 오르 것처럼 볼품없어 보이는 초라한 체육관을 사람들은 그다지 필요 이상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주변은 아파트 단지가 마주보고 있었으므로 반대편 길가에 연이어 작은 상가 건물과 5층 높이의 대형 건물이 중간에 섞여 있었을 정도로 번화 했다. 그러므로 이 지역의 특성상 체육관 건물은 외부에서 오는 다른 행사를 위해서 쓰여지곤 했었다. 여러 대의 관광버스로 대절하여 도민체, 같은 크고 작은 행사 때 사용되었고 그로 인해서 외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그런 장면은 주민들로서는,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이 지역에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참여하게 되는 운동 경기였들이었다. 노인 인구가 많은 소읍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관이 세워질 리 만무하였고 그만한 시설을 갖출만큼 군에서도 여력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부족한 체육 시설이 도마 위에 올랐다.
  현대인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을 이제는 직접 운동 경기에 참여하여 선수로서 뛰고 싶어하는 욕구가 늘어나게 되자, 그로인하여 시설이 부족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몇 년전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각종 운동을 수용할 수 있는 체육 시설이 군에서 필요하였고 중구 난방으로 이곳 저곳에 체육시설을 증설하였지만 모두 새로 짓는 것은 땜질식의 임시방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규모였고 공사비가 많이 들었다. 처음에 이런 미래를 보고 조폐공사 부지를 매입하였다면 모든 행사를 한 곳에서 개최할 수 있었을 것이며 나중에 소규모로 짓는 체육시설로 발생하는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옥천의 조폐창이 공매로 매각할 때 군에서 매일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우매하기까지 하였다.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서 포화 직전에 이를만큼 체육시설의 부재는 그 당시의 조폐공사를 군용지로 확보하지 못한 탓도 있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만 되었다. 지금의 체육관은 그곳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 아마도 그럴 경우 최고의 입지조건 하에서 자유롭게 운동을 하는 동호회원들은 탁구, 베드멘트, 테니트, 배구, 와 같이 실내와 축구, 야구까지도 모두 한 곳에서 개최하고 열릴 수 있는 최고의 시설을 갖추지 않았을까?
  어쨌튼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므로 흘러간 과거에 대하여 조금은 아쉬움을 갖게 되었지만 그런 사연은 이곳 옥천의 체육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법도 하니 아쉽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로 남는다고 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가종 체육관을 흩어져서 짓고 있는 탓에 더 많은 비용이 들게 되었는데 그 당시 체육 시설을 지을 때 크게 짓던가 그 옆에 함께 병열적으로 추가해 놓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오히려 규모를 축소했던 만큼 수 년이 흐른 지금은 너무도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 이 체육관에서 종합적인 행사가 진행할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서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았으므로 전국적인 큰 규모의 행사는 개최하지 못하였다. 그만큼 지금의 체육관도 시설이 작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은 전문가들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양 쪽으로 넒은 주차장 부지에 중앙에 체육관이 2층 규모로 지어져 있었지만 그것이 규모면에서 작아 보이는 건 대도시에 우람하게 서 있고 새로 신축하는 종합 경기장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곤 했다. 88년도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6대 도시마다 대규모의 체육관들이 최고의 시설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웅장하게 지어졌던 만큼 그 규모에 압도되었던 많은 이들은 이처럼 작은 체육관에는 전혀 무관심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스산한 바람이 아파트 단지가 펼쳐져 있는 시내 길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 때마다 은행나무 가로수의 잔가지에 바람이 머물러 흔들리면서 울음 소리를 낸다. 바람이 그곳에서 가지를 흔들고 노래가 불려 나오기라도 하듯이 일종의 하모니가 되어 애절하게 소리를 냈다.
  “다다다다-닥!”
  풍향(風向)이 바뀌어서 북동 쪽에서 분다. 겨울이 가을을 뚫고 바로 시작되었음을 직감하였는데 그것은 바람의 방향이 차갑고 거칠어진 느낌 때문이었다. 그는 날씨에 민감하였으며 겨울철에는 그만큼 신체적으로 적용을 하지 못하는 감기로 인하여 전신에 열과 두통이 지속되었었다. 모친으로부터 알레르기 비염(鼻炎)을  유전적으로 물려 받아서 환절기에는 코막힘 증상이 심했다. 오늘 라디오로 들은 일기예보는,

  “기온도 떨어져 중부내륙지방은최저영하5도까지 내려가겠다. 중앙관상대는 기압골이 한차례통과하고 몽고북쪽의 한랭한 내륙성고기압의 영향을받게돼 춥고 흐린날씨가 내주초까지 계속되겠습니다.” 라고 기상청 통보관이 예보했었다.
  이런 날씨에는 해가 떨어지만 급격히 온도가 내려가기 마련이었다. 음산한 바람이 도시 근교의 작은 소읍(少邑)에 매섭게 몰아 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돔 형태의 체육관 센터 건물 중앙이었지만 내부에 들어가자 긴 복도와 벽체들이 칸칸이 막혀 있었다. 탁구장은 이중으로 된 두 번째 벽을 따라 걷다가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서 출구가 나타나자 그 안 쪽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 왔고 내가 문을 열자 사람들이 탁구대에서 분주한 모습으로 각자의 탁구대에서 공을 바라보면서 탁구대를 휘둘러 댄다.
  낫설은 환경이 눈에 들어 오는데 마치 시장 골목처럼 어수선하다.
  사람들은 아는이가 하나도 없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에 들어선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바닥에는 칸막이가 쳐진 첫 번째 출구와 두 번째, 세 번째 출구가 있는 곳까지 모두 세 건물을 뜯어내고 연결한 듯 길게 연이어 바닥이 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 탁구대가 네 대 놓여 있고 내가 들어선 곳에는 자동 기계가 있는 탁구대와 그 옆에 강사로 보이는 사람이 학생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를 열심히 지도하는 모습이 모인다. 내가 들어선 곳은 마지막의 출구였는데 중앙이 아닌 자동 기계가 있고 강사와 학생이 있는 곳이었다.

  모두 세 칸의 건물을 하나로 연결된 내부로 긴 복도를 연상 시킨다.

 엄연히 얘기하자면 같은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는 주변의 사람이 없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같은 실력을 견비한 사람과 시이소를 타는 것처럼 탁구공을 라켓으로 두 개의 테이블 사이에 레트를 걸쳐 놓고 주고받기 위해서는 규칙과 실력이 필요했다. 그만큼 탁구에는 개인 적인 등수를 매겨 놓고 서로 실력을 겨루면서 실력을 겨루는 경기였다. 아무렇게나 마구잡이식으로 치는 사람과 실력이 높은 사람과 탁구를 치게 되면 재미가 없었다. 번번히 탁구공이 넘어오지 않았고 상대방에게 보내면 받지 못하여 서로 비약적인 실력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고수의 경우에 하수와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여 실망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실력 차이를 갖고 상대방에게 배려해서 칠 수 밖에 없었으므로 많은 인내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 모두 얼마동안 치지 못하고 계속할수록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서 함께 칠 의욕을 상실하기 마련이었다. 이처럼 상대방을 찾기가 힘든 게 탁구였다.   낮에는 에러로빅이, 요가,를 하고 저녁에는 다른 구기종목 경기를 갖는 중복된 상태에서 필요할 때마다 운동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했다가 걷는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번거로웠다고 할 수 있었다. 도시와 다른 것이라면 이 지역에서 모두 한 곳으로 몰려서 함께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시설이 갖추워지지 않았다는 점이 오히려 매력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여러 사람이 복잡하게 한 곳에서 운동을 하려고 하다보니 시설이 뒤따르지 못하여 중복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그런 모습들이었지만 설령 그것이 외향적인 건물의 모양이라던가 주변의 상황은 그다지 변화가 없었으며 춘하추동 날씨와 기후에 따라 때때로 주변 환경이 바뀌곤 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문제될 게 없어 보였다.
애처 가로에서 부는 으로 찬공기가 ㅉㄱ바람이 풍 푸풀
체육센터 앞에서 1톤 화물차를 세워 놓고 체육센터 내에 탁구대가 설치되어 있는 실내로 들어 섰을 때 사람들이 탁구를 치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박 만수(朴萬壽)가 집 주변에서 탁구를 함께 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세 사람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직업에 얽매이던가, 너무 노인이던가, 그리고 휴식 시간이 맞지 않아서 피하기만 했다. 타이어 집의 A가 한 번 함께 쳤었는데 그 뒤로는 개인사업 때문에 장사를 하느라고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었다. 전에는 탁구 동호호에 나갔었다는 것이었다. B라는 연노라 노인은 바로 이웃에 살아는데 함께 탁구를 쳤다가 그 뒤로는 허리라 아프다고 자꾸만 회피했다. 너무 연로한 탓에 움직임이 많은 운동을 할 수 없는 체력 때문에 그 뒤로는 함께 탁구를 치지 못했다. 세 번째 사람은 아들이었다. 집에서 출퇴근을 하는 탓에 저녁에는 직장에서 퇴를을 해서 돌아 왔지만 언제나 밤 늦은 시각이었다. 그렇다고 주말에도 항시 밖으로 친구와 애인을 만나러 다니곤 했었다. 이들 세 사람 중에 그나마 아들이 그나마 탁구를 치는 유일한 상대이긴 했다.

  그가 이 조그만 옥천읍( 沃川邑)에서 그나마 탁구 동호회라는 지역 모임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만큼 아주 우연히 모색한 착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하여 아들과 탁구 경기를 하는 데 형편없이 지고 있었던 것이 발단이었다고 할까? 그렇다면 이 지역에서 탁구 동호회원들과 함께 만날서 함께 할 수는 없을까? 목적은 탁구를 치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그렇게 목적을 잡았지만 사실상 체육관으로 가서 사람들을 우선 만나기로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7시에 작업복을 벗어 놓고 외출복으로 갈아 입고 탁구체와 공을 두 개 넣은 백을 챙겨 들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3.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1)

옥천군 체육관 다목적실에 위치한 탁구장에 다니게 된지가 12월 15일 부터니까 대략 15일쯤 되었습니다.
20대에 대화 공단의 중소기업체에 근무하면서 점심시간에 잠깐씩 탁구를 치던 게 기틀을 마련했고 그 뒤 50대가 된 지금은 어느정도 기반도 잡게 되어 집에 탁구대와 자동투척기계까지 설치를 해 놓고 운동을 겸해서 쳐 왔었지만 왠지 흥미를 유발시키지는 못했습니다.
15년 전에 옥천으로 이사를 와서 이곳에서 자식들을 키웠고 대학교는 비록 대전에 있는 곳으로 보냈었지만 모두 장성을 하여 그곳에서 직장을 잡았지요. 딸은 간호사였고 아들은 연구단지 근처의 중소기업에 근무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그곳에서 틈만 나면 탁구를 치게 되면서 나와의 실력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56세인 내 나이도 운동부족으로 문제가 생기면서 고혈압 진단을 받아서 운동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고민 끝에 옥천군 탁구 동호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집에 탁구시설을 해 놓았지만 상대가 없어서 무용지물과 마찬가지가였습니다. 탁구를 치고 싶은데 상대가 없다보니 칠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옥천군에서 동호회를 만날 수 없을까?그렇게 불현듯 12월 15일 이웃집에 사는 지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한 그가 마침 장소를 알려 주웠고 탁구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목적은 탁구를 치기 위해서였지만...
적어도 그렇게 목적을 잡았지만 사실상 체육관으로 가서 사람들을 우선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7시에 작업복을 벗어 놓고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 탁구체와 공을 두 개 넣은 백을 챙겨 들고 체육관으로 출발을 하였지요.

체육관 앞의 주차장에 1톤 화물차를 세워 놓고 다목적실에 위치한 탁구실을 들어 섰을 때 사람들이 탁구를 치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전체적으로 돔 형태의 체육관 센터 건물 중앙이었지만 내부에 들어가자, 긴 복도가 보였고 마치 미로같은 통로가 연이어 다음 칸의 건물로 이어져 있었지요. 그 원형의 건물로 출구를 들어 갔지만 탁구장을 찾을 수 없던 나는 복도를 따라 걷다가 사람들이 떠드는 것같은 소리를 듣고 다음 벽체를 따라 되돌아 서면서 맨 처음 들어 섰던 입구를 찾아 냈지만 그 중간에서 벽에 붙어 있는 세 개의 건물 비상구를 발견 했습니다.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바로 그 안에서 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탁구장의 모서리 부분의 좁은 실내가 보였고 들어서자 그물망으로 쳐진 로봇투척기가 마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 쪽에 레슨을 받은 사람과 강사가 탁구대에 서서 주거니 받거니 탁구를 치는 것이 아니겠어요!
  사실 이렇게 시설을 갖추고 탁구를 가르치는 곳을 처음 본 내 눈에 들어오는 전경은 아주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이곳에 낫선 이방인처럼 찾아든 내 초라한 모습은 아주 주눅이 들어 있는 초자의 모습이었지요.
  낫설은 환경이 눈에 들어 오는데 마치 시장 골목처럼 어수선합니다. 
  사람들은 아는이가 하나도 없었답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에 들어선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바닥에는 칸막이가 쳐진 첫 번째 출구와 두 번째, 세 번째 출구가 있는 곳까지 모두 세 건물을 뜯어내고 연결한 듯 길게 연이어 바닥이 직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중앙의 넓은 홀 안에는 탁구대가 나란히 일곱 대 정도 놓여 있고 사람들이 마주서서 열심히 게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먼 발치에서 들어 왔습니다.

  내가 들어선 곳에는 자동 기계가 있는 탁구대와 그 옆에 강사로 보이는 사람이 학생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를 열심히 지도하는 모습이 보였으므로 전혀 낫선 방문자의 초면의 느낌은 그렇게 시작되었답니다.
  지금은 그나마 15일 정도가 흘렀고 어느 정도 사람들과도 안면을 터고 지낼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실력차이가 납니다. 땀이 비오듯이 얼굴에서 떨어지게 되면 그 순간 내 몸에서 엔돌핀이 솟고 의욕이 다시금 젊은이들처럼 불타오르지요!
  이곳에서는 다시금 인생의 의미를 새로 배워나가는 느낌.
  또한 젊은 시절과 중반으로 훌쩍 달아나고 말아 버린 지금의 인생에 있어서 중간 시절의 애닯은 꿈을 그려내는 신체적인 젊음을 발견했다고 할까요!

  아직도 직업을 놓지 못하고 개인사업에 매여 사는 몸이지만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점점 더 늙어가고 있다는 절망감에서 그나마 뛰어 다니면서 혈기 왕성한 젊음을 되찾은 느낌이어서 그럴까요.  
  앞으로 옥천 탁구 동호회에 자주 찾아가서 젊음을 되찾고 싶습니다. 
  옥천 탁구 동호회 회장, 총무님의 배려 고마웠고요.
  현장에서 땀나는 탁구 얘기 가끔씩 뱉어 내고 싶다는 강한 의욕이 피어 납니다. 그것이 새 봄의 씨앗처럼 내 몸에서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강렬한 흥분과 기쁨만으로 아마도 옥천군 사랑이 더 강렬하게 와 닿습니다.


박 만수가 이곳 옥천으로 이사를 온 것은 2000년도였다. 대도시에서에서 아내의 고향이나 다를 바 없는 이곳 소읍(小邑)으로 이사를 와서 지금까지 1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가 도시에서 유지하던 개인 사업. 즉, ‘기계 제작’을 이어서 계속한 게 무엇보다 안정적인 기틀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반면에 과로, 운동부족, 스트레스, 잦은 출장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급격한 신체적인 변환으로 죽음의 직전에 이르렀다는 망상까지도 갖게 되었고 실제적으로 어지럼증으로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서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은 5년 전,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게 된 뒤부터 건강에 대하여 매우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5년 전에 있었던 그 일이 없었다면 오늘 생활 체육인 동호회 탁구를 치러 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지 않았으리라!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는 건강을 가장 우선으로 삼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무엇보다 급속히 건강을 잃게 된 이후 회복세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믿었다. 건강하던 자신이 갑자기 쓰러지게 된 동기로 인하여 걱정이 들었다. 기계 부품을 구입하러 서울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물건 구매를 하다가, 기계 A/S를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거래처를 향해 운전을 하다가, 아니면 가고 싶은 명산을 찾아서 아내와 함께 등산을 하다가 간질 발작적으로 쓰러져서 한동안 머릿속에서 벌레가 들어가 파먹는 것처럼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구토를 하면서 괴로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가장 큰 절망감은 가끔씩 몸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현상이었다. 현기증과 함께 맥이 풀리듯이 눈앞이 어지럽고 띵한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주변에 땅이 꺼지는 것처럼 내려앉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려운 감정은 어두운 그림자와 혼을 빼앗아 가는 것처럼 어른거리는 일종의 환청까지 보게 되면서 자신의 신체가 건강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었다.  

전체적으로 돔 형태의 체육관 센터 건물 중앙이었지만 내부에 들어가자 긴 복도와 벽체들이 칸칸이 막혀 있었다. 탁구장은 이중으로 된 두 번째 벽을 따라 걷다가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서 출구가 나타나자 그 안쪽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 왔고 내가 문을 열자 사람들이 탁구대에서 분주한 모습으로 각자의 탁구대에서 공을 바라보면서 탁구대를 휘둘러 댄다.
낯선 환경이 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시장 골목처럼 어수선하다.
사람들은 아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에 들어선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바닥에는 칸막이가 쳐진 첫 번째 출구와 두 번째, 세 번째 출구가 있는 곳까지 모두 세 건물을 뜯어내고 연결한 듯 길게 연이어 바닥이 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 탁구대가 여섯 대 놓여 있고 내가 들어선 곳에는 자동 기계가 있는 탁구대와 그 옆에 강사로 보이는 사람이 학생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를 열심히 지도하는 모습이 모인다. 그가 들어선 곳은 마지막의 출구였는데 중앙이 아닌 자동 기계가 있고 강사와 학생이 있는 곳이었다.

모두 세 칸의 건물을 하나로 연결된 내부로 긴 복도를 연상 시킨다. 체육센터 앞에서 1톤 화물차를 세워 놓고 체육센터 내에 탁구대가 설치되어 있는 실내로 들어섰을 때 사람들이 탁구를 치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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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모든 책의 완성.
(1). 글을 쓰고 있는 상태에서 벌써 책으로 출간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이것은 현재 내가 "체육관 탁구(다목적)실에서……. (100)" 을 체 쓰기도 전에 책을 출간을 이미 끝내게 되는 나름대로의 방식. 그렇게 함으로써 엄청난 노력을 소모하기보다 쉽고 간편한 방법을 통하여 출판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리라! 그러므로 글을 쓰면서 탈고가 가능하다는 나의 신념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시기적절한 때에 그냥 글을 쓰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쓰는 방식을 고집하면서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이 믿음이 확실하다면 나는 다목적실에 가서도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게 최선책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도 시간이 남을 경우가 많았다. 바로 짝이 없으면 있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쪼개서 탁구를 치러 갔는데 칠 사람이 없어서 기다리는 동안 글을 쓰는 게 얼마나 가치 있고 또한 이렇게 정리하는 시간동안 나는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중요한 사실은 내가 그나마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과 노력을 동원하여 이 글을 마칠 때쯤 되어 바로 출간을 하는 병행을 하여 모두 마칠 수만 있다면 이런 방법을 동원하여 지금의 내게 가장 유동한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여기서 나는 탁구를 치러 가면서 발생되는 공백기를 글로 다시 옮겨 적을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방법을 통하여 내가 추구하는 목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이라고 자부한다. 탁구를 치는 것이 목적은 아닌 그야말로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 글을 쓰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글을 쓰는 건 동기유발이 중요했다. 어느 때건 글을 쓸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노트북 컴퓨터로 쓰는 게 최선책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쓸데없이 작은 화면으로 아주 느리게 글씨를 치는 습관을 갖기보다 이렇게 큰 넓은 화면으로 자판을 통하여 글을 쓴다는 사실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주 쉽게 글을 쓰는 방법을 통하여 모든 내용을 사전에 구성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아마도 나중에 수정 분을 가지고 탈고를 하는 작업을 생략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이렇게 바뀌게 되면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한편으로는 모든 구상이 사전에 만들어 져야만 할 텐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주변에 소재를 모아서 줄거리를 역어 나가는 게 무엇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듯하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전체 내용을 한 눈에 들여다보아서 모든 구상을 마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글을 수정하는 자세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로 수정하는 것이 아닌 노트북 컴퓨터를 활용하여 아무 곳에서는 앉아서 글을 수정하는 자세. 아마도 이 상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면 결정적으로 주효할 것 같다.



2. 저녁에 이틀째 탁구장을 찾았다.

  이틀째 저녁 7시경에 찾아간 옥천군 체육관 탁구장에서 긴장을 한 체 탁구공 자동 투척기 앞에서 연습을 했다.
  이곳에 오면 탁구대에서 혼자 벽에 대고 칠 때와는 사뭇 다르다. 긴장감, 압박감, 스릴이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 한 분과 탁구를 치는데 실력이 현저히 딸림을 느껴진다. 재미가 없다는 듯 그 분은 다른 일에과 복식을 치고 나는 밤 8시쯤에 되돌아 나왔다. 정확하게 두 시간.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밤11시까지 기계 제작이라는 본업에 연장 작업을 했다. 어제 오늘은 NC 기계의 해드 부분의 금형을 가공하는 중이었다. 제작 일이 도무지 진도가 없다.

  S.H 건설회다의 모래 담는 기구를 며칠 째 만든을 탓이다. 어제는 중간에 흙이 내려가지 않게 칼판(중간 방지대)를 만드는 데 또 보냈었다. 참으로 한심한 건 그 일로 5일을 소요한 것이었고... 그만큼 납품할 기계가 늦어진 게 사실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초보자일 따름이다.
  집에서 명절날 칠 때는 조카들, 아들과 함께 칠 때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독불장군이었다.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2)

탁구 동호회에 탁구를 치게 되면서 보다 현실적인 얘기로 들어가게 되면 무엇보다 여러가지 문제점과 부딪히게 됩니다.
우선 첫 번째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낫선 환경에 접할 때마다 의례히 갖게 되는 불안감입니다. 체육관 다목적실에 처음 찾아 가게 되었을 때 입구에서 두 개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 섰을 때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세 개의 내부 갈림길이 있었지만 첫 번째로 들어 간 뒤에 원형의 건물 내부에서 복도를 따라 걷다가 두 번째의 복도를 만나서 다시 돌아 나오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다용도실의 세 번째 문으로 들어선 이유도 사실은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의 부족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탁구 좀 칩시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초자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 개월에서 수 년간 동호회에 참여한 사람이었고 서로 간에 실력 차이가 고수라는 사실을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는 아들과 경기를 하였을 때 제법 호적수였지만 그것을 우물안 개구리일 뿐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밑바닥이라는 생각이 들고 레슨조차 받지 않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을 탁구 실력일 뿐이었지요.
  세 번째는 탁구 라켓과 탁구공이었습니다.
  내가 갖고간 탁구 라켓은 옥천 중학교 앞의 체육센타에서 파는 일 만원에 두 개를 구입한 것이었고 탁구 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것으로 탁구를 칠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30분 뒤에 한 아주머니와 빈자리에 들어가서 포핸드롱으로 서로 공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어찌된 일이지 내가 치는 공은 레트에 걸리고 번번히 상대쪽 테이블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어이쿠, 미안합니다. ”
  실수를 연발할 때마다 내가 무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고 라켓이 그렇다는 것을 아들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어서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 동년배로 보이는 남자에게 무례하지만 빌려서 칠 수 있었답니다.
  “탁, 탁, 탁!”
  빌린 라켓으로는 이상하게 상대 테이블로 잘 들어 가는 게 아니겠어요.
 
  옥천 탁구 동호회에 참여하게 된 연유는 사실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대전 연구단지 근처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들이 퇴근 후에 회사 구내의 탁구장에서 취미로 탁구를 친다고 하는 데 실력이 부쩍 늘어서 이제는 연속하여 패배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던 것이지요!
  “아빠, 그런데 탁구 라켓이 좋은 건 잘 나가요!”
  “그럴리가... 라켓이 다 똑 같은 거 아니니?”
  “아녀요. 그렇지 않은 게 회사에서 아는 사람이 라켓을 빌려 줘서 갖고 왔는데 그걸로 치는 거예요.”
  하면서 자신이 회사에서 갖고 온 라켓을 주면서 한 번 쳐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 때까지도 내가 아들에게 탁구 경기에서 지는 게 단순하게 라켓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문득 들면서  빌려 친 탁구채를 주인에게 돌려 주면서 첫 날에는 그렇게 체육관에서 재미 없이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1년치 회비로 15만원을 냈고 20만원을 주고 탁구 라켓을 구입하였으며 다시 2만원을 추가로 들여서 탁구공을 구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레슨을 받고 1개월에 10만원을 지불하는 레슨은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지불하는 돈이 최소한의 지출이며 동호회 중에서 탁구가 가장 돈이 들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처음이었고요.

  다목적실에 있는 탁구장을 찾게 된 첫 날의 기억은 3주가 넘어가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가는 시간을 오후 5시 30분으로 바꾸고 6시 30분 정도에 집에 돌아옵니다. 저녁 식사 후에 야간 잔업을 하는 개인사업의 본업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조정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다보니 탁구 기계 앞에서 홀로 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개인기를 우선 완벽하게 익힌 뒤에 게임을 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동호인과.
  “포핸드롱”을 자주 치게 됩니다.
 탁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기술이면서 길게길게 치게 됩니다. 동호인들이 탁구를 처음 배울때 가장 먼저 배우는 기술이지요. 한마디로 두 사람이 길게 서로 주고 받으면서 탁구를 치는 기술입니다. 아마도 탁구에 꽃이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로 자주 접할 수록 개인기가 늘게 됩니다. 몸을 풀거나 감각을 익힐 때, 익숙한 동작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동작을 반복적으로 치게 되는데 이 때 주고 받는 형태가 타구감을 살리게 되면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제가 탁구장에 찾아 갈 때마다 의례히 두 사람이 치는 포핸드롱에 온 힘을 몰아치는 이유는 정식 경기에 앞서 몸을 푸는 과정이기도 하면서 많은 힘이 구사하게 되어 근육이 이완된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만큼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탁구장에 갈 때마다 서로 상대방의 실력을 가름해볼 수 있는 역량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상태방의 컨트롤을 느끼면서 내가 때리는 리시브가 정확하게 상대방의 테이블로 향하는 볼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때 판가름할 수 있는 기본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개인기가 자리를 잡힐 정도는 되었고요.

PS: 1.  혼자서 탁구는 칠 수 없었습니다.
  집에서 탁구대가 있었고 탁구 로봇이 설치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실전에 임하면 경험부족으로 패하곤 했었던 것을 깨닫게 되면서   “포핸드롱”으로 탁구 동호회에서 상대방과 마주보면서 조언을 하는 동호인들의 도움으로 이제는 기본기가 갖춰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2. 라켓을 쥔 손가락들이 몸살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연습으로 인하여 손가락 힘만으로 버티고 있여야 하는 탓에 손을 폈다가 쥐었을 경우 뼈마디가 쑤시는 것이고 그 통증은 고통을 수반하네요.
   라켓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고 그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 꺽인 손목 부위와 손가락의 마디에 심한 관절염은 지속되었으며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탁구를 치기 전부터도 컴퓨터 작업으로 인한 오른 쪽 손에 터널증후군의 전적이 따라 다녔었고 그 통증에 다시 탁구를 치면서 꺽인 각도로 라켓을 잡는 기본 자세의 연이은 행동으로 인하여 증폭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참는 과정에서 계속하여 탁구에 대한 매력에 빠졌는데 그로 인하여 오른 손은 증상이 악화되는 듯 더욱 아파왔습니다.

  3. 이것은 제가 탁구 동호회에 다니면서 탁구에 대한 극복기입니다.
  이제 시작된 탁구가 중독자가 된 것처럼 발걸음을 매일 체육관 탁구장으로 향하게 합니다.
  피나는 노력을 어느 정도 이루게 되면 고수가 될까요!
  저의 탁구 입문기에 대한 글을 다시 올리게 되면 좀 더 재미 있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서스펜스”로 기술하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워 봅니다.

서스펜스-(연극이나 영화에서 줄거리나 기교의 발전이 독자나 관중에게 불안과 긴장을 주어 관객들의 흥미를 북돋워주는데 이 기법을 서스펜스 기법이라고 한다. 추리소설의 한 분야로 보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스펜스 [suspense] (드라마사전, 2010., 문예림))


3. 탁구장에서 3일째...

어제는 3일 째 였다.
회원 가입을 하고 15만원으로 1년치 회비를 냈고...

 나는 탁구장에서 외톨이였습니다. 또한 탁구를 썩 잘 치는 게 아니어서 다른 사람과 마주보면서 1:1로 치게 되는 경우 자꾸만 볼이 어긋나곤 했었다. 그러다보니 반대쪽의 사람이 나를 시시하게 생각하고 그만두게 되므로 따돌림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어제는 젊은 청년에게 탁구대를 잡는 방법을 배우고 손을 올리는 정석의 동작을 지도 받으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달라지게 되었다. 항상 일정하지 않고 잘 쳤다가 못쳤다가를 반복하기에 느낌을 찾지 못했던 자세가 고정을 받으면서 매우 좋아 졌던 것이다.

 손가락으로 탁구대를 잡는 방법을 배운 뒤에 무척 달라진 느낌. 그동안 우물안 개구리처럼 인위적인 탁구를 해 왔던 내게 자세를 교정 받는다는 건 무척 다행스러운 점이다.
 물만난 물고기처럼 일장월취(日將月就? 나날이 다달이 자라거나 발전함) 하게 되었으니...

1. 신체가 건강해지니, 정신이 맑아진다.

2. 어제 탁구장에서 돌아오려고 하다가 칠 사람을 만났다. 그걸 계기로 2시간 가량을 단식으로 연습을 하다가 두 사람씩 복식 게임을 하게 된다. 나는 게임을 할 단계가 아닌 듯했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중급 이상이 되었지만 나로서는 왼 쪽으로 볼 컨트롤이 잘 되지 않았고 오른 쪽으로 때리는 단계에 강약 조절이 잘 되지 않다보니 뒤죽박죽, 들쑥날쑥으로 볼이 컨트롤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조만간 이들과 대등한 단계에 이르리라고 본다.
  이곳 탁구장에서 초보자처럼 누눅이 들어 있다는 점이 너무도 이상한 느낌이 든다. 잔뜩 긴장을 하여 경색된 탓일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견해차이를 갖게 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익숙해지만 나아지리라!
  낫선이들과 탁구를 치는 것처럼 어려운 게 있을까?
  상대의 실력을 알지 못하므로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지 못한다. 특히 남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초보자이면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불쑥 찾아들어서 탁구를 치겠다고 하는 걸 이해하려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뒷 전에 밀려 있었다. 머리가 까진 대머리였고 노인네 같은 모습으로 불편하게 서 있는 내 자신이 그토록 초라해 보이다니...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3)
탁구를 치는 모습을 자세하게 관찰해 보다보면,
“어떻게 인간이 신의 능력을 훔칠 수 가 있단 말인가!” 할 정도 놀라게 됩니다.
탁구공 하나에 실려 있는 아름다운 인간과 신의 몸동작이 돌연 제트기처럼 변화 무쌍하고 놀랍도록 날카롭게 내려 꽃힙니다. 유연하면서도 비수처럼 날까롭게 상대의 진영을 농락하기 위해 권모술수와 기교가 난무합니다. 지금까지 갈고 닦은 온갖 재주가 그야말로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사방에 튀어 나가는 것처럼 튕겨져 나갑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몸부림쳐서 신과 한 몸이 되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를 보는 듯싶었습니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찰나의 모양을 표현해 내려고 그만큼 수없이 많은 연습과 노력을 기울였단 말입니까? 공 하나에 실려 있는 감동의 여운. 그 곳에 상대방에서 라켓으로 쳐 올린 온갖 노력과 땀방울들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네트를 간만의 차이로 넘어서 상대방의 진영(테이블)으로 맹렬하게 돌진합니다. 네트를 넘어가면서 회전을 하게 되는데 이 회전으로 테이블과 네트를 넘기는 기막힌 기술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라켓을 가지고 공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치는 드라이버가 한 순간 멋지게 장렬합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전광석화처럼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하지요!
멋진 타격으로 공은 회전을 하면서 다시 상대방의 진영으로 골인합니다. 이 강력한 드라이버가 승패를 가름합니다. 그 포물선의 끝에 도달할 즈음 다시 온갖 기교와 힘을 실린 그야말로 멋진 드라이브 공격이라는 찬사가 주변에서 쏟아집니다.
“나이스!”
“멋진 드라이브네요!”
상대는 탁구공이 순간 전광석화와 같이 테이블에 맞고 달아나고 말았고 그것을 줍기 위해 쫒아 가면서 자신의 방어 체계가 무너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강력한 공격에 그야말로 전의를 상실할 정도로 위축이 들지요. 이때부터 게임은 선점을 빼앗은 자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패자가 전의를 마지막까지 불사르게 되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듀스(deuce)까지 몰고 가는 것이고…….
“듀스!”
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지금까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환희가 낙담으로 변합니다. 반면 B는 기적처럼 재활한 자신이 최고로 사기가 충전합니다. 이 모든 상황은 어쨌든 똑같은 탁구 선수가 부딪히는 희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엇갈릴 수 있는 건 그 날의 운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투지였습니다.

A 씨는 한 게임을 이겼고 B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3라운드에서 듀스가 되었지만 승리의 여신은 결국 A씨에게 승리를 안겨 주웠고 그는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탁구 경기를 올림픽에서 가끔씩 목격을 하는 상황이지요?
자, 그렇다면 좀 더 자세하게 그 내막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피 말리는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이번에도 반대편에서 A 씨의 멋진 서비스 공격이 이어집니다. 왼 손으로 공중에 띄운 뒤에 오른 손으로 라켓을 비틀면서 순식간에 비스듬히 내려 쳤고,
“탁!” 소리와 함께 공에 강력한 회전이 걸리면서 상태 쪽 테이블을 맞고 왼 쪽으로 휘었습니다. 이것을 B 씨는 푸시로 밀어 넣지 않고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렇지만 공이 네트에 걸렸네요. 좀 아깝지만 그는 이번에 자신이 서비스를 칠 차례였으므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탁!”
소리와 함께 강력한 왼 쪽으로 휘어지는 서비스를 보낸다는 게 네트에 걸리고 맙니다.

이 부분에서 서비스 공격은 간단하게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드는 최고의 무기가 됩니다. 방어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서비스 공격보다 오히려 상대방의 눈속임을 그대로 믿고 말았고 회전이 걸린 볼을 받아 치게 되는 실수를 하게 되었던 것이 패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탁구는 서비스 공격에서 자신의 필살기를 넣는 기술을 구사하는데 여기에 속고 속이는 눈속임의 변칙이 존재합니다.
길고 강하냐?
그렇지 않고 회전이냐? 이런 강약 조절 외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구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탁구에 있어서 경이로운 점은 이 서비스에 회전을 거는 기술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대방이 회전이 걸린 공을 치지 못하게 하는데 약간의 눈속임을 갖도록 라켓을 쥔 손을 비틀기도 하고 똑바로 들기도 하여 그것이 물속에서 고기들이 흰 비늘이 있는 옆면을 번들거리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 이번에는 ‘얼마나 신과 가까이 갈 수 있는가!’ 하는 앞서 말한 내용 중을 부언(浮言)설명하자면,
‘나도 열심히 노력을 하면 저 정도에 언젠가는 이르게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노력은 하지 않고서 결과만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구사하는 탁구 실력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없는데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천재적인 재능도 필요할 것입니다. 나이 57세인 내가 탁구를 뒤 늦게 시작해서 고수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밤 10시까지 잔업을 하며 일을 하고 일요일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바쁜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건강에 이상 신호가 발생하자 탁구를 치면서 건강을 지키자는 알량한 생각을 갖고 도전을 한 것에 불과한 만큼 집중력과 시간적인 제약을 그 무엇보다 절감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탁구 실력은 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대전에서 수백 명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에서 정시 근무를 하는 아들이 나보다 더 실력이 늘게 될 것을 확신하는 편이지요!

탁구를 치면서 온몸이 흠씬 땀으로 젖을 때 그야말로 세상의 번뇌와 시름을 잊게 될 정도로 심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반팔 차림에 얇은 한 겹의 바지를 입고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땀이 얼굴을 흘러 내려서 안경까지 묻게 되고 온통 땀으로 범벅을 할 정도여서 집에서 내복과 두꺼운 겉옷조차 벗어 버리고 갈 정도입니다.
체육관 다용도실에 위치한 실내 탁구장에서 가끔씩 경기를 하게 됩니다.
실력을 겨루는 1대 1의 대결에서는 내 실력은 상대와의 경기에서 무참하게 패배를 당하여 왔습니다. 그 패배 원인은 기술의 부족이었고 기본기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 때마다 낙담과 패배의 쓰라린 아픔이 사무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탁구장에서 나는 외톨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잡해 질 정도로 변합니다.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 이곳에서는 탁구 실력으로 인간을 판가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 이곳에서는 탁구실력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구나!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이 최고가 되는 곳. 과거의 경력 위치, 업적, 현재의 지위, 계급 직급, 직업 나이 등이 아무 소용이 없고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하겠어.’

그러므로 실력이 없으면 업신여기고 괄시를 받게 되며 놀림감일 뿐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편애가 물씬 일어났습니다. 이때 머릿속에 와 닿는 생각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탁구에만 전념하여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얼마나 더 잘해야만 잘 치는 축에 끼이게 될까요?’
그런 비교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결과일 것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의 경우 자존심이 상하고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위축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M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서는 신을 바꿔 신고 와야만 합니다.”
“아, 그렇군요! 전 실내화를 바꿔 신는지도 몰랐습니다. 내일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다음 날부터 유치원에서 쓰던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탁구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신발을 바꿔 신게 되었지요.

첫 날에는 집에서 부터 운동화로 갈아 신고 왔지만 며칠 뒤부터는 신발을 갖고 와서 바꿔 신고 탁구장에 들어 왔습니다. 자세히 바라보니 이곳 입구부터 모두들 신발을 갈아 신고 있었던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무례한 사람을 항상 바라보면서 그가 한마디 한 말을 고깝게 듣고 계속하여 그를 볼 때마다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꽂힙니다. 그리고 내가 적어도 이곳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며 자숙하지 않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입지조건에 대하여 그야말로 초보자처럼 행동해야만 한 것 같았습니다.

탁구 실력만으로 사람이 평가 된다는 사실. 이것은 정말로 너무도 넘기 힘든 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적어도 늘지 않고 점점 더 벽이 커지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아들에게도 앞으로 이기기 힘들게 될 텐데 그것은 엄연히 실력 차가 벌어져서 일 것입니다. 이런 실추된 명예에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여야 되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업적 등은 여기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실력이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최선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직업의 특성상 야간작업도 매일 하여야 하는 형편이었고 이곳 탁구장에 1시간 내외로 와서 잠시 치고 가는 경우 언제 잘 치는 사람(고수)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도 저기서도 쫒게 다니게 됩니다.
어제 알고 있던 기술, 배웠던 <푸시> 조차 실전에서는 먹히지를 않았습니다. 어제 연습실에서 점심 식사 후에 혼자서 기계 앞에서 치던 중에 자신감에 충만했던 상태가 저녁에 이곳에 오게 되면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맙니다. 너무도 나약하고 손과 발이 떨려서 잘 되지를 않는 데 그건 아무래도 실력 차이가 너무도 커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경우의 인간 심정과도 같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 정도 이었으니까요!
어떻게 인간이 이렇듯이 극과 극의 실력차이를 보일까요.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 같아 보입니다.

여기서도 쫒기고 저쪽에서도 쫓겨서 아무도 같이 칠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으면서 함께 치자는 말도 하지 못하고요.
이것은 참으로 난감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런 체면을 구기려고 이곳에 오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잘 치지는 못하지만 운동을 하려고 왔다는 믿음만큼은 확실하니까요.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좋다.’ 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만 있다면 이처럼 비참한 심정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부담만 일어나게 되지요. 그런 체면을 차리려면 애초부터 나오지 않아야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로는 자격지심이 들고 주눅이 들어서 애긋은 내 자신에게 꾸짖습니다.
쉽게 늘지 않는 실력차이 때문에 가뜩이나 불편한 심기가 그만 좋지 않았습니다. 탁구를 치고 싶지 않아서 짝을 만자서 칠 수 없는 외톨이 신세가 한 동안 지속되자 제 풀에 꺾여서 가방을 챙기고 잠바를 걸치고 되돌아 나옵니다.
“수고 하세요!”

이 때 문에서 50대라고 자기를 소개하던 D 씨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그에게 말합니다.
“함께 칠까요?”
“왜, 벌써 가시게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예, 아무도 칠 사람이 없어서…….”
“그러지 말고 이리 오세요!”
그렇게 해서 그와 함께 짝을 이루어 단식 복식을 쳤습니다만 여지없이 참패를 당하였는데 그 원인은 내게 있었습니다. 커트 볼을 처리하지 못하는 미숙함. 한 마디로 <푸시>라는 기본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결과였습니다. 내용을 알고 있지만 몸동작으로 컨트롤이 되지 않았습니다.

D라는 사람은 경기에 지고 나자 친절하게 <푸시>라는 기본자세를 알려 줍니다.
“탁구 볼이 회전이 걸려서 넘어 오면 라켓을 비스듬하게 잡고 중심 아래쪽을 지긋이 밀어 주면 됩니다.”
그런데 어찌 그것이 한 번에 고쳐질 것인가!
그의 지도를 받으면서 나는 <푸시> 동작을 계속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배워 지지를 않았지요.
아마도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의 길은 더 길고 멀게 느껴지는 진정한 이유도 그것 때문일 터…….

노력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처럼 (신의 수준) 높은 기술을 구사할 능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는 보장을 받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나도 열심히 노력을 하면 저 정도에 언젠가는 이르게 되겠지! 아마도 10년은 걸릴까?’ 하며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4. 어제는 탁구장에 4일째 갔다.


  매일 다른 느낌이 든다.

  아직까지 내게 맞는 상대는 여자들이다. 어제는 두 분의 아주머니와 똑딱이처럼 탁구를 쳤는데...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4)

어제 저녁에도 오후 7시쯤에 다목적실의 탁구장에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출입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면서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안에서 먼저 온 사람들이 입구에서 등장한 사람을 향해,
  “안녕하세요!”
  그렇게 화답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대략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지만 내가 가서 칠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선 출구에서 반대쪽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두 개의 탁구대중 왼 쪽 편에는 레슨 강사가 G 라는 사람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고 오른 쪽의 탁구대에 설치된 자동 로봇기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 칸에는 일렬로 동서를 향해 탁구대가 6대 정도 두 개씩 중앙에 네트를 꽂아 놓은 채 마주하면 위치하였으며 그곳에 8명이 탁구를 쳤습니다. 두 번째 나인에는 모두 4사람이 복식을 쳤고 네 번째 칸에는 두 사람이 단식을 그리고 끝 칸에는 다시 두 사람이 단식으로 치고 있었으므로 나는 한동안 탁구 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로봇 기계에서 두 세 차례 형식적으로 혼자 탁구를 쳤습니다.

  하지만 기계로 치는 것은 사람을 마주보고 치는 것보다 재미가 반감됩니다.
  또한 집에서도 애니퐁이라는 자동투척기계가 있었으므로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탓에 흥미가 없었으므로 한 동안 혼자서 1시간 동안을 무료하게 보내야만 했습니다.

  옆에서 레슨을 받는 사람에게 볼을 주는 강사의 억양이 들려오는 데 듣기가 거북할 정도로 사나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연습 상대가 없다보니 집에 돌아갈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는 내게 하는 소리처럼 들려 왔습니다.
  “자세가 똑 바르지 않으니까 비틀게 쳐지잖아! 아무리 얘기를 해도 소용이 없네……. 그럼, 아무리 해도 안 되잖아! 우리가 배울 때는 이 정도로 통하지 않으면 매를 맞았는데……. 어허, 또 그런다.”
  하지만 그 소리는 더욱 높아졌고 마침내 강사가 볼멘소리를 내질렀습니다.
  “우 씨……. 또, 그러네! 정말 참는 것도 한계가 있고……. 잘 좀 해 보세요!”
  G 라는 학생은 나이가 30대가 넘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매우 잘 치는 상위 구릅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40대쯤 먹어 보이는 강사가 함부로 대하면서 강습을 하는 것을 보면 무섭긴 무서운가, 봅니다.
  한 달에 10만원의 강습비를 지불하면서도 꼼짝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탁구를 배우려면 힘든 과정을 함께 극복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제는 G 라는 사람 외에 강습생이 없었지만 다른 날에는 여러 명이 뒤를 이어서 강습을 받곤 했었는데 그 때는 다음 사람이 탁구 볼을 줍는 역할을 담당할 정도로 성의를 보이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도를 닦기 위해서는 먼 길을 돌아갈 필요가 있는 모양입니다.

  오후 8시부터는 몇 사람이 입장(등장)을 하였고 그들과 함께 10시 30분까지 <포핸드롱>으로 서로 볼을 주고받으면서 타구감을 살리면서 강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 날에는 하루 쉬었는데 대구로 출장을 나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루 쉬었다고 볼 컨트롤이 처음에는 듣지를 않고 탁구대를 벗어나던가. 레트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땀이 흐르면서 볼의 강도를 세게 치게 되었고…….

5. 애니퐁 탁구 기계를 중고로 구입했다.

애니퐁 탁구 로봇을 20만원을 주고 구입하고 연습구를 다시 구입하게 되었다.
탁구를 생활체육관에서 1년치 15만원을 주고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는데 그 밖에 부수적으로 필요한 도구로 라켓, 탁구공이 필요하였다. 탁구 라켓을 일반 체육용품 구매점에서 9,000원 짜리로 치려고 하니 잘 나가지도 않고 챙피하여 그만 20만원짜리를 구하고 싶다고 총무에게 구두로 의사를 밝혔었다. 그러다 모니 생활체육도 돈이 선찮게 들어 간다.

하나씩 열거해 보자면, 원비가 하루에 500원씩이고 1년치를 15만원 내었는데 두 달은 공짜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탁구배트와 선수용 탁구공이 필요해서 총무(여자) 사람에게 물어 보았더니, 자신에게 구입하는데 탁구 배트는 20만원에 1만원을 공을 구입하는데 5개란다. 그래서 가끔씩 와서 쳐주는 성의를 생각해서 그렇게 하자고 대답을 하였는데 괜히 아깝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물론 이곳에서 관시를 받는 건 비단 실력만이 아니었다. 탁구배트와 공 때문인데 별이 하나 그려있는 탁구공은 연습볼이고 세 개 정도가 그려져 있는 공이 선수용이라고해서 내가 갖고간 싸수려 공은 취급도 하지 않으려 든다.
  그러다보니 함께 치려고 하면 공을 배트와 공을 갖고 다니게 되는데 그 비용도 상단하여 한편으로는 괜히 왔다 싶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런 것은 처음 구입한 뒤에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으므로 별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또한 옆 집의 S.S의 경우 배트민턴을 생활체육으로 치러 다녔었는데 오히려 탁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유지비가 든다. 배트와 배트민턴 공의 가격이 그만큼 비쌌던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내가 구입하는 비용들은 얼마되지 않는 다고 보면 한편으로는 안심이 들었다. 배트민턴을 배우지 않고 탁구를 치는 게 유지 비용이 덜 든다는 계산이다.

 탁구 배트(라켓)      200,000     
 탁구볼 (구)6개        10,00
 연습용 탁구볼 100개    43,500 (택배비 3,000원 포함) 
  애니퐁 탁구 로봇      200,000 (중고로 구입 새것은 450,000)   
     합계 금액        453.500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5)

월요일에는 탁구장이 칠 자리가 없이 분빕니다. 그렇지만 진눈깨비가 내리고 칼바람이 부는 밖의 날씨. 온통 눈발이 차창 밖으로 파고들듯이 바람결에 휘날리다가 윈도우부러시에 걸려서 뭉쳐듭니다.
‘이런 날씨에 사람들이 나왔을까?’
집에서 나오기 전에 입고 있던 작업복과 내복을 벗고 운동복 차림으로 갈아 있었지요. 위 옷은 검은색 반팔 T 셔쓰, 아래는 얇은 여름 바지입니다. 그렇게 입고 가는 이유는 탁구를 치다보면 땀이 비 오듯 솟아서 내복이 축축이 젖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내복까지 입고 갔었는데 온통 땀으로 젖었고 뛰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더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는 내복을 벗고 위에 입고 있던 메리야스 옷까지도 벗고 갑니다.

개인 사업을 하는 나는 1톤 화물차가 애마였습니다.
체육관 옆의 주차장에는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내가 세워 놓을 자리는 마침 다른 차량이 주차해 놓았던 모양으로 눈이 앉지 않아서 그곳에 세웁니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들고 다니는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내렸습니다. 그곳에는 탁구라켓과 운동화 한 켤레 탁구공이 있었지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람이 세차게 불어 왔습니다.

주차장에서 체육관의 유리문까지 뛰어서 다가간 뒤에, 두 개의 유리문을 차례대로 밀치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3개의 복도. 중앙의 복도 쪽으로 향한 뒤에 바로 다용도실의 출입문을 열었습니다.
  입구 쪽에 레슨용의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은 무료 레슨이 있는 날 같습니다. 그래서 입구 쪽이 복잡하고 산만합니다. 또한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됩니다.
 
레슨은 무료와 유료가 있는 것 같은데 모두 강사가 달랐습니다. 유료는 주말에는 빼먹고 매일 하였지만 무료 레슨은 한 달에 한 두 차례 출구 쪽에 탁구대를 놓고 그물망을 설치하였으며 사람들이 무료를 선호하는 탓에 의외로 그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복잡하였습니다. 특히 여성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들어섭니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서 인 듯 안에 몇 사람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60대에 가까워 보이는 C 라는 사람과 탁구를 치자고 할 수 있었지요!
  두툼한 겨울 잠바를 벗어서 옷걸이에 끼워 옷장식대에 걸쳐 놓은 뒤에 탁구 라켓을 꺼내고 공을 하나 갖고 나와 두 번째 탁구대에 섰습니다.
  처음에는 몸이 풀리지 않아서 손이 시리고 몸이 무거웠지만 이내 땀이 흐릅니다.
  탁구를 치게 되면 상대방과 볼을 주거니 받거니 라켓을 놀립니다. 그것이 슬로우모션으로 천천히 상대 코트로 날아가지만 점차 진도가 빨라지고 힘이 실리게 되면서 열기가 뜨거워지는 것이지요.
  한 겨울에도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자체가 이상하게 내면에 잠긴 에너지를 끌어 모으게 하고 온갖 육체적인 기교를 동원하면서 흥분을 유발합니다. 이것은 땀을 배출하면서 내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치 전기스토브 위에서 불에 튀겨지는 것처럼 발갛게 일는 느낌.
  얼마만의 갖고 싶었던 내면의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신선한 젊음의 환희이던가요?
 
  2000년 4월 점심식사 후에 쓰러져서 누웠는데, 그 당시 나는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과중한 일의 무게 로 밤낮없이 일을 했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머리가 망치로 맞은 것처럼,
  ‘띵!’ 하더니 그만 모든 사물이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리고 쓰러져서 마구 토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가라앉지를 않아서 옥천 성모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기 됩니다.
  병명은 없었습니다. 안정을 취한 체 4시간가량을 누워 있다가 퇴근하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일이 가을에도 반복되었고 급기야,  충남대학병원에서 종합 진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증상은 나오지 않았으며 고혈압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을 뿐이었지요!
  그 뒤, 운동부족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매일 저녁에 걷기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 닫았지만 시간이 없이 사는 개인사업 때문에 자주 출장을 나가게 되어서 빠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땀을 흘려야 운동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리 걷기 운동을 해도 땀을 흘리는 건 안 됩니다.

  땀을 흠뻑 흘릴 수 있는 운동이 절실한 이유를 비로소 탁구를 치면서 알게 되었지요.


5. 고장난 탁구로봇

 애니퐁이라는 탁구로봇기계를 20만원을 주고 중고로 구입했었다.

  토요일 택배로 배달이 되어 왔었지만 100여개의 연습볼이 없어서 작동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설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매결정'을 하고 말았다.
  하루가 지난 다음날.
  일요일인 어제 기계 설치를 하고 내가 갖고 있는 스무 개 정도의 탁구볼을 넣어서 연습을 하려고 했더니
  “탁, 탁, 탁!”
  소리만 나올뿐 탁구공이 아니지도 않았다.

  J 라는 건물 지하실에서 설치되어 있는 탁구대.
  혼자서는 탁구를 칠 수도 없는 상태.
  그러다보니 체육관에서 생활체육으로 탁구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탁구로봇으로 연습을 해 왔던 것을 생각하고는 집에서도 그렇게 하려던 계획인데...
  그만 기계가 고장이 난 것이다.
  보내온 기계를 작동을 시켰는데 계속 탁탁하는 소리만 날 뿐 탁구공이 배출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을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옆 면의 뚜껑을 열고 앞 쪽의 출구에서 안 쪽을 들여사 보면서 손가락으로 아래 위헤 두 개의 모타에 부착되어 있는 고무 밴드가 부착된 로우러가 윙윙하고 돌아가는 상태를 자세히 확인한다.
  위 쪽 것은 회전하고 있는 것에 반해 아래 쪽은 뒤에서 튀어 나온 프라스틱 가이드에 부딪혀서 회전히 멈춰진 상태가 아닌가! 

  이렇게 회전이 먼춰진 이유가 멀까?
  그런데 외부의 케이스와 내부에는 기둥에 고정되어 있는 프라스틱 벽체가 부러진 것 같았다. 양 쪽에 기둥으로 세워진 평평한 프라스틱 벽체에 아래 위에 각각 하나씩 모타가 있었고 그곳에 로라가 박혀 있었다. 로우러 중앙에는 고무로 된 밴드가 끼워져서 그회전을 이용하여 탁구공이 튀어 나가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그런데 벽체가 부러졌고 미끄럼틀 처럼 위에서 내려오는 가이드까지도 부러져서 밀려서 내려와 아래에 있는 로우러 뒤에서 끼어 있었으므로 로우러가 회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단 분해를 해 보기로 마음 먹고 위에서 공을 넣어서 받혀두는 4개의 날개를 풀었다. 그리고 그 안에 빵모자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같은 핼기처럼 회전을 하여 공을 구멍으로 밀어 넣는 회전판을 두 번째로 뜯어 내었다. 이것이 전기보드의 1번핀에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전기 코드를 먼저 빼낸 뒤에 3개의 체결 볼트를 빼내고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안에 기둥이 부러져 있는 볼을 밀어내는 앞서 설명했던 볼을 로우러로 밀어내는 본체가 들여가 보였다.
  이 본체는 아래에서 볼트를 풀어야만 위로 들어 올리게 되어 있었으므로 우선 그 위에 다시 공을 하나씩 아래로 떨어트려주는 고정 장치가 걸렸다. 이것은 핀을 밀어내서 볼을 멈춰 있게 하였다가 혀바닥처럼 쏙 들어가면서 탁구공이 하나씩 아래로 내려하도록 하는 장치였다.
   앞서 공은 나오지 않고
 이것도 전선이 나와 있었고 2번 핀에 끼워져 있었으므로 매직으로 전선에 점을 두 개 긋고 빼냈다.이렇게 하는 건 표시를 하여 나중에 조립을 할 때 역순으로 끼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속에 박혀 있던 본체였다. 이곳은 전기가 위에 아래 두 나와 있었고 콘센트가 두 개였다. 최종적으로 이 콘센트를 뽑게 되므로 아래 것은 3번 위에 것은 4번이라고 전선에 네 개의 금을 매직으로 그어 표시를 해 놓았다. 다음에는 아래 쪽에서 기둥으로 구실하는 평평한 벽체가 직각으로 구부러져 있는 아래에 박힌 볼트를 풀렀다.

  자, 이제는 위로 들어 올릴 차례였다.

  밖으로 들어 내고 보니 고장난 상태가 눈에 들어 왔다. 내부에 골조들이 프라스틱판으로 되었지만 접합이 떨어져서 두 개 정도가 넘어져서 모타를 가로 막고 있다보니 작동될리 만무한 상태다.

   그래서 <록타트>라는 강력본드로 접합을 시켰고...

   안 떨어진 곳까지 강력 본드로 발라 줬다. 프라스틱으로 된 벽체가 ㄱ자로 구부러져 있던가 ㅁ자로 붙여져 있었지만 그 접하부분이 떨어졌던 것이다.

 어쨌튼 오늘 전화를 했다.
60대쯤 되었을까? 매마르고 힘이 없어 보이는 노인네 목소리다.
  내가 왜, 이런 것을 보냈냐고했더니 고장난 걸 왜 보냈겠냐고 딱 잡아 땐다.
그럼, 연습공이라도 주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건 순순히 허락한다.
결론 :  1. 내가 옥션의 중고장터에서 애니퐁로봇기계를 구입하였지만 그것이 고장난 것이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적어도 <구매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고장난 물품을 보낸 판매자에게 따지려고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이 기계는 고장나게 되어 있을 정도로 결합부분에 본드칠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이 기계의 하자 부분은 모두 만든 회사에게 있었다. 판매자는 오히려 이렇게 약한 기계가 고장이 나지 않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택배회사에서 집어 던져서 파손하였다는 결론 밖에 내릴 수 없는 상태지 않은가!

 2. 나는 고장난 기계를 모두 고쳤다고 얘기를 하고 대신 연습볼을 갖고 있으면 보내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했더니 그럼, 자신이 갖고 있던 연습볼을 후불로 처리해서 택배로 보내겠다는 말로 대신해 줬다. 그것도 내가 그렇게 요구했기 때문에 혼쾌히 대답했던 것이다.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6)

동장군의 위력이 맹위를 떨치려는 듯 며칠 째 영하의 날씨가 살을 파고듭니다. 야간에 체육관 다목적실을 찾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무척 설레는 점이라면,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탁구를 칠까?’였습니다.

탁구에는 라켓에 따라서 펜홀더와 쉐이크라는 방식으로 구분합니다. 물론 라켓이 다르며 치는 방식도 틀립니다. 펜홀더는 초보자들이 많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나도 처음 배울때부터 이 라켓을 사용했으므로 지금도 그렇게 고집합니다. 하지만 탁구에 조금 아는 사람들은 쉐이크 방식으로 입문하는 것같습니다. 쉐이크 라켓은 양 쪽 면을 사용하지만 펜홀더는 앞 면만 사용하며 손잡이 부분에 네모진 콜크 나무의 부드러운 부분이 튀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동호회원 들은 쉐이크로 많이 치는 것같습니다. 우선 양면을 이용하고 손목 부분에 꺽이지 않고 밥주걱을 잡듯이 잡고 무언가를 때릴 때처럼 휘둘릅니다. 하지만 펜홀더는 손가락 힘만을 이용하며 손목을 꺽어서 라켓을 때리다보니 손가락부분에 무리가 가지요.
  가끔씩 세이크를 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왜, 펜홀더를 쳤을까? 하는 후회감이 밀려옵니다. 그 이유는 손을 유연성이 무엇보다 더 자연스러워서 일 것입니다. 반면 펜홀더는 드라이브 샷만을 중점적으로 치기 위한 방식 같아서 다양성이 부족한 듯 합니다. 그러므로 탁구를 처음 치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세이크 방식으로 치시라도 권고하고 싶습니다.  

다른 때처럼 체육관 다목적실의 문을 열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단 두 사람이 나와 있었습니다. 60대쯤 보이는 ‘박 철수’(가명) 남자와 40대의 ‘이 혜자’(가명) 여성분이 안 쪽의 탁구대 1번 라인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치고 있었지요. 두 사람 모두 쉐이크 라켓으로 칩니다. 이곳 탁구 동호회에서는 탁구를 잘 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뉩니다. 잘 치는 사람을 상위 구룹, 중간을 중위 그룹, 그리고 초보자와 이제 입문하는 사람들을 하위 구룹으로 나누서 바라 보게 됩니다.
  박 철수 씨는 상위 구룹이었고 이 혜자 씨는 이제 막 하위 구룹을 벗어난 중위 구룹, 그리고 나는 중간 정도의 중위 구룹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위 구룹이라고 해도 이곳 옥천의 탁구 동호회 사람들과 대전의 동호회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폭넓은 저변 인구가 많아서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스타들(잘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의 경기력은 하늘과 땅만큼의 사이가 벌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같습니다.
  앞으로 탁구 동호회원들이 많아져서 옥천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일류 선수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보는 이유도 아마 탁구 하면 옥천이라는 인식이 새겨졌으면 좋을 텐데 하여서겠지요.

  두 사람은 이곳에서 명 번 보아왔고 복식 게임을 했었으므로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짝이 안 맞아서 기계와 쳐야겠네요!” 농담처럼 말했더니 이 혜자 씨가 양보를 합니다.
“저는 5시에 왔으므로 많이 쳐서 좀 쉴테니.. 이리 와서 이 분과 함께 치세요!”
  저녁을 먹고 왔으므로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30분이었으므로 1시간 30분은 쳤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탁구를 쳤습니다.
   “시합을 합시다!”
  상위 구룹에 속하는 박 철수씨는 나와 똑딱이 처럼 주거니 받거니 치는 것에 이내 싫증을 느꼈는지 경기를 하자고 졸랐습니다. 그렇지만 질 것이 뻔했으므로 나는 약간 망설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 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일단을 시합을 하였습니다.
  “이제 한 달 밖에 안 되었습니다. 잘 못치는데... 이해하세요!”
  사실 타구를 치는 중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는 건 무척 힘듭니다. 그런데도 내게 자리를 양보한 이 혜자 씨, 나와 시합하겠다는 중년의 남자인 이 철수씨.
  나는 두 번의 경기를 했고 모두 졌는데 스코어 차이가 너무 났습니다.
  10 : 0.
  10 : 5.
  무참하게 진 이유는 상대가 너무 잘 친 것도 있었지만 내가 회전으로 걸리는 서비스볼을 받지 못해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내는 이제 막 배워서 활동하기 시작한 회전을 걸어서 보내는 서비스볼을 그가 잘 받아 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펜홀더로 쳤고 그가 쉐이크로 방식으로 쳤다는 게 패배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받아쳐오는 볼이 회전이 걸려서 넘어 왔습니다. 그것을 받기 위해 나는 강한 드라이브로 쳐 올리려고 했지만 번번히 네트에 맞았고 상대쪽 테이블을 넘어가는 게 고작이었지요.
  그는 아마도 나와 탁구를 치는 게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 때, 마침 출입문 쪽에서 한 사람이 입장을 합니다. 그가 강 똘이(가명)였습니다. 나는 그를 처음 보았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상위 구룹에 속할 정도의 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라켓은 나와 같은 방식의 펜홀더로 쳤고요.
  “이리 와서 치세요!”
   내가 철수라는 사람과 치다가 그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내 자리를 양보하고 나는 앞서 쉬고 있던 혜자 씨와 포핸드롱으로 둘이서 똑딱이처럼 연습볼을 치게 됩니다.
  우리들은 출입구 쪽에서 가장 먼 1번 테이블을 두 사람에게 양보를 하고 2번 테이블에서 쳤습니다. 처음온 사람들은 탁구대가 나란히 다섯개가 놓여 있는 이곳에서 가장 먼 곳에서 치게 됩니다. 다음 사람이 들어와서 다른 칸의 탁구대를 치도록 양보하려는 배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건 자연스러우며 어쨌튼 지금은 2번 테이블에서 혜자 씨라는 아주머니와 치게 되었지요.
  이 혜자 씨는 40대 중반 같았는데 허리가 무척 늘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반적으로 몸이 말랐고 얼굴 표정도 매우 매말랐으며 웃을 때마다 주름이 많이지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그녀가 운동을 많이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며 나처럼 몸 생각을 하여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게합니다.

  네 번째 사람인 똘이라는 사람은 32세의 남자였고 키가 165정도는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달이 다 되었지만 이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초면이었지요.  하지만 탁구를 무척 잘 쳐서 연신 철수 씨를 이기는 것이었지요. 내가 졌던 사람을 나와 같은 방식의 펜홀더 라켓으로...
  하지만 똘이와 내가 나중에 두 시간이나 함께 치게 되었고 그를 30번 정도 경기를 하는 중에 두 번 정도를 이겼습니다. 물론 봐 주면서 했을 테지만...
  이것은 탁구가 상대성이 있다는 뜻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자기와 맞는 사람과 경기를 하게되면 비슷한 스코어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매우 저조한 경기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쨌튼 지금은 이런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중간 구룹에 속하는 내가 상위 구룹이라는 두 사람과 경기를 했고 그들과 상대하여 한 쪽은 터무니 없이 깨졌다는 점과 다른 한 사람과는 두 시간을 치면서 내 기술을 끌어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이 혜자 씨와 내가 경기가 아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테이블로 공을 넘기면서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을 했습니다. 그녀는 8월 달부터 쳤고 나는 불과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녀는 레슨을 받고 있어서 자신이 잘 못 친다고 자신을 비하시켰습니다. 나는 그런 아주머니에게 자신을 갖고 치도록 유도했습니다.
  주로 내가 리드를 하면서 볼을 넘겼고 가끔씩 강한 드라이브를 쳐서 받지 못하여 볼이 벗어나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녀에게 나처럼 좀 더 힘을 줘서 치라고 주문했지만 그녀는 아직 안 된다면서도 강한 볼을 두려워 합니다.
  마침 그녀는 7시 40분까지만 하고 간다고 해서 그 시간에 돌아 갔습니다.

  아쉽지만 혜수 씨라는 여성분과 헤어진 뒤에 한동안 탁구를 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10명 정도나 되었지만 모두 3번부터 7번 코트까지 들어차서 경기를 하던가. 서로 탁구를 치고 있었고 세 사람은 의자가 있는 벽면에 서 있었지만 두 사람은 내가 치자고 해도 거절했습니다. 

이때 내 눈에 들어온 강 똘이. 그는 박 철수 씨와 친 뒤에 지쳐 있는 게 역역했습니다. 오랜만에 나와서 탁구를 쳐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 탁구를 치러 와서 쉰다는 건 그만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격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그랬으므로 그에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나와 함께 탁구를 칠까요?” 실력이 딸리는 탓도 있지만 이 사람은 내게 안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놓지 못한 것이지요. 
“예!”
그가 나와 1번 탁구대에서 서서히 탁구를 치게 되는데 나는 악착같이 맞붙어서 30여 차례의 경기를 치루고 겨우 2번 이겼을 뿐입니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려서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을 정도였지요.
 땀을 닦지 않으면 눈으로 들어가서 눈이 따갑고 충혈 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땀을 닦지 않으면 눈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경기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서일까요!
얼굴의 피부색이 살아 있는 것처럼 탄력이 붙고 뽀얗게 변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오른 팔로 라켓을 잡고 드라이브를 때릴 때 과감해 졌습니다. 기것은 그만큼 건강해졌고 팔 힘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그렇게 힘껏 내 품게되는 내 몸의 젊음. 아마도 나는 21세에 해병대 하사로 군대를 제대한 뒤부터 57세인 지금까지 중간 시기를 정신없이 개인 사업을 위해 헌신한 몸을 다시 운동으로 다져지기 위해 연마를 하게 된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내 몸에서 태양이 이글대는 것처럼 뜨거운 피가 용솟음 치면서 마치 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이 충만한 육체의 발산을 가장 아름다운 노래을 부르며 흰 캠퍼스에 최고의 예술가적 기교로 그림을 그리는 기분입니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육체의 환히.

  아마도 젊은 날의 중간 시기를 너무도 정신없이 보냈기에 이제 뒤늦게 보상을 받는 것처럼 행복에 겨워서 폭발하듯이 환히에 젖습니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가 기쁨을 계속하여 만끽하기 위해 육체가 노령으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탁구를 치지 않을까요?

6.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6)

며칠 째 영하의 날씨가 살을 파고듭니다. 야간에 체육관 다목적실을 찾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무척 설레는 점이라면,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탁구를 칠까?’였습니다.

  탁구에는 라켓에 따라서 펜홀더와 세이크라는 방식으로 구분합니다. 물론 라켓이 다르며 치는 방식도 틀립니다. 펜홀더는 초보자들이 많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나도 처음 배울때부터 이 라켓을 사용했으므로 지금도 그렇게 고집합니다. 하지만 탁구에 조금 아는 사람들은 세이크 방식으로 입문하는 것같습니다. 세이크 라켓은 양 쪽 면을 사용하지만 펜홀더는 앞 면만 사용하며 손잡이 부분에 네모진 콜크 나무의 부드러운 부분이 튀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동호회원 들은 세이크로 많이 치는 것같습니다. 우선 양면을 이용하고 손목 부분에 꺽이지 않고 밥주걱을 잡듯이 잡고 무언가를 때릴 때처럼 휘둘릅니다. 하지만 펜홀더는 손가락 힘만을 이용하며 손목을 꺽어서 라켓을 때리다보니 손가락부분에 무리가 가지요.
  가끔씩 세이크를 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왜, 펜홀더를 쳤을까? 하는 후회감이 밀려옵니다. 그 이유는 손을 유연성이 무엇보다 더 자연스러워서 일 것입니다. 반면 펜홀더는 드라이브 샷만을 중점적으로 치기 위한 방식 같아서 다양성이 부족한 듯 합니다. 그러므로 탁구를 처음 치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세이크 방식으로 치시라도 권고하고 싶습니다.  

다른 때처럼 체육관 다목적실의 문을 열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단 두 사람이 나와 있었습니다. 60대쯤 보이는 ‘박 철수’(가명) 남자와 40대의 ‘이 혜자’(가명) 여성분이 안 쪽의 탁구대 1번 라인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치고 있었지요. 두 사람 모두 세이크 라켓으로 칩니다. 이곳 탁구 동호회에서는 탁구를 잘 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뉩니다. 잘 치는 사람을 상위 구룹, 중간을 중위 그룹, 그리고 초보자와 이제 입문하는 사람들을 하위 구룹으로 나누어서 바라 보게 됩니다.
  박 철수 씨는 상위 구룹이었고 이 혜자 씨는 이제 막 하위 구룹을 벗어난 중위 구룹, 그리고 나는 중간 정도의 중위 구룹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위 구룹이라고 해도 이곳 옥천의 탁구 동호회 사람들과 대전의 동호회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폭넓은 저변 인구가 많아서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스타들(잘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의 경기력은 벌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같습니다.
  앞으로 탁구 동호회원들이 많아져서 옥천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일류 선수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보는 이유도 아마 탁구 하면 옥천이라는 인식이 새겨졌으면 좋을 텐데 하여서겠지요.

  두 사람은 이곳에서 몇 번 보아왔고 복식 게임을 했었으므로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짝이 안 맞아서 기계와 쳐야겠네요!” 농담처럼 말했더니 이 혜자 씨가 양보를 합니다.
“저는 5시에 왔으므로 많이 쳐서 좀 쉴테니.. 이리 와서 이 분과 함께 치세요!”
  저녁을 먹고 왔으므로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30분이었으므로 1시간 30분은 쳤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탁구를 쳤습니다.
   “시합을 합시다!”
  상위 구룹에 속하는 박 철수씨는 나와 똑딱이 처럼 주거니 받거니 치는 것에 이내 싫증을 느꼈는지 경기를 하자고 졸랐습니다. 그렇지만 질 것이 뻔했으므로 나는 약간 망설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 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일단을 시합을 하였습니다.
  “이제 한 달 밖에 안 되었습니다. 잘 못치는데... 이해하세요!”
  사실 탁구를 치는 중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는 건 무척 힘듭니다. 그런데도 내게 자리를 양보한 이 혜자 씨, 나와 시합하겠다는 중년의 남자인 이 철수씨.
  나는 두 번의 경기를 했고 모두 졌는데 스코어 차이가 너무 났습니다.
  10 : 0.
  10 : 5.
  무참하게 진 이유는 상대가 너무 잘 친 것도 있었지만 내가 회전으로 걸리는 서비스볼을 받지 못해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내는 이제 막 배워서 활용하기 시작한 회전을 걸어서 보내는 서비스볼을 그가 잘 받아 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펜홀더로 쳤고 그가 세이크로 방식으로 쳤다는 게 패배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받아쳐오는 볼이 회전이 걸려서 넘어 왔습니다. 그것을 받기 위해 나는 강한 드라이브로 쳐 올리려고 했지만 번번히 네트에 맞았고 상대쪽 테이블을 넘어가는 게 고작이었지요.
  그는 아마도 나와 탁구를 치는 게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 때, 마침 출입문 쪽에서 한 사람이 입장을 합니다. 그가 강 똘이(가명)였습니다. 나는 그를 처음 보았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상위 구룹에 속할 정도의 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라켓은 나와 같은 방식의 펜홀더로 쳤고요.
  “이리 와서 치세요!”
   내가 철수라는 사람과 치다가 그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내 자리를 양보하고 나는 앞서 쉬고 있던 혜자 씨와 포핸드롱으로 둘이서 똑딱이처럼 연습볼을 치게 됩니다.
  우리들은 출입구 쪽에서 가장 먼 1번 테이블을 두 사람에게 양보를 하고 2번 테이블에서 쳤습니다. 처음온 사람들은 탁구대가 나란히 여러 대가 놓여 있는 이곳에서 가장 먼 곳에서 치게 됩니다. 다음 사람이 들어와서 다른 칸의 탁구대를 치도록 양보하려는 배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건 자연스러우며 어쨌튼 지금은 2번 테이블에서 혜자 씨라는 아주머니와 치게 되었지요.
  이 혜자 씨는 40대 중반 같았는데 허리가 무척 늘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반적으로 몸이 말랐고 얼굴 표정도 매우 매말랐으며 웃을 때마다 주름이 많이지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그녀가 운동을 많이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며 나처럼 몸 생각을 하여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게합니다.

  네 번째 사람인 똘이라는 사람은 32세의 남자였고 키가 165cm 정도는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달이 다 되었지만 이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초면이었지요.  하지만 탁구를 무척 잘 쳐서 연신 철수 씨를 이기는 것이었지요. 내가 졌던 사람을 나와 같은 방식의 펜홀더 라켓으로...
  하지만 똘이와 내가 나중에 두 시간이나 함께 치게 되었고 그를 30번 정도 경기를 하는 중에 두 번 정도를 이겼습니다. 물론 봐 주면서 했을 테지만...
  이것은 탁구가 상대성이 있다는 뜻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자기와 맞는 사람과 경기를 하게되면 비슷한 스코어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매우 저조한 경기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쨌튼 지금은 이런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중간 구룹에 속하는 내가 상위 구룹이라는 두 사람과 경기를 했고 그들과 상대하여 한 쪽은 터무니 없이 깨졌다는 점과 다른 한 사람과는 두 시간을 치면서 내 기술을 끌어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이 혜자 씨와 내가 경기가 아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테이블로 공을 넘기면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8월 달부터 쳤고 나는 불과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녀는 레슨을 받고 있어서 자신이 잘 못 친다고 자신을 비하시켰습니다. 나는 그런 아주머니에게 자신을 갖고 치도록 유도했습니다.
  주로 내가 리드를 하면서 볼을 넘겼고 가끔씩 강한 드라이브를 쳐서 받지 못하여 볼이 벗어나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녀에게 나처럼 좀 더 힘을 줘서 치라고 주문했지만 그녀는 아직 안 된다면서도 강한 볼을 두려워 합니다.
  마침 그녀는 7시 40분까지만 하고 간다고 해서 그 시간에 돌아 갔습니다.

  아쉽지만 혜수 씨라는 여성분과 헤어진 뒤에 한동안 탁구를 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10명 정도나 되었지만 모두 3번부터 7번 코트까지 들어차서 경기를 하던가. 서로 탁구를 치고 있었고 세 사람은 의자가 있는 벽면에 서 있었지만 두 사람은 내가 치자고 해도 거절했습니다. 

이때 내 눈에 들어온 강 똘이. 그는 박 철수 씨와 친 뒤에 지쳐 있는 게 역역했습니다. 오랜만에 나와서 탁구를 쳐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 탁구를 치러 와서 쉰다는 건 그만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격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그랬으므로 그에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나와 함께 탁구를 칠까요?” 실력이 딸리는 탓도 있지만 이 사람은 내게 안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놓지 못한 것이지요. 
“예!”
그가 나와 1번 탁구대에서 서서히 탁구를 치게 되는데 나는 악착같이 맞붙어서 30여 차례의 경기를 치루고 겨우 2번 이겼을 뿐입니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려서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을 정도였지요.
 땀을 닦지 않으면 눈으로 들어가서 눈이 따갑고 충혈 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땀을 닦지 않으면 눈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경기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서일까요!
얼굴의 피부색이 살아 있는 것처럼 탄력이 붙고 뽀얗게 변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오른 팔로 라켓을 잡고 드라이브를 때릴 때 과감해 졌습니다. 그 것은 그만큼 건강해졌고 팔 힘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그렇게 힘껏 내 품게되는 내 몸의 젊음. 아마도 나는 21세에 군대를 제대한 뒤부터 57세인 지금까지 중간 시기를 정신없이 앞만 보며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늦은 나이에 다시 운동으로 다져지기 위해 연마를 하게 된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내 몸에서 태양이 이글대는 것처럼 뜨거운 피가 용솟음 치면서 마치 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이 충만한 육체의 발산을 가장 아름다운 노래을 부르며 흰 캠퍼스에 최고의 예술가적 기교로 그림을 그리는 기분입니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육체의 노래와 그림. 아,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내 몸의 발산되는 기교를 이제서야 느끼게 되다니...

  아마도 젊은 날의 중간 시기를 너무도 정신없이 보냈기에 이제 뒤늦게 보상을 받는 것처럼 행복에 겨워서 폭발하듯이 환히에 젖습니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과 기쁨을 계속하여 만끽하기 위해 육체가 노령으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탁구를 치지 않을까요?

PS : 더 많은 내용을 올리고 싶지만 이곳은 제약이 심해서 어제부터 심의에 걸리네요! 그래서 3일에 한 번씩 글을 올려 보겠다는 뜻이 꺽였습니다. 위의 내용 중에 세이크라는 부분의 구별은 세에 ㅜ, ㅔ 가 합쳐진 내용이 맞습니다. 어제 밤에 1시 30분까지 씨름을 하다가 올리지 못하고 오늘은 오전을 모두 보냈습니다. 틀린 글자를 모두 바꾸고 다시 수정하였답니다. 글을 쓰는 노력을 기를 죽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내용을 줄이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어쩔 수 없는 제약이 심해지는 탓에 저는 제가 갖고 있는 곳에서 일단 글을 쓰지요! 그리고 이곳에서 글을 쓰고 올릴 때마다 신중하게 생각합니다. 자칫하다가 심의에 걸리는 탓입니다. 무슨 잘못을 한 것처럼 번번히 제약된 글이 섞여 있다는 경고 내용을 읽고는 황급히 달아나기도 합니다. 그게 나를 초라하게 하고 위축을 시켜서 마치 죄인처럼 움추러 들곤 고슴도치마냥 몸을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방어 수단이지요. 그런 오랜 습관은 내게 또 다른 독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곳이지만요.


7. 지하실에 설치한 탁구장에서... [1]

   탁구를 치는데 중독성이 있는 것같다.
 서울출장을 나가던 날을 제외하고 계속하여 저녁에는 체육관에 나갔다. 어제는 20만원짜리 라켓이 총무에게 전달되어 그것으로 <포핸드롱>으로 연습을 했고...

 타구감이 묵직하고 항상 일정한 느낌이다. 이곳에서도 상술이 묻어 나지만 그냥 묵인하게 되는 것같다. 사실상 사람이 함께 동호회를 구성하는 있는 곳에 그런 게 없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1. 체육관 체육센터 탁구 동호회에 저녁마다 나가게 되면서 사실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게 사실같다.
  이건 혼자서 탁구를 칠 때와 사뭇 다르다.
  탁구로봇으로 기본기를 익힐 수 있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게임을 하면 긴장이 되어 오히려 자신감을 상실하곤 했었는데 어제부터는 약간씩 페이스를 찾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기본기만 익히면서 몸에 약간씩 자세가 잡혀가고 있었다.  

2. 오늘 점심 식사를 마치고 J 건물 지하실에서 로봇기계로 1시간 가량을 연습하였다. 사실상 이렇게 연습한다는 건 기계에서 튀어 나오는 공을 받아치는 역활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혼자서 기계의 지도를 받게 되면서 기본기에 따른 자세를 다듬게 된다.

  3. 또 한가지 보름 전에 아들이 직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탁구를 치면서 개인기를 지도 받았다는 것이었다. 나와는 혁혁한 차이가 나기 시작하였으므로 그 이유를 알지 못했었다. 아들과 탁구를 치게 되면 항상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내가 이기곤 했었다. 추석 명절에도 내가 1등을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직장에서 탁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와는 너무도 실력 차이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아무리 잘 치려고 해도 기본기를 갖추지 않는 내가 자세부터 바로 잡히지 않았으므로 승리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 뒤, 나는 옥천의 생 탁구를 찾게 되었고..

2016.01.28 23:22
부산 출장 이후 연속해서 이틀간 탁구를 치러 갔다. 드라이버로 치는 라켓을 올려 치는 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한다.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려 치는 방식.

그야말로 회전을 하는 볼을 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실패를 무릅쓰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한 리씨브가 회전을 다시 역회전으로 받아 치게 됨으로서 반대편 테이블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게 된다. 강력한 회전볼.
그 회전력에 의하여 탁구볼은 아래로 꺽여서 테이블위에 꽂혔다.
나는 이 매력에 심취되었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한다.
  아무래도 드라이브로 라켓을 칠 수 있도록 탁구 기계에서 받아 치는 방법을 홀로 배우는 데에서 비롯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까?  정확하게 그 방식을 깨닫기에 이른다.

그것은 자신감이었다.

힘과 기술의 견비.
점점 더 발전적인 성향을 띄기 시작하고 있었다.

  처음의 실패와 그 뒤의 결과.
  아마도 내가 계속하여 실패를 보았던 전 과정을 따져 볼 때 지금의 효과는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되어 졌다.
  나는 점차 내 자신이 확신하기에 이른다.
  드라이브를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점을 직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이버가 팔을 올려 치는 것과 유사할 결과를 얻게 하는 게 아닐까?

  분명한 점은 손을 끝까지 올려 쳐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8. 탁구장에서...(3)

생각 모음 (165)

1. 체육관에 생활체육을 다니게 되면서 전반적으로 달라진 건 무엇일까?
내가 J 건물 지하실에 탁구장을 설치하고 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곤 다니었지만 사실상 전무한 상태였다. 그리고 내 탁구 수준이 A급이라고 자만을 하였다고 할까?
  그건 순전히 자만이었음을 깨닫기에 이른다.

  생활체육으로 탁구를 치는 이곳 체육관에서 야간에 2시간씩 탁구를 치게 되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하였던 새로운 기대와 흥분으로 자뭇 활력을 되찾게 된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여기 있는 다른 이들이 내게 갖는 관심은 노인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50대 중반인 나에게 70대는 먹어 모이는 것처럼 어르신이라는 존칭을 한다. 이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기도 했다. 그만큼 내게 3~40대의 인생이 생각나지 않음이다. 돌연사를 할 것처럼 갑자기 어지럼증으로 쓰러졌던 5년전의 내 모습은 가히 최악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나의, 30대, 40대 시절은 어디로 간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갑자기 생활체육으로 탁구를 치기 시작하였는데 으례히 조금 치다가 마는 그런 작심삼일의 결심이 아닐까? 하는 편견을 갖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옆 집에 S.S 씨는 생활체육으로 베드멘트를 쳤었는데 3년을 버티지 못했었다. 그만큼 처음에는 의욕을 앞세웠었지만 결국에는 몸이 아프다는 핑게로 지금은 가지도 않게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나도 그런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

  50대에 생활 탁구를 시작한 이유는 급격히 체력이떨어졌기 때문이다. 건강을 되찾고 보다 능동적인 생활을 하면서 뒤늦게나마 누리지 못하였던 체력적인 안배(?)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것은 지금의 나이에 돌연사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한가지 구심점을 했으니까!
  인생을 많은 방향이 뚜렷하지 않게

2. 오후 6시 30분 경에 집에서 나왔다.
  엇그저께 동지 날에는 아내가 팥죽을 쑤워 주웠고 그것으로 이제 낮과 밤의 간격 차이가 점점 해가 길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옥천군청 체육관의 드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게 이제는 조금씩 해가 길어짐으로서 어둠을 탁피하지 않을까? 싶었다. 적어도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부가 아니었다면 밤 10시 15분까지 있지도 않았을터였다. 그렇지만 막차를 타면서 사람들과 한무더기씩 밖으로 나와서 뿔뿔이 흩어진다.  

  그 안에서 나는 땀깨나 흘렸었다. 물론 내가 탁구를 잘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운동신경이 매우 부족했던 이유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던 과거. 죽어라고 사업에 20년이 넘게 시달려 오는 동안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었다. 과로와 운동부족 그리고 과식으로 비만이었으므로 5년 전에는 그야말로 몸의 상태가 최악이었다. 바로 뇌경색의 전조 증상을 경험했었으니까? 다분이 유전적으로 내 피는 뇌경색의 조상들의 전력을 보유한 체 전혀 무방비한 상태.
  아마도 그 일이 겪고 난 뒤의 내 생활은 180도 달라지고 말았고 지금도 가끔씩 내 주변을 떠나지 않는 죽음의 그림자를 문득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3. 여기서 심각하게 우려할 일은 앞으로 다시 발병할지도 모른다는 뇌경색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나마 생활체육으로 탁구를 치게 되면서 건강이 좋아지리라는 예상이었다.
  이것은 정례화 된 생활 패턴으로 자리잡기까지 계속하여 끈기를 요구하리라! 어쨌튼 이제 시작한 마당에 저녁마다 2시간씩 탁구를 치고오게 되면서 스릴과 재미를 갖기 시작하였다.

  내게 있어서 뇌경색으로 인한 돌연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운동 밖에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필요서서고나다 가ㅅㅇ화와 도리으운동으로 습관화하면서 그 위험인자를 피할 수 있다는 가장 정확한 사실과 그 것을 피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나는 죽음의 문턱을 계속하여 넘나 들었었다. 그것을 모친에게서 함께 하는 중에 얼마나 심각한지를 스스로 자각할 정도였으므로 지금은 누구보다 가장 확신한다.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그것은 운동이었다.
  여기서 탁구를 치면서 즐기는 스릴은 내게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주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4. 이 장과  어지럼증과 뇌경색에 관한 내용이 어쩌면 중복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뇌경색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탁구를 생활체육으로 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걷기 운동을 1년간 했었지만 실패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지루해서다. 또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핑게 때문이다. 하지만 운동을 가지 않는 대신 기계 제작 일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TV를 시청하기 일쑤였고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으로 만화를 보곤 했었다. 적어도 시간이 없었다는 말은 핑게에 불과한 것이다.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7)
  밤이 소리 없이 내리고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온통 새하얗게 변하였습니다. 흰 쌀가루를 하늘에서 뿌려댄 듯 보이는 사물은 이 하얗고 솜털처럼 가벼운 물의 결정체를 온 몸으로 받아낸 듯 제 몸에 치장을 하여 도로를 따라 차량 바퀴 자국을 내 놓았습니다.

눈은 바로 그쳤고 약간의 눈은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조심을 하면서 체육관 주차장을 덮고 있어서 차선조차 보이지 않네요.

2916년 1월 28일 목요일 저녁.
소리 없이 체육관 다목적실로 찾아 들기 전의 흥분은 처음보다는 이제 많이 퇴석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루 전 날에도 왔었음으로 연속 이틀째였으며 그 전 이틀은 오지를 못했지요. 직업적으로 바쁜 와중에 부산으로 출장을 나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탁구를 치러 오기 위해서는 저녁 식사를 한 이후의 시간을 이곳 탁구장에서 할애하여야마 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에도 야간 잔업을 하여야할 처지였지요. 그만큼 바빠서 일을 놓지 못해 왔었던 습관이 이제 운동부족으로 병이 찾아 와서 쓰러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 소망이 그것을 억눌러서 야간작업을 줄이고 탁구를 치도록 마음속에서 종용하였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라!’ 하고 암시와 함께…….
12월 15일부터 탁구를 치게 되면서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나름대로의 방식을 고집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에 이어 그 방식에 대한 의문점을 찾아내려고 나름대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여 은근히 기대하며 지냈습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흥분. 아무래도 차츰 탁구에 대한 ‘신의 경지에 도전하는 단계’ (고수의 길)에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갖게 할 정도였습니다.

1. 신의 경지에 도전하다.
앞서 나는 탁구를 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방식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펜홀더와 세(ㅅ ㅜ ㅔ)이크. 그리고 내가 펜홀더 라켓으로 친다는 사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다면 펜홀더는 공격형이고 세이크는 방어형 방식이라고 할 정도로 서로 양상이 다르다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깨닫기 시작했는데 내가 공격형으로 상대를 리드할 때만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드라이버로 볼을 쳐내는 연습을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는 지하실에 있는 탁구로봇기계로 날아오는 볼을 향해 강한 리시브로 쳐 냈는데 그것이 드라이버로 때리는 방법이었지요. 그리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드라이버만이 스핀 볼(회전 볼)을 방아 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혼자 연습하면서 테이블에 한 번 맞고 날아오는 볼을 라켓으로 치면서 동시에 팔을 머리 위로 뻗어 올리면 상대편 테이블 위로 꽂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오른팔로 라켓을 잡고 탁구 볼을 받아 치면서 머리 위까지 손을 들어 올리게 되면 그 아래에 빨리 듯이 반대편을 향하여 역회전이 걸린 상태로 날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손을 들어 올리면서 방향을 정하게 되고 연속하여 조준하는 역할을 라켓이 볼과 마찰을 하면서 회전 볼을 다시 역회전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날아간다는 점이었습니다. 몇 번을 연습해 보았지만 모두 정확한 탄착점을 찾아서 정확하게 꽂혔습니다. 이런 신기한 점을 이제 막 깨닫고 나서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하하하!”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우주에 이런 원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지요. 그것이 탁구에 적용되는 순간 내게도 고수의 길이 연린 것처럼 기쁨에 젖어 버리고 한껏 웃고 말았으니까요. 엄청난 발견을 한 것처럼 나에게 불어 닥친 최고의 경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내 몸에서 일어나는 신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 방법을 계속 연습했습니다. 이제 그 것을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서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입니다.

오늘의 재물은 마침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9. 체육관 탁구실에서 집에 돌아오는 시간

어젯밤에는 9시 30분 정도에 탁구장에서 나왔다.
키가 작달만하고 둥그스름한 아주머니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드라이브>로 치게 되었다.
<푸시> 
백스핑이 걸린 상대의 공을 다시 백스핀으로 넘기는 기술.
라켓면은 거의 하늘을 보듯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서 스윙을 짧게 밀어 넣듯이 손목을 이용해 공이 밑 부분을 상살짝 임팩트.
주의 할 점은 팔을 뻗지 말아야 한다.
밑을 쳐 준다는 기분으로 다리를 뻗어서 앞으로 밀듯이 친다.
회전해서 들어오는 공을 가볍게 밀어서 넣는 것
기본자세 -

1. 포핸드 스탠스를 유지하다가 오른쪽 발을 내밀며 타구 한다.
  타구 후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게 중요한다.
  라켓면이 열리는 정도는 날아오는 공의 회전량에 따라 공의 높이에 따라서 조절한다.
 주의할 점은 급격하게 얕은 면을 바꾸지 말고 서서히 바꿔야 한다.
  라켓면은 위를 보도록하고 공을 그 위에 올리 듯하면서 앞으로 밀어 내는 것이 포인트다.
  공의 회전량이나 높이에 따라 조절.
2. 라켓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끼으로 스윙.
임팩트 - 공의 가장 아랫부분을 타구
타구점 - 정점에서 스윙한다.

<세이크핸드 백핸드 푸시>
기본방법은 포핸드 퓨시와 거의 동일.

8.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8)
이곳 옥천은 아내의 고향인 안남의 연고지였습니다. 그래서 2000년도에 이사를 왔으므로 이제 16년 차. 하지만 열악한 환경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하여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없을 만큼 황무지나 다름없었습니다.
  그것은 우선 인구가 매년 감소하는 상황에서 개인 사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옥천만을 보고 장사를 할 수 없었지요. 무조건 밖에서 벌어 와야만 했고 반면에 필요한 제반 자재, 물품, 부품들은 대전으로 나가서 구입하여야하는 실정이었으므로 사업을 하기에는 불편한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옥천에서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을 줘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부부는 이곳에 이사를 왔던 초기에는 집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뿌리를 내리기 위해 천막으로 짓고 그곳에서 공장을 하면서 옆에 3층으로 집을 졌지만 내 손으로 지은 집이 좋을 리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염원이 아담한 집을 장만하는 것이었고 작년에는 영동 법원에서 경매로 지하1층에 지상 2층짜리 30평 규모의 건물을 장만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빚이 졌고 그것으로 인하여 무척 제약을 받고 있는 처지였지만 초기에 이사 왔을 때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였습니다. 지금은 참을 만 했지요.

  참으로 인간은 정에 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정으로 대하여 경매를 당한 부부와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았던 게 도움이 되었던 모양으로 2016년 1월 14일 마침내 예정보다 앞당겨서 대전 보문 산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그 집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집수리와 함께 가스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바꾸는 공사를 하려고, 분주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에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LPG용 가스보일러를 떼어 내고 20만원에 중고로 구입한 귀뚜라미 17S라는 기름보일러를 직접 설치하였습니다.

  이곳은 남향으로 햇빛을 잘 들어오는 곳이며 2층 창문 밖으로 바라보면 경치가 좋습니다.
  옥천은 공기 좋고 물이 맑습니다. 앞으로 이곳으로 이사를 하면 새로운 도약을 위해 옥천에서 제 2의 생활을 꿈꾸지 않을까요.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아이들은 대전에서 취직을 하여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곳으로 이사를 오겠다고 아우성입니다. 명절도 동생들과 그 자식들이 와서 제사도 지낼 것이고…….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어제 저녁에는 일을 끝내고 아내는 주방의 때를 닦는다고 하였고 나는 체육관에서 탁구를 친 뒤에 다시 이곳에 와서 어제 연결한 보일러를 확인하였습니다. 아직 에어가 차서 따뜻한 기운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나마 온기가 있게 되었습니다.
  벌써부터 온 가족들이 둘러 않아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곳 지하실에 놓여 있는 탁구대에서 윷놀이 대신 탁구 시합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물론 내가 가장 잘 쳐서 1등을 하지만요.

2. 새로운 경쟁자들…….
  삼 일간 연이어 쉬었지만 2월 1일 체육관으로 탁구를 치러 가는 중에 많은 감회가 일어나는 건, 위의 앞서 적은 내용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옥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워야 할 정도로 위대하다는 점과 대전으로 이사를 갈 수 밖에 없는 J 건물의 전주인 내외에 대한 생각이 돌연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내가 갖은 것 없이 이곳에 이사를 하여, 이렇게 새로운 집을 장만하게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옥천에서 돈을 벌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서 판매하는 기계는 전국으로 판매를 합니다. 그래서 밖에서 돈을 벌어다가 이곳에 투자를 하였던 것이지요. 아마도 옥천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모두 용감하고 개미처럼 부지런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이곳에 모여 살면서 불굴의 용기를 키워 가는 곳…….
  생각은 탁구 실에 들어가면서 달라집니다. 오늘은 월요일이었으며 양쪽에 레슨 강사가 탁구 강습을 위해 기다렸고 그런 만큼 사람들이 많이 오는 날이지요.
  오늘은 이들 중에 새로운 경쟁자가 눈에 익습니다. 부지런히 나를 이기려고 초보 신세를 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자꾸만 글을 쓰는 게 끊깁니다. 아침인데 나가서 일을 해야만 합니다.
  벌써 10시 54분. 많은 시간을 빼았겼네요!
PS :  위의 첨부파일에 올린 사진 설명 - 체육관 다목적실의 전경. 증간에 칸막이를 칠 수 있는 커텐 형태의 접이식 판넬이 보입니다. 중앙을 기준으로 반대편(안쪽)은 오봇하게 탁구대를 놓아 둘 수 있지만 반대 쪽인 곳은 오전 중에 요가 수업을 한 다고 하네요! 그래서 밤 10시 30분 경 마지막으로 나가는 사람이 탁구대를 접어 놓게 됩니다. 다음날 다른 수업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탁구장이라고 이곳을 부르지 않고 다목적실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10. 생활체육으로 탁구를 치게 되면서...


-서 쪽편 구석진 곳에 위치한 두 곳의 칸막이 형태의 연습실. 왼 쪽편은 강사가 리슨을 가르치는 곳이며 오른 쪽은 자동로봇이 설치된 탁구대. 나는 이곳을 그림으로 그렸었다.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비상구>라고 쓰여진 문을 열고 들어 왔었으므로 자동 연습 기계 쪽에서 이곳을 전체적으로 바라 보게 되었었다. 물론 이 두 대의 탁구대 다음으로 7대 가량의 탁구대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었다. 세 칸의 칸막이가 있음직했던 사무실을 털어서 하나로 만들어 놓았으므로 출구는 모두 세 곳이나 되었다. 남 쪽편으로는 창문이 북 쪽편으로는 대형 거울이 부착되었고 또한 출구가 위치했다. 모든 게 개방적인 이곳의 환경. -

탁구에 미쳐서 24일, 25일에도 충북 옥천군 체육관내의 탁구장으로 저녁 7시 쯤에 갔다 왔다.
크리스마스 날이여서 그런가! 다른 때 같으면 북적되던 탁구장에는 단 두 사람이 와 있었다. 나중에는 여러 사람이 와서 탁구대를 모두 체웠지만...
 한마디로 미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뻔질나게 탁구장으로 저녁을 먹고 난 뒤에 출근을 했다. 하지만 어제 남들보다 좀 일찍 집으로 돌아 왔지만 야간 작업(기계 만드는 직업상)을 할 수 없었다. 몸이 피로했다. 특히 오른쪽 손가락과 팔목이 시끈거린다.

  방바닥에 앉은다리 책상을 펼쳐 놓고 앉아서 애플 맥북프로 노트북으로 오랫만에 인터넷을 열고 글을 쓰는 데 피곤이 엄습했다. 오후 10시쯤 그대로 쓰러져서 자고 말았는데...

  팔을 혹사시킨 덕분일까? 중간에 깨었는데 오른 팔목이 시끈거려서였다. 가장 문제가 있는 부분은 역시 손가락들. 오른쪽 손을 쥐었다 펼 때마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쩌릿하다. 그리고 유독 왼 손은 차가운데 오른 손만 손가락이 뜨겁다. 왼 손으로 오른손바닥과 손가락을 쥐게 되면 뜨거운 반면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으면 차갑다. 오른 손가락들이 열이 나는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참는데 이골이 났다.
  ‘이까짓 아품으로 내게 탁구를 치는 걸 중단 시키지는 못하리라!’
  사실 탁구 때문에 손가락들이 아픈 건 아니었다.
  두 달 전이던가!
  동내 내과에서 혈압을 체크, 소변 검사, 피검사를 받았었다. 고혈약 약을 복용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며칠 뒤에 병원에서 요산 수치가 높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피검사를 받은 뒤에 병원에서 내용 중에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이 있다고 했다.
  “요산의 수치가 7.2mg/dl 이 나왔어요!”
  고혈약 약은 아침 식전에 한 알을 먹지 않고 반 쪽씩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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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요산
[ uric acid음성듣기 , 尿酸 ]
요약퓨린 유도체로서 탄소, 산소, 수소, 질소 등으로 이루어진 유기화합물이다. 동물의 배설물에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사람의 오줌에는 하루에 0.6~1.0g이 배출된다.
,6,8-트라이옥시퓨린을 가리킨다. 화학식 C5H4N4O3. 맛과 냄새가 없는 흰색 결정이며, 에탄올·에테르에는 녹지 않고, 물에는 약간 녹는다. 가열해도 융해하지 않고 400℃ 이상에서 분해한다.
1776년에 K. W. 셸레가 요석(尿石)에서 발견하였다. 조류나 파충류의 배출물에 수산화나트륨 용액을 가하면 결정성 가루로서 요산이 침전한다. 조류나 파충류에서는 질소대사의 최종산물이지만, 사람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조직 속에 있는 퓨린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심한 근육운동이나 백혈병 또는 화상으로 인하여 핵산의 붕괴가 일어날 때에는 오줌으로 배출되는 양이 증가하며, 이 밖에 통풍(痛風)의 발병 시에도 혈액과 오줌에 요산의 양이 증가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요산 [uric acid, 尿酸]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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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까지는 우물안 개구리였었다는 생각이 든다.
2. 탁구 라켓을 구입했다. 총무로부터... 21만원을 공값까지 지불했다.
3. 여자들이 있다.
4.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이었다.
5. 어제와 다른 분위기다...
  오늘 사람들이 고정되어 있지만 한결 같지는 않았다.
6. 탁구. 총무. 회장. 감투를 쓴 사람들이 먼저 다가 온다.

11. 생활 체육으로 탁구 동호회에 나가게 되면서...


1. 애초에 기계제작이라는 본업에 피해를 입지 않은 선에서 탁구를 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계속하여 시간을 빼앗긴다. 일주일간 다녀본 바로는 너무 많은 집중을 하게 됨으로서 문제가 심각해 진 것같다. 적어도  야간 잔업에 지장을 초래했다. 너무 피곤해서 9시에 돌아왔지만 일을 하지 못하였다. 마음만 있을 뿐 행동이 뒤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탁구 동호회에 나가면서 좋아진 점은 땀을 흘리고 난 뒤의 정심이라고 할까? 체력적으로 무척 튼튼해 졌음을 스스로 자각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그것을 버릴 수 없을 것처럼 이제는 생활하려고 동기부여를 자각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내 몸에서 그동안 잊고 지내던 젊음은 정열이기도 했다. 먹고 살기 급급한 나머지 전신 운동을 하지 못하였던 오래 전의 육체적인 겪한 운동의 발란스가 이제는 나에게 일종의 젊음을 주는 느낌이었다. 
  바로 1년 전만 해도 정신이 맑지 못하여 혼미하였고 건망증 까지 뒤 따랐던 피곤으로 상첩한 신체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하였으며 오전 중에는 혼미한 어지럼증과 두통, 이마의 고열로 인한 두통과 뒷골이 땡기고 어깨 죽지가 피가 통하지 않아서 아팠던 것에 비한다면 정말로 오랫만에 땀을 흠뻑 힐리고 체력이 건강으로 넘친 듯한 탄력을 느꼈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감지였다. 
  얼마나 잊고 지냈던 감각적인 가쁜한 느낌인가. 내 몸에서 스스로 터지는 듯이 새로운 젊은 기운을 발출하며 뿜어 내었다.

9.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9)

옥천에는 공기 좋고 개발이 한정되어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그런 환경적인 요인 외에 대청댐이라는 수자원 보호지역이라는 특징을 살려서 크고 작은 연수원과 노인 복지 시설이 군 단위부터 면 단위까지 들어선 상태. 외지에서 노인들을 대거 입원시킨 사례가 주변에 흔히 회자(膾炙)되곤 합니다. 모친도 동네에서 병원에 관계자와 잘 아는 사람을 통하여 입원을 시켰을 정도로 선례(先例)가 있었습니다. 다른 병원에 간병인으로 근무하는 아내의 동창생을 통하면 또한 대전에 지인의 시어머니를 입원시켜 주기도 하였을 정도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옥천을 찾는 사람들이 요양병원의 위치를 묻게 되면 그답 알려 줄 정도로 일상화 되었지요. 왜 갑자기 요양병원 타령이냐고요?

  저도 모친이 오른 쪽 경동맥 협착증으로 뇌에 이상이 생기면서 중풍, 치매의 합병증으로 장애 5등급 판정을 받게 되어 1년간 집에서 모시다가 증세가 악화되자, 어쩔 수 없이 이곳의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을 집에서 모셔 본 뒤, 너무도 힘든 간병으로 힘에 부치자 마침내 손을 들고 항복하는 사태를 맞게 되어 결국 남들처럼 요양병원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2015년 10월 26일
모친을 이곳에 모신 날짜입니다. 그리고 불과 4개월 남짓. 몸을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누워 지내었으므로 모친의 상태는 점점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근육이 빠져 나가서 앙상한 뼈만 남았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잠들어 있는 그 모습이 그동안 떠올랐지만 생각만큼 찾아오기 힘들었습니다. 너무 바쁜 나머지 줄 곳 일에 빠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근 1년을 집에서 모셨지만 점점 더 악화되어 결국 이곳에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친의 연세 81세였고 79세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불과 2년이 지난 상태. 하지만 4개월 만에 등창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집에서 모실 때는 내가 강제로 운동을 시켜왔었으며 거동을 할 정도였지만 이곳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전혀 그렇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집으로 모실 수가 없었습니다.
  온통 모친을 간병하는 데 모든 시간을 빼앗길 정도였으니까요!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근육이 빠져 나가서 뼈만 남아 있는 것처럼 약해 졌습니다. 몸을 지탱할 수 없어서 누워만 있는 상태.

  병실에 들어섰지만 모친은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왜소한 체구. 깡마른 얼굴. 백발로 성성한 머리칼, 쭈굴쭈굴한 얼굴 피부, 그리고 오징어처럼 늘어지는 신체는 나약하고 무기력하기만 했습니다. 2년 전만 해도 대전에서 홀로 지내시면서 독거노인으로 살면서 폐지를 줍던 모습은 간 곳이 없었습니다.
  “엉, 아들……. 뭐 하러 왔어?”
  “거동을 할 수 있나 보려고…….  집에 가자!”
   “안 돼, 나아야 가지!”

“탁!”
  탁구장에서 오늘은 여성분과 탁구를 쳤습니다.
 A급의 상대편 여성분은 날씬하면서도 몸이 날렵합니다.
  흰색의 탁구 볼이 날아오자 테이블 반대편으로 감아올리듯이 쳐서 네트를 넘겼습니다. 그렇지만 모친의 모습이 어느새 어른 거려서 이런 호사스러운 자유를 부리는 게 이상하게도 불효막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내야, 네 형이 나를 이런 곳에 쳐 박아 두고 저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구나!"
  그런 소리를 모친에게서 듣고 왔다고 아내에게 넋두리를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양병원에 다녀왔지만 결국에는 집으로 모시고 오는 것을 포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근 1년간 모친을 뫼시면서 편하게 자 본적이 없었을 정도로 밤에는 온갖 주문을 외쳐 대곤 하던 모친이었습니다. 그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발 부탁한다. 살려 주는 셈치고……. 물 좀, 다오!”
  “잠 좀 자요!”
  “이 번 한 번만 다시 일으켜 다오!”
  “새벽 세 시인데……. 잠을 자야 낼 일하지…….”
  “눕고 싶어!”
  “그냥 누워요!”
  “못 해서 그래…….”
  “할 수 있잖아요! 어제까지 혼자 잘 누웠고…….”
  “안 돼!”
  엎어져서 바둥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놔두면 죽는다고 낑낑댑니다. 잠도 자지 않고 깨워 대는 통에 도무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혈압이 머리끝까지 치솟는 듯싶었고요. 얼굴이 화끈거리고 핏발이 섭니다. 누워 있다 보면 천정이 빙글빙글 돌면서 이내 땅으로 꺼져 버릴 것처럼 어지럽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기를 2시간 째. 그러다보면 다시 모친이 깨우기 일쑤……. 아내는 2층으로 내려가서 잤고 간병을 위해 3층에서 모친과 함께 밤에는 시달림의 연속입니다. 참고로 1층은 기계를 만드는 작업장이 있는 공장이었습니다. 한 달에 수입을 올려야만 하는 한계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모친으로 인하여 일을 못해서 적자에 허덕이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 낮에는 장애 노인 복지관을 가게 되므로 모친을 태워 보내야만 했습니다. 옥천 보건소 옆에 있는 장애 복지관에서 승합차에 탑승을 하기 위해 함께 내리는 간병인도 힘들다고 계속 주문을 하는 처지였었지요. 
밤마다  모친은 아들이 잠을 자지 못하게 악귀처럼 소리쳐 대곤 했습니다. 낮에는 복지관에서 잠을 재워서 밤에는 자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노인학교처럼 공부를 가르쳐야만 하는데 따르지 않고 피곤하다고 잠을 자서 재우게 되면 밤에는 깨어서 소리치는 것이 다반사였으니까요!  그렇게 밤새도록 모친에게 시달리게 되면 다음 날에는 도무지 일할 수 없을 정도가 되기 일쑤였으니…….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습니다. 

  일으켜 앉혀 놓으면 금세 뉘어 달라고 소리칩니다.
  10분 만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아우성이며,
  자장 자장하고 잠 좀 재워 달라고 주문까지 합니다.
  똥을 왜 쌌어요.
  안 쌌어!
  오줌은 왜 싸고…….
  안 쌌어!
  “탁!”
  모친의 얼굴이 그려지면서 자꾸만 볼을 받아 쳐서 상대편 테이블로 꽂아 넣습니다. 내게 오면 금세 받아 쳐야만 속이 시원했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 새겨진 탁구 볼이었습니다.
  하얀 볼에 그려진 모친의 모습.
하지만 어려서 보았던 새색시처럼 예쁜 내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늙고 병약했고 이제 도무지 간병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이 죽는 것을 보아야만 어머니는 살아날까요.
그리하여 마침내 항복을 합니다.
거동조차 하지 못하여 요양병원에 모셔 둔 채, 이제 탁구 실에서 탁구를 칠 수 있을 만큼 무뎌져만 가는 감각이 그걸 허락할 수 있을 줄이야 하고 놀라워 할 따름이었습니다.
4개월 만에 모친은 더 병색이 짙어졌고 문병 온 동생들을 통하여 나를 꾸짖습니다.
  “네 형은 왜 나를 여기에 처박아 놓고 저만 잘 산다냐? 네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렇게 흉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구정이 지난 뒤에 나는 요양 병원을 찾아서 모친을 일으켜 세워 놓고 집에 가자고 말했습니다.
  “엄니, 집에 가서 나하고 탁구치자!”

첨부파일에 대한 설명 - 새로 이사를 한 곳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찍은 사진입니다. 내 모습을 찍었지만 늙고 초라한 얼굴이네요! 이 늙음은 살을 빼고 난 뒤 더욱 피부가 들어 가서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탁구를 칠 때의 내 모습은 그야말로 야생마와 같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첨부파일로 올리고 나중에는 그림도 함께 올리게 될 것이지만 꼬박꼬박 첨부 파일로 넣겠습니다. 이것은  이 게시판에 그림조차 올릴 수 없게 만든 불합리함에 대한 도전입니다. 많은 제약을 갖게 함으로서 알량하게도 자유스러운 권리를 빼앗은 것에 대한 도전. 차라리 피하고 달아나면 될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렵니다. 얼마나 글 쓰는 사람에게 제약을 주는지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목에 칼을 대고 공포감을 조성한다고 글을 쓰지 못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억압을 하여도 내일은 해가 뜨니까요! 또한 다른 곳에서 더 분방하고 자유스럽고 훌륭한 글을 올려 놓을 수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 용서를 빌 때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게시판에 그림을 넣을 수 있는 게 엄청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이해하려 들지 않는 사태. 이건 곧 암흑입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벽에 부딪혀 가면서 동굴을 탐험하는 기분. 이런 처사를 받고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찾아 오는 이유는 그나마 옥천을 사랑해서 일 것입니다.       ^-^*

10. 서울 출장 (20150909)

1. 오랜만에 새벽공기를 밝히는 여명의 아침이다. 옥천역 플랫포옴에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1호차 44호에(통로쪽) 탑승하여 차창 밖으로 밝아오는 전경. 옥천에서 대전까지 가는 동안에 히끄므레한 빛으로 잠긴 도시의 아파트단지(판암동)의 콘크리트 시설물이 어느새 온통 회색빛에서 이미 지평선과 하늘이 드러난 청색 빛으로 밝아 왔다. 태양은 떠오르니 않았지만 산마루에 턱걸이를 하듯이 밀치고 있는 자세다. 지상보다 하늘이 더 밝게 비추는 탓에 대지의 전경들은 그 빛깔에 취해서 덩달아 밝아져 왔다.
대전역에 이르르자 새벽은 이미 밝아졌고 플렛포음 위의 역사 때문에 지하로 들어가는 느낌 탓인지 돌연 형광빛 속에 잠겨 버리고 만다.  

2. 기차 내부에 앉아서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을 나는 간직하고 싶다.
왜냐하면 집과 공장에서 생활할 때는 글을 쓰는 여유를 부리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서울출장을 가는 열차 안에서 나는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차분한 느낌이 든다.
이 자세를 집에서는 갖지를 못했다.
그만큼 복잡한 생각이 얽혀 있었고 지금의 불편한 와중에서도 잘 써지는 글을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컴퓨터에서는 도통 그런 자극(?)을 받지 못하였다고 할까? 

3. 집을 떠나와서 밖에서 나를 돌아다 보면 이상하게 얼마나 힘든 내 생활이 보였다. 겉치레에 치중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외향적인 모습. 또한 바쁘게 살고 있던 내 생활. 이런 모든 게 여행을 떠나면서 밖에서 나를 들여다 보듯이 속속들이 바라보이는 것이다.
-철물점 경매(비공개 난에 원본 보관). 중략-

8. 행복의 기운은 어떻게 찾아오는가!
중풍으로 쓰러졌던 어머니.
부부 싸움으로 갈등을 심하게 하였던 아내.
겉돌기만 하던 자식들.
어렵기만 하던 사업.
어느 것 하나 좋아질 것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돌연 모든 게 바뀌었는데 그 운명의 소용돌이는 어머니에게 일어난 중풍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돌발적인 사항으로 모든 근간이 송두리 체 뽑혔다.
갖고 있던 모든 추억이 뽑혀 버리고...
모친의 흰 이빨.
그것이 틀리라는 사실조차 나는 알지 못하였다.

내가 이가 부실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알면서 그것을 해 넣지 못하는 부주의함은 돈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부터 시작한다. 내용은 다르지만 모두가 연관된 내용으로 일괄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구도와 배경, 분위기 모든 게 맞지 않으면서도 서서히 본론과 맞아 들어가게 된다. 그것을 독자가 읽어 가면서 점점 심취해 가고 궁금증, 호기심, 그리고 쾌락, 환히를 맞보게 만든다. 굉장히 높은 즐거움, 몰입감을 줄 필요가 있었다. 위대한 책을 쓰기 위해서는 그런 심미안을 갖게 되는 것이다.  

9. 글을 씀에 있어서...
생각을 기본 바탕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위에 덧붙이는 듯 계속하여 만들고저하는 조각상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게 그런 분활된 노력에서 결국에는 마음 속에 하나의 목적한바대로 끌고가는 끈기가 필요했다. 자꾸만 생각이 바뀌게 되는 건 일테면 그 몰입도가 계속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일테고... 그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었다.  

10. 동기 부여가 중요
뜻, 의지, 그리고 계획과 실천을 하여 무언가를 이루게 되는데 이때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그 중에 환경여건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원칙에 입각한 자연스러운 발상도 뒤따라야만 겠다. 자본력은 아마도 동기부여에 끼워져 있는 것인데 그렇지 않고 현실적이지 못하면 꿈에 불과하므로 어짜피 이루워지지 않은 꿈에 불과하리라!
여기서 동기부여의 중요성이다. 

11. 젊음. 젊은이들의 짝을 이룬 모습을 버스 정류장에서 지켜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그들이 얼마나 현실적이냐?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짝사랑이던가 이루워질 수 없는 만남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행동과 책임감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무작정 저질러 놓고 앞뒤 분간을 하지 않는 경우 그것이 성공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니까!
사랑에도 책임감이 뒤따른다.  

12. 영등포 역에서 버스를 탔는데 조금 빠르게 도착한 60-1번 대명항으로 가는 것을 탔다가 **지하철 역 앞에서 내린 뒤에 88번 버스를 다시 갈아 탓다. 목적지가 다른 것인데 중간에서 나는 내리는 방법을 결정했으나 거래처에 전화를 하여 그것을 타면 안된다고 해서 바꿨 탓던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버스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는데 지금은 쓰고 있었다.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자판을 누르다보면 흔들거리는 탓에 자꾸만 어긋난다. 그렇지만 쓰려고 하는 의지는 내 불편함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11, 12, 번의 내용이 머리 속에서 줄곳 맴돌았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글을 쓴다는 게 시간만 나면 이렇게 노트북을 꺼내들고 쓸 수 있는 견지가 아니다. 왜냐하면 직접 차를 갖고 운던을 할 때는 시간이 있는 것같아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유독 버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많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부정하지 않겠다. 이렇게 흔들거리는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은 지금의 내 경우를 든다면 무엇보다 글을 쓰고저하는 의지가 높다는 사실을 반연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자.
구태여 내가 운전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어제의 경우에는 끼워서 맞추는 재료를 갖고 B 건물의 미닫이 문의 벽을 막았는데 그렇게 함으로서 세를 분활하여 좌우측으로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적어도 여기서 내가 표현하고저 하는 노력의 일환은 무엇일까? 

13. 생각은 수시로 바뀐다. 그 생각을 붙잡아 둘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버스 안에서 글을 쓰는 것조차 내게는 감지덕지하였다. 그렇다면 집과 공장에서는 이 시간을 갖지 못할까?
 중요한 사실은 여러 가지 다른 사소한 것들 때문인데 우선 첫 째가 T.V, 만화를 보는 잡다한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에서는 그런 것을 배제한 생활이 필요하다. 강제적으로로라도... 이러한 점을 나는 유념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B 건물의 중간 지점을 내가 사용하는 방법을 원했지만 아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그래서 다른 방도를 찾지 않으면 안 될 것같았다. 우선 내가 다른 곳으로 장소를 바꾸는 방법이다. 1층 사무실, 2층 애들방도 괜찮을 듯 싶고...
폭넓게 보자면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최선책일 듯싶다.
여기서 보다 상업적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동기부여가 필요하겠지만...

14. 신념에 대하여...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신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15. 어른이라고 해도 어린이보다 못한 어른은 사람도 아니다.
 000이라는 남자.
 젊은 여자와 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퉁명스럽게 말하던 그의 태도가 내게 더 이상 사람같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었다.
“왜, 장사 안 하세요?”
“참견할 필요가 없잖아요? 왜요? 뭐가 궁금해서...”
“아니, 먼저 번에는 너무 더워서 문을 안 연다고 해서 지금은 찬바람이 나는 듯싶어서 물어 본 것입니다. 그래도 옆집이라서...”
 “관심 끄셍!”
그는 노골적으로 내게 말하였는데 한편으로는 무안스럽게 따지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으므로 나는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곤 상종을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하고 그로 인해서 앞으로 아는 체를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사람에 관한한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아무런 관심을 갖지 말아 달라는 모종의 의미성 있는 반문. 그런 것을 깨닫게 됨으로서 언질을 준 남자. 

다음의 내용은 이곳에서 잠깐 일했던 종업원인 A 아주머니가 도둑으로 몰려서 이들로부터 곤경을 받은 사실을 내게 털어 놓은 내용이었다. 일주일치 장사 했던 돈을 도둑 맞았다고 일하던 아주머니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지만 사실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오해만 샀었다. 그녀의 말이즉, 
“연놈들이 똑같아요!”
“무엇이 똑 같다는 겁니까?”
“나를 도둑으로 몰아 가는 것이...”  

15-2. 어떻게 해서 나를 그런 환경에 내 몰게 하는가! 

16. *** 사장의 심장마비를 일이킨 것. 내 미래를 보는 듯하다.    

17. 거침이 없이 달려 가는 기차. 차창 밖으로 고등학교때 놀러왔던 친구의 집. 전동역 주변의 농가 주택이 생각난다. 전** 가 신탄진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던 것을... 

~~~~~~~~~~~~~출장 중에...~~~~~~~~~~~~~~~~~~~~~~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누산리>의 A 업체로 기계 A/S를 나갔다가 왔다.
 의례 그랬듯이 새벽 4시에 알람에 맞춰 깬 뒤에 5시 43분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영등포역에서 내린 뒤에 88번 강화 가는 버스에 오른다.
  몇 년 가보지 않은 사이에 2년전에 사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에 죽음 직전까지 갔던 것을 겨우 목슴을 건진 뒤에 식물인간처럼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람들은 바뀌고 주변의 가옥과 전경은 많이 달라져서 예전과 딴판이었다.

  오래된 기계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PLC 를 교체한 뒤에 갖고간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서 프로그램을 설치하였더니 정상이 되는 간단한 절차를 끝냈다.
  이제부터는 돌아서서 역순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청구 금액은 50만원이었다. 점심은 영등포역 후문 쪽의 김밥집에서 두 줄을 사서 5분 남은 상태로 뛰어서 무궁화호 열차에 탑승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점심을 먹게 되었다. 출장 중에 늘상 겪게 되는 건 식사 시간이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간단한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인데 내가 선택하는 건 김밥이었다.

 이번에 탑승한 열차는 대전역이 종착역이었다. 그래서 대전역 앞의 버스 정류장에서 옥천까지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 탄다.

11.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10)

3. 이상한 신입생 소개
“띠롱!"
  며칠 전, 휴대폰에 문자가 날아 왔습니다.
  “2월 13일 토요일 정모가 있으니 많은 참석 바랍니다.”하는 옥천 나이스 탁구 동호회 총무가 보낸 내용입니다.
  ‘그 날은 가지 않고 일해야지!’
  사실 탁구를 치러가는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기계 제작이라는 본업, 모친에 대한 죄의식, 야간잔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 등으로 복잡한 상황. 무엇보다 저녁 식사 후에 탁구를 치러 체육관으로 나가는 시간만큼 탁구에만 올인(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정모를 하여 사람들과 모임을 갖게 되는 경우 그렇게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지금도 한가해서 탁구를 치러 가는 게 아니고 건강을 위해서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정기모임이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모양인데 전 달에도 회장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쳤던 전례가 있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렇게 하려고 작정했었지요.
 내게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은 꺾일 수 없이 단호했습니다. 적어도 정모 하루 전의 그 상황이 있기 전까지는…….
  탁구를 치고 집에 돌아가는 중에 마침 회장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는 키가 170센티에 아랫배가 불뚝 튀어 나왔고 얼굴은 검으스름 합니다. 눈은 광채가 돌지만 외향과는 달리 사람을 압도하는 힘과, 후더분한 말씨, 그리고 날카롭게 상대를 흩어 봐서 슬쩍 던지는 말투가 심리적으로 가슴에 와 닿을 것처럼 오감을 자극합니다.
  ‘아, 이 사람이 나를 위해서 이런 말을 해 주는구나!’하는 친절함에 녹아든다고 할까요. 사실상 탁구 동호회에 나와서 며칠 되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말을 걸어주고 지도를 해 준 사람은 유난히 기억에 남게 됩니다. 회장과 총무는 그런 만큼 매우 친절했습니다.
  그래서 이곳 게시판에 두 사람의 친절함에 감사드리고자 처음 내용을 올렸던 것인데 벌써 10편이 되었네요.
  그는 우연찮게 나를 보더니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한 말을 나는 종내 잊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나중에 알았지만 의미가 없었던 모양으로 그 사실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나만 가슴에 품고 있었다는 점이 서운할 정도였을 정도로 퇴색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이때 내게 그렇게 크게 부각될 줄은 전혀 예상 밖이었답니다.  
  “낼 꼭 오세요! 사람들에게 인사를 소개해야 하니…….”
  “시간이 없어서…….”
  그 상황에도 나는 의연하게 거절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투는 계속하여 가슴을 후벼 팝니다. 그리하여 다음날은 가입인사를 한다고 그럴 듯하게 써 놓고 외우기까지 하였습니다.
물론 사람들을 모아 놓고 공개석상에서 새로 들어온 사람을 소개할 때 모두 그럴 듯하게 가입인사를 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을 하였지요. 그래도 당황하여 말 한 마디 하지  못하여 곤경에 처한 과거의 경험도 있다 보니 인사말을 연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친애하는 탁구 동호회 여러분!” 그렇게 시작하여,
  “나이스 동호회에 가입하여 여러분과 함께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두 달이 되어 가는 지금에서야 겨우 탁구를 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만 하다가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그 뒤, 건강이 우선이고 돈은 그 다음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지요. 이제 살기 위해서 탁구를 칩니다. 지금 탁구를 치는 것도 살아 있다는 자체를 확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습니다. 탁구에 몰입하다보면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흠씬 젖게 되면 그동안 과로와 고장이 난 몸이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회장님은 나와 나이가 같다고 해서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총무님은 아주 친절하시고 회원 분들에게 애로사항을 잘 들어 주시는 걸로 봐서는 무척 호감이 갑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익숙하지 않다보니 모든 게 낯설고 불안 했었지요. 그 때 회장님과 총무님이 따뜻한 말을 해 줄 때마다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 기억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모르는 사람들도 없을 정도로 익숙해 진 상태여서 인사말을 하는 게 좀 어색하네요! 어쨌튼 제가 처음 왔을 때의 느낌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었고 그 당시에 옆에서 이끌어 주신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탁구를 치는 게 좋은 사람들. 그리고 서로 격려하고 가르쳐 주는 가족처럼 따뜻한 마음씨를 보여주는 돈독한 관계가 좋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이곳에 끌리게 하는 것같습니다. 실력이 부족하고 뒤처져서 어느 때는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는 가입인사도 했으니 터놓고 지낼 수 있게 되었네요! 이곳에서 몸과 마음이 더 젊어 진 것같고요. 가족이라는 한 마음으로 나올 수 있게 해 주신 점에 무엇보다 뜻 깊은 자리를 내어 주신 회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중략-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장문의 인사말인지 연설문인지를 써 놓고 하루 종일 기대에 들떠 지냈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 정기 모임에 참석을 하려고 샤워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오후 7시에 시작한다는 정모에 약간 뒤 늦게 도착한 다목적실에는 사람들이 회장과 총무 주변에 모여 서 있는 상태. 
  탁구대는 9개가 놓여 있는 조금 빡빡한 느낌 들었고 삼십 명 정도의 사람들은 탁구를 치지 않고 의자가 있는 벽 쪽부터 길게 늘어선 탁구대 사이에 서서 회장으로부터 정모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시장의 난전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상태. 아는 사람도 더러 보였고 몇 사람은 초면인 듯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낯설었답니다. 또한 이상한 점은 학교 교실 강당처럼 분위기가 있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회장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인사소개를 하지 않고 계속 엉뚱한 말만 계속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치,
  ‘이곳이 정모의 자리인가?’ 하고 의아할 정도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회장은 내가 온 것을 모르는 것처럼 인사소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할 얘기만 쪽지를 보고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전 날 내게 신신 당부하던 말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고 회장은 연신 자신을 말만 늘어놓더니 이어서 파장(장이 끝남)이 됩니다. 그때까지 이제나 저제나 인사소개를 기다리면서 암기한 내용을 계속 외우고 있던 나는 폭발 직전까지 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초라한 자리에 내가 나와서 서 있다는 사실조차 혐오스러울 정도였으니까요. 회장은 사람들을 보고 계속 말을 했지만 그 내용은 나와는 무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2월 24일 다른 탁구 회와 시합이 있습니다. 시합에 나가실 분은 미리 접수해 주시고요. 세 번째로는 회비 입니다. 두 달 치는 무료지만 이제 끝나게 되니 회비 10개월 치 내 주시고……. 자, 지금부터는 간단한 경기 후에 회식을 갖게 되겠습니다.”

  이때부터 각 회원들의 이름이 호명되면서 각각의 탁구대에 나뉘어서 탁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경기를 치를 사람들이 정해져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습니다.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여 겨우 참석했더니 사람 소개도 하지 않다니……. 이러려고 왔나?’
  그런 생각이 들자, 서운하고 눈물이 핑 돌 정도로 한숨이 나옵디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고 당황스러웠다지요.    
   사실 야간잔업도 포기하고 부리나케 나왔지만 소개를 하지 않는 난감한 상황.
  나는 돌아서서 집으로 가려고 문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등 뒤에서 회장이 소리쳤습니다. 
  “ㅇㅇㅇ님, 가지 말고 친목 탁구 치시고 간단하게 준비된 음식을 먹고 가세요!”
  “…….”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가야만 할 것같습니다. 간곡한 그의 부탁에 동호회에 참석하면서 탁구를 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였으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안면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었습니다.
  낼 꼭 참석해 달라고 회장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뒤 늦게 도착하였으므로 회장이 나를 보고 신입생 소개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뒤늦게 사태를 짐작한 회장이 나를 보더니 말했습니다. 
  “탁구 치고 가세요!”
  “근데 언제 가입인사를 하게 되는 거요?”
  “아참 빠트렸네요!"
  내가 뽀로똥하게 엇박자로 나가자 회장은 그 때서야 자기 잘못을 알고 재빨리 상황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내게 되묻습니다.
  "늦게 왔지요? 그래서 못 봤고... 사실 두 분이신데... 아, 저기 계시군요! 오늘 가입인사 하실 분이..."
  그렇게 실수를 깨닫고 회장은 50대로 보이는 여성분을 나오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제가 빠트렸네요! 여기 두 분이 우리 동호회에 가입하셨는데 인사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여성분은 그 때서야 고개를 숙이면서 꾸벅  인사를 하였지요.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인사말을 쓰고 외웠던 내용을 말할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는 탁구 동호회의 모임 장소가 너무도 난장판이었으니까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기대하면서 외우던 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으니까요. 사람들은 탁구대에서 이미 호명된 사람과 경기를 하기 위해 모두 탁구를 시작한 상태였고 내가 의자에 앉아서 단상에 올라 가서 연설을 하는 것처럼 길게 소개말을 할 처지도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답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내 소개만 하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나이스 탁구 동호회 여러분, 이제 두 달 째인 새내기 초보 ㅇㅇㅇ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PS - 첨부파일에 있는 사진 설명 :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새로 이사한 건물의 식탁에서 새벽 4시에 잠이 오지 않아서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는 모습입니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추위에 덜덜 떨면서 글을 쓰는데 어느듯 날이 밝아 왔습니다. 글 쓰는 건 참으로 시간을 많이 잠아 먹는 귀신입니다. 그러다보니 글 쓰는 게 맘처럼 쉽게 써지는 건 아닙니다. 사실 탁구를 치면서 내가 느낀 점은 이런 내용 뿐만이 아닙니다. 나날이 새롭고 신기롭답니다. 어떻게 탁구라는 자체만으로 사람을 흥분시킬 수 있을까요! 물론 탁구가 아닌 사람과 사람과의 느낌이 배가시키는 요인 같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 아마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유대감과 무언의 느낌은 어느새 피할 수 없는 인연으로 묶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독성으로 아마도 탁구를 치러 가는 게 아닌가 싶고요.


12. 잠자리에서

2015년 9월 14일 일요일
아들이 어제부터 집에 와서 아르바이트로 기계 제작 일을 돕고 있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점심식사 후에 탁구대를 B 건물에 설치하여 탁구를 쳤다. 오랫만에 탁구를 땀이 흠씬 나면서 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직장 다니면서 쳤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고...
밤에는 잠을 자는데 2층에서 아들이 자고 아내가 3층으로 올라 와서 함께 자게 되었는데 모친 때문에 잠을 설쳤다. 낮에는 아무 곳에서나 잠을 잤고 밤에 깨어서 혼란스럽게 신음, 두두리기, 벌떡 일어나기, 화장실 가기 등으로 기척을 하고 멀쩡한 사람이 함께 잠들 수 없도록 한다.
  이 노릇을 어찌할까!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엔 잠을 자지 않는 생활.
  그로 인하여 정상인 사람이 잠자지 못할 정도로 신경이 쓰였었다.
  1년여간 함께 생활하는 모친으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지옥같은 생활을 경험하고 있는 나와 아내의 비관스러운 삶.
  그것을 보상 받기라도 하려는 듯 B 건물을 구입하였는데
  그곳에 방이 나뉘어 있어서 모친이 별도로 기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던가!
  아니면 모든 게 하늘이 점지해 준 운명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모친이 함께 생활한 이후 우리는 더 번창을 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기계 제작을 하는 본업에 있어서
  주문이 밀려들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2016.02.20 01:45
13. 레슨 강사가 필요한 이유

옥천 탁구 동호회의 실력 향상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레슨이라고 첫 손가락을 꼽는데 이의가 없습니다.
그만큼 타 지역 회원들과 친선 시합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개개인의 경기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실력의 향상을 위해서 가장 절신한 점은 바로 레슨을 받을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고요.
내가 이곳 탁구 실에 오던 첫 날에는 유료 레슨을 받는 출구로 들어 왔었는데 그것은 반대편 복도를 따라서 거꾸로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다목적실로 보면 서 쪽 끝이 됩니다.

  중앙을 경계로 서 쪽 끝에서는 유료 레슨 강사가 항시 상주해 있었고 반대편 동 쪽 편 출입구 쪽에는 무료가 가끔씩 탁구대를 놓고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한마디로 가물에 콩 나듯이 이따금 보였습니다. 양 편에서 레슨 강사가 상주하다시피 한 월요일에는 사람들이 많이 북적되는 날입니다. 내가 듣기로는 무료 강사는 옥천 탁구 협회에서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로 지위가 높았습니다. 무료 봉사를 하는 것은 그만큼 투척한 사명감 때문이라는 점. 또한 회원들과 각별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으므로 레슨을 받는 사람들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그는 50대 초반의 남자 같았고 탁구에 누구보다 열성을 보이는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무료 강사를 자처할 정도라면 그만큼 남다른 특별한 신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가 강습을 하는 모습은 신들린 사람처럼 탁구를 가르칩니다. 때로는 학생에게 반말을 하였고 농담을 지껄였으며 과감하게 성깔을 부렸습니다. 그렇지만 학생의 태도가 좋지 않았을 때였고 그것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잘못되었다는 점을 과감하게 반대로 자신이 거울인양 상대와 똑같은 동작을 취하여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깊게 찔어 넣어야지 가볍게 건들기만 하면 공이 걸리죠!”
  “...”
  학생은 내가 알기로는 매우 잘치는 A 급에 가까운 40대 중반의 남자였습니다.
  그는 레슨을 받지 않아도 잘 치는 사람이었지만 레슨 강사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고 있었습니다. 학생은 나에게 실내화를 신고 오지 않느다고 둘 째날에 짜증을 내던 사람이었으므로 무척 의외하게 생각이 들어서 나는 먼 발치에서 탁구대에서 B라는 사람과 탁구를 치는 중에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레슨 강사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은 것은 바로 내게 똑 같은 소리를 하는 것같았고 내 단점을 지적하는 것이라는 듯이 가슴이 쩔렁 내려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어서 레슨을 받지 않았지요.

  레슨 강사는 이곳에서 매우 카리스마가 넘치는 것처럼 다혈질로 비쳤는데 그것이 유난이 신경에 거슬립니다. 물론 무료 강사라는 점에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더 자유스러울 정도로 강압적이라는 사실을 인정은 하겠지만 너무 심한 언질에 나까지도 가슴이 내려 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를 존경하는 학생들이 강사에 대하여 좋은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나는 듣곤 했었지요.
  “무료 레슨 강사는 오래 되었습니다. 탁구 연합회 회장이시고 막강할 정도로 파워가 넘칩니다. 무엇보다 무료로 학생을 지도하는 대단한 열의를 보면 존경심이 생기지요. 댁도 받아 보심이 어떠신지요?”  모모라는 사람은 내게 그렇게 말했는데 자신은 이곳에서 2년이 되었고 가끔씩 나와서 친다고 했는데 내게 악수를 하자고 하여 손을 내밀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통증을 느껴지면서 저리고 아팠기 때문입니다.
  펜홀더 방식으로 탁구를 치다보면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치명적인 기형을 유발합니다. 그것이 갑자기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는 중에 바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압박해 왔던 것이지요. 

 내가 첫 날 이곳 다목적실에 들어 온 것은 거꾸로 서 쪽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유료 레슨 강사와 마주쳤던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무료 강사를 자주 마주칩니다. 아무래도 입구가 동 쪽 끝의 출입문이었고 그곳에서 무료 강사가 탁구대 한 개와 바구니, 수거용 그물망이 쳐진 바구니 등을 설치하고 가끔씩 레슨을 하였으니까요.

나는 두 달 가까이 탁구를 치러 나오면서 처음으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실력이 늘지 않아서 회전 볼에 취약한 점, 백드라이버, 백커트, 백푸시 등이 그대로 이었으므로 번번이 탁구를 치면 그 부분에서 무릎을 끊게 됩니다.
  이 살벌한 전쟁터 같은 쟁쟁한 실력자들 틈바구니에서 내가 살아날 길은 유일하게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비결을 터득하는 일이라고 자책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결국 레슨을 받아야 한다고 결론에 도달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없는 점에 마음이 걸립니다. 그럴 경우 지금도 허비하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잔업도 하지 않고 나와 있는데 또다시 레슨을 받게 되면 없는 시간에 더 추가되는 게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레슨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먼 나라 얘기로 느껴졌었지요! 그렇지만 집에 돌아 갈 때라던가 처음 들어서면서 강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귀에 거슬리는 점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무료하게 강압적이며 저돌적인 언행을 일삼는 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가르치는 시간을 정해 놓고 계속 노테인션으로 돌아가면서 다른 학생을 가르쳐야만 하는 입장에서 상대에 따라 입장 차이를 보이는 것이라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짓궂은 농담을 써가면서 학생을 향해 야유를 퍼붓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불안스럽고 웃음이 나올 지경이 됩니다.
  나는 돌아가는 중에 신발을 신다가 그의 불같은 성질에 학생이 혼쭐이 나는 것을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기도 하면서 굉장히 무서울 정도로 떨기도 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은 상대방과 강사와의 유대관계에 따라서 입장 차이를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는 학생을 자신의 이웃에 있는 동생처럼 짓궂은 농담을 써 가면서 가르치기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는 극히 친절하면서도 자세를 숙이라고 주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강습이 있는 날에는 계속하여 밀려드는 학생들을 상대하여 더 큰 목소리로 지껄였고 그에 따라 빨라지는 진행 속도를 보였습니다.

  물론 학생 입장에서는 유료 레슨보다 무료 레슨에 몰렸고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매우 겸허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마치 말을 잘 듣는 개를 훈련시킬 때의 모습이라고 할까? 그토록 고분고분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안을 주워도 참았고 짓궂게 꾸짖고 농담을 해도 모두 자신에게 향한 질책이었으므로 입술을 깨물며 참았습니다. 나는 그 참는 모습이 마치 스님이 절에서 도를 닦는 참불을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탁구 하나에 그렇게 미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기도 했으니까요.

  나는 며칠간 탁구를 치러 나오면서 실력이 늘지를 않게 된 것을 무척 조바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레슨을 받을까? 하고 심한 의문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무엇보다 회전 볼에 취약하다보니 번번이 볼을 받지 못하여 경기에서 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 졌습니다. 하지만 무료 강사의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학생들을 가리키는 태도가 못마땅하게 보였으니까요.
 
  처음의 의도는 운동을 위해서 이었지만 점점 그런 생각은 멀어져만 갔습니다.
  경기를 하게 되면 어이가 없이 지고 말았습니다. 그 모든 게 기초 실력의 부재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무료 강사가 학생을 가리키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주의하여 여러 가지 점을 어깨 너머로 배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강사가 학생을 지도하는 모습들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탁구의 세계에 입문하는 방법을 치자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의 경우 탁구에 대하여 문외한이라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그 경우 레슨을 받아야만 하지요.
  레슨은 이곳에서 두 사람이 있게 됩니다.
무료와 유료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무료 강사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였고 유료 강사의 경우에는 일주일에 주말을 빼고 한 달을 배우는 데 십 만원이라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는 유료 강습에는 가입하지 않고 무료 강습에만 매달리는 편중 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무료 강습을 하는 날에는 입구 쪽이 강습을 받기 위해 잔뜩 몰려 있는 모습들이 유난이 북적거립니다.
   이곳은 체육관 다목적실의 동쪽 끝부분이면 출입구 바로 앞 이였고 신발을 갈아 신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 구별되어 있는 장소에서 신발주머니에서 실내화로 바꿔 신어야만 합니다. 전체가 마룻바닥이었지만 이곳 출입문 쪽에는 문 안쪽에 약간의 경계가 그어져 있었으며 그곳은 마루가 깔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월 17일 수요일에는 그 신발을 신는 구역 안쪽에 탁구대와 그물망이 쳐 져 있었고 강사가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강사는 좁은 통로에 접하여 바구니에 잔뜩 탁구 볼을 담아서 마주 보고 있는 학생을 향하여 탁구 볼을 날려 주면서 소리쳤습니다.
  “왼 쪽, 오른 쪽, 그리고 길게……. 드라이브…….”

PS : 첨부파일의 사진은 내가 지하실에서 탁구를 치면서 홀로 연습하는 모습입니다. 혼자 기계와 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실제 사람과 칠 때와 같다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기계와 연습을 매일 하는데도 불구하고 탁구실에 가서는 어이없이 깨졌으니까요.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경기를 하게 되면 아주 어이없는 스코어차로 번번히 지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처음에는 서로 주고 받는 연습 중에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게임에 임하였는데 너무 스코어 차이가 많이 나게 되어 나 자신에 대하여 실망하곤 했었지요.
  그 패배의 원인을 자꾸만 분석하여 나름대로 공부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오늘은 반전을 하여 승리를 거듭하였고 레슨을 받을까? 하였던 생각을 버렸습니다.
  꾸준히 연습하고 참고 견디면 결국에는 그 결과가 유리한 쪽으로 나타나게 되는 모양이라고 자만할 정도로 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다고 내일도 승리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서서히 실력을 쌓는 것만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비결이라는 점이 오늘 느낀 심정이라고 할까요.


14. B 건물 세를 놓는 것

B 건물 1층과 지하층에 세를 놓으려고 현수막을 달아 놓았었는데 여름에는 찾는 사람이 없다가 날씨가 쌀쌀해 지면서 문의가 복받쳤다.
  사실 4차선을 접한 탓에 상가 사무실로 최적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난할 정도로 세가 들어오고 나가리라고 예상을 했었지만 8월에는 그렇지 않다가 9월 들어서 문의 전화가 자주 오는 것이었다.
  30평이 조금 넘는 1층 실내를 절반 정도를 불활하여 왼쪽 편에는 일주일 전, 건설 회사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른 편에는 탁구대를 설치해 놓고 점심 시간을 빌어 아들과 두 번 탁구를 쳤었는데 어제 밤에는 그곳에 세를 놓고 싶다는 사람이 찾아와서 내부를 보여 줬다.

  중국집으로 가게를 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이는 50대 초반의 남자.
  식당으로 변경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구조 변경이 필요했다. 그 사람의 의향은 이곳이 좋다는 것이었지만 돈도 갖은 게 없다고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닌가!
  사람을 매정하게 안 된다고 할 수 없어서 좋은 말도 설득을 한다. 사실상 많은 과정에서 사람들은 실패를 한다. 이 사람도 4번이나 식당을 운영하다가 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다시 차리려고 한다는 것인데...


2016.02.24 21:15
15.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12)

5. 묘한 감정.

사실상 탁구를 치는 사람이라면 느끼는 것이지만 잘 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의 차이는 어찌 보면 너무 벌어져 있었으며 그것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여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니 두 부류의 관계는 선망의 대상과 그렇지 않은 하류(실력이 낮은)로 우선 구분해서 기술하려고 합니다. 탁구의 묘미란 우선 이런 선망을 갖고 있기에 자신도 언젠가는 그 대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막연한 가능성을 갖게 되는데 그로 인해서 여성분들의 수다가 무엇보다 흥미를 유발하게 됩니다.
  “우리와 함께 친 사람은 자주 옥천 대표 선수로 뽑혀 나가는 사람이랍니다.”
  복식으로 방금 전까지 함께 친 40대 중반의 남자는 왼 손잡이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자세가 매우 특이하여 드라이버로 때리는 족족 상대편 테이블에 꽂히는 게 아닙니까! 그는 30대에서 40대 사이의 젊은 아주머니들에게 인기를 톡톡히 얻는 모양입니다. 그러다보니 의자가 놓여 있는 벽 쪽에서 지켜보는 중에 신기에 가까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방금 전까지 복식을 치다가 경기가 끝나고 단식으로 돌아간 그의 상대는 50대쯤 보이는 중년인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잘 맞는 상대였고 가끔씩 치는 것을 목격하였는데 팽팽한 접전 끝에 왼 손잡이가 승기를 잡으면 가차 없이 공격 볼을 때렸습니다. 드라이버로 낮은 볼을 테이블 아래에서부터 때려 올리는 타법.  
  “탁!”
  볼은 포물선을 그으면서 상대편의테이블에 꽂히고 상대 선수는 다시 그 볼을 커트 볼로 넘겼습니다. 회전이 걸려서 넘어오는 볼이 리시브가 되어 오는 순간 회전 볼이 되어 각도가 많이 벗어났습니다. 강력하게 휘어져서 들어오는 탓에 못 칠 것이라고 장담하였지만 그는 테이블 아래쪽에서부터 다시 강력한 드라이버로 볼을 날렸습니다.
  “나이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집니다. 볼이 상대편으로 넘어가서 받아내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멋진 드라이버 타격이 일품이었습니다. 끝까지 볼을 뒤따라가서 떨어지는 볼을 다시 살려 낸 것은 곧 생명에 불을 지핀 것처럼 볼이 그의 라켓을 거쳐서 네트를 넘어서 상대편 테이블을 꽂혔는데 위기일발의 순간 역전의 기회가 승기를 잡게 된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 서브 볼에서 상대편 공격을 받지 못하고 네트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도 실수는 있었으므로 나는 그 부분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분명히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고 인간임을 증명하는 요인이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 곧 두 사람의 대결 중에 승자가 서로 한 번씩은 뒤 바뀔 수 있었고 다음 대결을 기대하면서 해어지게 될 것입니다.
 “어머, 저 사람 대단하다!”
  감탄을 하는 아주머니는 그를 신처럼 우러러 봅니다. 그렇지만 탁구를 치는 사람치고 거짓으로 그렇게 말하는 게 일반화 되어 있었지요.
  “잘 치네요!”
  “나이스!”
  하면서 상대를 북돋아 주게 되면서 서로 기분을 맞추는 게 일반화 된 것은 그만큼 탁구를 치면서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이 없기 위해서 좋은 감정으로 서로 대결을 벌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에티켓의 하나였습니다.
  이곳에서 아주머니들은 칭찬에 과민 반응을 보이기는 데 이런 점들이 어울려서 하나의 탁구 동호회를 끌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인하여 매우 즐겁게 탁구를 즐길 수 있었으니까요. 사실상 여성분들의 실력차이도 상위 그룹은 월등했지만 그렇지 않은 하위 그룹은 션찮았습니다. 그녀들은 아양을 떨고 애교를 부리기도 하였는데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매우 쾌활한 여성은 복식을 치면서 자신의 실수, 그리고 여러 가지 상황에 맞는 농담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마도 그런 성격의 여성분들이 있었기에 또한 사람을 만나서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즐길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 왼손잡이 선수에 대한 칭찬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 들렸습니다. 그 사람이 잘 친다는 것과 경력에 대한 칭찬 등이 어울려져서 나는 뒷전에 밀려 있다는 너무도 가치 없는 사람으로 전략한 느낌이 들었지요.

  처음 내가 이곳에 와서 탁구를 치면서 느끼는 느낌은 탁구 실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은연중에 흐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잘 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차이가 대결을 회피하면서 함께 치려고 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사람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실력 차이로만 평가하려는 견해지요!

  어제는 서울로 출장을 나갔다가 오후 8시 30분에 이곳에 도착하여 탁구를 치려고 하였는데 칠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는 다른 것이 힘들었습니다. 잘 치는 사람들은 자신들끼리 어울렸고 그렇다고 못 치는 사람과 치게 되면 재미가 없었습니다.

  7번(안 쪽에서부터 1번으로 침. 7번은 끝 번) 탁구대가 비어서 의자에서 대기하고 있는 40대 여성분을 불러서 포핸드링으로 주거니 받거니 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5개월째고 나는 2개월 째였으므로 사실 실력 차이는 별반 다르지 않았지요. 하지만 나는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한참 탁구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처럼 라켓을 올려 치는 리스브에 무척 자신하였습니다. 라켓에 감기는 감각이 마치 신의 조화인양 느껴졌지요.
  ‘나는 신이다. 날아오는 공을 받아치는 순간 내 손에 쥔 라켓에서 받아 치면서 잠시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을 받아 치면서 들어 올릴 때 원하는 방향으로 손을 밀어서 길게 뻗는 순간 다시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면서 손을 뻗은 곳으로 떨어지게 하는 비법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하고 매 순간 환희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공을 반대편에서 환한 미소를 짓는 <향기>라는 여성분은 잘 받아 치면서 말했습니다.
  “나도 잘 치죠!”
  “예, 잘 치네요!”
  다른 여성분들처럼 몸을 움츠리지 않고 받아 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매우 의례적인 경우입니다. 겁을 먹고 몸을 움츠리는 다른 여성분의 경우 상대하기가 곤란할 정도가 되기 십상이지요. 전 날에는 <봄>이라는 여성분과 탁구를 쳤는데 자꾸만 엇갈려서 실증을 느낀 그녀가 나와 치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신경질적으로 성격이 괴팍한 여성들은 비위를 잘 맞춰저야만 합니다. 그것이 그나마 함께 치고 즐길 수 있는 비법이지요.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힘의 강약이 약간 다르므로 많은 양보가 필요합니다. 힘의 안배를 내려서 서서히 스로우모션으로 보내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않은 경우 화를 내고 상대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치고 쉽지 않아서 약간 세게 칠 수 밖에 없었던 내가 서운하게 한 것은 맞습니다. 사실 운동 효과를 배가할 수 있는 방법은 힘을 더 실려 보내는 게 유리하였으며 <봄>이라는 여성분과 <향기>라는 여성분은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성격상 내가 <향기>라는 분과 1시간 가량을 탁구를 쳤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요.
  내가 늦게 왔으므로 10시가 넘어가자 그녀는 홀연히 떠났습니다.
  “담에 봐요!”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어 짝이 없이 다른 사람이 탁구를 치는 경기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A라는 사람의 경기를 관전하게 되는데…….

 예의 A급에 속하는 <기만이>라는 사람과 <덕배>라는 두 사람의 팽팽한 대결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간만의 차이로 <기만이>라 이겼습니다. 그리고 왼 손잡이인 <기만이>가 의자에서 잠시 쉬고 있었으므로 내가 말했습니다.
  “나와 함께 쳐 주시겠습니까?”
  나는 땀을 흘리면서 치는 탁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강한 리시브를 쳤습니다. 상대는 일류급의 실력자. 내가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써도 그의 실력을 앞지를 수는 없는 처지. 나는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10시 30분 탁구실의 문을 닫을 시간에 붙어 본 것이었습니다. 내 실력이 얼마나 되는가! 가름해 볼 생각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그에게 내 볼을 넘겨주면서 얼마나 실력차이가 있는지를 가름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상대편을 공을 리시브로 넘기면서도 끊임없이 말을 했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였습니다. 
  “펜홀더로 치면 쉐이크로 치는 것보다 팔에 무리가 많이 갑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르신!”
  그는 내게 어르신이라고 말했지요.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럴 만큼 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높여 부르는 말뜻은 내가 늙어 보인다는 뜻이지요. 사실 그 말에 토를 달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다른 말을 했습니다.
  “손가락이 결리고 아픈 데 댁은 안 그런가요?”
  “전혀 안 아픕니다만…….”
  “악수를 할 때 손이 안 아프다고요?”
  “예! 전혀…….”
  “그건 어르신이 팔에 무리를 가게 탁구를 하시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아, 어떻게 하면 되죠?”
  “힘을 빼서 치세요! 굉장히 힘이 들어가게 탁구를 하시니까 몸에 무리가 가지 않나 싶은데요. 우선 자세가 중요합니다. 음, 팔을 너무 높이 올리는 것 허리를 너무 비틀어서 불안한 자센데요.”
  “아, 내가 레슨을 한 번도 받지 않고……. 혼자서 쳐서 그럴 겁니다.”
  “아무래도 자세가 나빠서 그럴 겁니다. 손이 너무 들어 올라가서 팔이 아프고……. 손가락은 너무 힘을 줘서 아마도 뼈가 눌리는 것 같고……. 세게 라켓을 잡지 말고 살짝만 잡아 보세요. 그리고 다리를 이용하여 회전을 하시고…….”
  그가 몸을 틀어 공을 때리듯이 자세를 잡는 것이어서 내가 따라하자 잘못된 부분을 잡아 줍니다.
  “팔을 들어 올렸을 때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약간만 들어 올리세요. 뒤로 너무 재끼지 말고…….”
  그는 옥천 소방소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나는 레슨 강사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지요.
  “무료 레슨 강사는 탁구 협회 회장이라면서요?”
  “예! 탁구 총 연합회 회장이지요.”
  “그럼, 무료 레슨을 가르치면서 군에서 봉급을 받나요?”
  “그런 것 없습니다. 무료 봉사지요.
  “무료 봉사라고요!”
  내가 놀라서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두운 주차장으로 나와 있었지요. 탁구 실을 경비가 비워달라고 요구를 해서 모두 네 사람이 함께 나온 뒤에 제각각 다른 곳으로 헤어졌고 그와 내가 둘이서 주차장으로 걸어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차가 주차된 곳이 같은 방향이었습니다.
  주변에 가로등이 비쳤는데 그 빛은 사물을 분간할 정도의 빛이었고 오히려 보름을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달빛이 밝게 내리 비추고 있었답니다. 스산한 겨울바람이 차갑습니다. 운동복 차림에 잠바를 걸쳐 있은 탓에 추위를 느끼면서도 그가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갈 때까지 나는 계속 얘기를 했고 마침 내 차는 그 차의 뒤에 주차해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옥천 탁구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 중에 한 분이지요!”
  그는 무료 레슨 강사를 잘 아는 듯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죠!”
  “예, 안녕히 가십시오!”
  우린 그렇게 서로 헤어졌고 나는 짐이 실려 있는 1톤 화물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 왔지요.
  그리고 자세 교정을 새로 하여야 한다고 생각으로 골몰하다가 겨우 잠들었습니다.
  이제 막 탁구에 입문한 것처럼 나날이 새롭게 느껴졌다고 싶었는데 다시 배워야만 한다는 게 너무 무리한 것 같았지요.

  ‘아, 얼마나 쳐야 탁구를 잘 치게 될까요! 이제 막 걸음마를 벗어난 듯싶었는데 자세교정을 다시 하여야 하다니 정말 되돌아가야만 할 것 같다니!’ 
  그 생각으로 머리 속이 어지러웠습니다.


15. 창고 건물을 임대 놓아야만 할 것같다. (4)

창고 건물을 구입하게 된 동기는 경매로 3차까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집 앞이여서 창고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3년 전에 구입하였는데 1년 정도는 임대를 놓았지만 그 뒤 1년여는 그냥 비어 있는 상태난 다름 없었다. 먼저 세입자가 자신의 건물을 구입하여 이사한 뒤로 복잡한 기계류와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를 넣어 두웠으므로 구태여 임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할까? 하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임대할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었다. 신문, 광고지에 몇 차례 올려 놓았다가 포기를 한 직전(?)이었던 것과 그동안 밖에 천막을 씌워두고 있던 중고기계를 이참에 안으로 들여 놓았었다. 그렇지만 과연 임대를 포기한 것일까?


    마늘밭에서 입구쪽으로
 입구쪽에 다시 마늘밭을 만들었다.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금세 잡초만 무성하였으므로 무언가를 심어야만 하였는데 그것이 가을에는 마늘을 심어서 늦은 봄에 캐었고 그 뒤, 고구마를 다시 심었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남는 곳이 있으면 그옆에 옥수수, 콩, 고추, 가지... 등을 심어서 함께 수확을 하였으며 그 즐거움이 솔솔했었는데....
옆에 조금 키운 30여평의 창고에는 겨울에 나무 보일러에 넣을 땔감을 저장해 놓았는데 그것이 5톤 차로 한 차분은 되었다.

이곳 캐비넽 옆에는 또한 책을 만드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본건물에는 기계류와 탁구대를 놓아서 가끔씩 치곤 했었다.

책을 만든게 되면 이곳에서 다시 정리가 이루워 진다. 기계들을 옮겨 놓고 본격적으로 복사기로 인쇄한 내지와 겉지를 붙이고 자르는 제책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제 이곳을 모두 비워 주워야만 했다. 임대를 오는 사람은 전기 업자였다. 그는 이곳에 자신이 운영하는 전기 시설을 진열하고 보관하는 곳으로 사용코저 했으므로 이 번 달까지는 비워주기로 계약을 했었다.

탁구를 무척 치고 싶은데 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명절날 동생과 조카들이 찾아올 때까지 그냥 놓아 두곤 했었는데 이제는 탁구대도 걷어야만 할 듯 싶었다.




 아들이 군대 갈 때 놓고간 승용차 뒤편의 건물은 본건물이며 왼쪽 모서리를 경유하여 ㄱ 자 형태로 확장을 하여 처마에 이어붙인 30평이 조금 넘는 부속 창고가 모두 2년 전에 세를 놓던 곳이였지만 1년정도 묵은 체 기계류와 땔감을 넣어 둔 터였다. 이곳의 시세는 대략 70~100만원이여서 1억 정도의 예상가였다. 사실상 평수로는 토지가 130~200평내외였고 건축물은 80평 정도였다.

초창기에는 세를 얻어서 공장을 시작했었는데 지금은 벌써 두 곳이나 세를 받아 먹는 곳이 생기게 되었고 내가 운영하는 공장 건물도 갖게 되었다. 어찌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또한 이 곳을 이용하여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아이템을 활용하지 못하고 결국 세를 놓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왜, 세를 놓을 수 밖에 없었는가?
  진정으로 월세를 받는 일이 그렇게 중요했던가!

무엇보다 내게 임대를 놓게 된 것은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지금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첫 째, 100만원씩 붓기 시작한 A(임대를 놓은 상공장 건물)라는 건물의 화재 보험이었다. 현재 13번째 불입을 하였는데 매달 빠져나가는 그 돈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각출을 하기 시작하여 자금줄이 씨가 말랐다. 사실상 그 돈을 화재 보험에 넣지 않고 갖고 있는 상태라면 자금 운영에서 한결 나를 것이었다. 무엇보다 화재 보험을 들기 전에는 자금줄이 막히지 않았었다.

둘 째, 새로운 기계의 연구로 인하여 본업 기계 제작하는 사업이 무척 힘들어 졌다. 두 달 째 한 기계만을 제작하게 되면서 수입은 전무한 상태였고 지출은 여기저기 다른 곳에서 각출(보험 회사에서 대출, 아내에게 대출)하여 매꿔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 째, 보증금으로 받은 500만원의 돈이 필요했다.

  빚을 우선 갚고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기 위해서라도....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13)

16. 옥천군 탁구인들 화합의 장

어제는 저녁 식사 후에 탁구를 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1달에 한 번씩 <옥천 동호회 탁구 리그전>이 있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다목적 탁구실이 아닌 체육관 중앙 홀에서 탁구 경기가 열렸는데 나는 명단에 없다고 해서 탁구 경기에 끼이지도 못하고 사진만 찍다가 왔네요! 그동안 직접적으로 탁구 치는 장면을 사진기로 담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많은 사진을 갖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을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다목적실에서는 탁구를 치는 사람의 정면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 댈 수 없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넓은 체육관 중앙 홀에서 여러 사람들이 서로의 기량을 발휘하여 시합을 벌이는 장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기를 치고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두 달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원정 나온 사람들. 이원, 안남 등지에서 참석한 사람들과 관중들까지 합치면 어림잡아 200여명 남짓.
그 중에서도 새마을금고 이사장에 출마한다는 사람이 투표에서 표를 찍어 달라고 일일이 악수를 하며 다니면서 한 번씩 어깨를 으쓱하면서 탁구를 치는 시늉을 합니다. 그 모습이 신기하다고 할까요? 문외한 같은데 그런 몸짓이 오늘만큼은 재롱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너그러워 집니다. 적어도 오늘은 탁구인의 날이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자리를 빛내고 자신의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하여 실력을 평가할 자리였지요.

탁구 동호회에 우연찮게 나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곳 더 넓은 곳의 세상이 있다는 사실에 한층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유대감을 쌓는 세계. 아무래도 탁구라는 운동에 미친 사람들만의 공간에 그나마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뜻 깊다고 할까요. 

2016년 2월 25일
옥천군 탁구 동호회 리그전
옥천, 안남, 이원, 동이, 향수, 나이스, 엣치…….  
열 개 정도 되는 동호회원들 중에 명단에 들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탁구 시합을 벌였습니다.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이번의 리그전은 옥천군 탁구인의 긍지이자 자부심의 결합체 같았습니다.

옥천군 주민으로 이만큼의 탁구 동호인들이 화합의 장으로 탁구 시합을 벌일 수 있다는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긍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자질을 갈고 닦아온 실력을 겨루면서 자연스럽게 동호인들과 유대감을 갖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곳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옥천에 살고 있는 주민들입니다.
바로 내 이웃 사람들이라는 공통적인 공동체.

모두 자신들의 직업에 충실하고 옥천을 위해 알뜰살뜰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을 헤쳐 온 사람들이 탁구라는 운동에 동참하면서 서로 함께 하였다는 사실 만으로 한마음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작고 보잘 것 없는 화합이 더 큰 불길로 더 높이 타 오르리라고 기대하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체육관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무겁고 어둠침침하던 하늘에 웅장하게 땅에 솟아 오른 체육관이 사람들을 만나는 장터처럼 느껴집니다. 텅 빈 좌석, 육중한 건물, 볼품없는 시설로 그동안 각인되었던 체육관이 아닌 살아 있고 생동감이 있으며 지금은 전혀 무섭지가 않습니다.

 

첨부파일 : 첨부파일에 있는 사진은 옥천군 동호인들의 리그전을 펼치는 장면입니다.
두 장의 사진을 합치기 위해서 간단한 방법으로 연결하다보니 화면이 약간 층이 지네요!

16. 노래방으로 전환하는 문제

1. B 라는 건물의 지하층에 세를 놓지 않고 노래방으로 사용하려고 작정했다.
그래서 저녁부터 내가 글을 쓰면서 카운터를 보면 될 것같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은 노래방으로 구조를 변경하는 내부수리와 기계의 구입을 서서히 진행할 것같다. 문제는 돈이었다. 필요한 것이 충족하지 못하면 다시 세를 놓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므로 빚을 졌기 때문에 갚을 능력이 될 때까지는 세를 놓으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공교롭게도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만...

2. 어제는 아들과 함께 기계 제작 일을 끝내고 지하층에 탁구대를 옮기고 게임을 했습니다. 어렵게 내가 두 번 다 이겼지만... 

3. 오늘은 익산으로 42인치 PDP 디스플레이를 개당 15만원씩 55만원으로 4대 구입하러 직접 찾아 갔다. 그리고 1대의 앰프, 1대의 무선 마이크를 추가로 테스트용으로 15만원씩 30만원을 지불하였다.


17.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17)

7.사랑의 노래

사랑은 이미 내 마음에 매 말라 버렸는데…….  
꽃이 피듯이 사랑이 핀다.  
행여 질투에 화신인양 내 마음의 파문을 일게 하는 너.  
그렇지만 갈래야 갈 수 없고 올래야 올 수 없어라!  
어제는 내가 너에게 질투에 눈이 멀었었다.  
너는 다른 이와 함께 탁구를 쳤고  
나를 안중에도 없어 했다.   

오늘 나는 다른 여인과 탁구를 쳤는데 그녀는 조숙한 한 남자의 부인으로  
내게 끈질기게 탁구 볼을 날렸다.   
너는 등 뒤에서 내가 탁구 치는 모습을   
거부할 수 없이 벙어리 냉가슴마냥 바라보았지.  
짐짓 아무 것도 아닌 체…….  

나는 탁구를 치면서 당신이 어제 다른 남자와 탁구를 치면서 나를 외면한 것처럼  
쳐다보지도 않고 탁구를 쳤지.   
복수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사랑은 이곳 탁구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서   
개울에 빠져 흘러가는 것처럼 너에게 멀어지고 있었고,  
이젠 그 물길에 휩쓸려서 격랑에 떠밀려 간다.  

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다른 여자와 탁구 볼을 교환하는데 사실은 당신과 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너라는 여자를 잊기 위해 자위를 한다.   
내겐 무엇보다 내 가정이 있었고 또한 그 성역을 벗어 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닌 단순한 감정을 내 마음 속에 불러오는 것조차 힘이 들어서다.   

 아무런 감흥도, 느낌도 없는 고목처럼 내 몸에서 사랑이 피어나지 않음이다.
아주 단순하게 그냥 서로 지켜보면서 각자의 인생을 향해 갈 수 있는 마음.  
인생이 그렇듯 우린 사랑하기도 하지만 서로 갈망하지는 않으리라!  
각자의 생활과 자신의 삶의 영역 안에 끌어 들이기를 부정하면서…….         

나이가 들어 사랑이란?  
그저 젊었을 적의 꿈과 같은 것.  
나이가 들면 자중하고 돌발적인 외도는 그야말로 필요이상의 정력의 낭비. 
그리하여 내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돌이킬 수 없는 지탄의 대상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추락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업적을 송두리 체 공든 탑이 무너지듯이 수포로 돌아 갈 수 있기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것이 사랑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실수를 갖지 않기를 바랄면서…….        

사랑의 묘약을 내게 뿌려댄 들 행여 동요하기라도 할까?  
사랑은 내 마음 속에 이미 차갑게 식어 버렸…….  
아. 그렇지만 너를 바라보면 괜히 흥분하고 그저 탁구 하나에 따라 뒤엉킨 감회와 같을 진데  

이제야 꽃이 피는 봄의 들녘에서   
아름다운 봄꽃을 꺾지 않으리라!  

그냥 그곳에 놓여 있어서 피고 지는 들꽃을  
행여 꺾어서 물병에 담아 내 책상에 며칠 두고 보기 위해
줄기를 꺾는 짓은 하지 않고 지켜 볼 뿐이지.     

사랑의 얘기는 이제 내 가슴에 불을 지피지는 못한다.  
그것은 불장난일지라도.  
뭇 사랑의 가슴 앓던 사랑의 순간을 돌이켜 보면서 
전혀 예감하지도 그렇다고 끌어당기는 감정도 없었다.  

그따위 사랑이 먼말인가!  
이 매 마른 가슴에 이미 타오를 기름이 없는데…….   
                                                                                    2016년 3월 1일  김태완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의 다 이런 것일까? 하지만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미 내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지 못할 애닮은 고독의 심연에서 그렇게 느껴보고자 하는 감정이었으니까! 사랑에 대한 노래는 그러면서 어언 망발처럼 나의 가슴을 울린다. 내 모습은 너무나 늙고 초라한 늙은이가 되어 결코 그런 감정을 가지 못할 것이라고 자중을 하고 있었으니까. > 

 이런 사랑 얘기를 애써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고 하는 이유를 나는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리라고 보지 않아서였습니다. 다목적실에서 탁구를 치면서 많은 여성분들과 함께 합니다.
  글을 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사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 시설, 자연, 위치 등을 중심으로 놓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나열하지요. 제가 쓴 여러가지 책(두권의 책 외에 앞으로 출간한 것) 중에 <해안방어>하는 책은 동해안 애안가의 초소에 근무하는 군인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해안가의 초소 막사입니다. 그림처럼 밀려오는 파도의 변화무쌍한 장면이 배경처럼 펼쳐져 있고 군인들은 해안가 초소에서 주야로 근무를 섭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되지요.
  이렇듯 사물이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내가 글을 쓴다면 이곳 다목적실에서 탁구를 치러 오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대로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장소를 벗어나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되지요.
  무수한 사람들이 오늘도 탁구를 치러 왔습니다. 주간반에는 나이든 어르신들이 노란 공으로 치고 야간에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한 두 명씩 찾아와서 주거니 받거니 탁구 볼을 교환하지요.
  그런데 그곳에 사랑이 없겠어요.
  나름대로의 생각들.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에게 흐르는 정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서 끝나고 절대로 표현하지 않는 나이든 사람의 심적인 느낌은 젊은 날의 풋사랑 만큼이나 애닲은 느낌은 아닐까요!

  시에는 감정의 함축성이 있습니다.
  제가 <날아가는 오리 2> 편을 부산의 한 PC 방에서 다른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기계 A/S를 나와서 다음 날까지 묶게 되었는데 PC 방에서 밤 12시까지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관한 내용의 글을 썼지요.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흐를 정도로 진하게 젖었는데 복받치는 추억에 그야말로 몇 번이나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야 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은 책으로 출간되어 있는데 언제나 그 추억이 묻어 나고요.
내 책에 내가 감동합니다.
글을 쓰다보면 그런 느낌이 많이 나는 경우 아마도 여러가지 인생의 경험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점은 그런 과거가 아무래도 현재를 살아가는 데 추억을 갖게 하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젊었을 때의 경험 만큼이나 나이가 든 사람들의 감정은 안으로만 갈무리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런 기복을 마치 음악을 그리듯이, 때론 그림을 그리듯이, 그리고 글로 표현하는 경우지만요.
  어쨌튼 다목적실의 탁구를 치는 공간은 많은 이들의 향수가 스민 곳같네요. 그 사람들이 행여 탁구를 치면서 사랑을 노래하지 않았을까요. 이 공간에서의 식지 않은 사랑은 오늘도 봄 꽃이 피듯이 피어 오릅니다. 다만 이곳을 떠나면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갈테지만 뭐 어떻습니까? 한 번쯤 이런 감정을 갖어 봄도 마음을 보다 젋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이 아니겠어요!

PS : 첨부한 파일은 내가 출간한 책의 <날아가는 오리 2>표지 입니다. 삽화는 모두 그림으로 그렸고 내용은 인터넷으로 올렸던 자료. 글을 모아서 다시 탈고하였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활용하여 글을 쓰고 올리게 되면 훨씬 활용도가 높습니다. 글쓰는 것도 신기할 정도로 잘 써지고요. 또한 그림을 가끔가다가 함께 올려 놓게 되면 금상첨화이지요. 나는 글을 쓸 때 내 홈페이지를 이용합니다. 그곳은 내가 있는 집에 노트북으로 전국 어디를 가서든지 인터넷으로 그림, 글을 올릴 수 있지요.
  그러다보니 수 없이 많은 글이 그 곳에 올라가 있습니다.
  아마도 수백권의 내용일 것입니다. 그렇게 좋은 내 홈페이지는 삼성 P10 노트북에 니눅스라는 컴퓨터 실행 프로그램이 설치 되어 있고 서버로 운영됩니다. 365일 켜 있는데 내가 어느 곳에서나 글을 쓰면 바로 집에 있는 내 컴퓨터에 글이 올라 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간혹 백업을 해 두게 되면 예전에 원고로 쌓아 두고 저장하지 못하여 분실하였던 염려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 글 쓴다는 행운을 만난 것을 행복이라고 즐거워 하지요.
  아마도 탁구를 치는 것도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다는 두 가지 사실을 함께 하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가 공통점이 있기에 매우 만족한다고 할까요! 또한 이곳에 올리는 내용 모두 그곳에 다시 올립니다. 쓸 때는 이곳에서 직접 쓰지만 다시 그곳에 보관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 글 쓰는 방법에 능통한 사실로 인하여 지금까지 발전해 왔는데 그 이유는 다른 곳에 글을 쓸 경우 백방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게 보관하는 방법이 쓴 글을 잃어 버리지 않고 재활용(?) 할 수 있는 장점이라고 여겨 왔습니다.

  아마도 글을 모아서 그것을 살아 있게 하기 위해서는 김치처럼 많은 시일동안 숙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서버라는 홈페이지는 그런 역활을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이유는 글쓰는 방법을 오랫 동안 터특해온 사람으로서의 견해입니다. 어쨌튼 글 쓰는 작업이 숙명이라면 그것을 보관하고 저장하는 방식도 현대적이여야 하지 않을까요?

17. 혼자 탁구를 친다.

  탁구는 원래 두 사람이 치는 데 뒤 쪽의 탁구대를 세워 놓고 그곳에 때려서 튀어 나오는 볼을 받아 치자!
  놀랍게도 혼자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매우 괸찮은 발상이었다.

18. 지하실에 도배를 직접 하면서...

지하실에 탁구장과 노래방을 설치해 놓고 다른 두 곳은 임대를 놓기 위해 도배를 하게 되었다.
저녁마다 두 시간씩 잠깐 시간을 내어서 도배를 하는데 진도가 너무 느렸다. 3일만에 안방을 끝냈지만 이제 남은 건 거실과 화장실로 가는 복도.

화장실과 안방으로 들어서는 복도.

  붉은 황토색의 벽지를 어제밤에 발랐는데 그 기운이 고풍스럽다. 아마 오늘까지 끝내게 되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게 될 것이다. 벽지를 바르는 인부의 일당이 17만원이나 든다고 해서 벽지를 6만 8,000원어치 사서 직접 아내와 도배작업을 야간에 두 시간씩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씩 야간 작업을 병행하면서 생활하자니 몸이 너무 고달프다.

19. 생각 모음 (167)

1. 이틀간(토요일 일요일) 아들을 데리고 함께 작업하느라고 카페에도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리고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는 탁구를 쳤는데 연속 게임에서 지고 말았다.
  월등한 실력차이를 느꼈다. 갑자기 아들이 실력이 늘었던 것이다.
  아들의 회사에서 함께 탁구를 치는 실력자가 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혼자 벽에다 대고 치는 나와는 월등히 차이가 나게 되었을 터. 그것이 현실에서 드러났고 마침내 나에게 무릎을 끓게 하였다. 이제 아들에게 이길 자신이 없게 된 것이다.
2. 요양병원에 입원한 모친을 오늘도 찾아 갔었지만 마땅한 대안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곳에서조차 쫒겨날 판이었으니까! 주변에 함께 있는 다른 노인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하게 간병인을 불러서 온갖 요구를 다하는 게 집에서 내게 하던 것 못지 않은 모양.
  이모 딸 중에 둘이 찾아 왔으므로 함께 병원에 가게 되었다.

3. 나무 보일러에 땔감을 넣는 일도 고역이다. 하지만 그 일에 게을리하면 방이 추웠다. 그러다보니 낮에 기계 제작 일을 하면서도 수시로 나무를 전기톱으로 자른다. 나무 빠래트를 밖에 쌓아 놓고 그것을 들어서 나르는데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또한 금방 타므로 자주 넣어 줘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육체를 움직여야만 한다. 그것이 체력적으로 운동이 된다는 사실을 터특하고 있었으므로 그나마 그 일을 하는 게 다행스럽다고 느낄 수 있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이 찾아 올 수 있다고 깨닫는다. 어찌보면 그래서 겨을은 한편으로 귀찮고 힘든 계절이다.

4. 자동차가 먼저 포천에 갔다 오면서 엔진 연료 부분에 고장을 일으켰다. 대진카에 수리를 맡겼었는데 상태만 확인하고 난 뒤 다시 조립을 했는데 대전으로 갖고 가라는 것이었다. 클러치를 교체한지 이틀이나 되었을까? 다른 곳에 다시 고장이 나게 되니 기분이 우울하다.

20. 생활 체육으로 탁구를 치면서... (2)

날짜는 벌써 12월 30일이 되었네요! 너무도 빠른 세월을 실감합니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음에 어쩌면 애닯고 슬픔을 느낍니다. 12월에 기계를 납품한 게 없다보니 결국에는 적자를 면치 못하였다는 생각으로 궁색한 변명을 늘어 놓게 되었네요! 생활 체육으로 탁구를 치기 때문이라고...

21. 탁구를 치면서... (3)

어제도 저녁 6시 30분에 탁구를 치러 갔었다. 그리고 9시 30분에 나왔고...
두 시간 동안 땀이 흠뻑 냈다.
탁구공이 바닥에 떨어지면 줏으러 뛰어 나녔다. 오히려 이렇게 탁구를 칠 때보다 공을 줏는 중에 운동 효과가 많아지는 느낌. 뛸 때마다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맥박이 높아지는 느낌이 든다. 앞에서 함께 탁구를 치던 사람이 체력이 좋다고 말한다. 그 쪽에서 떨어트린 공도 오히려 절반이 굴러오게 되면 미리 줏어서 넘겨주곤 했으니까. 나도 이렇게 탁구를 치면서까지 뛰어 다니는 게 무척 놀랄 정도였다. 사실인즉 운동 부족으로 체력이 고갈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을 겪을 때만 해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었다.   
집에서 걷기 운동만으로 땀을 흘리지는 않았었다. 옥천군 생활을 할 수 있는 탁구장은 중앙 체육관의 다목적실에 길게 위치하고 있었다. 한 쪽 벽면은 약간의 원형으로 되어 있고 반대쪽은 3개의 비상구 문과 대형 거울이 부착되어 있었다. 대형 거울로 내가 탁구채를 잡고 치는 동작을 볼 수 있었으므로 교정을 하곤 한다.
손목이 꺽여서 치지 않도록 항시 꺽어 있는 자세. 그 자세가 흐트러지면 타구가 반대쪽 테이블을 벗어 나곤 하였었다. 탁탁 거리는 타구감도 귀에 들려 오고 힘을 쥐어 배트를 후려칠 때마다 느끼는 쾌감이 여운에 남았다. 하지만 계속하여 반복해서 들어오는 공을 때리는 동작. 아주 잘 맞은 공은 약간의 타원형을 그리면서 반대쪽 테이블에 꽂히곤 한다. 
  반대편에는 60대 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였는데 나와는 실력 차이가 월등히 나서 내가 밀렸다. 이제 2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내 실력은 아주 수준이 낮은 편이었는데 드라이브 샷으로 라켓을 때릴 때는 비슷했지만 경기를 하게 되면 컷트를 치지 못하는 탓에 공이 회전을 하여 들어오는 것을 번번히 놓치기 일쑤였다.
  월등한 실력차로 나는 역부족임을 느끼는 게임을 치뤘다. 도합 열 판의 경기 중에 내리 여섯판을 졌다.

  옥천군 생활체육관 탁구실에 나니게 되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던 과거에 다시금 새로운 의욕과 건강이 넘쳐나는 느낌이 든다. 이 것은 어떤 의미가 있던가! 내 육체에 일어나는 변화는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을 예고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하여 그토록 육체에서 땀을 흘리고 뛰어 다니는 건강미 넘치는 활력을 되찾게 되었는데 이것은 과거 30대, 40대에 갖지 못했던 공백기를 50대에 맞이하고 있다는 온전한 육체적인 활력과 아울러 정신적인 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느낌이 든다.
  56세인 내가 이런 젊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건 엄청난 변화였다. 왜냐하면 그 동안 삶에 쫒겨서 일상에서 과로, 스트레스, 수면부족에 시달리다보니 어느날 갑자기 세상의 종말을 맞은 것처럼 쓰러 졌었고 그 뒤 운동을 지속적으로 시작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보니 언제나 일과 운동이라는 시이소 같은 왔다갔다하는 마음적인 갈등에 시달리게 되었었다. 걷기 동을 하여 두 세 시간씩 소모하는 시간이 돈벌이와 연관되지 못하여서 항상 밤늦게 야간 작업을 하여야만 하는 개인사업에 지장을 초래하여 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건강을 더 중요하게 받아 들이지 않으면 안 었는데 그것은 항상 주변에서 떠나지 않는 어지럼증과 고혈압이라는 악재였다. 그런 증상을 느끼어 왔던 만큼 운동만이 살 길이라고 어렴풋이 깨달았다고나 할까?

21. 2016년 1월 1일의 의미

다른 날과 달리 같은 시각인데도 아무도 없는 옥천군 체육관 다목적실에 위치한 생활 체육 시설 중 하나인 탁구장. 멀리 레슨을 가르치는 강사만이 미리 나와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가르치고 일정 금액을 받는 다는 레슨을 나는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쥐어 짜내는 것처럼 시간을 할애하여 탁구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계제작이라는 본업에 있어서 야간작업 시간을 할애하였으므로 그만큼 시간 부족 사태가 결국에는 수입의 부족으로 일파만파 번져서 적자가 나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탁구를 치게 되면서 신체적으로 건강을 되찾게 된 육체적인 변화를 나는 직감한다.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건강을 지키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 이렇게 결정적으로 바뀌게 된 변화를 나는 영원히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지만 예전과 다르게 신체적으로 불어 닥친 몸의 상태가 최악에서 부상을 하여 정상으로 복귀하기까지의 과정을 감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탁구를 치면서 뛰어 다니는 효과. 그건 하고 싶어도 못했던 걷기 운동 부족분을 체우기에는 충분했다. 그만큼 뛰는 것에 대한 갈망.
  얼마나 뛰고 싶어 했던가!
  내 몸에서 뛰는 것을 간절하게 소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곳 탁구장에서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육체가 그만큼 운동을 필요로 하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우친 결과였다.
  "왜, 그렇게 뛰어 다니세요?"
  탁구를 치는 상대방이 그렇게 묻는다. 그리고 뛰게 되면 자세가 불안해져서 라켓을 고정해서 치는 동작이 흩어러 지기 때문에 자세 교정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마냥 뛰고 싶다고 했다. 적어도 탁구를 칠 때만큼은 뛰어 다니는 게 의무라고도 했다. 그렇데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내게 사실상 탁구를 치는 시각은 하루에 두 시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제작이라는 본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동 쪽으로한 쪽 벽면이 약간의 타원형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반대편의 벽면은 직선이었는데 그 이유는 밖으로 원형의 벽면을 따라 건물이 들어선 탓이었다. 이 타원형의 벽면을 따라서 복도가 이어졌는데 그 반대편도 타원형으로 된 탓에 다시 직선으로 된 벽면과 연결되어 있었고 처음에 들어 섰을 때 복도 끝에서 되돌아서 직선으로된 벽면에 비상구 문을 열고 이곳으로 들어섰었다.
서 쪽편의 벽면 세 개의 비상구 문이 있고 대형 거울이 부착되어 있었으므로 탁구 자세를 거울에 비춰가면서 직접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거울이 있는 벽체는 아마도 이곳이 다용도실로 탁구 전용의 시설이 아닐 수 있다는 짐작케 한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이곳은 막힌 곳이 아닌 창고 건물 옆에 지붕만 씌운 곳으로 한겨울의 추위를 막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바람이 들어오는 곳에 비닐로 막고 옆에는 선풍기처럼 생긴 히터 난로를 의자 위에 올려 놓은체 이 기계로 정밀 작업을 시작했다.

  이 기계의 쓰임 용도는 매우 넓어서 밀링머싱으로 작업할 수 없는 것을 작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제작하고 있는 NC 기계의 상판을 긴급히 가공하였는데 비닐로 쳐진 한 쪽편으로 바람이 들어와서 손가락이 얼었으므로 옆에 켜 놓은 히터에 곱은 손가락을 녹여가면서 작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작업하는 관계로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었는데...

  기계를 직접 제작하여 손수 가공까지 이 기계를 통하여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굉장한 보람을 느낀다. 비록 보잘 것 없이 보이는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남달리 특별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반대편 벽면에 비닐로 막았다. 위에 줄을 띄우고 그곳에 비닐을 걸쳐 놓은 것이다.

올 겨울은 추위가 한결 누구러져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야외와 다를바 없는 작업 환경을 나는 고치지 못한 체 올 한 해를 다시 보내게 되었지만 유난히 이 기계를 가동할 때 보람을 느낀다.
새해가 밝았다.

작년말에 탁구를 치기 시작한 것을 큰 의미를 두웠다고 할 수 있었다. 그건 건강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으니까.
  저녁 식사후에 체육관에서 탁구를 치러 가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건강을 되찾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깨닫는다. 아무래도 그만큼 땀을 흘리면서 뛰어 다니게 되어 무엇보다 체력적으로 즐기면서 체력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저녁마다 탁구를 치러 다니면서 야간 작업이 불가능 하게 되었다. 가급적이면 9시 30분에 집에 돌아 오지만 밤늦은 시각까지 잔업을 하기에는 약간 무리하였다.
  할 수 없이 기계 제작이라는 본업에 진도가 나가지 않게 되면서 오늘 1월 1일도 일을 하게 된다

23. 2016년 1월 2일의 의미

 일장월취(일장월취-나날이 다달이 자라거나 발전함)한 탁구 실력.
   아들과 경기에서 오늘은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대전에 있는 중소 기업체에 근무하는 아들이 연휴동안 쉰다고 해서 오늘 집에 와서 탁구를 치고 싶다고 제 엄마와 통화를 한 모양이다. 그래서 온다로 연락을 받았지만 오전 10시인 지금까지 늦장을 부리는 모양이다.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오늘 경기에서 나는 서푼의 실력을 감추고 경기에 임할 것이다. 그동안 당한 설음을 복수하기라도 하듯이...
  탁구 실력은 여간해서 늘지 않는 것같다. 어제도 탁구장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치고 왔지만 무참히 참패만 당했었다. 두 사람이 치는 드라이버 연습에서도 밀렸고 넷이서 치는 복식 경기에서도 졌었는데 그 패인 요인이 실력 부족이었다. 그만큼 탁구 실력은 없었으면서 연습을 하기 위해 드라이버를 구사해 보지만 반대편 테이블에 꽂히게 되는 볼의 감각을 찾기가 힘들었다.
  탁구 동호회에 나가서 상대방과의 월등한 실력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장군의 위력이 맹위를 떨치려는 듯 며칠 째 영하의 날씨가 살을 파고듭니다. 야간에 체육관 다목적실을 찾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무척 설레는 점이라면,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탁구를 칠까?’였습니다.
탁구에는 라켓에 따라서 펜홀더와 쉐이크라는 방식으로 구분합니다. 물론 라켓이 다르며 치는 방식도 틀립니다. 펜홀더는 초보자들이 많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나도 처음 배울때부터 이 라켓을 사용했으므로 지금도 그렇게 고집합니다. 하지만 탁구에 조금 아는 사람들은 쉐이크 방식으로 입문하는 것같습니다. 쉐이크 라켓은 양 쪽 면을 사용하지만 펜홀더는 앞 면만 사용하며 손잡이 부분에 네모진 콜크 나무의 부드러운 부분이 튀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동호회원 들은 쉐이크로 많이 치는 것같습니다. 우선 양면을 이용하고 손목 부분에 꺽이지 않고 밥주걱을 잡듯이 잡고 무언가를 때릴 때처럼 휘둘릅니다. 하지만 펜홀더는 손가락 힘만을 이용하며 손목을 꺽어서 라켓을 때리다보니 손가락부분에 무리가 가지요.
  가끔씩 세이크를 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왜, 펜홀더를 쳤을까? 하는 후회감이 밀려옵니다. 그 이유는 손을 유연성이 무엇보다 더 자연스러워서 일 것입니다. 반면 펜홀더는 드라이브 샷만을 중점적으로 치기 위한 방식 같아서 다양성이 부족한 듯 합니다. 그러므로 탁구를 처음 치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세이크 방식으로 치시라도 권고하고 싶습니다.  
다른 때처럼 체육관 다목적실의 문을 열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단 두 사람이 나와 있었습니다. 60대쯤 보이는 ‘박 철수’(가명) 남자와 40대의 ‘이 혜자’(가명) 여성분이 안 쪽의 탁구대 1번 라인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치고 있었지요. 두 사람 모두 쉐이크 라켓으로 칩니다. 이곳 탁구 동호회에서는 탁구를 잘 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뉩니다. 잘 치는 사람을 상위 구룹, 중간을 중위 그룹, 그리고 초보자와 이제 입문하는 사람들을 하위 구룹으로 나누서 바라 보게 됩니다.
  박 철수 씨는 상위 구룹이었고 이 혜자 씨는 이제 막 하위 구룹을 벗어난 중위 구룹, 그리고 나는 중간 정도의 중위 구룹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위 구룹이라고 해도 이곳 옥천의 탁구 동호회 사람들과 대전의 동호회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폭넓은 저변 인구가 많아서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스타들(잘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의 경기력은 하늘과 땅만큼의 사이가 벌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같습니다.
  앞으로 탁구 동호회원들이 많아져서 옥천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일류 선수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보는 이유도 아마 탁구 하면 옥천이라는 인식이 새겨졌으면 좋을 텐데 하여서겠지요.
  두 사람은 이곳에서 명 번 보아왔고 복식 게임을 했었으므로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짝이 안 맞아서 기계와 쳐야겠네요!” 농담처럼 말했더니 이 혜자 씨가 양보를 합니다.
“저는 5시에 왔으므로 많이 쳐서 좀 쉴테니.. 이리 와서 이 분과 함께 치세요!”
  저녁을 먹고 왔으므로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30분이었으므로 1시간 30분은 쳤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탁구를 쳤습니다.
   “시합을 합시다!”
  상위 구룹에 속하는 박 철수씨는 나와 똑딱이 처럼 주거니 받거니 치는 것에 이내 싫증을 느꼈는지 경기를 하자고 졸랐습니다. 그렇지만 질 것이 뻔했으므로 나는 약간 망설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 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일단을 시합을 하였습니다.
  “이제 한 달 밖에 안 되었습니다. 잘 못치는데... 이해하세요!”
  사실 타구를 치는 중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는 건 무척 힘듭니다. 그런데도 내게 자리를 양보한 이 혜자 씨, 나와 시합하겠다는 중년의 남자인 이 철수씨.
  나는 두 번의 경기를 했고 모두 졌는데 스코어 차이가 너무 났습니다.
  10 : 0.
  10 : 5.
  무참하게 진 이유는 상대가 너무 잘 친 것도 있었지만 내가 회전으로 걸리는 서비스볼을 받지 못해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내는 이제 막 배워서 활동하기 시작한 회전을 걸어서 보내는 서비스볼을 그가 잘 받아 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펜홀더로 쳤고 그가 쉐이크로 방식으로 쳤다는 게 패배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받아쳐오는 볼이 회전이 걸려서 넘어 왔습니다. 그것을 받기 위해 나는 강한 드라이브로 쳐 올리려고 했지만 번번히 네트에 맞았고 상대쪽 테이블을 넘어가는 게 고작이었지요.
  그는 아마도 나와 탁구를 치는 게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 때, 마침 출입문 쪽에서 한 사람이 입장을 합니다. 그가 강 똘이(가명)였습니다. 나는 그를 처음 보았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상위 구룹에 속할 정도의 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라켓은 나와 같은 방식의 펜홀더로 쳤고요.
  “이리 와서 치세요!”
   내가 철수라는 사람과 치다가 그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내 자리를 양보하고 나는 앞서 쉬고 있던 혜자 씨와 포핸드롱으로 둘이서 똑딱이처럼 연습볼을 치게 됩니다.
  우리들은 출입구 쪽에서 가장 먼 1번 테이블을 두 사람에게 양보를 하고 2번 테이블에서 쳤습니다. 처음온 사람들은 탁구대가 나란히 다섯개가 놓여 있는 이곳에서 가장 먼 곳에서 치게 됩니다. 다음 사람이 들어와서 다른 칸의 탁구대를 치도록 양보하려는 배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건 자연스러우며 어쨌튼 지금은 2번 테이블에서 혜자 씨라는 아주머니와 치게 되었지요.
  이 혜자 씨는 40대 중반 같았는데 허리가 무척 늘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반적으로 몸이 말랐고 얼굴 표정도 매우 매말랐으며 웃을 때마다 주름이 많이지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그녀가 운동을 많이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며 나처럼 몸 생각을 하여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게합니다.
  네 번째 사람인 똘이라는 사람은 32세의 남자였고 키가 165정도는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달이 다 되었지만 이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초면이었지요.  하지만 탁구를 무척 잘 쳐서 연신 철수 씨를 이기는 것이었지요. 내가 졌던 사람을 나와 같은 방식의 펜홀더 라켓으로...
  하지만 똘이와 내가 나중에 두 시간이나 함께 치게 되었고 그를 30번 정도 경기를 하는 중에 두 번 정도를 이겼습니다. 물론 봐 주면서 했을 테지만...
  이것은 탁구가 상대성이 있다는 뜻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자기와 맞는 사람과 경기를 하게되면 비슷한 스코어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매우 저조한 경기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쨌튼 지금은 이런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중간 구룹에 속하는 내가 상위 구룹이라는 두 사람과 경기를 했고 그들과 상대하여 한 쪽은 터무니 없이 깨졌다는 점과 다른 한 사람과는 두 시간을 치면서 내 기술을 끌어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이 혜자 씨와 내가 경기가 아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테이블로 공을 넘기면서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을 했습니다. 그녀는 8월 달부터 쳤고 나는 불과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녀는 레슨을 받고 있어서 자신이 잘 못 친다고 자신을 비하시켰습니다. 나는 그런 아주머니에게 자신을 갖고 치도록 유도했습니다.
  주로 내가 리드를 하면서 볼을 넘겼고 가끔씩 강한 드라이브를 쳐서 받지 못하여 볼이 벗어나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녀에게 나처럼 좀 더 힘을 줘서 치라고 주문했지만 그녀는 아직 안 된다면서도 강한 볼을 두려워 합니다.
  마침 그녀는 7시 40분까지만 하고 간다고 해서 그 시간에 돌아 갔습니다.

  아쉽지만 혜수 씨라는 여성분과 헤어진 뒤에 한동안 탁구를 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10명 정도나 되었지만 모두 3번부터 7번 코트까지 들어차서 경기를 하던가. 서로 탁구를 치고 있었고 세 사람은 의자가 있는 벽면에 서 있었지만 두 사람은 내가 치자고 해도 거절했습니다. 

이때 내 눈에 들어온 강 똘이. 그는 박 철수 씨와 친 뒤에 지쳐 있는 게 역역했습니다. 오랜만에 나와서 탁구를 쳐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 탁구를 치러 와서 쉰다는 건 그만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격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그랬으므로 그에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나와 함께 탁구를 칠까요?” 실력이 딸리는 탓도 있지만 이 사람은 내게 안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놓지 못한 것이지요. 
“예!”
그가 나와 1번 탁구대에서 서서히 탁구를 치게 되는데 나는 악착같이 맞붙어서 30여 차례의 경기를 치루고 겨우 2번 이겼을 뿐입니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려서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을 정도였지요.
 땀을 닦지 않으면 눈으로 들어가서 눈이 따갑고 충혈 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땀을 닦지 않으면 눈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경기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서일까요!
얼굴의 피부색이 살아 있는 것처럼 탄력이 붙고 뽀얗게 변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오른 팔로 라켓을 잡고 드라이브를 때릴 때 과감해 졌습니다. 기것은 그만큼 건강해졌고 팔 힘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그렇게 힘껏 내 품게되는 내 몸의 젊음. 아마도 나는 21세에 해병대 하사로 군대를 제대한 뒤부터 57세인 지금까지 중간 시기를 정신없이 개인 사업을 위해 헌신한 몸을 다시 운동으로 다져지기 위해 연마를 하게 된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내 몸에서 태양이 이글대는 것처럼 뜨거운 피가 용솟음 치면서 마치 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이 충만한 육체의 발산을 가장 아름다운 노래을 부르며 흰 캠퍼스에 최고의 예술가적 기교로 그림을 그리는 기분입니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육체의 환히.
  아마도 젊은 날의 중간 시기를 너무도 정신없이 보냈기에 이제 뒤늦게 보상을 받는 것처럼 행복에 겨워서 폭발하듯이 환히에 젖습니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가 기쁨을 계속하여 만끽하기 위해 육체가 노령으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탁구를 치지 않을까요?

동장군의 위력이 맹위를 떨치려는 듯 며칠 째 영하의 날씨가 살을 파고듭니다. 야간에 체육관 다목적실을 찾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무척 설레는 점이라면,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탁구를 칠까?’였습니다.
탁구에는 라켓에 따라서 펜홀더와 쉐이크라는 방식으로 구분합니다. 물론 라켓이 다르며 치는 방식도 틀립니다. 펜홀더는 초보자들이 많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나도 처음 배울때부터 이 라켓을 사용했으므로 지금도 그렇게 고집합니다. 하지만 탁구에 조금 아는 사람들은 쉐이크 방식으로 입문하는 것같습니다. 쉐이크 라켓은 양 쪽 면을 사용하지만 펜홀더는 앞 면만 사용하며 손잡이 부분에 네모진 콜크 나무의 부드러운 부분이 튀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동호회원 들은 쉐이크로 많이 치는 것같습니다. 우선 양면을 이용하고 손목 부분에 꺽이지 않고 밥주걱을 잡듯이 잡고 무언가를 때릴 때처럼 휘둘릅니다. 하지만 펜홀더는 손가락 힘만을 이용하며 손목을 꺽어서 라켓을 때리다보니 손가락부분에 무리가 가지요.
  가끔씩 세이크를 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왜, 펜홀더를 쳤을까? 하는 후회감이 밀려옵니다. 그 이유는 손을 유연성이 무엇보다 더 자연스러워서 일 것입니다. 반면 펜홀더는 드라이브 샷만을 중점적으로 치기 위한 방식 같아서 다양성이 부족한 듯 합니다. 그러므로 탁구를 처음 치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세이크 방식으로 치시라도 권고하고 싶습니다.  
다른 때처럼 체육관 다목적실의 문을 열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단 두 사람이 나와 있었습니다. 60대쯤 보이는 ‘박 철수’(가명) 남자와 40대의 ‘이 혜자’(가명) 여성분이 안 쪽의 탁구대 1번 라인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치고 있었지요. 두 사람 모두 쉐이크 라켓으로 칩니다. 이곳 탁구 동호회에서는 탁구를 잘 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뉩니다. 잘 치는 사람을 상위 구룹, 중간을 중위 그룹, 그리고 초보자와 이제 입문하는 사람들을 하위 구룹으로 나누서 바라 보게 됩니다.
  박 철수 씨는 상위 구룹이었고 이 혜자 씨는 이제 막 하위 구룹을 벗어난 중위 구룹, 그리고 나는 중간 정도의 중위 구룹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위 구룹이라고 해도 이곳 옥천의 탁구 동호회 사람들과 대전의 동호회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폭넓은 저변 인구가 많아서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스타들(잘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의 경기력은 하늘과 땅만큼의 사이가 벌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같습니다.
  앞으로 탁구 동호회원들이 많아져서 옥천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일류 선수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보는 이유도 아마 탁구 하면 옥천이라는 인식이 새겨졌으면 좋을 텐데 하여서겠지요.

  두 사람은 이곳에서 명 번 보아왔고 복식 게임을 했었으므로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짝이 안 맞아서 기계와 쳐야겠네요!” 농담처럼 말했더니 이 혜자 씨가 양보를 합니다.
“저는 5시에 왔으므로 많이 쳐서 좀 쉴테니.. 이리 와서 이 분과 함께 치세요!”
  저녁을 먹고 왔으므로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30분이었으므로 1시간 30분은 쳤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서 탁구를 쳤습니다.
   “시합을 합시다!”
  상위 구룹에 속하는 박 철수씨는 나와 똑딱이 처럼 주거니 받거니 치는 것에 이내 싫증을 느꼈는지 경기를 하자고 졸랐습니다. 그렇지만 질 것이 뻔했으므로 나는 약간 망설입니다. 그리고 내가 잘 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일단을 시합을 하였습니다.
  “이제 한 달 밖에 안 되었습니다. 잘 못치는데... 이해하세요!”
  사실 타구를 치는 중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는 건 무척 힘듭니다. 그런데도 내게 자리를 양보한 이 혜자 씨, 나와 시합하겠다는 중년의 남자인 이 철수씨.
  나는 두 번의 경기를 했고 모두 졌는데 스코어 차이가 너무 났습니다.
  10 : 0.
  10 : 5.
  무참하게 진 이유는 상대가 너무 잘 친 것도 있었지만 내가 회전으로 걸리는 서비스볼을 받지 못해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내는 이제 막 배워서 활동하기 시작한 회전을 걸어서 보내는 서비스볼을 그가 잘 받아 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내가 펜홀더로 쳤고 그가 쉐이크로 방식으로 쳤다는 게 패배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받아쳐오는 볼이 회전이 걸려서 넘어 왔습니다. 그것을 받기 위해 나는 강한 드라이브로 쳐 올리려고 했지만 번번히 네트에 맞았고 상대쪽 테이블을 넘어가는 게 고작이었지요.
  그는 아마도 나와 탁구를 치는 게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이 때, 마침 출입문 쪽에서 한 사람이 입장을 합니다. 그가 강 똘이(가명)였습니다. 나는 그를 처음 보았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상위 구룹에 속할 정도의 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라켓은 나와 같은 방식의 펜홀더로 쳤고요.
  “이리 와서 치세요!”
   내가 철수라는 사람과 치다가 그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내 자리를 양보하고 나는 앞서 쉬고 있던 혜자 씨와 포핸드롱으로 둘이서 똑딱이처럼 연습볼을 치게 됩니다.
  우리들은 출입구 쪽에서 가장 먼 1번 테이블을 두 사람에게 양보를 하고 2번 테이블에서 쳤습니다. 처음온 사람들은 탁구대가 나란히 다섯개가 놓여 있는 이곳에서 가장 먼 곳에서 치게 됩니다. 다음 사람이 들어와서 다른 칸의 탁구대를 치도록 양보하려는 배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건 자연스러우며 어쨌튼 지금은 2번 테이블에서 혜자 씨라는 아주머니와 치게 되었지요.
  이 혜자 씨는 40대 중반 같았는데 허리가 무척 늘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반적으로 몸이 말랐고 얼굴 표정도 매우 매말랐으며 웃을 때마다 주름이 많이지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그녀가 운동을 많이 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며 나처럼 몸 생각을 하여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게합니다.

  네 번째 사람인 똘이라는 사람은 32세의 남자였고 키가 165정도는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달이 다 되었지만 이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초면이었지요.  하지만 탁구를 무척 잘 쳐서 연신 철수 씨를 이기는 것이었지요. 내가 졌던 사람을 나와 같은 방식의 펜홀더 라켓으로...
  하지만 똘이와 내가 나중에 두 시간이나 함께 치게 되었고 그를 30번 정도 경기를 하는 중에 두 번 정도를 이겼습니다. 물론 봐 주면서 했을 테지만...
  이것은 탁구가 상대성이 있다는 뜻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자기와 맞는 사람과 경기를 하게되면 비슷한 스코어가 나오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매우 저조한 경기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쨌튼 지금은 이런 내용에 대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중간 구룹에 속하는 내가 상위 구룹이라는 두 사람과 경기를 했고 그들과 상대하여 한 쪽은 터무니 없이 깨졌다는 점과 다른 한 사람과는 두 시간을 치면서 내 기술을 끌어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이 혜자 씨와 내가 경기가 아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테이블로 공을 넘기면서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을 했습니다. 그녀는 8월 달부터 쳤고 나는 불과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녀는 레슨을 받고 있어서 자신이 잘 못 친다고 자신을 비하시켰습니다. 나는 그런 아주머니에게 자신을 갖고 치도록 유도했습니다.
  주로 내가 리드를 하면서 볼을 넘겼고 가끔씩 강한 드라이브를 쳐서 받지 못하여 볼이 벗어나기도 했지요. 그래서 그녀에게 나처럼 좀 더 힘을 줘서 치라고 주문했지만 그녀는 아직 안 된다면서도 강한 볼을 두려워 합니다.
  마침 그녀는 7시 40분까지만 하고 간다고 해서 그 시간에 돌아 갔습니다.

  아쉽지만 혜수 씨라는 여성분과 헤어진 뒤에 한동안 탁구를 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10명 정도나 되었지만 모두 3번부터 7번 코트까지 들어차서 경기를 하던가. 서로 탁구를 치고 있었고 세 사람은 의자가 있는 벽면에 서 있었지만 두 사람은 내가 치자고 해도 거절했습니다. 
이때 내 눈에 들어온 강 똘이. 그는 박 철수 씨와 친 뒤에 지쳐 있는 게 역역했습니다. 오랜만에 나와서 탁구를 쳐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 탁구를 치러 와서 쉰다는 건 그만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격입니다. 내 입장에서는 그랬으므로 그에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나와 함께 탁구를 칠까요?” 실력이 딸리는 탓도 있지만 이 사람은 내게 안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놓지 못한 것이지요. 
“예!”
그가 나와 1번 탁구대에서 서서히 탁구를 치게 되는데 나는 악착같이 맞붙어서 30여 차례의 경기를 치루고 겨우 2번 이겼을 뿐입니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려서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을 정도였지요.
 땀을 닦지 않으면 눈으로 들어가서 눈이 따갑고 충혈 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땀을 닦지 않으면 눈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경기를 계속할 수 없습니다.
땀을 많이 흘려서일까요!
얼굴의 피부색이 살아 있는 것처럼 탄력이 붙고 뽀얗게 변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오른 팔로 라켓을 잡고 드라이브를 때릴 때 과감해 졌습니다. 기것은 그만큼 건강해졌고 팔 힘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그렇게 힘껏 내 품게되는 내 몸의 젊음. 아마도 나는 21세에 해병대 하사로 군대를 제대한 뒤부터 57세인 지금까지 중간 시기를 정신없이 개인 사업을 위해 헌신한 몸을 다시 운동으로 다져지기 위해 연마를 하게 된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내 몸에서 태양이 이글대는 것처럼 뜨거운 피가 용솟음 치면서 마치 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이 충만한 육체의 발산을 가장 아름다운 노래을 부르며 흰 캠퍼스에 최고의 예술가적 기교로 그림을 그리는 기분입니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육체의 환히.
  아마도 젊은 날의 중간 시기를 너무도 정신없이 보냈기에 이제 뒤늦게 보상을 받는 것처럼 행복에 겨워서 폭발하듯이 환히에 젖습니다. 그리고 이런 즐거움가 기쁨을 계속하여 만끽하기 위해 육체가 노령으로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탁구를 치지 않을까요?


18. 탁구를 치면서... (4)
1. 탁구 빠따.
2. 짝이 있어야만 칠 수가 있었다.
3. 여자.
4. 생각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이었다.
5. 어제와 오늘은 무엇이 다른가! 분위기가...
  오늘 사람들이 고정되어 있었다. 한결 같지는 않다. 탁구실에 오는 사람들이...
6. 탁구. 총무. 회장. 감투를 쓴 사람들이 먼저 묻는다.
7. 삼성동 천막집.
서대전 천막사. 그의 절약 정신이 악발이처럼 보인다.
8. 작업(기계제작)과 양면성. 시간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는 선에서 탁구를 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계속하여 시간을 빼앗긴다. 일주일을 다녀본 바로는...
하지만 기계 제작이라는 본업에 지장을 초래하므로 줄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였다. 그 무엇보다 다른 잡념으로 빼앗기는 시간만큼도 오히려 탁구를 치면서 소비하는 시간. 즉 시간은 금이다는 통념과 다르게 운동을 함으로서 몸이 튼튼해 진다는 것을 바랄 뿐이다.
요는 그곳에 고수들이 와서 살다시피 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을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
9. 그래서 탁구 기계를 구입했다. 그 이후...
  
25. 탁구를 치면서... (5) (아들과 탁구를 쳤다)

1. 어제는 옥천군 체육관 다목적실에 위치한 생활체육 시설의 하나인 탁구장에서 아들과 탁구 실력을 견주워 보았었다.
지난 이 주 동안 옥천군 탁구동호회에서 기본기만 익혀 왔던 탓에 탁구 실력이 일장월취한 내 실력과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아들 간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결과. 이 것은 이미 예고된 사항이었다.

  복수전에 가까운 탁구 경기에서 절대적으로 우위를 점유할 수 많은 없다는 사실.
  조금만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면 패배하곤 해 왔던 아들과의 대결.
  빅뱅의 실력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한다면 초보자 수준과 다를바 없었다.
  그동안 우물안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다가 돌연히 내가 패배를 하게 되는 결과를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걸 계기고 탁구동호회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사실상 지금의 경우에는 탁구 동호회에 나오면서 계속 기본기만 익혀왔던 교정된 자세의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기본기에 충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

  그동안 아들과의 경기에 있어서 계속 허무하게 져 왔었는데 그건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저녁에 구내 탁구장에서 선배라는 사람과 탁구를 쳐 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별도로 쳐보지 않았으므로 탁구 실력이 제자리였던 것에 비한다면 그 결과는 당연하였다.
  그 뒤, 나는 탁구동호회에 다니게 되었고 15일 만에 아들과의 경기를 어제 치루게 되면서 그 실력 차이를 비교하기에 이른다.
  어쨌튼 아들에게서 우위를 갖게 되었지만 아들은 그것을 계기로 더욱 분발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경쟁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실력차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탁구의 묘미를 더 해 주리라!

26. 탁구장에서...(6)
탁구장에 처음 찾게 되었을 때의 흥분은 뭐너뭐니해도 사람을 만난다는 거였습니다.
그걸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
학생시절에 교회에서 알 던 여성을 인용할 것.
계속하여 문제가 발생하는데 의외로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서로간에 의견차이를 조율한다. 그리고 예전의 감정을 어떻게 조화롭게 받아 들이느냐? 하는 문제.
서로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예전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었다.
그때, 왜 가 버렸어?
가 버린게 아니고 사라진 것이지. 다르 세계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갖는 건 엄청난 젊은이들의 특권 같은 것이고...
그녀와의 대화.
둘은 그렇게 예전의 자신들의 생각을 피력한다.
그렇지만 바뀌어 버린 인생이었다.
두 사람은 그런 관계.

적어도 자신들에게 지금 현재 쌓아온 인생이 있었고 그것을 벗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조화롭게 세상을 보는 눈.
그 당시 여자의 집 안이 너무 크고 잘 살았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던 상황.
젊었을 때의 철없음.
아무려면 어떤가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겸허하게 받아 들여야만 할 터였다.

27. 탁구를 치면서.. (2)

옥천군 탁구 동호회에 나가는 첫 날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같은 느낌이었다고 말씀 드렸었지요.
  새로운 변화를 갖는다는 건 그만큼 큰 모험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생활은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불안스럽고 두렵게 느껴지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변화를 갖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자기만족의 일상을 최고로 받아들이게 되는 나이지요. 그 이유는 중년을 넘어서면서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기만의 고립과 단절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 테두리에서 생활을 하면서 어쩌면 그 영역 안에서 변화를 싫어하는 단순한 생활을 즐기게 되는 것처럼 한 마디로 고지식한 노인네의 모습. 

  늘상 반복되는 생활.
  하루는 개인 사업장에서 기계를 만드는 직업으로 시작을 하고 밤 10시까지 잔업을 하는 고된 새활로 일관되어 왔었지요. 그러던 중에 2000년도 들어서면서 중요한 신체적인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2000년도는 내게 50세의 나이였습니다. 이른 봄에 머리가 핑 돌더니 그자리에서 쓰러져서 일어 설 수 없었습니다. 누워 있었지만 고개를 움직일때마다 극심한 어지럼증으로 토하기만 했었지요. 급기야 옥천 성모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는데 MRI을 찍고 검사를 몇 가지 받았지만 병명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안정을 취하는 게 전부였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하루를 보내게 되자 차차 좋아져서 퇴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충남 대학병원에서 50만원을 주고 종합 건강 진단을 받게 되었지만 정상이라는 판별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나의 가족력입니다.
  부친은 50세에 뇌경색으로 쓰러졌었고 그 뒤 27년을 중풍환자로 살다가 돌아 가시게 되었으며 모친은 79세에 경동맥이 막혀서 또한 장애등급 4급을 받게 된 이후 1년간 집에서 모셨지만 악화되어 현재는 요양병원에 모신 상태였던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렇듯 신체적인 결함을 발견하고 극단적인 조치는 매일 오후 6시에 5km 를 걷는 운동이었고 저염식과 체조 위주의 식단을 병행하면서 체중을 7kg 정도 뺐습니다. 하지만 늘 따라 다니는 불안은 언제 또다시 쓰러져서 꼼짝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지요. 다행히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그런 일을 없었지만 여전히 어지럼증은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탁구 동호회에 나가려고 한 동기를 든다면 그 과거 전력에 대한 불안한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야간 잔업을 하면서 죽을둥살둥 모르게 일을 하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짐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에 앞서서 건강을 되찾는 게 가장 시급하고 가장 우선 순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기까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갑자기 일보다 건강이 먼저라고 순위를 변경하였을까요?
  여기서 5년을 보내는 동안 비록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위험할 정도로 느껴졌던 일들이 몇 차례 있었다는 점을 밝혀야 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상황이 없지 않았었는데 그 때마다 안정을 취하고 누워서 머리에 얼음 찜찔을 하기도 하고 차에 탑승한 체 에어컨을 틀어서 몸을 차갑게 했던 게 위기를 벗어나지 않았을까? 하고 놀랐었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솟뚜껑보고 졸란다. 하는 옛날 속담이 무색할 정도니까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내게 고혈압이라는 진단이 내린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을 먹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끊은 상태고요! 그것을 운동으로 이겨내기 위한 최고의 선택을 하기에 이른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죽음의 사선을 넘고 난 뒤에 지금은 건강이 최고라는 표현은 과장된 말이 아니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동기부여가 중요한 사유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집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그 잠시 내게 있었던 전적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또 기술할 수 있으면 하도록 하고 우선 탁구 동호회에 나가게 된 첫 날의 심적인 표현을 잠깐 빌려 볼까요! 
었습처럼 설레임반 기대반의 심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된 점이
이 작으로  과연 적응할지 어떨지에 대한
 궁금증이 큰 불안떻광ㄴ


2. 아, 그런 감정이 일어나다니...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에게서...
  동률의 이성에게 끌린다.
  그녀와 탁구를 치면서 하체 부분에 유난히 눈이 많이 갔었다.
  그러면서 애틋한 그녀의 눈길이 닿는다. 그리고 말하는 것등이...
  아까왔었는데... 왜, 못보셨을까요? 사실은 다시 또 온 것은...
  그렇지만 주변에 빈 탁구대가 없었다. 오늘은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월요일 저녁이었다.
  나는 그녀와 비교를 하면서 나에게도 이런 감정이 싹틀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 생각은 자꾸만 집에 가서 빠레트 나무를 전기톱으로 자르고 도끼질을 하여 장작을 만들고 있는 내 천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이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었지만 적어도 청년 시절의 그 격한 느낌은 아니었다. 절재되고 안으로 감추워진 동질적인 사랑. 육체적인 감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까지는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충돌도 갖지 않았다. 그저 마음으로 끝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녀를 새로 구입한 J 건물 지하실에서 데리고 가서 두 사람만이 탁구를 치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탁구대가 모두 차 있었다. 오늘은 양 쪽 입구 쪽에 칸막이를 치고 레슨을 받고 있었으므로 안 쪽에 놓여 있는 탁구대가 다섯 개 정도에 불과 했다. 그러다보니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별도로 2인이 칠 수 있는 만큼 여유가 없다는 사실에 나는 태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돌아 선다.
  왜, 눈에 그녀의 모습이 이토록 선명할까?
  새벽에 나는 아내와 섹스를 하였고 종내 그 A라는 여성을 머리 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좋아 해서가 아니었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조차 거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맨 처음을 말할 때 우리는 처녀라고 일컬곤한다.
내가 해병대 하사관으로 진해 훈련소에 입대를 하였을 때 6개월의 훈련 과정 중에 공수교육이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세 번의 낙하를 하게 되는 데 123라는 군대 수송기에 몸을 싣고 하늘에서 뛰어 내리는 훈련이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짬뿌를 처녀짬뿌라고 부른다. 이 당시의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 이유 또한 처음이여서 그럴 것이다.

28. 포핸드롱
포핸드 롱의 기본 자세
1. 발은 어깨넓이보다 약간 넓게 벌려준다.
  무릎은 가볍게 구부리고 상반신은 앞으로 약간 숙인다.
  양 팔꿈치의 각도는 모두 90도 정도를 유지한다.
  라켓은 바볍게 잡고 손목은 이완시킨다.

2. 탁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기술이면서 길게길게 치게 된다. 동호인들이 탁구를 처음 배울때 가장 먼저 배우는 기술이다.
출처---> 네이버 탁구 입문 과정
두 사람이 길게 서로 주고 받으면서 탁구를 치는 기술.
몸을 풀거나 감각을 익힐 때, 익숙한 동작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동작을 반복적으로 치게 되는데 이 때 주고 받는 형태가 타구감을 살리게 되면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탁구장에 찾아 갈 때마다 의례히 두 사람이 치는 포핸드롱에 온 힘을 몰아치는 이유는 정식 경기에 앞서 몸을 푸는 과정이기도 하면서 많은 힘이 구사하게 되어 근육이 이완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만큼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탁구장에 갈 때마다 서로 상대방의 실력을 가름해볼 수 있는 역량을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상태방의 컨트롤을 느끼면서 내가 때리는 리시브가 정확하게 상대방의 테이블로 향하는 볼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때 판가름할 수 있는 기본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드는 것같다. 하지만 기본적인 자세가 무척 중요하였으며 팔로 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밀어치는 동작과 팔굼치의 ㄱ자 형태의 자세, 그리고 굽힘 정도가 무척 중요했다. 탁구공을 바르게 치는 것이 아닌 옆으로 치게 되는 자세야말로 매우 중요했고 그것이 한 번으로 교정되는것이 아닌 수없이 많은 반복으로 익숙하게 몸에 달라붙게 된다.
  여기서 이 과정을 생략하고 경기를 해 왔던 내 경우 기본적인 자세. 즉 기본기가 부족했었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 따른 실력차이를 월등히 느끼었는데 내게 있어서 주변에서 자세를 바르게 갖으라는 주문들을 받기 시작하였다. 

  혼자서 탁구는 칠 수 없었다. 내가 집에서 탁구를 치면서 익혔던 것은 기본기에 입각한 경우가 아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며칠 동안은 전혀 경기에 임하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번번히 공을 때리면 빗나가고 말았었다.

2. 라켓을 쥔 손가락들이 몸살을 알기 시작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연습으로 인하여 손가락 힘만으로 버티고 있여야 하는 탓에 손을 폈다가 쥐었을 경우 뼈마디가 쑤시는 것이고 그 통증은 고통을 수반하였다. 라켓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고 그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 꺽인 손목 부위와 손가락의 마디에 심한 관절염은 지속되었으며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탁구를 치기 전부터도 컴퓨터 작업으로 인한 오른 쪽 손에 터널증후군의 전적이 따라 다녔었고 그 통증에 다시 탁구를 치면서 꺽인 각도로 라켓을 잡는 기본 자세의 연이은 행동으로 인하여 증폭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참는 과정에서 계속하여 탁구에 대한 매력에 빠졌는데 그로 인하여 오른 손은 증상이 악화되는 듯 더욱 아파왔었다.

19. 새로운 모험

새로운 변화를 갖는다는 건 그만큼 큰 모험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생활은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불안스럽고 두렵게 느껴지게 만든다는 점일 것이다.

  변화를 갖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자기만족의 일상을 최고로 받아들이게 되는 나이였다. 그 이유는 중년을 넘어서면서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자기만의 고립과 단절을 뜻하기도 하고...
 그 테두리에서 생활을 하면서 어쩌면 그 영역 안에서 변화를 싫어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왔었다.
  '아, 지금까지의 이 고립되고 단절된 세계에서 나는 얼마나 변화를 모르고 살았던가!'
  탁구를 치게 되면서 동호회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릴 수 밖에 없는 환경. 아마도 그들과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탁구 경기가 내 운명을 송두리 체 바뀌게 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 왔던가!
  직설적으로 말하면, 단순한 생활을 즐기게 되는 것처럼 한 마디로 고지식한 노인네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여기서 사실상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면 그 모습이 고치속에 들어가 있는 누에고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면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전체적인 늙음으로 퇴색한 모습.
  그런데 이런 내 모습에 대한 것도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탁구 동호회에 찾아가면서 사람들과 사귀는 과정 중에 남을 향한 배려가 바로 그것이었다. 서로 탁구 경기를 한 것뿐인데 상대방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 버린 느낌.

 30. 탁구를 치러 가는 시간을 변경한다.

1. 탁구를 오후 5시 30분 경에 체유관으로 치러 갔다. 하지만 사람이 없어서 (두 사람과 레슨을 받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자동 투척기에서 몇 번 사용하곤 레슨을 받는 학생 두 명과 잠시 주고 받기만 했을 뿐 결국 7시도 못 되서 집에 돌아 왔다.
  어쨌튼 이제부터는 야간 잔업에 지장이 없게하기 위해서 일찍 갔다 오겠다고 생가 했었다. 그러므로 탁구를 치는 시간을 변경하게 된 것이다.
2. 탁구를 치려고 체육관 탁구실에 가게 되면서 야간 작업을 하지 못해 왔던 것을 조절하려는 것은 그만큼 필요성을 느껴왔다고 할까? 앞으로 계속하여 이렇게 일찍 나오려고 한다. 그렇지만 함께 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미리 전화로 연락하여 나와서 치게 하는 게 유리할 듯도 싶다. 
3. 처음에 탁구를 치러 갈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시간 조절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전과 같이 늦게 치지 않으려고 한다.
4. 탁구는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연습을 해도 완벽할 수가 없었고 상대에 따라 실력이 차이가 나기 마련이었다. 내가 점심시간에는 지하실에서 혼자 애니퐁 기계로 자동투척기를 가지고 연습을 하는 게 유인한 연습 방법이기도 하였다. 여전히 두 사람이 칠 수 있는 관계로 짝을 만나서 연습을 하기 힘들어도 당분가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게 급선무같다.

31. 탁구를 치게 되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1. 오늘은 체육관에 오후 5시 30분 쯤 도착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칠 사람이 없어서 기다리는 동안 자동투척기 앞에서 날아오는 공을 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운동이 되지 않는다. 레슨 선생은 나와 있었고 젊은 학생들도 보이는 고등학생 남자 둘과 대학생 여자 한 명이 차례대로 레슨을 받고 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혼자였다.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
  탁구는 둘이 아니면 칠 수가 없다보니 무천 난감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처럼 일찍 나와서 치고 가려니 상대가 없다는 점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는 멋적은 일이 발생하게 되다니...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운동으로 탁구를 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7시에 체육관에서 나와 주차장에 세워 둔 차에 시동을 튼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나오는 시간이었다. 다른 한 사람이 가방을 들고 주차된 차에서 나와 체육관으로 향하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본다.
  그처럼 나와 다른 사람들. 이들은 퇴근을 하고 난 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난 뒤 체육관에 나올터였다. 하지만 나는 먼저 탁구를 치고 집에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 야간 작업을 하여야 할 처지였으므로 한참 다른 견해차이를 갖게 되는 것이다.

2. 탁구를 치게 되면서 운동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가장 주목할 점은 땀이 굉장히(무척) 많이 난 다는 사실이었다.
  겨울인데도...
  그래서 집에서 나오기 전에 입고 있던 내복과 메리야쓰까지도 벗어야만 한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바지는 얇은 여름 바지와 웃옷은 반팔로 탁구를 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 도중에 땀을 너무 흐르므로 배출이 되지 않아서 후줄근히 젖게 되므로 오히려 옷을 입지 않는 게 유리했다. 어제와 오늘은 검은 반팔 T셔쓰와 바지는 얇은 여름 바지였다. 모두 검정색이었고 웃옷은 땀을 배출한다는 운동복이었다. 아들이 놓고간 땀 배출 운동복은 윤기가 흐르고 몸에 착 달라 붙는 느낌이 든다.
  이 옷을 입으면 내 몸매가 한층 좋아 보인다.
3. 글을 쓰기 위해 방안 텐트 속에 들어와 있었다.
  바닥에는 전기장판을 켜 놓고 그 위에 앉은뱅이 의자를 걸쳐 놓은 상태로 몸을 의자에 기대 앉아서 이불을 무릎까지 올린 위에 앉은뱅이 책상을 펼쳐서 그 위에 노트북을 켜 놓고 IP Time 공유기를 통하여 무선으로 연결된 인터넷으로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데 정신이 너무 맑아서 한없이 글을 쓸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이렇게 정신이 맑기전에는  나는 오랫동안 흐리멍텅한 생각으로 오락가락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이유는 고혈압 증상 때문이었다.

32. 터널 증후군
손목 앞쪽의 작은 통로인 수근관이 좁아지면 여기를 통과하는 정중신경이 눌려서 정중신경 지배 영역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네이버 지식백과] 수근관 증후군 [carpal tunnel syndrome]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오른쪽 손가락들중에 중지 부분을 굽히게 되면 통증이 시작된다.
주먹을 쥐었을 때 그 안쪽에서 구부리면 구부릴수록 더 심하게 자극이 전달되어 굽히지 못하고...
탁구 동호회에 나가게 되면서 라켓을 잡은 그 손가락이 더욱 심해졌다.

라켓을 쥘 때 손목을 구부려 잡고 힘껏 드라이버샷을 치게 되면 어깨가 빠지는 것처럼 힘이 들어 가기 마련이었다. 그렇다면 탁구를 치던가 베드멘트를 치는 사람들에게 심한 통증을 나는 흘러 넘기곤 했었는데 그 증상이 서서히 시작되는 건 아닐까?
  컴퓨터 자판을 칠 때조차 느낌이 좋지 않았습니다. 터널 중후군이라는 손가락의 통증은 마우스를 쥐어도 뒤따라 다니게 되는데 편집을 하게 되면 더욱 많은 과로가 누적되어 왔던 과거의 전적. 이후 오른 쪽 손은 어깨까지도 무겁게 짖눌리는 근육의 경직으로 시달려 왔었다. 그것은 직업병과도 같았다. 편집 디자인 작업을 할 때마다 마우스를 쥔 손목에 계속하여 통증을 유발했었던 것이다.

  올 해부터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오른손의 통증을 나는 무시한 체 탁구를 다시 치러 동호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 증상이 뒤따라 다녔지만 어쩔 수 없이 묵인하게 되었다. 탁구를 치기 전에 따라 다니던 팔목과 어깨에 결림이 약간 있었고 손가락을 꽉쥐지 못하는 아품으로 주먹을 쥐는 게 불편하였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나이 탓도 있었다.

20. 탁구를 치기 시작하면서 좋아진 점은?

몸이 건강해 지면서 정신도 맑아 졌다는 점.
  몸이 무척 가벼웠다.
  하지만 점심시간에는 J 건물 지하실에 있는 자동탁구투척기를 사용하여 치는 연습을 하였고 저녁에는 체육관으로 향했지만 시간을 조정하여 5시 쯤에 가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야간 잔업을 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같다. 이것은 사업적인 경영상의 문제였다. 탁구를 치게 됨으로스 야간 잔업에 지장을 초래하게 됨으로서 진도가 나가지 않게 되면서 극약처방을 내려야만 하는데,
  “탁구를 치느냐? 그렇지 않고 일찍 가서 치고 오느냐?”
  하는 두 가지 선택 중에 후자를 고른 것이지만 사실상 그렇게 조정한 시간대에 사람들이 탁구를 치러 오느냐? 하는 게 관건이었다.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나와 같은 처지에 탁구를 치러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므로 조금씩 적응할 필요가 있었다. 자동탁구기계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일 테지만 집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구태여 체육관에 가서 똑같이 기계를 보고 치는 것이 조금 싫증을 느끼는 중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하에서는 별 수 없었다.
  어제도 사람이 없어서 자동기계와 연습을 하게 되었지만 그다지 싫지는 않는다. 다만 인내가 필요할 뿐이지...

34. 건강의 조건

건강이 무척 좋아졌다는 건 그만큼 의욕이 높음을 뜻한다.
탁구를 치면서 땀을 흘리고 난 뒤 자연스럽게 건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 운동이 부족했다고 느끼는 것을 탁구를 치면서 한껏 방출되는 육체적인 엔돌핀과 함께 살아 나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충전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지만 기계제작이라는 본업과 시간대가 충돌한다.
야간잔업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납기가 늦어지게 되었으므로 어제는 오후 5시 쯤에 체유관으로 향했고 7시에 돌아 왔지만 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을 고수할 셈입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다시 야간잔업을 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야간잔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2. 이사를 하게 될 것같다.
  J 건물에 14일 정도에 나간다고 통보를 받았다. 전화로...

35. 아들과 탁구 경기를 벌이면서...
  아들이 함게 일을 하게 되었는데 작업 지시를 내리려고 하다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출석테크하는 것조차 잃어 버리고 지금 오후 10시 56분에서야 하게 된다.
  탁구를 아들과 함께 치게 되었는데 점심 식사후에는 내가 졌고 저녁 식사 전에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하면서는 다섯 경기 중에 네 경기를 이겼다. 탁구 라켓을 바꿨을 뿐인데 이상하게 경기가 나아진 것이다. 그런 결과를 놓고 볼 때, 매일 연습한 노력이 이상하게 허사임을 깨닫는다. 그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 건 이상하리만큼 집중력이 떨어진다.
이것은 연습할 때와 매우 다르다.
경기 때는 매사가 조심스럽기만 하여서일까! 아니면 순간적으로 모두 다른 결과를 얻게 되서라고 할까?

36. 아들과 탁구 경기를 벌이면서... (2)

1. 아들과 탁구 경기를 벌이면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들이 함께 기계 제작에 참여하다가 점심 식사 후에 J 건물 지하실로 탁구를 치러 갔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와서 기계 제작 일을 돕는 아들. 하지만 하루에 일당 8만원씩 내게 받게 되는 것이므로 함께 일도 하고 탁구를 치게 되는 것인데...
  사실 내가 다니게 된 동호외에서 20만원을 주고 구입한 탁구 라켓 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값싼 라켓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좋은 라켓을 누가 잡느냐? 에 따라 승리가 바뀌었다.

2. 탁구를 치는데 라켓이 승패를 좌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과 내가 경기를 벌이게 되면 박빙의 치열한 접점이 이루워 지게 된다. 어느 한쪽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시이소 게임.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탁구 라켓은 20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 반면 다른 것은 두 개 만원 정도의 값 싼 제품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한 쪽이 탁구 라켓을 좋은 것으로 잡느냐? 에 따란 승리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라켓 자체에 재질과 겉 표면에 붙은 러버의 재질 차이였다. 탁구 라켓이 20만원이나 되냐? 고 반문하겠지만 사실상 그 차이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건 경기를 치를 때와 연습을 하면서 뛰어난 타구감이 있었다. 그만큼 전문적으로 손의 감각에 의하여 깨닫게 된다.
   이것은 라켓의 상태에 따라서 탁구볼을 받아 넘길 때 받아 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중요한 순간 배합되어 나오는 타구감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좋지 않은 라켓으로는 받아 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됨으로서 의욕을 잃어서 승기를 잡지 못할 경우 그만큼 라켓의 중요성을 관과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이것은 실력 차이에 연유되는 것과는 별개였다.  그야말로 경기를 하면서 형편없이 지게 되는 경우를 맞이함으로서 의욕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자신의 실력의 향상에 주력하기 보다 라켓으로 인해서 패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기에 이른다. 이런 모든 사실은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 탁구를 자주 치게 됨으로서 여러 가지 조건에 부합하여 상대편에서조차 자신과 탁구를 치지 않으려고 들고 탁구공도 시합공으로 별표가 세 개짜가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고 훌쩍 가버리는 게 예사였었다. 그러므로 탁구를 치는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준비를 갖출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든 사실을 김 만수는 전혀 알고 있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체육관 다목적실에 탁구를 치러 가면서 서서히 깨닫고 말았다.

37. 탁구를 치면서.. (2)

탁구 동호회에 탁구를 치게 되면서 보다 현실적인 얘기로 들어가게 되면 무엇보다 여러가지 문제점과 부딪히게 됩니다.
우선 첫 번째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낫선 환경에 접할 때마다 의례히 갖게 되는 불안감입니다. 체육관 다목적실에 처음 찾아 가게 되었을 때 입구에서 두 개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 섰을 때 안으로 들어서기 위해 세 개의 내부 갈림길이 있었지만 첫 번째로 들어 간 뒤에 원형의 건물 내부에서 복도를 따라 걷다가 두 번째의 복도를 만나서 다시 돌아 나오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다용도실의 세 번째 문으로 들어선 이유도 사실은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의 부족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탁구 좀 칩시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초자였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 개월에서 수 년간 동호회에 참여한 사람이었고 서로 간에 실력 차이가 고수라는 사실을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는 아들과 경기를 하였을 때 제법 호적수였지만 그것을 우물안 개구리일 뿐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밑바닥이라는 생각이 들고 레슨조차 받지 않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을 탁구 실력일 뿐이었지요.
  세 번째는 탁구 라켓과 탁구공이었습니다.
  내가 갖고간 탁구 라켓은 옥천 중학교 앞의 체육센타에서 파는 일 만원에 두 개를 구입한 것이었고 탁구 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것으로 탁구를 칠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30분 뒤에 한 아주머니와 빈자리에 들어가서 포핸드롱으로 서로 공을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어찌된 일이지 내가 치는 공은 레트에 걸리고 번번히 상대쪽 테이블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어이쿠, 미안합니다. ”
  실수를 연발할 때마다 내가 무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고 라켓이 그렇다는 것을 아들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어서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 동년배로 보이는 남자에게 무례하지만 빌려서 칠 수 있었답니다.
  “탁, 탁, 탁!”
  빌린 라켓으로는 이상하게 상대 테이블로 잘 들어 가는 게 아니겠어요.
 
  옥천 탁구 동호회에 참여하게 된 연유는 사실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대전 연구단지 근처의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들이 퇴근 후에 회사 구내의 탁구장에서 취미로 탁구를 친다고 하는 데 실력이 부쩍 늘어서 이제는 연속하여 패배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던 것이지요!
  “아빠, 그런데 탁구 라켓이 좋은 건 잘 나가요!”
  “그럴리가... 라켓이 다 똑 같은 거 아니니?”
  “아녀요. 그렇지 않은 게 회사에서 아는 사람이 라켓을 빌려 줘서 갖고 왔는데 그걸로 치는 거예요.”
  하면서 자신이 회사에서 갖고 온 라켓을 주면서 한 번 쳐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그 때까지도 내가 아들에게 탁구 경기에서 지는 게 단순하게 라켓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문득 들면서  빌려 친 탁구채를 주인에게 돌려 주면서 첫 날에는 그렇게 체육관에서 재미 없이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1년치 회비로 15만원을 냈고 20만원을 주고 탁구 라켓을 구입하였으며 다시 2만원을 추가로 들여서 탁구공을 구입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씩 레슨을 받고 1개월에 10만원을 지불하는 레슨은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지불하는 돈이 최소한의 지출이며 동호회 중에서 탁구가 가장 돈이 들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처음이었고요.

  다목적실에 있는 탁구장을 찾게 된 첫 날의 기억은 3주가 넘어가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가는 시간을 오후 5시 30분으로 바꾸고 6시 30분 정도에 집에 돌아옵니다. 저녁 식사 후에 야간 잔업을 하는 개인사업의 본업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조정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이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다보니 탁구 기계 앞에서 홀로 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개인기를 우선 완벽하게 익힌 뒤에 게임을 임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동호인과.
  “포핸드롱”을 자주 치게 됩니다.
 탁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기술이면서 길게길게 치게 됩니다. 동호인들이 탁구를 처음 배울때 가장 먼저 배우는 기술이지요. 한마디로 두 사람이 길게 서로 주고 받으면서 탁구를 치는 기술입니다. 아마도 탁구에 꽃이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로 자주 접할 수록 개인기가 늘게 됩니다.

몸을 풀거나 감각을 익힐 때, 익숙한 동작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동작을 반복적으로 치게 되는데 이 때 주고 받는 형태가 타구감을 살리게 되면서 힘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제가 탁구장에 찾아 갈 때마다 의례히 두 사람이 치는 포핸드롱에 온 힘을 몰아치는 이유는 정식 경기에 앞서 몸을 푸는 과정이기도 하면서 많은 힘이 구사하게 되어 근육이 이완된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만큼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탁구장에 갈 때마다 서로 상대방의 실력을 가름해볼 수 있는 역량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상태방의 컨트롤을 느끼면서 내가 때리는 리시브가 정확하게 상대방의 테이블로 향하는 볼을 바라보게 되는데 이때 판가름할 수 있는 기본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개인기가 자리를 잡힐 정도는 되었고요.

PS:  1.  혼자서 탁구는 칠 수 없었습니다.
  집에서 탁구대가 있었고 탁구 로봇이 설치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실전에 임하면 경험부족으로 패하곤 했었던 것을 깨닫게 되면서 “포핸드롱”으로 탁구 동호회에서 상대방과 마주보면서 조언을 하는 동호인들의 도움으로 이제는 기본기가 갖춰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습니다.

  2. 라켓을 쥔 손가락들이 몸살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연습으로 인하여 손가락 힘만으로 버티고 있여야 하는 탓에 손을 폈다가 쥐었을 경우 뼈마디가 쑤시는 것이고 그 통증은 고통을 수반하네요.
   라켓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주고 그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 꺽인 손목 부위와 손가락의 마디에 심한 관절염은 지속되었으며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탁구를 치기 전부터도 컴퓨터 작업으로 인한 오른 쪽 손에 터널증후군의 전적이 따라 다녔었고 그 통증에 다시 탁구를 치면서 꺽인 각도로 라켓을 잡는 기본 자세의 연이은 행동으로 인하여 증폭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참는 과정에서 계속하여 탁구에 대한 매력에 빠졌는데 그로 인하여 오른 손은 증상이 악화되는 듯 더욱 아파왔습니다.

  3. 이것은 제가 탁구 동호회에 다니면서 탁구에 대한 극복기입니다.
  이제 시작된 탁구가 중독자가 된 것처럼 발걸음을 매일 체육관 탁구장으로 향하게 합니다.
  피나는 노력을 어느 정도 이루게 되면 고수가 될까요!
  저의 탁구 입문기에 대한 글을 다시 올리게 되면 좀 더 재미 있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서스펜스”로 기술하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워 봅니다.
서스펜스-(연극이나 영화에서 줄거리나 기교의 발전이 독자나 관중에게 불안과 긴장을 주어 관객들의 흥미를 북돋워주는데 이 기법을 서스펜스 기법이라고 한다. 추리소설의 한 분야로 보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스펜스 [suspense] (드라마사전, 2010., 문예림))

21. 탁구를 치는 모습을 관찰해 보면서...

탁구를 치는 모습을 자세하게 관찰해 보다보면,
  “어떻게 인간이 신의 능력을 훔칠 수 가 있단 말인가!” 할 정도 놀라게 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몸부림쳐서 신과 한몸이 되고저 하는 최고의 경지를 보는 듯 싶었습니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찰라의 모양을 표현해 내려고 그만큼 수없이 많은 연습과 노력을 기울였단 말입니까? 공 하나에 실려 있는 감동의 여운. 그 곳에 상대방에서 라켓으로 쳐 올린 온갖 노력과 땀 방울들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네트를 간만의 차이로 넘어서 상대방의 진영(테이블)으로 맹렬하게 돌진합니다. 네트를 넘어가면서 회전을 하게 되는데 이 회전으로 테이블과 네트를 넘기는 기막힌 기술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라켓을 가지고 공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치는 드라이버가 한 순간 멋지게 장열합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전광석화처럼 다시 피어 오르기 시작하지요!
  멋진 타격으로 공은 회전을 하면서 다시 상대방의 진영으로 골인합니다. 이 강력한 드라이버가 승패를 가름합니다. 그 포물선의 끝에 도달할 즈음 다시 온갖 기교와 힘을 실린 그야말로 멋진 드라이브 공격이라는 찬사가 주변에서 쏱아집니다.
  “나이스!”
  “멋진 드라이브네요!”

  상대는 탁구 공이 찰라의 순간 전광석화와 같이 테이블에 맞고 달아 나고 말았고 그것을 줏기 위해 쫒아 가면서 자신의 방어 체계가 무너 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강력한 공격에 그야말로 전의를 상실할 정도로 위축이 들지요. 이 때부터 게임은 선점을 고지빼앗은 자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패자가 되기 직전 마지막에 전의를 불사르면서 지고 있던 선수가 갑자기 게임을 듀스(deuce)까지 몰고 가게 됩니다.
  “듀스!”
  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지금까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환히가 낙담으로 변합니다. 반면 B는 기적처럼 재활한 자신이 최고로 사기가 충전합니다. 이 모든 상황은 어쨌튼 똑같은 탁구 선수가 부딪히는 희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엇갈릴 수 있는 건 그 날의 운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투지였습니다.
  A 씨는 한 게임을 이겼고 B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3라운드에서 두스가 되었지만 승리의 연신은 결국 A씨에게 승리를 안겨 주웠고 그는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탁구 경기를 올림픽에서 가끔씩 목격을 하기도 합니다. 
자, 그럼 좀더 자세하게 그 내막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이번에도 반대편에서 A 씨의 멋진 서비스 공격이 이어집니다. 왼 손으로 공중에 띄운 위에 오른 손으로 라켓을 비틀면서 순식간에 비스듬히 내려 쳤스빈다.
  “탁!”
공에 강력한 회전이 걸리면서 상태쪽 테이블을 맞고 왼 쪽으로 휘었습니다. 이것을 B 씨는 푸시로 밀어 넣지 않고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렇지만 공이 넷트에 걸렸네요. 좀 아깝지만 그는 이번에 자신이 서비스를 칠 차례였으므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탁!” 소리와 함께 강력한 왼 쪽으로 휘어지는 서비스를 보낸다는 게 네트에 걸리고 맙니다.
  이 부분에서 서비스 공격은 간단하게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드는 최고의 무기가 됩니다. 방어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서비스 공격보다 오히려 상대방의 눈속임을 그대로 믿고 말았고 회전이 걸린 볼을 받아 치게되는 실수를 하게 되었던 것이 패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탁구는 서비스 공격에서 자신의 필살기를 넣는 기술을 구사하는데 여기에 속고 속이는 눈 속임의 변칙이 존재합니다.
  길고 강하냐?
  그렇지 않고 회전이냐?
  이런 강약 조절외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구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탁구에 있어서 경이로운 점은 이 서비스에 회전을 거는 기술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대방이 회전이 걸린 공을 치지 못하게 하는데 약간의 눈 속임을 갖도록 라켓을 쥔 손을 비틀기도 하고 똑바로 들기도 하여 그것이 물 속에서 고기들이 흰 비늘이 있는 옆면을 번들거리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신과 가까이 갈 수 있는가 하는 차이점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된다.
  '나도 열심히 노력을 하면 저 정도에 언젠가는 이르게 되겠지!' 하는 선입감. 그러나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에 대한 훌련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처럼 신을 빰칠 수 있는 능력을 갈고 닦게 되면 미완성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뭇 람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리라는 사실만으로 한껏 부품어 오르기 마련이었다.

  탁구를 치며서 온몸이 흠씬 땀으로 젖을 때 그야말로 세상의 번뇌와 시름을 잊게 될 정도로 심취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실력을 견주는 1대 1의 대결에서는 내 실력은 상대와의 경기에서 무참하게 패배를 당하기 마련이었다. 그 패배 원인은 기술의 부족이었고 기본기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일 정도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볼 때는 나도 언젠가 저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심리까지 갖을 정도입니다.

기계를 만들고 컴퓨터를 갖고 있지만 탁구는 그와 또 별개 입니다.
한마디로 탁구 외에는 모든 게 부질없고 오직 한가지 이곳에서는 탁구 실력으로 인간을 판가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곳에서는 탁구실력만 가지고 사람을 평하한다는 생각. 그러므로 실력이 없으면 업신 여기고 괄시를 받게 되며 놀림감일 뿐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편애가 물씬 일어 나게 됩니다.
  탁구를 잘치는 사람이 유일무일한 존재.
  과거의 경력 위치, 업적, 현재의 지위, 계급 직급, 직업등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탁구에 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더 잘해야만 잘 치는 축에 끼이게 될까요!'
  그런 비교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결과일 것입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의 경우 자존심이 상하고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위축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A 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서는 신을 바꿔 신고 와야만 합니다.”
  물론 당연히 그렇게 하여야만 하지요.
  그러다보니 집에서 부터 운동화로 갈아 신고 왔지만 사실은 이곳 입구에서 부터 신발장이 있었고 가방을 갖고와서 신을 갈아 신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던 나의 무례함에 대하여 그가 한마디 한 말을 나는 고깝게 듣고 계속하여 그를 볼 때마다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꽃힙니다. 그리고 내가 적어도 이곳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며 자숙하지 않을 수 없는 여러가지 입지조건에  대하여 그야말로 시다발이처럼 행동해야만 한 것같았습니다.

탁구 실력만으로 사람이 평가 된다는 사실. 이것은 정말로 너무도 넘기 힘든 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적어도 늘지 않고 점점 더 벽이 커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아들에게도 앞으로 이기기 힘들게 될텐데 그것은 엄연히 실력 격차가 벌어져서 일 것입니다. 이런 실추된 명예에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여야 되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업적 등은 여기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실력이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최선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직업의 특성상 야간 작업도 매일 하여야 하는 형편이었고 이곳 탁구장에 1시간 내외로 와서 잠시 치고 가는 경우 언제 전문하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도 ㅉㅈ기고 저쪽에서도 쫒겨 다니게 됩니다.
어제 알고 있던 기술, 배웠던 <푸시> 조차 실전에서는 먹히지를 않았습니다. 어제 연습실에서 점심 식사 후에 혼자서 기계 앞에서 치던 중에 자신감에 충만했던 상태가 저녁에 이곳에 오게 되면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맙니다. 너무도 나약하고 손과 발이 떨려서 잘 되지를 않는 데 그건 아무래도 실력 차이가 너무도 커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경우의 인간 심정과도 같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 정도 였으니까요!
  어떻게 인간이 이렇듯이 극과 극의 실력차이를 보일까요!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 같아 보입니다.
  여기서도 쫒기고 저쪽에서도 쫒겨서 아무도 같이 칠 사라밍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으면서 함께 치자는 말도 하지 못하고요.

  이것은 참으로 난감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런 체면을 차리려고 이곳에 오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잘 치지는 못하지만 운동을 하려고 왔다는 믿음만큼은 확실하니까요.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좋다.’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만 있다면 이처럼 비참한 심정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부담만 일어 나게 되지요. 그런 체면을 차리려면 애초부터 나오지 않아야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로는 자격지심이 들고 주눅이 들어서 애긋은 내 자신에게 꾸짓습니다.
  ‘**야, **야, 너는 그동안 무얼 하였느냐? 탁구를 치지 않고...’
  쉽게 늘지 않는 실력차이 때문에 가뜩이나 불편한 심니가 꺽여 버립니다. 탁구를 치고 싶지 않아서 짝을 만자서 칠 수 없는 외톨이 신세가 한 동안 지속되자 제 풀에 꺽여서 가방을 챙기고 잠바를 걸치고 되돌아 나옵니다.
  “수고 하세요!”
  이 때 문에서 50대라고 자기를 소개하던 B 씨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그에게 말합니다.
  “함께 칠까요!”
  “왜, 벌써 가시게요?”
  “예... 아무도 칠 사람이 없어서...”
  “그러지 말고 이리 오세요!”
  그렇게 해서 그와 함께 짝을 이루워 단식 복식을 쳤습니다만 여지없이 참패를 당하였는데 그 원인은 내게 있었습니다. 커트볼을 처리하지 못하는 미숙함. 한 마디로 <푸시>라는 기본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결과였습니다. 내용을 알고 있지만 몸 동작으로 컨트롤이 되지 않았습니다.

  B라는 사람은 경기에 지고 나자 친절하게 <푸시>라는 기본 자세를 알려 줍니다.
  “탁구 볼이 회전이 걸려서 넘어 오면 라켓을 비스듬하게 잡고 중심 아래 쪽을 지긋이 밀어 주면 됩니다.”
  그런데 어찌 그것이 한 번에 고쳐질 것인가!
  그의 지도를 받으면서 나는 <푸시> 동작을 계속 연습을 했다.
  하지만 쉽게 배워 지지를 않았다.
  아마도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의 길은 더 길고 멀게 느껴지는 진정한 이유도 그것 때문일터...

탁구를 치는 모습을 자세하게 관찰해 보다보면,
  “어떻게 인간이 신의 능력을 훔칠 수 가 있단 말인가!” 할 정도 놀라게 됩니다.
  탁구공 하나에 실려 있는 아름다운 인간과 신의 몸동작이 돌연 제트기처럼 변화 무쌍하고 놀랍도록 날카롭게 내려 꽃힙니다. 유연하면서도 비수처럼 날까롭게 상대의 진영을 농락하기 위해 권모술수와 기교가 난무합니다. 지금까지 갈고 닦은 온갖 재주가 그야말로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사방에 튀어 나가는 것처럼 튕겨져 나갑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이 몸부림쳐서 신과 한 몸이 되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를 보는 듯싶었습니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찰나의 모양을 표현해 내려고 그만큼 수없이 많은 연습과 노력을 기울였단 말입니까? 공 하나에 실려 있는 감동의 여운. 그 곳에 상대방에서 라켓으로 쳐 올린 온갖 노력과 땀방울들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네트를 간만의 차이로 넘어서 상대방의 진영(테이블)으로 맹렬하게 돌진합니다. 네트를 넘어가면서 회전을 하게 되는데 이 회전으로 테이블과 네트를 넘기는 기막힌 기술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라켓을 가지고 공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치는 드라이버가 한 순간 멋지게 장렬합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이 전광석화처럼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하지요!
  멋진 타격으로 공은 회전을 하면서 다시 상대방의 진영으로 골인합니다. 이 강력한 드라이버가 승패를 가름합니다. 그 포물선의 끝에 도달할 즈음 다시 온갖 기교와 힘을 실린 그야말로 멋진 드라이브 공격이라는 찬사가 주변에서 쏟아집니다.
  “나이스!”
  “멋진 드라이브네요!”
  상대는 탁구공이 순간 전광석화와 같이 테이블에 맞고 달아나고 말았고 그것을 줍기 위해 쫒아 가면서 자신의 방어 체계가 무너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강력한 공격에 그야말로 전의를 상실할 정도로 위축이 들지요. 이때부터 게임은 선점을 빼앗은 자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패자가 전의를 마지막까지 불사르게 되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듀스(deuce)까지 몰고 가는 것이고…….
  “듀스!”
  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지금까지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환희가 낙담으로 변합니다. 반면 B는 기적처럼 재활한 자신이 최고로 사기가 충전합니다. 이 모든 상황은 어쨌든 똑같은 탁구 선수가 부딪히는 희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엇갈릴 수 있는 건 그 날의 운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투지였습니다.
  A 씨는 한 게임을 이겼고 B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3라운드에서 듀스가 되었지만 승리의 여신은 결국 A씨에게 승리를 안겨 주웠고 그는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탁구 경기를 올림픽에서 가끔씩 목격을 하는 상황이지요?
자, 그렇다면 좀 더 자세하게 그 내막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피 말리는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이번에도 반대편에서 A 씨의 멋진 서비스 공격이 이어집니다. 왼 손으로 공중에 띄운 뒤에 오른 손으로 라켓을 비틀면서 순식간에 비스듬히 내려 쳤고,
  “탁!” 소리와 함께 공에 강력한 회전이 걸리면서 상태 쪽 테이블을 맞고 왼 쪽으로 휘었습니다. 이것을 B 씨는 푸시로 밀어 넣지 않고 강력한 드라이브 공격을 가했습니다. 그렇지만 공이 네트에 걸렸네요. 좀 아깝지만 그는 이번에 자신이 서비스를 칠 차례였으므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탁!”
  소리와 함께 강력한 왼 쪽으로 휘어지는 서비스를 보낸다는 게 네트에 걸리고 맙니다.
  이 부분에서 서비스 공격은 간단하게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드는 최고의 무기가 됩니다. 방어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서비스 공격보다 오히려 상대방의 눈속임을 그대로 믿고 말았고 회전이 걸린 볼을 받아 치게 되는 실수를 하게 되었던 것이 패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탁구는 서비스 공격에서 자신의 필살기를 넣는 기술을 구사하는데 여기에 속고 속이는 눈속임의 변칙이 존재합니다.
  길고 강하냐?
  그렇지 않고 회전이냐? 이런 강약 조절 외에도 자신이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구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탁구에 있어서 경이로운 점은 이 서비스에 회전을 거는 기술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대방이 회전이 걸린 공을 치지 못하게 하는데 약간의 눈속임을 갖도록 라켓을 쥔 손을 비틀기도 하고 똑바로 들기도 하여 그것이 물속에서 고기들이 흰 비늘이 있는 옆면을 번들거리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 이번에는 ‘얼마나 신과 가까이 갈 수 있는가!’ 하는 앞서 말한 내용 중을 부언(浮言)설명하자면,
  ‘나도 열심히 노력을 하면 저 정도에 언젠가는 이르게 되겠지!’ 하고 막연하게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노력은 하지 않고서 결과만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구사하는 탁구 실력자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없는데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천재적인 재능도 필요할 것입니다. 나이 57세인 내가 탁구를 뒤 늦게 시작해서 고수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밤 10시까지 잔업을 하며 일을 하고 일요일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바쁜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건강에 이상 신호가 발생하자 탁구를 치면서 건강을 지키자는 알량한 생각을 갖고 도전을 한 것에 불과한 만큼 집중력과 시간적인 제약을 그 무엇보다 절감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노력을 해도 탁구 실력은 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대전에서 수백 명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에서 정시 근무를 하는 아들이 나보다 더 실력이 늘게 될 것을 확신하는 편이지요!
  탁구를 치면서 온몸이 흠씬 땀으로 젖을 때 그야말로 세상의 번뇌와 시름을 잊게 될 정도로 심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반팔 차림에 얇은 한 겹의 바지를 입고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땀이 얼굴을 흘러 내려서 안경까지 묻게 되고 온통 땀으로 범벅을 할 정도여서 집에서 내복과 두꺼운 겉옷조차 벗어 버리고 갈 정도입니다.

체육관 다용도실에 위치한 실내 탁구장에서 가끔씩 경기를 하게 됩니다.
  실력을 겨루는 1대 1의 대결에서는 내 실력은 상대와의 경기에서 무참하게 패배를 당하여 왔습니다. 그 패배 원인은 기술의 부족이었고 기본기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 때마다 낙담과 패배의 쓰라린 아픔이 사무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탁구장에서 나는 외톨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잡해 질 정도로 변합니다.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 이곳에서는 탁구 실력으로 인간을 판가름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 이곳에서는 탁구실력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구나!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이 최고가 되는 곳. 과거의 경력 위치, 업적, 현재의 지위, 계급 직급, 직업 나이 등이 아무 소용이 없고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하겠어.’
  그러므로 실력이 없으면 업신여기고 괄시를 받게 되며 놀림감일 뿐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편애가 물씬 일어났습니다. 이때 머릿속에 와 닿는 생각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탁구에만 전념하여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얼마나 더 잘해야만 잘 치는 축에 끼이게 될까요?’
  그런 비교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결과일 것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의 경우 자존심이 상하고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할 정도로 위축감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M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서는 신을 바꿔 신고 와야만 합니다.”
  “아, 그렇군요! 전 실내화를 바꿔 신는지도 몰랐습니다. 내일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고 다음 날부터 유치원에서 쓰던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탁구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신발을 바꿔 신게 되었지요.
  첫 날에는 집에서 부터 운동화로 갈아 신고 왔지만 며칠 뒤부터는 신발을 갖고 와서 바꿔 신고 탁구장에 들어 왔습니다. 자세히 바라보니 이곳 입구부터 모두들 신발을 갈아 신고 있었던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무례한 사람을 항상 바라보면서 그가 한마디 한 말을 고깝게 듣고 계속하여 그를 볼 때마다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꽂힙니다. 그리고 내가 적어도 이곳에서 생활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며 자숙하지 않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입지조건에  대하여 그야말로 초보자처럼 행동해야만 한 것 같았습니다.
  탁구 실력만으로 사람이 평가 된다는 사실. 이것은 정말로 너무도 넘기 힘든 벽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적어도 늘지 않고 점점 더 벽이 커지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아들에게도 앞으로 이기기 힘들게 될 텐데 그것은 엄연히 실력 차가 벌어져서 일 것입니다. 이런 실추된 명예에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여야 되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업적 등은 여기서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실력이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최선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직업의 특성상 야간작업도 매일 하여야 하는 형편이었고 이곳 탁구장에 1시간 내외로 와서 잠시 치고 가는 경우 언제 잘 치는 사람(고수)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도 저기서도 쫒게 다니게 됩니다.
어제 알고 있던 기술, 배웠던 <푸시> 조차 실전에서는 먹히지를 않았습니다. 어제 연습실에서 점심 식사 후에 혼자서 기계 앞에서 치던 중에 자신감에 충만했던 상태가 저녁에 이곳에 오게 되면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맙니다. 너무도 나약하고 손과 발이 떨려서 잘 되지를 않는 데 그건 아무래도 실력 차이가 너무도 커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경우의 인간 심정과도 같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 정도 이었으니까요!
  어떻게 인간이 이렇듯이 극과 극의 실력차이를 보일까요.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 같아 보입니다.
  여기서도 쫒기고 저쪽에서도 쫓겨서 아무도 같이 칠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으면서 함께 치자는 말도 하지 못하고요.
  이것은 참으로 난감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런 체면을 구기려고 이곳에 오지는 않았습니다.
  적어도 잘 치지는 못하지만 운동을 하려고 왔다는 믿음만큼은 확실하니까요.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좋다.’ 라는 말처럼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만 있다면 이처럼 비참한 심정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부담만 일어나게 되지요. 그런 체면을 차리려면 애초부터 나오지 않아야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로는 자격지심이 들고 주눅이 들어서 애긋은 내 자신에게 꾸짖습니다.

 쉽게 늘지 않는 실력차이 때문에 가뜩이나 불편한 심기가 그만 좋지 않았습니다. 탁구를 치고 싶지 않아서 짝을 만자서 칠 수 없는 외톨이 신세가 한 동안 지속되자 제 풀에 꺾여서 가방을 챙기고 잠바를 걸치고 되돌아 나옵니다.
  “수고 하세요!”
  이 때 문에서 50대라고 자기를 소개하던 D 씨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그에게 말합니다.
  “함께 칠까요?”
  “왜, 벌써 가시게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예, 아무도 칠 사람이 없어서…….”
  “그러지 말고 이리 오세요!”
  그렇게 해서 그와 함께 짝을 이루어 단식 복식을 쳤습니다만 여지없이 참패를 당하였는데 그 원인은 내게 있었습니다. 커트 볼을 처리하지 못하는 미숙함. 한 마디로 <푸시>라는 기본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결과였습니다. 내용을 알고 있지만 몸동작으로 컨트롤이 되지 않았습니다.

  D라는 사람은 경기에 지고 나자 친절하게 <푸시>라는 기본자세를 알려 줍니다.
  “탁구 볼이 회전이 걸려서 넘어 오면 라켓을 비스듬하게 잡고 중심 아래쪽을 지긋이 밀어 주면 됩니다.”
  그런데 어찌 그것이 한 번에 고쳐질 것인가!
  그의 지도를 받으면서 나는 <푸시> 동작을 계속 연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배워 지지를 않았지요.
  아마도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의 길은 더 길고 멀게 느껴지는 진정한 이유도 그것 때문일 터…….
노력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그처럼 (신의 수준) 높은 기술을 구사할 능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는 보장을 받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나도 열심히 노력을 하면 저 정도에 언젠가는 이르게 되겠지! 아마도 10년은 걸릴까?’ 하며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22. 지하실에서 탁구를 치면서...

1. 지하실 탁구대 위에 올려 놓은 애니퐁 자동 탁구 투척기계 앞에서 연습을 하기 위해 점심식사를 마치고 도착했다. 이곳은 지금 살고 있는 A 라는 공장과는 500여미터 떨어져 있었으므로 하천을 따라 둑방길로 차량을 타고 왔다. 보통 때는 자전거로 왔었다. 그런데 하천이 얼어붙을 정도로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는 밖의 날씨에 엄두가 나지를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 건물에 온 이유는 진돗개 한 마리가 묶여서 집을 보고 있었으므로 개밥을 주기 위해서기도 했다.
  “하루에 한 번씩 주세요! 많이 먹지는 않지만...”
  전주인이 이사를 하면서 놓고간 개였다.
  “원만하면 갖고 가시죠!”
  내가 필요 없다는 듯이 말했었다.
  “이사가는 곳이 연립인데... 기르고 싶어도 둘 곳이 없어서...”
  “그럼, 팔면 되잖않요?”
  “개 장사에게 팔면 죽일거 아녜요! 그럼, 죽어서 개고기를 먹는 보신탕에 갈테고...”
  “우리는 개가 크면 사료를 많이 먹어서 안 키우려고 합니다만...”
  그렇게 말을 했지만 나는 놓고 가면 키운다고 언급을 하였었다. 전에 사료가 없어서 집에서 한 번씩 주고가곤 했었다. 사료통에 들어 있던 사료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이들 주인들도 한 동안 집에 기거하지 않는 듯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곳에 가서 이사를 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짐작을 하게 했었다.
  이곳은 크고 썰렁하여 집을 지키는 개가 있으면 그나마 낫설은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개가 있는 곳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이었다. 그러므로 큰 개가 짖는 소리를 듣고 접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2. 어제는 마침내 감시 카메라를 B라는 건물에 전원을 연결하였다. 전원선이 나와 있는 곳이 2층 거실에 있었으므로 내가 갖고 있던 감시 카메라 영상기에 연결을 시켰더니 4개의 코드 중에 2개는 연결이 되지 않았고 2개만 화면이 뜬다. 4체널 영상기를 구입해 놓고 설치를 하지 않고 갖고만 있었는데 마침 전 주인이 이사를 한 뒤에 벽에서 빠져나온 4개의 선을 찾아서 영상기에 끼웠던 것이다. 사실상 이곳은 건축 자재 판매소를 하던 곳으로서 감시 카메라가 4 곳이나 설치된 상태였지만 가게가 문을 닫으면서 사용은 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아무래도 관리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또한 법원에 경매가 신청되면서 복잡한 심경으로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었다.
  내가 외부에 설치되어 있는 감시 카메라를 이용하여 영상기를 연결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간단했지만 여러가지로 볼 때 외부에 설치하는 공임은 들지 않았으므로 무척 기뻤던 것이다. 이 B라는 건물 자체도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A라는 건물과 비교해 볼 때 전혀 다른 고급 주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모든 시설과 자재들이 고급스럽고 깔끔했다.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모든 게 꿈만 같은 이유는 두 건물의 비교를 할 때 한 쪽은 돈이 들지 않은 허름한 저택인 반면 반때쪽은 모든 시설이 돈이 많이 들은 고급주택의 품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방수, 방음, 내외장의 모든 게 극과 극을 이룬 것처럼 차이가 났다.
  아마도 아내가 르런 집의 외향을 보고 탐이 났을 테지만 사실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비교해 볼 때 여러가지로 고급스럽고 품위가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봉을 잡은 것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과언은 아니었다.
아마도 이곳에 살게 되면 늘 행복할 것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2층이 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이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겨울철의 보일러 비용이 비싸게 드는 한 가지 이유라고 할까? 한겨울에 이사를 하는 것도 조금은 불편할 것이고 월 50만원이나 들 것같은 LPG 가스 난방비가 걱정이었다. 

3. B 건물 지하실에서 기계로 탁구를 치는데 드라이버 기술을 사용하여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것을 본다. 이렇게 힘껏 치게 되는 멋진 드라이버 샷을 때리기까지 나는 꽤나 애를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알려 주지는 않는다. 내가 스스로 다른 사람이 치는 것을 보고 배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좋은 이유는 모든 컷트볼에 통한다는 점이었다. 커트로 들어오는 볼을 드라이버 샷으로 때리게 되면 그 자체를 무시하고 상대 코트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갈 수 있었다. 푸시로 갖다 대주는 것은 그야마로 드라이버 기술로 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다를바 없었다.

  탁구에 있어서 기술도 물론 필요했지만 상대를 속이는 기술이 한편으로는 중요한 이유였다.
 날아오는 볼을 쳐다보면서 라켓을 기울인체 머리끝까지 강하면서 순간적인 동작으로 때리자, 놀라웁게도 포물선을 그리면서 반대편 코트에 꽂히곤 했다.
  ‘아, 이제 되었구나!’
  나는 드디어 탁구에 있어서 가장 멋인는 타구인 드라이버샷을 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40. 땀에 절도록 탁구를 쳤다.

어제는 출장으로 하루를 보냈다. 집에 돌아오니 오후 5시 30분. 저녁을 마치고 탁구장을 찾았다. 그리고 온몸이 땀에 절도록 탁구를 쳤으니...
땀이 흠씬 몸에 배어나게 되면 피부가 좋아지는 것같다. 얼굴에 다시금 땀 샘이 터지면서 혈색이 돋는 것처럼 반들거리는 느낌. 하지만 여전히 흰 머리칼과 대머리는 나를 나이들어 보이게 한다.

23. 아, 오늘 하루 무엇을 했나?

1. 출장으로 보낸 하루.
아침부터 경산의 D.U라는 공장으로 출장을 갔다. 기계를 어제부터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여 기계 A/S를 나가는 것이다.
  어젯밤 10시까지 일을 하고 난 뒤 12시에 잠자리에 들었었다. 저녁 6시에 일을 끝내고 탁구를 치러 가지 못했는데 다음날 출장이 걸려 있었으므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야간작업을 하였다.

1톤 화물차를 운전하여 ‘경산IC’를 나와 목적지인 상대공단내에 D. U 라는 공장에 도착하자 오전 11시가 되었다. 기계의 고장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추운 날씨에 반복적으로 이동을 하는 기계의 전선이 부드럽지를 못하여 부러져서 결선이 일어난 것이 원인이었으므로 4P 실드선(외부에 구리선으로 그물망처럼 감싸여 있는 전선)으로 교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는 구미의 S.U라는 공장에 들렸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기계를 계약하기 위해 현장에서 기계를 설치하여 작업하게 될 공장장과 직원 그리고 사장과 직접적으로 필요한 제반 상황과 필요한 작업을 위한 협조를 사전에 조율하기 위해서 찾아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출발을 하여 집에 도착하게 되니 오후 5시 30분 정도였다. 점심은 경산 시내의 김밥 집에서 뒤늦게 김밥 두 줄로 때웠다. 그리고 ‘돈까스’를 한 개 포장을 하여 집에 갔고 와서 아내와 함께 저녁에 먹었다.

2. 탁구를 치면서 젊음을 되찾는데…….
이제 하루 일과가 끝났지만 개인 사업을 하는 탓에 작업을 아내가 혼자서 월요일까지 부산으로 납품할 기계의 마무리 작업을 했지만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적어도 밤10시까지는 잔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저녁을 먹고 6시 30분에 체육관 다목적실로 향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차량을 운전하면서 보낸 탓에 운동부족이 여실했다. 어제도 탁구를 치지 못했으므로 몸이 땀을 흘리고 싶다고 재촉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탁구를 치러 가는 중에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탁구 실에 문을 열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단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60대쯤 보이는 ‘박 철수’(가명) 남자와 40대의 ‘이 혜자’(가명) 여성분이 안 쪽의 탁구대 1번 라인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치는데 모두 이곳에서 두 세 차례 보았던 탓에 낯설지는 않았다. 내가,
“짝이 안 맞아서 기계와 쳐야겠네요!” 농담처럼 말했더니 혜자가 양보를 했다.
“이리 와서 이 분과 함께 치세요!”
사실 타구를 치는 중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는 건 무척 힘듭니다. 중년의 남자인 철수는 내게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고 10대 0까지 질 정도로 내가 너무 못 치게 된다.
이것은 참례나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실력차. 그야말로 벽을 느끼는 한 순간이다. 

철수 씨와 경기를 하고 있는 동안 이번에는 젊은 사람인 ‘강 똘이’(가명)가 들어 왔으므로 나는 내 자리를 양보한 뒤에 ‘이 혜자’ 씨와 2번째 탁구대에서 치게 된다. 그런데 이 젊은 사람은 나중에 나와 경기를 하면서 자신의 나이가 32세라고 했다.
사실 탁구는 상대성이 있었다. 내가 0이라는 스코어로 졌던 ‘박 철수’에게 ‘강 똘이’가 계속 이기고 있었다. 

탁구에는 라켓에 두 가지 구별을 둔다. 펜홀더와 쉐이크. 박 철수 씨와 이 혜자 씨는 쉐이크로 쳤고 나와 강 똘이는 펜홀더였다.
이 혜자 씨와 내가 경기가 아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테이블로 공을 넘기면서 서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말을 하였다. 그리고 8월 달부터 쳤고 나는 불과 작년 12월 15일부터 쳤다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레슨을 받고 있다는 것과 자꾸만 잘 못 친다고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갖고 치도록 유도했다. 주로 내가 리드를 하면서 볼을 넘겼고 가끔씩 강한 드라이브를 쳐서 받지 못하여 볼이 벗어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그녀에게 좀 더 힘을 줘서 치도록 가르쳐 줄 정도였다. 
오후 5시부터 쳤다고 했는데 7시 40분까지만 하고 간다고 해서 그렇게 1부(1부라고 못을 박는 건 아마도 내가 9시 반에 집에 갈 때까지 강 똘이라는 사람과 치게 되므로 그것을 2부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몸 풀기를 끝냈다.
아쉽지만 혜수 씨라는 여성분과 헤어진 뒤에 한동안 탁구를 칠 수 없었다. 이제 사람들이 10명 정도나 되었지만 모두 3번부터 7번 코트까지 들어차서 경기를 하던가. 서로 탁구를 치고 있었고 세 사람은 의자가 있는 벽면에 서 있었지만 두 사람은 내가 치자고 해도 거절하는 것이었다.
이때 내 눈에 들어온 강 똘이. 그는 박 철수 씨와 친 뒤에 지쳐 있는 게 역역했다. 오랜만에 나와서 탁구를 쳐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실 탁구를 치러 와서 쉰다는 건 그만큼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격이었다.
“이 봐, 젊은이……. 나와 함께 탁구를 칠까요?” 실력이 딸리는 탓도 있지만 이 사람은 내게 안면이 없었다. 그래서 말을 놓지 못한 것이다. 
“예!”
그가 나와 1번 탁구대에서 서서히 탁구를 치게 되는데 나는 악착같이 맞붙어서 50여 차례의 경기를 치루고 겨우 2번 이겼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려서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을 정도였다. 땀을 닦지 않으면 눈으로 들어가서 눈이 따갑고 충혈 되게 된다. 그러다보니 땀을 닦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4. 강추위에 탁구장을 찾았다.

영하 17도의 강 추위로 올 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았으므로 견딜만했다. 어제 일요일 저녁에 다목적실을 찾았다. 사실 이곳은 말 그대로 다목적실이었다. 탁구만 치는 것이 아니고 낮에는 요가를 배우는 곳으로 활용되는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절반 정도를 막을 수 있도록 테트 시설이 되어 있었다. 조립식 벽처럼 천정에 도르래가 달려 있는 탓에 여러 겹으로 접어서 한 쪽 벽면에 밀어 넣었다가 필요할 때 끌어 당겨서 막을 수 있도록 고안된 길고 넓은 폭의 스치로폼이 들어간 조립식 벽은 여러겹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계속 밀던가 당기면 펼쳐졌다가 접히는 구조였다.
또한 반대쪽은 탁구대를 펼쳐 놓지 않은 체 마지막으로 가는 사람이 탁구대를 접어 놓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귀찮았다. 어제도 9시 30분 경에 집에 돌아가기전에 탁구대를 접어 놓고 그곳을 나왔다.
그만큼 옥천의 탁구 시설이 전용 구장이 없음은 애석한 노릇이다.
사람이 많이 오는 월요일에는 칠 수 있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탁구장의 구역이 좁았다. 

43. 탁구를 치면서... (6)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저녁 6시 30분에 체육관 다목적실로 탁구를 치러 갔다.
 오른 쪽 팔목에 근육이 뭉쳐서 저렸지만 쉬지 않고 가는 이유는 드라이버 샷으로 라켓을 올려 치는 방법을 계속하여 터특하기 위해서 였다고 할까.
상대방에서 회전을 걸어서 서비스 볼을 보내게 되면 그것을 받아 치는데 푸시로 밑에서 걷어 올리는 방법외에 강하게 올려 치는 방법이 유동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오늘은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점심시간에 J 건물 지하실에서 탁구 로봇으로 연습을 하였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고 할까요.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토록 치기 힘든 볼을 처리하는 데 그라이버로 때릴 수 있다는 것이...
내 손에서 라켓을 올려 치는 드라이버가 회전으로 넘어온 볼을 순식간에 걷어서 상대편 테이블 위에 꽂히는 것을 보았으니까! 
  요즘은 탁구를 치는 게 재미가 더해 간다. 어제는 중학교 3학년이라는 16세 소년과 탁구를 쳤었다. 그런데 번번히 치는 것이었다. 매번 한 번도 이기지를 못했었는데...

  오늘은 F.G라는 사람과 탁구 시함을 하면서 10대 3정도로 좁힐 수 있었다. 

44. 탁구를 치면서... (어이없는 실책)

1. 어제 탁구장에 가서 내겐 초면인 60대 쯤 보이는 남자분과 탁구를 치게 되었고 결과는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회전볼에 약한 내 모습에 아연실색한 꼴이라고 할까?
번번히 강한 스핀이 걸린 서비스 볼을 쳐내지 못한 체, 그로인하여 어이없는 스코어 차이로 지고 만다.

어제 저녁 탁구 동호회에 가서 A 라는 사람과 탁구를 치면서 느낀 심정은 참담함이었다. 하지만 오전 중에 대전에서 냉장고가 배달이 왔을 때, 두 사람의 젊은 이들이 배달차를 타고 왔고 사다리차를 다시 대전에서 불렀으며 오는 시간까지 내가 탁구를 치자고 하여 선뜻 지하실로 내려가서 탁구를 쳤을 때는 기운이 펄펄 났었다. 그래서 1:1 스코어 차를 보이다가 막판에 중간 정도는 정도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면서 이기고 있었다. 그때 상대의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사다리차가 왔다고 하여 밖으로 나가게 된다.
냉장고가 너무 커서 계단으로 올릴 수 없다고 창문을 통하여 사다리차를 걸쳐 놓고 방으로 넣어야만 한다고 했다. 1톤 차량이 왔지만 냉장고를 넣는 건 그다지 문제될 게 없는 모양이다. 나는 수고하라고 해 놓고 돌아와서 기계 제작 일을 하였다. 그리고 아내가 남았던 것이다.
  냉장고는 아들이 산 것이고 그 전에 갖고온 소파와 식탁은 딸이 주문했었다.

다시 탁구 얘기로 바꾸자면 아침에는 이겨서 무척 기분이 좋았었는데 저녁에는 형편없이 깨져서 묵사발이 된 기분이든다.
이상하게도 회전볼에 약한 경향이 있었다. 그것도 낮은 서비스 볼을 쳐내지 못하여 번번히 넷트에 걸렸으니까? 무엇보다 공격을 하지 못하여 수비를 하는 중에 적의 사격에 적중당한 느낌. 강한 회전볼을 푸시로 밀어 넣는 와중에 아무래도 깊이가 낮았던 모양. 또한 치는 와주에서도 드라이브가 먹히질 않다보니 정확한 타구감이 살아나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패닉상태.
어이없는 실책.
난관.
저질적인 플레이.
난공불락의 전진을 뚫을 수없는 낭패감.
전입가경.

2. 탁구를 치러 갔다온 뒤. J 건물 2층에서 부엌과 거실에 페인트 칠을 했다. 수성페인트로...

3. 자칫 잘목하다가는 기계를 2월에도 납품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든다.
  저녁에 잔업을 하여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구를 치러 가면서 돌아와서잔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어제는 벽지 페인트까지 칠하게 된 것이다.

4. 밤12시에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를 펴고 자는데 오른팔이 쑤시고 전기가 오는 것처럼 저려서 뒤척거리다보니 잠이 오지 않았다.
  팔을 머리 위로 올리면 좀 나았고 왼 쪽편으로 기울게 자려고 몸을 틀어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잠들 수는 없었다. 등을 대고 반듯하게 자야만 잠이 왔었던 것이다. 낮에는 점심 식사 후에 1시간 가량 낮잠을 잤는데 전날 밤 1시가 넘도록 TV로 외국 영화 28~21번과 101~107 번 체널을 돌려 보면서 계속하여 보았던 것이다.
  아내가 잠 좀 자자고 성화를 했었고...

5. 대구 S.G 라는 곳에서 마지막 남은 220만원의 결제를 받지 못하여 곤궁한 처지였다. 아마도 일과 관련이 있는 민감한 상황(?)으로 1월에는 전혀 기계가 납품할 수 없는 처지였고 그로 인하여 3년 정도 연구한 기계의 잔금을 받아내기 위해 보름 전에 기계 A/S 를 해 주려고 찾아 갔다고 1월에 결제를 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지만 역시 빈말이 되고 말았다.
  작년에도 명 절 전 날에 찾아가서 결제를 받기 위해 선물 공세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에서 다시 기계를 맞추겠다는 저의가 무엇 때문인지...
  하진만 나는 계약을 하지 않을 작정이다.
  오히려 결제는 지금 만들고 있는 기계가 더 나았다.
신용이 없는 사람과의 거래는 고달픔의 연속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기계가 새로 연구되지 않았을 터.
  모두가 다른 세상사에서 그들만을 욕하고 싶은 의도는 아니다.
  단지 결제가 늦어지는 만큼 동반 자살하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 게 사실.
  지금으로서는 그들을 바라볼 희망조차 포기하여야만 할 처지였다.
  그래서 전화조차 하지 않기로 했다.

25. 탁구의 상대성

탁구는 상대성이 있는 것같다.
자신에게 맞는 상대에게는 무척 강한 반면 그렇지 않고 특별하게 다른 깍아 치는 회전 볼을 주는 상대에게는 허무할 정도로 패배를 하고 만다.
이상하게 컷트볼에 약한 나.
그런 컷트 볼에 드라이버로 올려 쳐얀만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고 할 일은 많고 또한 배우는 것은 더디기만 한데...

  오늘 점심 식사 후에 위의 J 건물로 가서 우선 개에게 사료를 주고 난 뒤, 지하실에서 탁구 기계로 카트볼을 연습했다. 날아오는 공을 깍아서 치게 되면 그 반발력으로 컷트가 멈추고 반발심이 생겨서 다시 상대 코트로 넘어 가게 된다.
  이것이 상대의 회전볼을 받기 위해 서브로 넘어오는 공을 컷트로 받기 위해서인데...
  잘 통할 것인지는 오늘 실전을 해 봐야 할터였다.
  기계와 실전은 많은 차이가 났다. 그러므로 기계를 통하여 연습을 하고 그것을 활욯하기 위한 남다는 노력은 다른 사람을 통하여 경기를 갖어 볼 필요가 있었다.

1-2. 어제 저녁에는 거실 쪽에 페인트 칠을 했다. 밤 12시에 돌아오면서 보일러에 전원 코드를 빼버렸는데 외출로 해 놓아도 기름이 소모되는 게 눈에 보여서다. 구태여 아무도 없는 데 보일러를 가동 시켜 놓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배달 왔던 기사와 탁구를 칠 때는 무척 잘 쳐졌었다. 하지만 체육관에서 60대 남자 쯤 보이는 분과의 시합은 그야말로 비참할 정도로 실책을 연발했다. 그의 서브볼을 받아 칠 수 없어서다. 드라이브를 하려고 했지만 공이 너무 낮았다. 그리고 푸시로 올려 치려고 했는데 번번히 넷트에 걸리는 게 아닌가!
강약 조절에 실패한 케이스의 경우였다.
하지만 계속하여 연습을 할 필요가 있었다.

어제는 복식으로 탁구를 쳤고  A+ 라는 사람과 서로 주고 받는 중에 내가 처음 그 사람과 도전했을 때 5개까지 봐 주고 쳤지만 졌던 경우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수준이 높아 졌다고 느낄 정도로 달라 졌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는 증표였다.

46. 다목적실로 탁구를 치러 갔다.

구정 명절이후 이틀째.
날씨는 한마디로 너무 포근했다. 얇은 반 팔 차림의 T 셔쓰 차림에 바지는 바람이 들어오는 여름용이었다. 그래서 오래 야외에 있으면 덜덜 떨릴 정도의 차림이지만 탁구를 치는 중에는 땀이 흐를 정도였다.
어제는 잘 치는 여성분과 서로 주고 받으면서 치다가 경기를 했는데 터무니 없이 졌다. 그렇지만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같다. 서브볼 조차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한다면...
  오른팔에 앨브가 와서 계속 묵직했지만 탁구를 다시 치게 되면 그것이 중압감으로 눌려 왔다.
  명절로 인하여 탁구를 치지 못했지만 아픈 팔을 치유하는데는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팔이 다시 탁구를 치면서 한결 가볍다. 역시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아픈 팔을 가지고 다시 힘을 줘서 탁구를 칠 때마다 풀리는 통증이 유발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참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은 저리기도 한 오른 팔꿈치 위 쪽의 근육이 쑤시고 아팠다.
(어깨와 손목 사이 신체 부위. [정의] 팔은 어깨와 손목 사이를 말하며 팔꿈치를 중심으로 어깨 쪽을 위팔, 손목 쪽을 아래팔이라고 한다.)

47. 탁구를 치면서... (6)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저녁 6시 30분에 체육관 다목적실로 탁구를 치러 갔다.
 오른 쪽 팔목에 근육이 뭉쳐서 저렸지만 쉬지 않고 가는 이유는 드라이버 샷으로 라켓을 올려 치는 방법을 계속하여 터특하기 위해서 였다고 할까.
상대방에서 회전을 걸어서 서비스 볼을 보내게 되면 그것을 받아 치는데 푸시로 밑에서 걷어 올리는 방법외에 강하게 올려 치는 방법이 유동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오늘은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점심시간에 J 건물 지하실에서 탁구 로봇으로 연습을 하였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고 할까요.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토록 치기 힘든 볼을 처리하는 데 그라이버로 때릴 수 있다는 것이...

내 손에서 라켓을 올려 치는 드라이버가 회전으로 넘어온 볼을 순식간에 걷어서 상대편 테이블 위에 꽂히는 것을 보았으니까! 
  요즘은 탁구를 치는 게 재미가 더해 간다. 어제는 중학교 3학년이라는 16세 소년과 탁구를 쳤었다. 그런데 번번히 치는 것이었다. 매번 한 번도 이기지를 못했었는데...

  오늘은 F.G라는 사람과 탁구 시함을 하면서 10대 3정도로 좁힐 수 있었다. 

48.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7)

 밤이 소리 없이 내리고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온통 새하얗게 변하였습니다. 흰 쌀가루를 하늘에서 뿌려댄 듯 보이는 사물은 이 하얗고 솜털처럼 가벼운 물의 결정체를 온 몸으로 받아낸 듯 제 몸에 치장을 하여 도로를 따라 차량 바퀴 자국을 내 놓았습니다.
  눈은 바로 그쳤고 약간의 눈은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조심을 하면서 체육관 주차장을 덮고 있어서 차선조차 보이지 않네요.

  2016년 1월 28일 목요일 저녁.
 소리 없이 체육관 다목적실로 찾아 들기 전의 흥분은 처음보다는 이제 많이 퇴석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루 전 날에도 왔었음으로 연속 이틀째였으며 그 전 이틀은 오지를 못했지요. 직업적으로 바쁜 와중에 부산으로 출장을 나갔기 때문입니다. 사실 탁구를 치러 오기 위해서는 저녁 식사를 한 이후의 시간을 이곳 탁구장에서 할애하여야마 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에도 야간 잔업을 하여야할 처지였지요. 그만큼 바빠서 일을 놓지 못해 왔었던 습관이 이제 운동부족으로 병이 찾아 와서 쓰러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 소망이 그것을 억눌러서 야간작업을 줄이고 탁구를 치도록 마음속에서 종용하였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라!’ 하고 암시와 함께…….
 
12월 15일부터 탁구를 치게 되면서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나름대로의 방식을 고집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에 이어 그 방식에 대한 의문점을 찾아내려고 나름대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여 은근히 기대하며 지냈습니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흥분. 아무래도 차츰 탁구에 대한 ‘신의 경지에 도전하는 단계’ (고수의 길)에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까지 갖게 할 정도였습니다. 
1. 신의 경지에 도전하다.
  앞서 나는 탁구를 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방식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펜홀더와 세(ㅅ ㅜ ㅔ)이크. 그리고 내가 펜홀더 라켓으로 친다는 사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다면 펜홀더는 공격형이고 세이크는 방어형 방식이라고 할 정도로 서로 양상이 다르다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깨닫기 시작했는데 내가 공격형으로 상대를 리드할 때만이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드라이버로 볼을 쳐내는 연습을 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는 지하실에 있는 탁구로봇기계로 날아오는 볼을 향해 강한 리시브로 쳐 냈는데 그것이 드라이버로 때리는 방법이었지요. 그리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드라이버만이 스핀 볼(회전 볼)을 방아 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라고 말이죠. 그리고 혼자 연습하면서 테이블에 한 번 맞고 날아오는 볼을 라켓으로 치면서 동시에 팔을 머리 위로 뻗어 올리면 상대편 테이블 위로 꽂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오른팔로 라켓을 잡고 탁구 볼을 받아 치면서 머리 위까지 손을 들어 올리게 되면 그 아래에 빨리 듯이 반대편을 향하여 역회전이 걸린 상태로 날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손을 들어 올리면서 방향을 정하게 되고 연속하여 조준하는 역할을 라켓이 볼과 마찰을 하면서 회전 볼을 다시 역회전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날아간다는 점이었습니다. 몇 번을 연습해 보았지만 모두 정확한 탄착점을 찾아서 정확하게 꽂혔습니다. 이런 신기한 점을 이제 막 깨닫고 나서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하하하!”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우주에 이런 원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새로운 발견이었지요. 그것이 탁구에 적용되는 순간 내게도 고수의 길이 연린 것처럼 기쁨에 젖어 버리고 한껏 웃고 말았으니까요. 엄청난 발견을 한 것처럼 나에게 불어 닥친 최고의 경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내 몸에서 일어나는 신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 방법을 계속 연습했습니다. 이제 그 것을 기계가 아닌 사람에게서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입니다.
  오늘의 재물은 마침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49. 아들과 탁구를 치면서...
1. 서브볼을 잘 받지를 못하여 경기에서 졌다.
사실상 아들과 시합을 하면 대체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따져 보면 리시브(receive)를 못해서다.
물론 노력은 하지만 실력이 늘지를 않았다.
원인을 분석해 보면 서브볼을 잘 받지 못해서인 듯 싶다.
여러가지 종합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회전 볼에서 번번히 막혔다.
옥천의 탁구 동호회에 나가서도 이 점이 문제점으로 부각되어 왔었다.

2. 구정 명절에 며칠 일을 못하는 가 싶더니 오늘부터 일을 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던 것이다. 마음은 일을 하라고 하지만 오전에 10시쯤에 걸어서 공장까지 500여미터를 걸어 갔다가 점심을 먹으로 다시 J 건물로 돌아왔다. 차를 갖고오 가지 않고 걷는 게 오히려 건강을 위해서다. 하천에 물을 보니 (조그만 개울) 얼음이 모두 녹아서 바람에 잔물결이 일어 난다. 얼음이 물가에 살포시 얼었지만 이미 녹고 있다는 편이 대세다. 날씨가 확 풀렸다. 기름 보일러를 때지 않아도 낮에는 견딜만한 날씨였다. 햇볕이 남향의 방향을 타고 방 안으로 깊숙히 들어와서 온도를 높여 주워서 유난히 밝은 실내.

50. 탁구 동호회에서 내일 있을 새로 가입한 신입생 인사말을 하기 위해...
12월 15일은 내게 중요한 날입니다. 바로 이곳에 나오기 시작한 날이지요.

사실, 두 달이 되어 가는 지금에서야 겨우 탁구를 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나이스 동호회에 가입하여 여러분과 함께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그 전에는 몸이 고장 나는 줄 도 모르고 일만 했었습니다. 오직 돈 벌이에만 급급했다고 할까요! 하지만 건강이 우선이고 돈은 그 다음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몸이 망가진 뒤에 알게 되었지요. 이제 살기 위해서 탁구를 칩니다. 지금 탁구를 치는 것도 살아 있다는 자체를 확인하고 싶어서 공을 라켓으로 때리고 떨어진 공을 줏으러 다니기 위해 뛰어 다닙니다. 땀이 비오듯이 흐르고 흠씬 젖게 되면 그동안 과로와 고장이 난 몸이 치유되는 것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직도 공장에서 밀린 일 때문에 탁구를 치는 시간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한답니다. 다시 공장에 돌아가서 일을 하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마음만 그렇고 사실 탁구를 치러오는 날은 야간 작업을 하지 못해서 고민입니다.
  어제는 회장님이 붙잡고 총회에 참석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회원님들과 인사를 나눠야 한다고 당부해서 이렇게 나오긴 했지만, 회장님은 나와 나이가 같다고 해서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총무님은 아주 친절하시고 회원 분들에게 애로사항을 잘 들어 주시는 걸로 봐서는 무척 호감이 갑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익숙하지 않다보니 모든 게 낮설고 불안 했었지요. 그 때 회장님과 총무님이 따뜻한 말을 해 줄 때마다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 기억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모르는 사람들도 없을 정도로 익숙해 진 상태여서 인사말을 하는 게 좀 어색하네요!
  어쨌튼 제가 처음 왔을 때의 느낌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었고 그 당시에 옆에서 이끌어 주신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이제 탁구를 치러 오면, 반갑게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탁구를 치는 게 좋은 사람들. 그리고 서로 격려하고 가르쳐 주는 가족처럼 따뜻한 마음씨를 보여주는 돈독한 관계가 좋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이곳에 끌리게 하는 것같습니다. 실력이 부족하고 뒤처져서 어느 때는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는 가입인사도 했으니 터놓고 지낼 수 있게 되었네요!

  이곳에서 몸과 마음이 더 젊어 진 것같고요. 가족이라는 한 마음으로 나올 수 있게 해 주신 점에 무엇보다 뜻 깊은 자리를 내어 주신 회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6. 탁구 동호회 총회

오늘 저녁에 옥천군 탁구 동호회에서 총회를 한다고 총무에게서 문자가 왔고 어제 회장이 나와서 인사 소개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낼 꼭 오세요! 사람들에게 인사를 소개해야 하니...”
  “시간이 없어서...”
  나는 거절을 했다.
  매일 나올수 는 없고 사실 야간잔업을 해야할 처지였다. 그리고 유독 총회날에는 더 가기 싫었다. 탁구를 치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회장은 계속하여 문으로 나가고 있는 나에게 주문을 한다.
  “안 나오면 안 돼요! 꼭 나와 주워야지...”
  “....”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가야만 할 것같다. 간곡한 그의 부탁외에 동호회에 참석하면서 탁구를 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였으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안면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었다.
  낼 꼭 참석해 달라고 회장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을 것같다. 어제 저녁에 탁구를 치러 갔다고 그런 부탁을 받고 안 갈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제 꼭 두 달이 되었는데 재미가 솔솔 붙었다. -실력이 붙어서 일까!
  탁구라는 걸 비로소 몸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처럼 그야말로 재미가 붙어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쾌감을 주고 있었으니까.

27. 탁구 라켓을 중고로 구입했다.

위의 탁구 라켓을 74,000원을 주고 구입했다. 그것도 경매로...
그리고 금요일 탁구장에서 레슨 강사에게 내밀며 러버를 붙여 달라고 부탁을 하고 4만원을 미리 선불로 주웠더니 월요일 갔다 주겠다고 했다.
  “전에 다른 사람에게 러버를 붙여 준 적이 있으시죠?”
  “예! 그런데 벌써 갈아야 될 정도... 이리 줘 봐요!”

  하면서 내가 사용하는 라켓을 빼앗듯이 가져가서 이 것 저것 살피면서 말했다.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더니 벌써 너덜거리네요!”
  “예... 서브를 연습하다가 밑에 탁구대와 부딪혀서... 제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서 중고로 구입한 게 있는데 그걸 새로 붙이려고요!”
  “아, 그러세요?”
  그는 자신의 학생 뿐만 아니고 이곳에 나오는 회원들을 아울러서 관리하는 것처럼 말했다.

  내가 레슨을 받는 것도 아닌데 무척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일거수일투족을(一擧手一投足 손 한번 들고, 발 한번 옮겨 놓는다는 뜻. 사소한 하나하나의 동작(행돋)까지를 말하는 것 ) 알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그의 투철한 직업의식에 놀랄 뿐이다. 그러더니 러버를 벗겨 내면서 말했다.

  “어이쿠, 안 쪽에 새겨진 글씨는 버터플라이 샤이프러스-S 네요!”

  우연찮게도 손잡이 부분에 찍혀 있는 마크는 사이프러스-A 였다. 그런데 같은 제품으로 보여도 두 종류의 라켓에서 사이프러스 A 와 S는 차이가 있었다. S 가 4만원 정도 비싼 듯했는데 러버를 벗겨 내면서 안쪽에 찍혀 있는 인쇄의 마크가 의외로 S 였던 것이다.
  “아, 정말 그렇네요!”

  “무조건 잘 사셨습니다.”

  “중고로 나온 물품이 없어서 그동안 줄곳 기다렸던 보람이 있나 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과 경매가 붙어서 가격이 많이 올라 갔었는데...”

 





28. 역사의 공간

1. 삶 자체만으로 인생을 의미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단지, 인간만을 논할 때는...
  두 사람이 모이게 되면 인간과 인간이 서로 소통할 수 있게 되고 외로움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호 작용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관계를 확대하여 나가게 된다. 
  이제부터 날개가 달린 것처럼 허공을 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찬란하게 자신의 조화로운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 인간들 틈에 비로소 끼었다고 느낄 것이다.  
  혼자가 아닌 우리.
  그 세계속으로 떠나기를 갈망하면서... 
  그곳에는 우리의 역사가 있고 자신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으며 그리고 꿈같은 아름다운 사랑이 가로 놓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아닌 남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세만으로도 타인을 향한 배려가 얼마나 중요가 한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 비로소 나이를 실감할 수 있다. 적어도 50 줄에 들어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그런 관계 개선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사람과 어울리기를 갈망하면서도 몸을 웅쿠리고 경직된 상태에서 불안에 떨며 지내는 과정을 왜 늦으막히 겪을 필요성이 있을까? 아마도 젊은이들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부딪혀서 새 문물과 정보를 교환할 수 없어서 이미 퇴물이 되어 가는 느낌을 벗어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여서라고 할까?
  하지만 젊은 날의 환상은 이미 버린지 오래였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때늦은 사랑을 할 나이도 지났다.
  고목에서 싹이 필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자신이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그렇게 마음을 열고 젊은이들과 함깨 하고저하는 용기만 갖는다면 한결 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고 봐야만 한다. 그것이 마음을 열고 내 안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되는 첫 시발점일테니...
  -위의 느낌은 옥천군 체육센타에서 탁구를 치며 동호회원들을 만난 소감에서 비롯된 것임-
 
2. 이 겨울이 혹독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1월 말 일 집을 이사한 게 우연하지 않았지만 추운 겨을임에도 불구하고 양 쪽을 왕래하면서 출퇴근을 반복하게 된 것이 번거롭기는 했다. 또한 나무 보일러가 있는 공장과 그렇지 않은  J 건물의 차이가 연료값과 따뜻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한 밤 중에 화목보일러에 나무를 넣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가장 환영할 일이었다.
 
3. 어제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서 소변을 눟고 잠자리에 다시 들었는데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뒤척이다가 1시간 정도를 허비했는가!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코고는 소리도 잠을 자지 못하게 가로 막는다. 온갖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올랐는데 그 중에 모친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시 엘리스 재활병원으로 를 데리고 가서 몇 개월 재활치료 받으면 걸어 다닐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300만원 가량의 한 달 입원비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거동을 하지 않으려는 모친의 성격 때문에 효도가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다시 정상적으로 생활 할 수 있다면 아들과 함께 사는 것도 그동안 고생한 당신의 인생에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주방의 식탁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글을 쓰게 되었다. 새벽이 와서 창가에 날이 밝아 올 때까지...
 
54. 잠

1. 탁구 라켓을 중고로 구입해 놓고 러버를 갈아 달라고 레슨 강사에게 맡긴 것 때문에 어제 저녁에는 탁구를 치러 갔다. 그렇지 않았다면 기계제작에 관한 야간 잔업을 하였을 테지만...
매일 느끼는 심정이지만 어제 만큼은 탁구를 치러 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일요일에 탁구를 신나게 많이 쳤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쉬려고 했지만 탁구 라켓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것이다. 다음날에 받으면 될텐데 연기하게 되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같아서다. 그래서 체육관 탁구실에 간 것이지만 치지 않고 올 수 없었다. 처음에는 복식을 치다가 나중에는 단식을 쳤다. 하지만 여전히 내 실력은 늘지 않는 듯...
  서브볼, 회전볼에 약한 것같다. 
  야간에 잔업을 해서 기계 납기를 맞춰야만 하였지만 그렇지 못하고 탁구를 치고 왔고 마음같아서는 다시 공장에서 늦게까지 작업을 해야지 하고 결심을 하였었지만 집에 돌아오니 9시가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기만 할까?
 
바로 공장으로 가서 야간 잔업을 하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하였건만, 집에 와서 다시 나가는 게 힘들었다. 
무엇보다 몸이 피곤한 것이다. 땀을 뻘뻘 흘려서 연신 탁구를 치면서 손수건으로 얼굴과 머리를 닦았었는데, 그 탓에 한바탕 탁구를 치고 오면 몸이 녹진 거린다.
집에 오면 땀이 흘리고 몸이 피곤해서 공장으로 갈 생각이 들지 않게 된다. 어제는 단단히 결심을 하고 돌아 왔건만 그렇게 하지 못한 체 TV를 조금 보니 밤 12시였습니다. 전 날 밤에는 아내의 코고는 소리에 중간에 일어나서 잠을 못잤다고 하여 아내는 다른 방으로 가서 잤고...
 
혼자서 자려니 약간 어색합니다. 그렇지만 아침까지 푹 잤다. 
오늘은 탁구를 치러 가지 않고 야간 잔업을 할 생각이다. 두 달의 기간 동안 탁구 실력이 많이 늘었다. 매일 나가고는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그나마 야간 잔업을 하여야한다는 강박관념과 밀린 기계제작 일 때문이다.
 
몸이 땀이 흐를 정도로 탁구를 치게 되는 건 포핸드링이라는 두 사람이 서로 주고 받는 방식의 탁구 방식으로 칠 때 고을 연기호 과격한 몸 동작을 만들어 낸다. 높게 올라오는 볼을 계속하여 쳐 줄 때 그 힘이 배가 한다. 몇 번 그렇게 치다보면 흠씬 땀이 솟게 되는 것이다.
2. 엇그저께 새벽 3시 30분에 깬 뒤에 소변을 눟고 자려고 했지만 영 잠이 오지 않았었다. 온갖 색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 났으므로 몸을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나서 주방의 식탁에 앉아서 글을 쓰게 되었고 아침까지도 그렇게 글을 썼는데 그게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10)' 편이었다. 
3. 오늘 야간에 탁구를 치러 가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점심시간과 저녁 시간에 조금씩 지하실에서 탁구투척기계로 연습을 해야할 듯 싶다. 지금은 탁구을 치러 체육관에 갔지만 탁구 기계를 통하여 연습하는 건 훌륭한 강사만큼이나 도움이 되었었다. 시간이 없어서 탁구를 치러가지 못하면 탁구 기계를 이용하는 게 유리하였는데 가장 큰 건 무엇보다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었다. 
4. 탁구가 치면 칠 수록 실력이 느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서브볼을 잘 받지 못하였다. 내가 회전 볼을 계속하여 받아 치지 못하고 네트에 걸리는 이유를 찾아 내는 도리 밖에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두 달 째의 내 실력이고 그 전에는 더 못쳤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내가 극복하여야 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5. 모친으로 인하여 혈압약을 복용하다가 탁구를 치면서 끊었다.
  그 뒤 현재는 보리순을 먹는다. 식사 때 한 스푼씩...
  혈압약 대용으로 먹는데 그것마저 먹지 않는다면 어지럼증이 일어 났다. 탁구를 치러 가서 탁구공을 쳐다보면 두 개 세 개로 보였으므로 머리를 만져 보았더니 열이 있었다. 그 뒤부터 꼬박꼬박 보리순을 먹는다. 오늘 아침에도 사과, 배, 귤 과 함께 보리순을 한 수저 떠넣고 물을 마셨다.
6. 눈이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밀개로 J 건물 앞의 주차장과 공장의 앞 길을 밀었다. 모든 게 눈에 덮인 백색의 풍경이다. 기온이 떨어진 상태에서 내리는 눈발이 어느새 굵어졌다가 다시 약한 싸리눈으로 변한다. 오랫만에 눈을 밀개로 미는 것같다. 올 겨울은 그다지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던 무난하게 보내는가 싶더니...

7. 발안에서 고주파 천막기계 주문이 들어왔다.
  천안에서 반품한 기계를 팔아 치우면 어느 정도 지금의 경영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부산으로 납품할 기계를 완성할 때까지는 무난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 기계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뺐기는데 야간 잔업을 하지 못해서라는 중론이다.
  그렇다고 탁구에 빠진 현재의 상태가 건강을 위해서는 최선책이었다. 어쨌튼 두 가지를 병행하여 함께 생활하는 게 가장 적법한 방법이었다. 다만 탁구를 치고 온 뒤에 야간 작업을 연장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게으름(?)을 극복하여야 한다는 가장 최선책과 방안을 고집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은 계속 진화하여야 한다. 환경에 따라서 적적하게 자신의 신체적인 특성을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계속 그렇지 못하여 후회감, 자괴감을 주면서 압박한다.
  오늘부터는 반드시 실천을 해보자! 아자...

8. 탁구를 치는 게 소원이였었다.
  주변에서 함께 칠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탁구 동호회에 다니게 된 것이었다. 의외로 탁구를 치며 자주 나가게 되자 이번에는 시간이 많이 빼앗기는 듯 싶었다. 그 이유는 역시 즐거움 때문이다. 땀이 흠뻑 나면서 계속하여 칠 수록 실력이 붙는 느낌. 그리고 이제는 이겨야 한다는 강한 집착을 갖기에 이르렀다.
  어제는 복식, 단식에서 모두 졌었다.
  오늘 점심 식사후에는 탁구를 자동투척기계와 쳐야겠다.
 
29. 레슨 강사

4. 레슨 강사가 필요한 이유 (2)
레슨을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만 막상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관계로 망성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요점은 탁구를 신들의 놀이로만 바라 볼 수 없다는 견지였다.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기술을 흠쳐 내야만 비로소 내게 필요한 놀라운 이 탁구의 세계를 유람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엄청난 기술을 흠쳐 낼 수 있는 보고는 어디일까?
 그건 무엇보다 레슨 강사에게 앞서 갖고 있던 그의 기술을 전수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옥천에서 무료와 유료 레슨이 있고 그 차이점을 나열하자면 어떤게 있을까?
시간을 마음대로 갖게 된다는 점.
아무래도 무료 레슨의 경우 매일 오지 않는 이유는 일부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기 때문이라는 소문이었다.
이원에 간다고 낮에 받는 레슨은 없앴다는 거예요
전혀 없애는 건 아니고 돌기 때문에 회수가 줄었지요.
에어로빅 강사로 마을을 순회하면서 점심시간에 부녀자들에게 에어로빅 덴스를 열곤 했었다. 그런데 그 주기가 각 마을마다 달랐고 또한 1년에 대략 한 달 가량 정도 였는데 그 이유는 다른 마을로 나누어서 순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무료 탁구 강습의 경우도 군청에서 고용한 일일 강사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공무원이라는 결론인데...
두 번째 유료 강사의 경우이다.

2. 타지역 동호회와 탁구 시합을 하는 실제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싶다. 나중이 되겠지만 그런 긴박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30. 탁구의 세계  2016.02.21 13:28

1. 탁구를 치러 동호회에 나가는 건 신의 세계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묘한 감정.
사실상 탁구를 치는 사람이라면 느끼는 것이지만 잘치는 사람을 못치는 사람이 따라 잡을 수 없는 한계.
엄청난 차이에 그만큼의 거리를 느낄 수 있는게 사실이다.
우연이란 없었다.
결국에 신과 인간의 차이만이 있을 뿐.

이것은 탁구에 있어서 뛰어 넘을 수 없는 벽같은 것이다.

현재 57세의 내 나이가 아무리 많은 시간을 탁구에 투자하여도 A급의 선수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투지만으로 또한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이점은 영원히 그 차이점에 대하여,
  ‘인간이 얼마나 신에 가까이 정진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관점으로 바라 보게 된다. 그만큼 탁구를 잘 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너무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하더라도 결코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차이점을 나타나는데 그로 인하여 극심한 회의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저 사람을 따라 잡기 위해 내가 몇 년을 연습하여도 차이점이 나지 않는다면 과연 탁구의 실력 차이를 판가름 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탁구를 도를 닦는 것에 비유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그냥 보아서는 비슷해 보이는 실력 차이가 경기를 하게 되며 벌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2. 지금, 내 몸에 자라나는 이 신의 경지.
  계속 탁구를 치면서 아주 조금씩 정도가 실력이 나아지는 데 그것은 한 순간에 허무하게 깨어질 수 있을 정도로 거품과 같이 허무한 것이다.
  이 강력한 능력.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깨닫게 되는 실력의 차이점은 점차 발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게 얼마나 부질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곤 한다. 
  나아와 비슷한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엎어 버릴 수도 있는 차이점이었다.
 그렇다면 공격적인 위주의 탁구를 치기 위해서는 어떤 깨우침이 필요할까?
  나는 스스로 도를 닦는 것처럼 자신의 기량을 높이는 연습을 하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기술의 차이점. 벽을 향해 달려 들지만 튕겨 나가서 전혀 요지부동인 상대방의 테이블을 공략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 점. 그리고 계속하여 지지만 결국에는 스코어 차이가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 그것은 집중력과 자신에게 부여된 신의 세계에 가까운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승리의 환상이었다.

  그냥 느끼는 심정은 엄청난 기술력의 차이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잠재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되는 경우 가까운 미래에는 그를 이길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계속하여 도전을 하였지만 패배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므로 좌절과 절망 속에 빠지는 경우에는 더 이상의 으욕도 상실되었다.
  이것은 승패라는 가장 큰 성적표 앞에서 더 이상의 변명도 필요 없었다.
  승리와 패배. 그 드러난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하였으므로...
  하지만 점차 신의 숨결이 나를 키워 나가게 되면 문제는 달라진다.
  어느새 자신이 고수의 반열에 올라 섰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의 나는 그야말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신이 내 몸에 내려와서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 느끼면 그 뒤에는 신의 경이로운 전쟁터에서 최고로 영광스러운 경기를 치루게 된다.
  다만 그것이 내게 깃들기 시작하면서 깨닫게 되는 오묘하면서도 놀라운 능력에 대한 기쁨이 함께 경기를 갖는 중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어찌봄년 신이 내게 빌려 준 기술이던가!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 계시처럼 내 몸에서 용솟음치면서 소리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순간적으로 잘못한 결과로 일어난 실수라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기교가 일어나면서 내가 작은 실수를 저질러서 신이 준 선물에 근접할 수 없었다. 그 찰라의 순간 라켓을 들고 공을 치면서 힘의 강약을 조절하지 못한 결과였다.
  한 번의 실수가 불러 일으키는 힘의 안배를 내가 버린 것이다.
  교정하여 다시 새롭게 바꾸려고 많은 연습과 경험을 쌓아야만 하였다. 그렇지만 인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의 경지는 가깝고도 멀었다. 어떤 때는 경기가 잘 풀렸지만 다른 때는 한 없이 좌절하기도 했다.

  신체적인 상태. 온 몸이 긴장되고, 경직되고, 또한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는 잦은 실수를 하여 볼이 라켓을 벗어 나곤 했다. 그것은 달가운 일이아니었다. 언제까지나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었다. 적에게 선수를 빼았긴 결과 방어에만 급급하였고 공격을 하지 못한 결과 게임에서 졌다. 하지만 그런 것이 내가 갖고 있는 한계점이었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노력을 하여야만 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승리를 하지 못하고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경우. 무엇보다 회전 볼에 약한 내 능력 탓이었다. 그래서 좀더 많은 경기를 갖게 하며 회전을 시켜서 오는 공을 받아 넘기기 위해 나를 변화 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건 현실적인 일이었고 그것을 점차 극복해 나가는 과정 중에 하나였다.

3. 굴삭기 연합회 회장이라는 B.Q 와 5섯 점을 주고 경기를 하여 지게 되었다. 내리 질 때의 절망감. 그렇지만 그의 탁구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물론 기초가 튼튼한 것은 아니었다. 그 다음에도 내가 지는 게 아니어다. 두 번째에서는 나는 그의 약점을 파악하고 공격을 하기에 이른다.
  감히 내게 그런 스코어차이를 줄 수 있다니...
  악에 받혀서 열 판을 치루고 그 중에 세 판을 이겼지만 그 뒤에는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된다. 처음에는 그의 공격, 측면과 교활한 서브볼(나는 회전 볼에 약했다. 그래서 그는 그런 볼을 강하게 보냈고 중간에 치면서도 회전볼을 주곤 한다), 백 쪽으로 보내는 심리전을 펼친다. 나는 백드라이브를 못쳤다. 그래서 왼 쪽으로 오는 볼을 보면 먼저 가슴이 쩔렁 내려 앉게 되면서 위축이 되었느넫 그런 전술을 구가하면서 공격의 리드를 하여 다섯 점을 먼저 선점하면서 경기를 하는데도 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짐에와서 탁구 기계와 백 쪽의 드라이브을 연습했다.
  오른쪽은 완벽하게 칠 수 있는데 비하여 왼 쪽은 약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에 이른 듯 왼 쪽에도 자신이 붙기 시작하면서 경기력도 향상이 된다.
  놀라울 정도로 왼 쪽 볼을 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회전볼을 푸시로 밀어서 넣고 난 뒤 두 번째에는 드라이브로 쳐서 상태에게 기선을 제압하곤 했었다.
이런 공격법이 레슨 강사가 다른 학생을 지도하면서 보여주는 학습법이었으므로 어깨 너머로 본 것을 흉내낸 것이었지만 실제 경기에서 내게 유용한 방법으로 통하였다.

31. 탁구 실력을 견주게 되는 기준

탁구의 세계.
아들이 근무하는 직장에 탁구를 잘 친다는 사람을 F.G라고 부르겠다.
그곳 직장에서 사장이라는 사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그가 회사에 근무한다고 하는데 뛰어난 탁구 실력의 보유자라는 것이었다. 사장 또한 탁구에 흥미, 관심이 많아서 함께 자주 쳤다고 하는데 아들과의 경기에 있어서 자주 치는 편인 모양이다.
그에게 아버지가 옥천에서 탁구 동호회에 나간다고 하자 옥천은 탁구가 형편없다고 평하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충북 옥천에서 탁구를 배우는 중이었고 턱걸이를 하듯이 겨우 오름을 계속하는데 그 상위권에 들기 위해서는 너무도 멀고먼 과정이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것같다.
  그렇다면 내가 실력이 조금씩 오르면 그 F.G 라는 사람은 제자리 걸음을 할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요는 어떻게 실력을 높일 수 있느냐? 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상위 구룹에 오르게 되면 그 정도의 차이에 따라서 상대성이 있게 경기를 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서로 연습 게임을 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잘 알게 되면 실력이 비등해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자신의 실력의 3할은 감추워 두워야 하며 잘하는 기술을 계속하여 중점적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탁구 실력을 비교할 수 있는 근거는 경기를 하여 승패에 따라 좌우될 수 있으며 그 내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전체적으로 잘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는 점.
  F.G 는 대표로 나가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을 정도로 도에서 가장 잘 치는 사람 중에 하나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의 신기에 가까운 실력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2. 강습을 받는 학생들과 레슨 강사와의 경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면 실력을 가름하게 한다.
  그러나 두 분 모두 나는 옥천의 탁구 발전을 위해서 중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무료 강사가 이번에 새로 들어온 탁구를 전혀 모르는 여성분을 지도하는 것을 보았었다. 그 여성분과 나는 탁구를 치게 되었는데 못 친다는 것을 억지로 끌어다가 탁구대에서 함께 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잘 치는 것은 아니었다.
  레슨 강사에게 갔던 것도 자신의 실력이 없음으로 해서 일반 사람들과 함께 칠 수 없다고 자학해서였을 터였다. 아무렴 어떤가 탁구에 문외한일지라도 이곳 무료 강사에게는 다 같은 자신의 제자였고 옥천에 살고 있는 군민이었던 것이다. 누구나 와서 칠수 있는 지역 사회의 탁구 동호회에서 레슨을 지도하는 강사들에게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는 사실이었다.
  누가 새로운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또 하나 조금씩 배워 나가다보면 발전을 할 것이고 몇 년 뒤에는 사실상 선수가 되어 옥천 대표로 나갈 수도 있지 않은가!
  이때 레슨을 받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자리에 레슨을 가르치는 강사들은 자부심을 갖을만도 했다.

  내가 그들 두 사람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고 있는 점도 그만큼 옥천에게 탁구 동호회원들을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최전선에 서는 위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16.02.24 19:11
  이곳 탁구실에서 레슨을 가르치는 강사의 탁구 실력은 우선 무료와 유료를 가르치는 A.B 로 나뉘게 되는데 내가 본 견지로는 유료 강사가 월등이 높은 수준 같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유료는 아주 잘 치고 그 기술적인 우위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경기를 보로라면 무척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무료 강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학생 중에 중학교 3학년 짜리에게 연거푸 고배를 마시는 것을 보아서는 그다지 탁구 실력이 높다고 보여지지는 않았다.

58. 아들과의 탁구 경기 (3)

아들과 어제는 탁구를 쳤었다.
대전 선화동에서 연구단지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이제 옥천에서 연구단지까지 고속도로를 들어가서 차를 운행하겠다는 것이었고 어제는 화물차를 대신 갖고 가서 이삿짐을 갖고 왔었다.
나는 공장에서 일을 했으므로 함께 가보지는 못했다.
아내가 따라가서 딸과 아들이 살던 투룸을 정리해주고 옸는데 이삿짐이 얼마나 많은지 방 두 칸을 모두 꽉 체워서 답답할 정도였다.

이사를 끝내고 저녁 식사 후에 셋이서 탁구를 쳤는데 나와 아들은 2 : 2 라는 박빙을 보였고 아들 친구는 못치는 축에 속했다. 내가 아들과 탁구 경기를 하게 되면 지는 축에 속했지만 어제는 좀 달랐다. 먹이를 보고 달려드는 독수리처럼 빈틈을 파고들어서 볼을 때렸는데 여지없이 무너지는 모습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기본기가 갖춰저 있지 않은 아들.
  탄탄한 기본기에 자세가 전혀 흩으러 지지 않는 나.
  사실상 아들이 서브볼을 넣으면서 보내는 회전볼을 그동안 나는 받아 치지를 못했었다.
  하지만 탁구 동호회에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접하게 되자 내가 반사적으로 회전볼에 강해졌고 실수도 줄었다.

59. 아들과의 탁구 경기 (4)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 왼 팔이 없는 자신의 아니 또래인 남자 장애인이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체육관에서 탁구를 치는 것을 본 적이있었는데 동일인이 아닐까? 하는 의아심을 갖었다.
그 청년은 매우 겸손했다.
그리고 한 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탁구를 잘 쳤는데 나와 포핸드링으로 주고 받고 하면서 탁구를 친 적이 있었다.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으므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동일인이었다.
아들이 다니는 직장에서 함께 탁구를 치기도 했던 모양.
어제 저녁에는 아들이 탁구를 친 얘기를 한다.

  내가 탁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중에 드라이브였다.
신기함.
볼을 잠시 멈추게 받아서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는 신의 경지.
나는 이 부분을 깨닥게 되었는데
그것은 탁구를 치다보면 깨닫게 되는 기술인 것같다.

  잠시 라켓에 볼을 받아서 멈춘 뒤에 방향을 바꿔서 보내고 싶은 곳으로 올려 친다. 그리고 손으로 그 방향까지 밀고 올리면 가리키는 것처럼 그곳으로 향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볼이 그 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32. 탁구를 치는 자세 교정의 필요성에 대하여...
그런데 지금까지 혼자 탁구 연습을 하였던 모든 것을 교정하여야만 하다니...
자세가 잘못되었는데 그로 인해서 힘이 많이 들어가다보니 손가락이 아프고 팔에 앨브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잘 치는 사람으로부터...
그로 인해서 자세 교정을 하여야 할 듯싶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오른쪽 팔목이 아프던 것이 씻은 듯이 달아 났다.
지금은 손가락에 뼈 마디가 쑤시고 아팠는데 라켓을 잡을 때 너무 힘이 들어간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무엇보다 자세의 교정이 필요했는데 그 이유는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다. 내가 탁구를 칠때마다 팔굼치를 치켜 올리고 허리를 너무 돌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허리를 돌리고 팔을 올려서 치게 되면 볼이 내 라켓에 멈추는 것같았다. 그 타법이 좋아서 일부러 그렇게 치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좋지 않은 습관이여서 몸에 무리가 간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교정이 필요한...

이런 방식으로 치는 것.
사실상 지금으로서는 내게 딱 맞는 것처럼 점점 탁구가 재미있어 지는데 그 방법이 잘못되었다니...

32. 손가락 통증 2016.02.24 08:45

2. 저녁을 먹고 나서 체육관에 탁구를 치러 갔다. 오늘을 출장을 갔다 왔으므로 너무 늦게 탁구를 치러 갔는데 그 시간이 오후 8시 30분이었다.
  그리고 탁구를 다시 배워야 할 듯.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자신이 잘못 된 상태로 계속 탁구를 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A급의 실력자에게 밤 10시 30분 경 잠시 치다가 약간의 조언을 받게 되었는데, 자세가 팔에 무리가 많이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팔이 아프고 손가락이 심하게 관절통을 받는다고 했다.
  그와의 일문 일답이다.
  “손가락들이 안 아픕니까?”
  “손가락이요? 안 아픈데요!”
  “그래요! 나는 무척 아픈데...”
  “아무래도 자세가 나빠서 그럴겁니다. 손이 너무 들어 올라가서 팔이 아프고... 손가락은 너무 힘을 줘서 아마도 뼈가 눌리는 것같고... 세게 라켓을 잡지 말고 살짝만 잡아 보세요. 그리고 다리를 이용하여 회전을 하시고...”
  그가 몸을 틀어 공을 때리 듯이 자세를 잡는 것이여서 내가 따라하자 잘못된부분을 잡아 준다.
  “팔을 들어 올렸을 때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약간만 들어 올리세요. 뒤로 너무 재끼지 말고... ”
  그는 소방소에 다닌다고 했다.
  나는 레슨 강사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다.
  “무료 레슨 강사는 탁구 협회 회장이라면서요?”
  “예! 탁구 총 연합회 회장이지요.”
  “그럼, 무료 레슨을 가르치면서 군에서 봉급을 받나요?”
  “그런 것 없습니다.”
  “그럼, 무료 봉사...”
  “그렇지요!”

  그는 방금 전에 단신으로 경기를 했는데 드라이버가 아주 기가 막혔다. 그리고 너무 잘 쳤으므로 아주머니들은 뒤에서 선수 같다면서 늘상 환상적인 탁구 실력을 보면서 쑤근 거리곤 했었다.
  그만큼 그가 탁구를 칠 때는 빛난다고 할까?
  신이 그의 몸에 예술로 승화한 듯한 신기의 모습처럼 비쳤다.
ㅇ통증을 느끼는 낀다고 했느끼는 것이라는 몸이 ㄴ
 자세 교정을 하지 않으면 손이 아픈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33. 탁구를 치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2016.02.24 10:29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탁구를 치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다시 기본기를 배워야만 할 듯...
팔을 몸에 붙인 상태로 무릅을 약간 굽혔다가 피면서 허리를 틀면서 라켓으로 공을 치는 연습을 거울을 보면서 하여야 할 것같다.

어제는 청북으로 1톤 화물차에 기계를 싣고 납품을 나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죽암휴게소에서  차를 세워 놓고 차 안에서 잤었다.  그것이 오후 4시 가량.
빈틈 없이 빡빡하게 주차 되어 있는 차량들 사이로 차선을 지키면서 방금 전까지 졸음 운전을 하면서 차선을 벗어나서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하였지만 만사 귀찮아서 차에더 다리를 굽힌체 잠들었다.
꿀 맛같은 단잠이다.
깨어서 느끼는 개운함은 형용키 어려울 정도로 맑다.
전날 탁구를 쳤던 탓에 땀을 흘렸었고 그만큼 몸이 운동을 하여 피로했던 모양이다. 위험천만한 곡예 운전을 하기보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는 게 상책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피곤해 질 이유가 없었다. 무리하여 늦게까지 일을 하지 않았었으니까. 다만 의심스러운 점은 전 날 체육관 다목적실에서 탁구를 친 것이 무리한 것같다. 탁구를 치고온 날은 심하게 코를 골로 잔다는 아내의 말이 귀전에 스치고 지났다.

  그만큼 격렬한 운동(이것이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기본자세가 잡히지 않아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으로 무리가 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처지에 찬밥 더운 밥을 가리지 말고 열심히 운동을 하면 그게 장땡이었다. 또한 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즐거운 마음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운동을 하지 않으면 지금의 건강조차 지키지 못할 처지였다. 일이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운동이 필요했던 신체가 지금은 매우 건강할 정도로 정상으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도 탁구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혈압약을 먹다가 끊었는데 그 이유가 체력적으로 무척 활력이 넘쳤다고 판단해서다. 물론 의사와 상의한 것도 아니었다. 벌써 두 번째 약을 먹다가 끊은 것이다.
  한 번은 너무 어지럼증이 심해서고, 두 번째는 모친을 모시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였다. 그렇지만 운동을 하면서 좀 나아지게 되자 모두 끊었다.
  지금으로서는 건강을 지키는 것은 운동이라는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일로 과로하던 지난 날에는 별도의 운동을 생각지도 못했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았던가!

  그러다 보니 그 때의 좋지 못한 기억이 늘 염두에 떠올라서 악발이처럼 탁구를 치러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모은 게 지금은 자세교정을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휴게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로 1시간 가량을 자고 나자 한결 나아졌다. 이제는 졸음도 달아 났다.
  원기가 솟구친다란 말처럼 기운이 넘쳐 났다.
  하지만 운전은 원기와는 상관없었다. 정신적으로 맑은 느낌.
   다시 새 기분으로 운전을 하여 얼마되지 않은 거리를 주행하여 집에 도착한다. 신탄진 IC-대전 IC-옥천 IC 그렇게 세 곳을 거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면 바로 옥천이었으니까.
 
  잠에서 깨어 다시 출발하여 6시 정도가 되어 옥천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한 뒤에 탁구장에 도착한 시각은 8시 30분 정도. 다른 때보다 너무 늦은 시각입니다. 출장을 다녀 왔으므로 쉴 법도 한데 탁구장에 나와 탁구를 치게 됩니다. 그런데 탁구잗에서 10시 30분까지 전등을 끄고 문을 닫을 때까지 마지막으로 나오는 네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른 한 명과 주차장에서 얘기를 나누게 된다.
  그는 소방소에 다닌다고 했다.
  A 급의 실력자인 데 나와 포핸드링으로 탁구를 마지막으로 쳤었다. 그리고 내가 자세가 어설프다는 점과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서 아플 것이라는 것, 그리고 자세 교정을 해야 한다는 조언을 줬다.

34. 옥천군 탁구 동호회 리그전 2016.02.27 08:50


1. 어제는 저녁 식사 후(2016년 2월 25일 목요일) 에 탁구를 치러 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1달에 한 번씩 <옥천 동호회 탁구 리그전>이 있는 날이라고 했다.
다목적 탁구실이 아닌 체육관 중앙 홀에서 탁구 경기가 열렸는데 나는 명단에 없다고 해서 탁구 경기에 끼이지도 못하고 사진만 찍다가 왔다.
땀을 흘리면서 운동을 하고 싶어 갔더니 가는 날이 장난이라고 군단위 탁구 동호회가 총 충동하는 날이라니...
그러고 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있었다.

2. 나는 우선 젊은 사람과 함께 포핸드링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치게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체육관은 선수들로 호명된 사람만 경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행자가 내 이름을 묻었는데 대답을 하였지만 기록에 없다고 했다.

3. 의외로 내가 이런 자리에 끼인 적이 없었으므로 의아스럽기만 하였다.

35.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13)
6. 옥천군 탁구인들 화합의 장
어제는 저녁 식사 후에 탁구를 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1달에 한 번씩 <옥천 동호회 탁구 리그전>이 있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다목적 탁구실이 아닌 체육관 중앙 홀에서 탁구 경기가 열렸는데 나는 명단에 없다고 해서 탁구 경기에 끼이지도 못하고 사진만 찍다가 왔네요! 그동안 직접적으로 탁구 치는 장면을 사진기로 담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많은 사진을 갖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을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다목적실에서는 탁구를 치는 사람의 정면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 댈 수 없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넓은 체육관 중앙 홀에서 여러 사람들이 서로의 기량을 발휘하여 시합을 벌이는 장면.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기를 치고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두 달 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원정 나온 사람들. 이원, 안남 등지에서 참석한 사람들과 관중들까지 합치면 어림잡아 200여명 남짓.
그 중에서도 새마을금고 이사장에 출마한다는 사람이 투표에서 표를 찍어 달라고 일일이 악수를 하며 다니면서 한 번씩 어깨를 으쓱하면서 탁구를 치는 시늉을 합니다. 그 모습이 신기하다고 할까요? 문외한 같은데 그런 몸짓이 오늘만큼은 재롱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너그러워 집니다. 적어도 오늘은 탁구인의 날이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이 자리를 빛내고 자신의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하여 실력을 평가할 자리였지요. 탁구 동호회에 우연찮게 나가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곳 더 넓은 곳의 세상이 있다는 사실에 한층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더 넓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고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유대감을 쌓는 세계. 아무래도 탁구라는 운동에 미친 사람들만의 공간에 그나마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뜻 깊다고 할까요.
2016년 2월 25일
옥천군 탁구 동호회 리그전
옥천, 안남, 이원, 동이, 향수, 나이스, 엣치…….

열 개 정도 되는 동호회원들 중에 명단에 들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탁구 시합을 벌였습니다.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이번의 리그전은 옥천군 탁구인의 긍지이자 자부심의 결합체 같았습니다.
옥천군 주민으로 이만큼의 탁구 동호인들이 화합의 장으로 탁구 시합을 벌일 수 있다는 저력을 느낄 수 있는 긍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자질을 갈고 닦아온 실력을 겨루면서 자연스럽게 동호인들과 유대감을 갖게 된 계기였습니다.
이곳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옥천에 살고 있는 주민들입니다.

바로 내 이웃 사람들이라는 공통적인 공동체.
모두 자신들의 직업에 충실하고 옥천을 위해 알뜰살뜰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을 헤쳐 온 사람들이 탁구라는 운동에 동참하면서 서로 함께 하였다는 사실 만으로 한마음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작고 보잘 것 없는 화합이 더 큰 불길로 더 높이 타 오르리라고 기대하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체육관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무겁고 어둠침침하던 하늘에 웅장하게 땅에 솟아 오른 체육관이 사람들을 만나는 장터처럼 느껴집니다. 텅 빈 좌석, 육중한 건물, 볼품없는 시설로 그동안 각인되었던 체육관이 아닌 살아 있고 생동감이 있으며 원대한 꿈으로 가득한 듯 웅지를 품었다고 할까요! 초라하고 볼품없이 딱딱하고 또한 괴물같아 보이던 인위적인 건물이 지금은 전혀 무섭지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아들, 탁구라도 쳐서 건강해야지!” 하는 듯 중풍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의 미소가 그곳에 반짝입니다.

첨부파일 : 첨부파일에 있는 사진은 옥천군 동호인들의 리그전을 펼치는 장면입니다.
두 장의 사진을 합치기 위해서 간단한 방법으로 연결하다보니 화면이 약간 층이 지네요!

65. 옥천군 탁구 동호회 리그전 (2)

1. 이 대회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경기를 해 가면서 실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과 선수가 되어 뛰는 느낌을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생각.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대비를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다음에는 이런 경기가 있게 되면 꼭 참여할 것이다.
2. 픽션.
  아들이 있는 회사와 이곳 사람들과 친선경기를 갖게 되는 것.
  하지만 사장과 군수와는 도박을 건다.
  세기의 경기였다.
  승률을 장담할 수 없는 실력차.
  그 중에서 두두러지게 뛰어 오른 자가 있었다.
  자신의 마음 속에 해야겠다는 자신감이 붙어서 연승을 한다.
  모두 다섯 명의 승리자가 가리게 되고 그 뒤에 다시 경기를 치루게 되는데...
  오직 최종 우승자가 상금을 거머쥔다.  

66. 체육관에서 찍은 사진 편집 2016.02.28 09:27


-위의 사진은 두 개의 사진을 함성하였다. 아래와 위의 탁구 치는 장면을 합친 것이다. -

-위의 사진은 두 개의 사진을 합성한 것 뿐이 아니고 글씨까지 넣었는데 주의 할 점은 아래에 여러 가지 사람들을 다시 추가하여 넣었다는 점이었다. 내가 찍은 사람들을 다시 하나씩 오려서 합성하였는데 실내에서 찍다보니 광선의 배함이 모두 다르다보니 모두 다른 얼굴로 빛의 각도가 달랐다. 또한 화질이 흐리고 깨진 곳도 많았으므로 선명하게 만들어 오려내기로 잘라 내었다. 그리고 사진관에 갖고 갔더니 위의 글씨가 위로 튀어난 부분이 잘렸다. 할 수 없이 열 장을 뽑았지만, 다시 내일 글씨를 내려서 열 장 다시 뽑아야 할 듯 하다. -

어제는 밤 12시까지 소형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편집하여 두 사람에게는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총무와 최** 에게.... 어두운 실내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잘 나오지 않았다.

  거기다가 움직임이 많은 운동 경기였기 때문에 화면들이 겹쳐서 나타났다. DSLR 카메라가 아닌 일반 소형 디지털 카메라여서 더욱 그랬다. 준비를 해 가지 못하고 항상 갖고 다니던 디지털 카메라가 그나마 이런 탁구 경기가 많은 날에 제 몫을 하였지만 사진에 찍힌 사람들을 찾아서 현상한 것을 주려니 조금 민망할 정도였다. 사진이 그만큼 나빴으니까.
  하지만 현상을 하면 좀더 깨끗하게 나타나게 되니 조금은 나으리라! 내일은 사진관에 형상을 맡기기 위해 편집을 하는데 워낙 많아서 고역이다.

36. 장강이 흐르듯이...

Fiction (100)
1. 물이 흐르는 것처럼 점점 더 큰 물로 합쳐지는 느낌이 든다.
어제는 토요일이었다.
탁구를 치러 갔는데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보니 몇 사람 되지 않는 사람들끼리 10시가 넘도록 쳤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제 실력이 붙자 두 사람의 여성분과 함께 탁구 경기를 벌였는데 전에는 졌던 승부가 이제는 내가 이기게 되었다.
  그리고 J 라는 사람(남자)에게도...
  자신이 붙게 되면서 엄청난 스피트가 라켓에 이어진다. 마치 불을 뿜는 것처럼... 그렇지만 고수들과의 경기는 여전히 확률이 없는 게임이다. 계속 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이것은 그만큼 기량에서 차이가 보임을 뜻한다.

2. 손가락이 아픈 것. 참으면서 탁구를 칠 수 밖에 없었다.
  팔의 근육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었다.
  그렇지만 오른 손가락중에 가운데 손가락은 탁구를 치면서 계속 꺽였으므로 기형으로 변형된 것같다.
  탁구의 라켓을 뒤에서 받치는 가운데 손가락이 유독 심하게 아팠다.
  이렇게 아픈 이유가 원인이 무엇인가 손가락 마디 마디를 매 만져 본다.
  손바닥 쪽에 중앙의 뼈마디가 들 쑤셨다.
  아무래도 탁구를 치면서 뒤틀린 결과였다.
자칫하다가 손이 무엇엔가 걸리기만 해도 아팠다.
특히 악수를 할 때 그  통증이 심했는데...

3. 어제 저녁에는 탁구를 치러 다목적실에 나갔다.
  여기서 점심시간에 탁구를 치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가? 하는 점이었다.
  기계에서 탁구를 치면 레슨을 받는 것는 효과적이었다.
  내가 탁구 실력이 부쩍 늘었다고 자부하는 것도 혼자 기계 앞에서 탁구를 쳤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만큼 기계 앞에서 자신의 몸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다른 사람의 구예를 받지 않고 라켓을 때릴 때의 동작이 가장 최상일 때를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는 게 중요한 것같다.
  지금은 오른쪽을 거의 하지 않고 왼 쪽을 집중적으로 연습한다.
  백드라이브를 강하게 치는 연습.
  이것은 오른 쪽과는 달랐다.
  짧은 손동작으로 응급처방을 하듯이 밀어 치는 게 유용하였다. 그렇지만 강하게 리시브를 하면서 손을 올려 주면서 방향을 항하게 할 때 그곳에 낙하하는 방법은 같았다.
  이제부터는 백스핀도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을 할 것이다.

37. 꽃이 피듯이...   2016.03.01. 14:59

7. 사랑의 노래

사랑은 이미 내 마음에 매 말라 버렸는데…….    
꽃이 피듯이 사랑이 핀다.  
행여 질투에 화신인양 내 마음의 파문을 일게 하는 너.  
그렇지만 갈래야 갈 수 없고 올래야 올 수 없어라! 
어제는 내가 너에게 질투에 눈이 멀었었다.  
너는 다른 이와 함께 탁구를 쳤고  
나를 안중에도 없어 했다.  

오늘 나는 다른 여인과 탁구를 쳤는데 그녀는 조숙한 한 남자의 부인으로  
내게 끈질기게 탁구 볼을 날렸다.   
너는 등 뒤에서 내가 탁구 치는 모습을   
거부할 수 없이 벙어리 냉가슴마냥 바라보았지.  
짐짓 아무 것도 아닌 체…….  

나는 탁구를 치면서 당신이 어제 다른 남자와 탁구를 치면서 나를 외면한 것처럼  
쳐다보지도 않고 탁구를 쳤지.   
복수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사랑은 이곳 탁구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서   
개울에 빠져 흘러가는 것처럼 너에게 멀어지고 있었고,  
이젠 그 물길에 휩쓸려서 격랑에 떠밀려 간다.  

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다른 여자와 탁구 볼을 교환하는데 사실은 당신과 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너라는 여자를 잊기 위해 자위를 한다.   
내겐 무엇보다 내 가정이 있었고 또한 그 성역을 벗어 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닌 단순한 감정을 내 마음 속에 불러오는 것조차 힘이 들어서다. 
 아무런 감흥도, 느낌도 없는 고목처럼 내 몸에서 사랑이 피어나지 않음이다.   
아주 단순하게 그냥 서로 지켜보면서 각자의 인생을 향해 갈 수 있는 마음  
인생이 그렇듯 우린 사랑하기도 하지만 서로 갈망하지는 않으리라!  
각자의 생활과 자신의 삶의 영역 안에 끌어 들이기를 부정하면서…….  
    
나이가 들어 사랑이란?  
그저 젊었을 적의 꿈과 같은 것.  
나이가 들면 자중하고 돌발적인 외도는 그야말로 필요이상의 정력을 낭비하지.  
그리하여 내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돌이킬 수 없는 지탄의 대상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추락을 의미한다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업적을 송두리 체 공든 탑이 무너지듯이 수포로 돌아 갈 수 있기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실수를 갖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사랑의 묘약을 내게 뿌려댄 들 행여 동요하기라도 할까?  
사랑은 내 마음 속에 이미 차갑게 식어 버렸네.   
아. 그렇지만 너를 바라보면 괜히 흥분하고 좋았으며 그저 탁구 하나에 따라 뒤엉킨 감회와 같을 진데  
이제야 꽃이 피는 봄의 들녘에서   
아름다운 봄꽃을 꺾지 않으리라!  

그냥 그곳에 놓여 있어서 피고 지는 들꽃을   
행여 꺾어서 물병에 담아 내 책상에 며칠 두고 보기 위해   
줄기를 꺾는 짓은 하지 않고 지켜 볼 뿐이지.     

사랑의 얘기는 이제 내 가슴에 불을 지피지는 못한다.  
그것은 불장난일지라도.  
뭇 사랑의 가슴 앓던 사랑의 순간을 돌이켜 보면서   
전혀 예감하지도 그렇다고 끌어당기는 감정도 없었다.  
그따위 사랑이 먼말인가!  
이 메마른 가슴에 이미 타오를 기름이 없는데…….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의 다 이런 것일까? 하지만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미 내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지 못할 애닮은 고독의 심연에서 그렇게 느껴보고자 하는 감정이었으니까! 사랑에 대한 노래는 그러면서 어언 망발처럼 나의 가슴을 울린다. 내 모습은 너무나 늙고 초라한 늙은이가 되어 결코 그런 감정을 가지 못할 것이라고 자중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사랑 얘기를 애써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고 하는 이유를 나는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리라고 보지 않아서였다.  
막연한 느낌. 아마도 사랑해 봄직한 순간적인 감정. 때로는 그런 것이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거짓된 감정. 아마도 그렇게 자꾸만 보이는 거짓과 위선의 행동을 나는 매 순간을 꺾어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기에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또 다른 그럴 듯한 감정을 접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글을 쓰고 그런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내가 글에 아마도 인간이 느끼는 피가 그런 욕망을 자재하지 못하게 하는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리라!  

 
 
2. 부녀회장과 탁구를 치게 된다.
그리고 복식으로 쳤고,
다시 복식을 쳤던 다른 여성과 단식으로 친다. 그렇게 세 번씩이나 치는 사람이 바뀌었는데 매번 여자가 끼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 중에 절반은 여자 같다. 그런데 서로 우연찮게 와서 탁구를 치는데 어찌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랑을 노래할지데 그것이 심하게 파문을 일고 요동치지 않는 건 그나마 굳건한 자신이 여태 갈구하고 생활해 왔던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순간을 잠깐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예전의 젊은 날의 남아 있는 불같은 사랑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 하나에 목을 매는 불같은 사랑은 이미 접어 둔지 오래였다. 또한 결혼 이후 지금까지 28년 간을 외도 한 번 하지 않고 지켜온 남편이었다. 감히 그런 감정을 느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기에 오늘은 아마도 그 예날 젊었을 때 사랑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했던 추억의 여성분들을 떠올리면서 상상에 젖어 보는 것이리라!  이렇듯 내 마음의 치부를 붓 끝으로 해부를 하는 의도는 아마도 조금씩 망설이고 있던 순결함을 드러내는 시도이기도 하리라! 내 마음 속에는 그도톡 악마의 간악함과 천사의 순결함이 함께 존재했었고 자칫하여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게 되면 악마가 될 수 도 있는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결코 악마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한다고 해서 강제로 내 요구를 주장하지 않았다. 자재와 절재가 그것을 가로 막았고 56년간의 세월 동안 쌓아온 경험이 그만큼 내 자신의 위치를 다시 되 찾게 하여 왔었으니까! 젊은 이들이여! 절재가 미덕이며 순간적인 흥분으로 자신의 인생을 버리지 말기 바란다. 흥분은 금물이었다. 특히 이성간에 있어서 너무 일방적인 사랑은 곧 죄악을 낳기 마련이다. 그 욕구에 너무 빠지지 말고 강한 정신을 갖도록 노력하며 특히 흥분으로 폭력, 강간, 도둑질을 하는 죄를 짓지 말도록 심신을 충동에서 벗어나도록 하여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의롭게 하는 방법이므로...

  나는 항상 내가 젊었을 때를 떠올려 본다. 한 순간의 실수로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충동으로 수없이 방황했던 적이 있었음을... 그 땐 내게 아무런 도움을 주는 의인이 없었다. 오직 나 혼자만이 겪고 벗어 나야만 했다. 그 절망 속에서 나를 건져 올려진 여러 가지 비결은 아주 가느다란 착한 마음씨였다. 내게 죄를 짓지 말라고 속삭이는 순결한 마음만이 내 자신을 지금까지 버텨오게한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에 이르러 젊은이들이 그런 마음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가끔씩 아버지에게 망발을 하고 어머니를 간음하고 싶어서 충동질을 쳤을 때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주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젊은이라면 누구에게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참지 못하고 간음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평생 자신의 마음 속에 죄를 낳게 된다. 그리고 그 느낌으로 자신이 엄청난 착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후회를 하는 뼈 아픈 참회를 할 수도 있었다. 항상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참선하지 않는다면 악마가 찾아와서 자신을 꼭두각시처럼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

38. 이곳에서의 사랑은 탁구실에서 국환한다.
  이곳을 떠나서는 모든 게 잊혀지고 만다.
그것은 정례화 된 상태.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간의 정은 여기서 단절되고 마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곳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가 이곳에서 펼쳐져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
순응하는 가슴 아픈 사연.
돌아보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연한 느낌.
어찌보면 사랑에 울고 사랑에 우는 것도 오직 탁구에 신들린 사람들만이 영위하는 기쁨, 아니 슬픔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이 당연한 도리였고 그것을 참는 것도 복인 줄 알았다.
아마도 그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해서도 안 되었다.

성인군자의 도리.
아마도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한 자들이 다시 신탁의 자리에서 재림할지라도 그런 운명은 갖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므로 사랑의 싹은 일찌감치 도려낸 체 그저 한 순간일지라도 그 느낌에 빠져 있을 뿐 더 이상의 진행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 누구도 그런 사실조차도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서 변화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은 극도로 간택한 마음이었지만
그것을 끌어 올리고 감쌓던 것도 자신이었고
허물고 다시 무너트리게 됨으로서 다시금 그런 실수를 연발하지 않으려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
아, 사랑을 쌓는 건 그나마 마음으로 였을 뿐이었다.
그 사슬에 묶이는 건 인간의 마음이었고

그것을 변화 시켜야만 한다는 애뜻한 마음은 절대로 실행되지 않는 그러면서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애절함이 묻어 있어도 할 수 없는
성숙된 인간이 갖는 최소한의 감정일 뿐이라고 치부할 뿐이다.

이제 퇴락한 늙은 마음이 되어 한 번쯤의 불장난을 할 시기가 지났는데도 그런 감정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감히 말하다는 자체만으로도
불결하고 더러울 뿐이었다.
이렇듯 사랑은 이제 무가치할 뿐이었고 소통되지 않았으므로 그런 감정조차 용납될 수 없었다.
보라, 내일이면 이 탁구실에서 그들은 동일 돌릴 지언정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 잡히지 않는다. 오직 탁구를 치고 싶어 할 뿐

전혀 다른 사람들이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함께 탁구장에 왔을 뿐이었고
그저 벙어리처럼 상대방을 의식할 뿐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다.
보드안고 쓰다듬고 함께 지내며 생활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임을 알기에
또한 그렇게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돌연히 그 마음을 접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늙고 병약한 마음이라고 하여도 어쩔 수 없었다.

한껏 고조될 것도 없었다.
격한 풍랑이 일듯이 원망과 한숨을 짓기에는 그들이 너무 늙고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아, 사랑은 당연히 아니라고 애써 변명을 한다.
그리고 이렇듯이 살아 나가는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면서 오직 탁구장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실력을 벌이는 게 최선이었음이다.

운동을 하고 그만큼 삶의 시간을 돌려 놓는 게 그나마 목적이었다.

7.사랑의 노래

사랑은 이미 내 마음에 매 말라 버렸는데…….  
꽃이 피듯이 사랑이 핀다.  
행여 질투에 화신인양 내 마음의 파문을 일게 하는 너.  
그렇지만 갈래야 갈 수 없고 올래야 올 수 없어라!  
어제는 내가 너에게 질투에 눈이 멀었었다.  
너는 다른 이와 함께 탁구를 쳤고  
나를 안중에도 없어 했다.  
오늘 나는 다른 여인과 탁구를 쳤는데 그녀는 조숙한 한 남자의 부인으로  
내게 끈질기게 탁구 볼을 날렸다.   
너는 등 뒤에서 내가 탁구 치는 모습을   
거부할 수 없이 벙어리 냉가슴마냥 바라보았지.  
짐짓 아무 것도 아닌 체……. 
나는 탁구를 치면서 당신이 어제 다른 남자와 탁구를 치면서 나를 외면한 것처럼  
쳐다보지도 않고 탁구를 쳤지.   
복수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사랑은 이곳 탁구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서   
개울에 빠져 흘러가는 것처럼 너에게 멀어지고 있었고,  
이젠 그 물길에 휩쓸려서 격랑에 떠밀려 간다. 
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다른 여자와 탁구 볼을 교환하는데 사실은 당신과 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너라는 여자를 잊기 위해 자위를 한다.   
내겐 무엇보다 내 가정이 있었고 또한 그 성역을 벗어 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닌 단순한 감정을 내 마음 속에 불러오는 것조차 힘이 들어서다.  
 아무런 감흥도, 느낌도 없는 고목처럼 내 몸에서 사랑이 피어나지 않음이다.
아주 단순하게 그냥 서로 지켜보면서 각자의 인생을 향해 갈 수 있는 마음.  
인생이 그렇듯 우린 사랑하기도 하지만 서로 갈망하지는 않으리라!  
각자의 생활과 자신의 삶의 영역 안에 끌어 들이기를 부정하면서…….        
나이가 들어 사랑이란?  
그저 젊었을 적의 꿈과 같은 것.  
나이가 들면 자중하고 돌발적인 외도는 그야말로 필요이상의 정력의 낭비. 
그리하여 내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돌이킬 수 없는 지탄의 대상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추락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업적을 송두리 체 공든 탑이 무너지듯이 수포로 돌아 갈 수 있기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것이 사랑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실수를 갖지 않기를 바랄면서…….       
사랑의 묘약을 내게 뿌려댄 들 행여 동요하기라도 할까?  
사랑은 내 마음 속에 이미 차갑게 식어 버렸…….  
아. 그렇지만 너를 바라보면 괜히 흥분하고 그저 탁구 하나에 따라 뒤엉킨 감회와 같을 진데 
이제야 꽃이 피는 봄의 들녘에서   
아름다운 봄꽃을 꺾지 않으리라! 
그냥 그곳에 놓여 있어서 피고 지는 들꽃을  
행여 꺾어서 물병에 담아 내 책상에 며칠 두고 보기 위해
줄기를 꺾는 짓은 하지 않고 지켜 볼 뿐이지.    
사랑의 얘기는 이제 내 가슴에 불을 지피지는 못한다.  
그것은 불장난일지라도.  
뭇 사랑의 가슴 앓던 사랑의 순간을 돌이켜 보면서 
전혀 예감하지도 그렇다고 끌어당기는 감정도 없었다. 
그따위 사랑이 먼말인가!  
이 매 마른 가슴에 이미 타오를 기름이 없는데…….   
                
                                                            2016년 3월 1일  김태완

『나이든 사람들의 사랑의 다 이런 것일까? 하지만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나는 감히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미 내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지 못할 애닮은 고독의 심연에서 그렇게 느껴보고자 하는 감정이었으니까! 사랑에 대한 노래는 그러면서 어언 망발처럼 나의 가슴을 울린다. 내 모습은 너무나 늙고 초라한 늙은이가 되어 결코 그런 감정을 가지 못할 것이라고 자중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사랑 얘기를 애써 숨기지 않고 드러내려고 하는 이유를 나는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리라고 보지 않아서였습니다. 다목적실에서 탁구를 치면서 많은 여성분들과 함께 합니다.
  글을 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사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 시설, 자연, 위치 등을 중심으로 놓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나열하지요. 제가 쓴 여러가지 책(두권의 책 외에 앞으로 출간한 것) 중에 <해안방어>하는 책은 동해안 애안가의 초소에 근무하는 군인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해안가의 초소 막사입니다. 그림처럼 밀려오는 파도의 변화무쌍한 장면이 배경처럼 펼쳐져 있고 군인들은 해안가 초소에서 주야로 근무를 섭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되지요.
  이렇듯 사물이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내가 글을 쓴다면 이곳 다목적실에서 탁구를 치러 오는 사람들의 애환을 그대로 그려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장소를 벗어나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되지요.
  무수한 사람들이 오늘도 탁구를 치러 왔습니다. 주간반에는 나이든 어르신들이 노란 공으로 치고 야간에는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한 두 명씩 찾아와서 주거니 받거니 탁구 볼을 교환하지요.
  그런데 그곳에 사랑이 없겠어요.
  나름대로의 생각들.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에게 흐르는 정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서 끝나고 절대로 표현하지 않는 나이든 사람의 심적인 느낌은 젊은 날의 풋사랑 만큼이나 애닲은 느낌은 아닐까요!
  시에는 감정의 함축성이 있습니다.
  제가 『날아가는 오리 2』 편을 부산의 한 PC 방에서 다른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기계 A/S를 나와서 다음 날까지 묶게 되었는데 PC 방에서 밤 12시까지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관한 내용의 글을 썼지요.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흐를 정도로 진하게 젖었는데 복받치는 추억에 그야말로 몇 번이나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야 만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은 책으로 출간되어 있는데 언제나 그 추억이 묻어 나고요.
내 책에 내가 감동합니다.
글을 쓰다보면 그런 느낌이 많이 나는 경우 아마도 여러가지 인생의 경험이 묻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점은 그런 과거가 아무래도 현재를 살아가는 데 추억을 갖게 하는 것같습니다.
하지만 젊었을 때의 경험 만큼이나 나이가 든 사람들의 감정은 안으로만 갈무리합니다. 저의 경우는 그런 기복을 마치 음악을 그리듯이, 때론 그림을 그리듯이, 그리고 글로 표현하는 경우지만요.
  어쨌튼 다목적실의 탁구를 치는 공간은 많은 이들의 향수가 스민 곳같네요. 그 사람들이 행여 탁구를 치면서 사랑을 노래하지 않았을까요. 이 공간에서의 식지 않은 사랑은 오늘도 봄 꽃이 피듯이 피어 오릅니다. 다만 이곳을 떠나면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갈테지만 뭐 어떻습니까? 한 번쯤 이런 감정을 갖어 봄도 마음을 보다 젋게 만들 수 있는 비결이 아니겠어요!
69. 탁구를 치면서... (10) 2016.03.01 18:40

어제 저녁에 탁구를 치러 갔다.
 청북으로 출장을 나갔다 왔으므로 하루 종일 기계 제작 일을 하지 못하여 잔업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의외로 변수가 생겼다. 사진들을 나누워 주워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월요일 저녁에는 사람들이 탁구를 많이 치러 나왔으므로 적어도 몇 사람에게 찍은 사진을 눌 수 있으리라!
  “에이구, 그 놈의 사진이 뭐길래...”
  아내는 내게 그렇게 핀잔을 한다.
  “내가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게 편집 디자인이잖아...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편집한 것을 끼워 한 개씩 주려고 하는 것이고...”
  “앞으로 그런 사진 찍지 말아요. 사진 찍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성가시고... 돈들어 가고... 시간 낭비고...”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당신은 동창들에게 안 그랬어?”
  방구 뀐 놈이 성낸다고 했던가!
  아내는 가만히 있는데 내가 더 지랄을 했다.
  하지만 아내가 싫어 하는 것을 알기에 내 딴에는 입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소리다.
  자신이 하는 건 또한 괜찮고 내가 하는 건 눈에 쌍심지를 켰었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못할까? 하는 반발감이 일었던 것이다.

 아내는 이곳 옥천에 와서 너무 많은 모임에 나간다.
  나는 반면 하나도 없었다.
  ‘근래 탁구를 치면서 저녁에 가끔씩 나가는 게 고장이었는데 그것마저 일일히 참견을 하는 건 월권행위가 아니냐?’ 라고 못을 박았다.

  어쨌튼 그렇게 해서 사진 찍은 것을 나눠 주기 위해 잠깐 갔다 오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밤 9시를 넘기게 된다.
그곳에 가면 탁구에 미친 사람들이 많았다. 도박처럼, 아니 아편처럼 계속 탁구라는 운동에 이상하게 몸이 당기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중단하게 되면 금단현상이 일어나고...

  이렇듯 탁구를 치러 가는 것도 어쨌튼 중독성이 강했다. 하지만 내가 갖는 중독성은 그다지 심한 것은 아니었다. 기계 제작 일을 하려고 지장을 초래할 수 없어서다. 그렇지만 유난히 10시 30뷴까지 탁구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비가 야간에도 상주하여 밤 10시 30분이면 나가라고 찾아온다. 그 때까지도 서너 차례 낫선 사람처럼 불쑥 들어 와서는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탁구를 치던 사람이 이 경기만 끝내고 나간다고 했다. 모두 네 사람이 복식 게임을 치루고 있었으므로 경비는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가서 출구 쪽에 밖으로 쳐다 볼 수 있는 관리실로 돌아 갔었다. 그리고 마감 시간을 넘기고서 경기를 마친 뒤에 소등을 하면서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더러 게임에서 진 사람들이 앞서 게임에 임하기 전에 내기를 걸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식당이던가 슈퍼마켓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탁구를 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게임을 하다보면 시간을 잊는 것이다.
  이쯤되면 지독한 중독이다.  그렇게 끊질기게 밤 10시 30분까지 마감시간까지 치는 저녁을 갖고 있는 걸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가급적이면 일찍 오는 편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9시 까지 두 사람의 여성분과 포핸드링으로 계속하여 30분간 이어서 쳤고 복식 게임을 한 번 했다.

70. 지하실에서 탁구를 치면서... 2016.03.03 22:33
오늘은 야간 작업을 해야 했으므로 체육관에 탁구를 치러가지 않았다. 대신 저녁식사 시간 전에 500미터 떨어진 J 건물로 토미(?)라는 개를 데리고 가서 뒷마당 한 쪽에 묶어 놓고 지하실을 내려갔다.

계단 옆에 있는 개집에는 진돗개 한 마리가 요란하게 짓어 대었다.
  “컹, 컹, 컹.... 컹!”
  토미를 보고서는 계속 물어 뜯곤 해서 얼씬도 하지 못하여 먼 곳에 묶어 놓은 것이다.
  저쪽 집에 원래부터 키웠던 곰순이는 이웃의 B 라는 중학생 집에 분양을 시켰었다. 토미 때문이다. 두 마리의 개를 함께 키울 수 없어서다.

  탁구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
  펜홀더는 강한 드라이버로 라켓을  치기 위한 방식이라는 의미처럼 볼을 치면서 팔을 뻗어 올리게 되면 포물선을 그리면서 상대편 테이블에 꽂혔다.
  내가 팔을 길게 들어 올리는 방식에 이제는 허리와 무릎까지 동원하여 강한 타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일명 드라이버로 라켓을 치는 방식이었다.
왼 쪽으로 팔을 돌려서 치는 것을 백드라이버였는데 아직 그것까지는 익숙하지 않았다.

지하실에서 탁구 기계를 통하여 혼자서 드라이버를 익히게 되는데 연습에서는 잘 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는데 드라이버로 라켓을 치게 되면 번번히 테이블을 벗어나거나 넷트에 걸리곤 했었다. 회전이 되어 넘어오는 볼을 라켓으로 때려줄 때 강약이 약하던가 방법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번번히 볼이 원하는 대로 나가지 않고 괘도를 벗어나게 되었었다.
  수없이 반복하여 백드라이버를 연습한다. 백드라이브로 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아직도 한참 더 연습 기간이 필요할 듯싶다.
  “찰칵... 탁!, 찰각... 탁!, 찰칵...탁!”
  기계에서 뱉어 내듯이 반복적인 찰칵 거리는 소리. 마치 총에서 실탄이 장전되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그 뒤에 뱉어 내기라도 하듯이 흰 탁구 공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온다.

  오늘 애니퐁 탁구 기계를 탁구대에 오랫만에 설치해 놓고 치게 된 것이 실로 2주만이었다.
  자주 와 보지 못한 건 칠 시간이 없어서다. 그렇지만 오늘은 모처럼만에 기계 앞에서 애인을 바라보듯이 튀어 오르는 공을 강한 리시브로 쳤다. 기계와 연습하는 것을 나는 레슨을 받지 않기 위한 대체법이라고 여겨왔었다. 반복적인 동작으로 계속하여 공이 튀어 나오면 그것을 몸 동작을 취하면서 라켓으로 때리는데 이때 내가 취한 동작 중에 정확하게 구사하게 된 상태를 연구했다. 그렇게해서 탄생한 타법. 팔을 들어 올리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볼을 보내게 되는데 순간적으로 내게 친 공이 공이 머물러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강한 신체적인 반동으로 힘껏 내리치게 된다.
  옴 몸에 힘이 탁구볼 하나에 쏠렸다. 

71. 다목적실에서 처음 왔을 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
 
다목적실에서 처음 왔을 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상태.
변화에 대하여 몸이 받아 들이지 못하는 현상.
그리하여 긴장감으로 솜털까지도 서 있는 것같았다.
누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말을 할 경우 모든 신경이 쏠렸었다.
그런 느낌이 아마도 일주일 이상 지속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잊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정신이 필요했다.
그 당시에는 너무도 과민했는데 전혀 낫선 환경에 혼자가 된 느낌은 아무래도 그 누구에게도 보호 받지 못하였으며 촉각이 곤두서서 누가 말 한 마디를 건네도 크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하였다.
  몸은 경직되었고 이런 상태가 더 빨리 피곤을 유발하였으며 갖은 실수를 연발하였다. 마치, 군대에 처음 들어 갔을 때 신임하사 시절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정도이리라!
  하사관 침실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주위를 살피면서 공포에 휩싸인 기분.

72. 탁구를 치게 되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2)
  
탁구를 치게 되면서 건강을 되찾은 느낌이다.
그래서 저녁마다 체육관으로 가면서도 그다지 싫지가 않았다. 땀을 잔뜩 흘리면서도, 흘려 버린 탁구공을 줏기 위해 뛰어 다니면서도, 그리고 탁구기계로 줄기차게 라켓을 때리면서도 즐거운 이유는 바로 몸이 좋아진다는 결과 때문이리라!

사실상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해 오지 않았었다.
지금처럼 탁구를 치기 전에는 걷기 운동 일관이었지만 땀이 어지간해서는 흐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운동으로서의 효과는 미약하였고 더 필요한 상황으로서 건강도 지키고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탁구를 치게 된 기쁨은 나날이 더해져만 갔다
특히 체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은 정신까지도 맑아 져서 글이 잘 써진다는 것이었다.

39. 벽   2016.03.05 07:27
탁구의 벽으로 휩싸여 있었다.
사람들 간에도 막혀 있었다.
결코 낮지 않은 이유가 어디 있을까? -이것으로 인요알 것-

어떻게 설명 하여야할까?
적게는 다목적실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한 달에 한 번씩 탁구 대회를 개회하는 <옥천군 동호회 리그전>을 본 소감은 대단한 충격을 주웠다. 그 중에 나도 저들의 일원이라는 사실과 함께 경기를 벌이는 과정에서 조금씩 실력과 안목이 높아지게 된었다.
그렇다고 실력이 부쩍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조금 나아졌다고 우쭐대는 건 못치는 사람과 칠 때였고 그렇지 않고 잘 치는 사람과 경기를 하게 되면 여전히 지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벽이 높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만다. 그렇지만 탁구를 잘치는 것이 우월하다는 사실은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이곳에서만이 그렇다는 것이지 여전히 밖에 나가서도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어제는 잘 쳤지만 오늘도 잘 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어쩌면 잘 친다는 기준은 못치는 사람들과 경기를 하는 것일뿐이었다.
  그만큼 잘치는 사람들은 한없이 높았다.
  이곳 옥천군의 탁구 동호회는 또한 다른 곳과 비교해 보면 다시 못치는 편이었다. 그럼으로 현실의 벽은 높았고 탁구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경기에서 졌을 때의 패배감이었다.
  이 좌절감과 참담함은 너무도 지독했다. 

  한 순간 우쭐하고 자신하였던 모든 점들이 지금의 경우는 너무도 어리석었다고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탁구를 칠 사람이 없어서 이곳에 와서 치는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점점더 현실의 벽은 높아 보였다. 그렇다고 자신하게 된 점이 중요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옥천에서의 탁구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았으므로 다른 곳과의 경기에서는 매우 수준 차이가 낮았던 것이다.
  그로 인해서 옥천에서 탁구 동호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두 사람의 레슨강사는 매우 중요하였다. 그 중에 탁구 실력이 높은 A 의 위치는 필요 불가결한 존재라고 할까? 하지만 그에 대한 대우는 유료 레슨 강사라는 입지였다. 또 한 사람 무료 강사이며 연합회 동문회 회장인 B 씨. 
  물론 나는 한 번도 탁구에 관한 레슨을 받은 적이 었었다. 그러다보니 이들 두 사람에 대하여 그다지 필요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처음 탁구를 치러 오는 문외한 의 경우는 전혀 얘기가 달라진다. 

이제 두 달이 넘어서 세 달로 접어드는 기간 동안 실력이 부쩍 늘었는데 그로 인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옥천군의 탁구 실력이 다른 곳과 비교할 때 형편 없다는 점이었다.
  “청주에 가서 우승을 했어요?”
  어제는 일주인 전(2월 28일. 일요일) 청주로 복식을 치고 왔다는 『선이네』라는 아주머니에게 물어 보았다. 시합에 나간다고 연습을 하면서 부산을 떨었었던 것이 생각나서다.
  탁구실 벽면에 『*** 대회, 단식 *** 1등 우승 황승원님, A 조 복식 김영자님, 박승원님 B 조 복식 이돌쇠님, 강식이님의 우승을 축하합니다』 라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내가,
  ‘우리 클럽에서 우승했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손사례를 떨면서 말했다.
  “시합에 가보면 옥천군의 탁구 실력은 조족지혈입니다. 실력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벽이 높아요!”
  "열심히 연습했잖아요!"

2. 아들의 회사에서...
  “옥천에는 탁구 실력자들이 없어!”
  한다는 것이었다.
  500명의 직원들 중에 탁구를 잘 치는 실력자들이 있었다.

3. 내가 탁구실력이 늘면서...
  우리 탁구 클럽에서 실력자들이 없다는 점에 무척 의아스럽게 생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모두 50대에서 60대의 나이 층이었고 동호회에 선수층이 얇다는 사실. 그리고 탁구에 열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실력은 밑바닥을 기는 느낌이었다.
  여러모로 나에게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동호회의 사람들 중에 잘 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동호회의 사람들 중에 월등하게 잘 치는 <엣지>의 젊은 사람들(40대 정도)의 경우 대단히 잘 쳤다. 그리고 가장 잘 치는 사람 중에 몇 사람이 있었고 그 중에 레슨강사도 포함했다.
  레슨 강사는 선수 생활을 했다는 것이었으므로 놀라울 정도였다.

4. 하지만 내가 실력이 늘게 되면서 따라 잡을 수 있다고 생각 하기에 이른다.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감히 이상적으로 바라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신기에 가까운 높은 하늘만큼이나 따라 잡을 수 없는 격차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실력차이를 나는 곧 따라 잡을 것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다목적실에 나가서 탁구를 칠 때마다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실력이 붙어서 가망성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은 꿈이라는 사실에 비로소 깨닫게 된다. 얼마나 현실의 벽은 높았는지 비로소 직지하게 되는 치는 사람에게 허무하게 지고 말았을 때의 심정은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실력의 차이에서 오는 최악의 상황에 있어서 여전히 나는 실력이 붙지 않는 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그 벽은 내가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멀었다. 

  옥천에서 탁구 실력이 없다고 한다던 아들 말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옥천에서 탁구 실력자가 없다는 사실이 엄연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동호인들 중에 실력이 빠르게 느는 것이 나 뿐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일까?

위와 같이 두 가지의 의심이 든다.
탁구는 경기를 치뤄서 실력을 가름해 볼 수 있는 기술력(?)을 평가해 볼 수 있는 실력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운동 경기이므로 동호인들의 실력 차이가 경기에서 드러난다. 혁혁한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부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아들이 다니는 회사의 경우 사장이 운동을 좋아 해서 회사에서 각종 구기 종목의 운동을 할 수 있는 체육관 시설이 있어서 다른 회사와 경기를 벌인다는 점이었고 특히 탁구를 좋아해서 탁구 선수들을 영입해서 회사에 근무를 시키고 있었으므로 그 중에 A 급 선수에 맘먹는 실력자, 고수가 있었는데 아들이 그 사람에게 개인 지도를 받고 있다고 했다.
  회사와 회사들 간에 시합을 벌이게 되고 그에 따라 상품도 걸렸는데 자존심 대결에서 아들의 회사에 있는 탁구 실력자가 최고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최고의 실력자에게 도전해보고 싶을 정도로 실력이 늘게 될 때까지 연습하고 싶었다.

  지금의 경우 여전히 나는 백드라이브, 백포핸드, 백커트에 약했다. 백 쪽으로 탁구볼이 날아오면 그것을 받아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불안감을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난조에 가까울 정도였다. 

74. 오늘 탁구를 치러 가서 알게 된 사실
일요일이었지만 출근을 해서 작업을 하는데 아내는 예식장이 있다고 오전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오전 중에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오후부터 기계 다위를 맞춰 나갔다.
 
오늘은 일요일 이여서 체육관에는 달랑 대 여섯 사람이 나왔는데 그 중에 미쎄스 최 씨가 눈에 띄인다. 그리고 나이가 지극한 예의 박 씨 아주머니, 그 외 박 삼식 씨, 오 영자 씨 그 밖에 꺽달이 강 장호 등 모두 다섯 사람이었다.  
  ‘내가 얼마나 시간에 쫒겨 사는가!’ 하는  점이 부각되었다.
 
  이들은 모두 오늘 쉬었을 텐데 나는 일을 하다가 왔기 때문이다.  
  뒤 늦게 회장이 와서 내게 말했다. 
  “어제 정모에 참여하지 않았네요?” 
  “예!”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내게 말했는데 여러가지 사실들에 대하여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는가 하는 점과 그것을 원망하고 있었다는 내게 이번에 리그전에 참여하는 문제를 피력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히 재미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참여한다고 했고 그는 정기모임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밴드(스마트 폰으로 클럽을 관리하게 하는 앱)에 들어 있지 않고 그곳에 오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거절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상 그의 안중에도 없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사실상 이런 관점에서 사람을 상대하는데 정보에 부족하였다는 점을 관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름쇠로 일관하는 것 자체가 도저히 그의 입장에서는 용납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지만 나는 밖으로 나가서 조용히 얘기하자는 회장의 제의를 듣고 오늘은 탁구를 치러 온 것이 아닌 술을 먹고 모임에 갔다오면서 이곳에 잠시 들린 회장과 단도직입적으로 모든 사항을 줏어 듣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내 상황을 설명함으로서 문제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리그전은 각 클럽 대항전이고 그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세 사람이 함께 한 팀으로 구성하는데 빠지게 되면 두 사람이 참여할 수 없게 되면 그로 인해서 클럽에서도 다음에 출전권을 발탈 당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말을 듣고는 나는 그럼 참여하지 않겠다는 사실로 방향을 전환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나는 불규칙한 생활을 하였고 언제 기계 A/S 를 나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매달 세 째 주 목요일에 클럽 대항 리그전에 꼭 참석하겠다고 약속을 못한다고 했더니 그럼 안 되겠다고 회장이 잘라 말했다. 아니 그렇게 중요한 자리에 내가 꼭 참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를 갖기에 이르렀다는 표현이 맞았다.
 
동호회 회장이 첫 째주 토요일은 정모. 
셋 째주 목요일은 옥천군 동호회 리그전이 있는 날이다.
그런데 나는 혼자서 겉돌고 있지 않은가! 그 누구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이것은 정말로 지금까지 내가 탁구를 치러 체육관에 나오게 되면서 그동안 쌓아 왔던 공든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결과처럼 비참한 심정을 낳았다. 나는 차곡차곡 올라가서 선수처럼 되어 시합을 갖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곳 옥천군에서조차 탁구 경기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탁구 선수의 심적인 내면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실이 안타까울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어쩌냐? 내 직업이 장인요인으로 리그전에 참여할 수 없다고 못을 박게 되었는데...
  수긍하는 도리 밖에는 없었다. 적어도 시합에는 나가지 않더라도 그렇게 실력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었기에 지금으로서는 내 직업적인 활동에 침해를 받아가면서까지 탁구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로써 내가 얼마나 탁구 동호회에 관하여 위치가 불편하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처음 이곳에 불쑥 들어 서서 탁구대에서 서로 경기를 하는 것처럼 탁구볼을 교환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였는지 낫선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리고 지금 또 다시 그런 심적인 느낌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전략적으로 탁구 실력을 키워서 이곳에서 잘 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판명될 때까지 오르고 싶었었다.
비록 좌절을 쓴 맛을 일찌감치 맛보았지만 실력으로 견주는 것이 아닌 참여하는 사람을 우선 순위로 잡는 회장의 방침에 그만 두 손을 들었다는 편이 맞았다.
  그는 단체 생활에 끼일 수 없는 나보다 자신이 잘 맞는 다른 사람을 원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리그전에 나갈 수 있는 티켓을 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역설했던 것이다.
  나는 여전이 이곳에서 바람이었고 외부인이었으며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술 없다는 사실에 깊이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는 나는 무능했던가! 정보에 밝지 않다는 사실. 그것은 밴드라는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않음으로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내가 그동안 추구해 왔던 모든 가치관이 시대적이지 못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초해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로 인해서 나는 이들에게서 전혀 속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었다. 스마트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게 비쳐지고 인신될 수 있는 사실에 깊이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추구하는 내 세계가 있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며 가급적이면 컴퓨터를 활용한다고 생각을 다짐해 왔었다. 그것은 내가 그만큼 스마트폰보다 노트북 컴퓨터로 사용을 많이한다는 뜻이었다. 스마트 폰의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기 보다 노트북 컴퓨터를 활용해 왔었다. 그것이 지금의 내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고 무엇으로도 따질 수 없는 높은 문학적인 교류를 할 수 있다고 여겨 왔었다.
지금도 나는 스마트폰을 갖고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 적은 화면에 작은 글씨 그리고 손가락의 놀림으로 옆의 크로스바를 움직여서 글씨를 읽어야만 한다는 점을 싫어한다. 나는 지금까지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노트북 컴퓨터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글을 쓰는 점을 무엇보다 늘 생활화하기 위해서라고 급구 부인한다.

  그러다보니 밴드, ‘카톡’의 경우 아내의 스마트 폰을 이용하여 컴퓨터 버전으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다시 ‘밴드’에 가입하라고 회장이 주장하는 사유가 무엇보다 정보를 쉽게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임에 관한 전반적인 사유를 전달 받을 수 있다고 강요하면서 내게 이용하라고 하였지만 스마트폰이 없는 내게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아내의 스마트 폰에는 『밴드 앱』이 설치 되어 있지 않았다.

 75. 일주일의 하루

다시금 월요일에 하루가 시작된다.
 어제 저녁에는 8시쯤 탁구를 치러 갔었다. 달랑 여섯 사람 뿐이었는데 탁구를 치려는 사람들 가운데 나와 자주 치는 60대의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다.
 그 분과 서로 마주보면서 주고 받는 『포핸드롱』. 라켓에 받쳐지는 타구감. 그리고 용솟음치는 힘. 모든 것이 배합을 하여 내 몸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솟아 오른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막혀 있던 혈관의 타동 소리처럼 내게 강력하게 발산한다.
 땀이 흐르면 그 정도에 따라서 더욱 운동 효과를 보기 때문에 떨어진 공을 줏으러 뛰어 나녔다. 그렇게 한바탕 탁구를 치고 나면 이런 효과에 대하여 다시금 자화자찬을 한다.
이틀에 한 번씩 탁구를 치러 체육관에 가게 되는데, 하루 쉬었다가 탁구를 치러 나오는 건 그나마 공장 일이 바빠서였다. 아내는 탁구를 치러 갔다온 날은 유난히 잠을 잘 때 코를 심하게 곤다는 것이었다.

40. 속으로 한 꺼풀씩 들어가면서... 2016.03.07 20:12

껍질이 대단하게 많은 꽃, 과실을 벗겨내기 시작할 때의 심정이었다. 탁구 동호회에 나가게 되면서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함께 치게 되는 사람들 중에 의외로 서로 도움을 주고 있는 안면이 익숙한 사람들의 나와서 찍은 사진들이 나열되어 있는 밴드(나이스탁구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스마트 폰이 아닌 PC 로 내용을 흩어 보았더니 그 전에 있던 내용까지도 상세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휴대폰으로 가입을 한 터라 전화 번호는 내 것이 아니었다. 또한 밴드 알림 문자가 들어오면 내 휴대폰이 아닌 아내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미안한 감이 없잖아서 지금까지 가입하지 않았었다.

77. 탁구 동호회에 탁구를 치러 가면서...

1. 완전히 중독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제 하루 쉬었다고 오늘 저녁에는 강력하게 탁구를 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무엇때문인가?
하고 의문점을 분석해 본다.
첫 번째는 내 몸이 운동을 하길 원해서다.
두 번째는 탁구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탁구를 싶어서라고 해두자. 물론 그 중에 여성분(아주머니)들도 있었다. 특히 나이스 탁구 동호회에 가입한 상태.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알게 된 사실들은 거의가 4~50대. 그 중에도 60~70대의 사람도 끼워 있었다. 탁구를 치면서 몸 동작이 유연하지 않고 늙어 보이는데 뱃살들이 많이 쪘다.
  탁구를 치는데도 왜 배가 나왔을까?

  사실상 나는 몸 관리를 해서 뱃살은 없었다. 복부 지방과 내장지방을 없앤 것이다. 물론 탁구를 치기 전에도 그랬었다. 하지만 탁구를 치면서 땀을 흘리고 뛰어 다닌 결과 2kg 정도 살이 빠졌으므로 오히려 더 마른셈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살이 찐 편이 많았다. 그렇다면 탁구를 친다고 해서 살이빠지지는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내가 가장 유려하는 부분도 이 것이다.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하는 내 기준으로 보아서는 살이 찐다는 점이 이해하기 곤란했다.
그것은 동호회라는 점을 부각 시켜 볼 때 사실상 운동으로 소모하는 칼로리보다 음식물로 섭취하는 칼로리가 많다는 뜻이다.
  다이어트와 음식물 조절의 실패등으로 탁구를 치러 오게 되는 경우 여전히 살이 쪄 있는 사람들.

  내가 생각하는 부분은 탁구를 치면서 건강해 질 수 있으리라는 가정이었다. 즐겁게 운동도 하고 즐길 수도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갖을 필요성. .

78. 생각 2016.03.08 08:23

체육관 다목적실 탁구실에서... (14)
1. 첫 번째 이야기
미친 짓이었다.
밴드에 가입하라고 하는 이유.
하지만 나는 그것을 묵살해 왔었다.
내가 휴대폰을 아직도 011 번호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구태여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지 않고 아직도 2G 폰을 고집하는 이유는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고 있어서였다. 대신 나는 많은 글을 노트북 컴퓨터를 활요한다. 그 이유는 작은 화면에 자판을 두두리지 않고 손가락만으로 옮겨 쓰는 글을 선호하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몇 자씩 쓰는 내용보다도 자판을 올려 놓고 정타법을 활용하여 치게 되면 많은 생각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고 그것을 옮겨 적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더 많이 소모되고 항상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서 시간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었으므로 구태여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습관을 갖지 않게 되기 위해서라는 편이 맞았다.

  그런 내게 회장은 정모에 참석하지 않은 사실과 밴드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율호 세 째주 목요일마다 개최하는 탁구 동호회 리그전에 내 이름을 명단에 올려 주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그는 억양이 크고 조금 거친 표현으로 내게 윽박지르듯이 말했는데 취기가 있어서 말이 많아 졌었다. 입에서는 약간의 술 냄새가 풍겼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가 공손하고 말 뜻에 유감이 없다는 사실을 극존칭을 써서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마워 하였다. 내게 무척 관심이 많고 또한 이해시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하여 나를 꾸짖는 것처럼 따지려 드는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고 피했을 테지만 나름대로 내가 당시의 상황(2월 리그전날)에서 탁구를 치지 못하고 리그전에 명단을 올리지 않았다고 그에게 다음 달에는 올려 달라는 억지(?)를 부린 것에 대한 자신의 곤란한 처지에 대하여 무척 고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리그전에는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명단에 올라 갑니다. 그리고 그 명단에서 그 날 한 사람이 빠지면 두 사람이 기권하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나이스 탁구 동호회에 불패승(탈락)이라는 불명예가 안겨 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명단에 올라가게 되면 꼭 빠지지 않고 경기에 참석할 자신이 있습니까?”
  “...”
  여기서 나는 말 문이 막혔다.그는 덩치가 컸고 사람을 앞도하는 것처럼 인상이 험악했다. 그렇다고 내가 주눅이 든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가 갖고 있는 강력한 카리스마적인 행동, 성격은 누구보다 굳고 강했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니까. 누가 내게 엄포를 놓고 겁을 준다고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나는 내가 해병대 하사관으로 제대한 것에 대한 강건한 정신력을 발휘하였는데 그것은 누구와 왈력으로 싸움을 걸고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닌 강인한 정신력의 산물은 내적인 기준, 즉,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기술력, 뚜렷하고 품위 있는 행동과 사고방식, 그리고 굽히지 않고 잘못이 없도록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행동거지가 그만큼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고 믿어 왔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게 지금까지의 내 노력에 대한 평가가 중요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평가였다. 각자에게는 그럴만큼 개인적인 풍격이 있었다. 적어도 내가 사업적으로 내 위치에 대하여 조심하여 왔고 거래처를 통하여 신용을 지켜온 사례에서 볼 때 지금까지 나쁜 소리는 듣지 않아왔다고 자부했다. 어떤 사람은 그 평가가 무척 저질적이기도 하였는데 내가 아는 사람의 인생은 그로 인해서 추락한 사례가 있기 마련이다. (최대포라는 사람의 경우)
  그렇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하고 있는 직업적인 문제를 감안할 때 문제가 있습니다. 빠질 수도 있다고 보니까요!”
  “왜, 그렇죠!”
  “기계가 고장 났다고 연락을 받게 되면 당장 출장을 나가야만 하는 처지입니다. 지금도 그런 입장이고... 그러다보니 운동을 할 때는 심하게 뛰어 아니고 극열하게 하게 됩니다.”

  여기서 나는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앞질러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180도 달라지 견해였다. 지금까지는 고집을 했고,
  ‘반드시 끼워 달라고 회장과 총무에게 어깃장을 놓은 어린아이처럼 칭얼 거렸구나!’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가 내게 대하는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쩍 정신이 들어서 나는 생각을 고쳐 먹었다.
  “그리고 어제 정모에는 왜 안 나왔어요? 또 밴드에 공지로 올려 놓는데 그곳에도 가입하지 않고... ”
  그는 계속하여 말을 했고 그 포문을 열고 나를 향해 쏴대었다.
  그것을 듣고 나는 놀랐다.
  내 방식대로의 생활, 생각, 기준의 잣대로 바라보던 사고방식을 물론 버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카톡, 밴드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들어가는 문제가 내겐 그다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장은 계속하여 그렇게 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적으로 그의 위치에서 회원을 통솔하고 관리하는 게 용이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볼 때 억지였고 무천 난감하였으며 강요와 마찬가지였다.
  나는 탁구 동호회에 나오는 것을 포기하는 걸 고려해 볼 정도로 불쾌했다. 그리고 집에와서 인터넷으로 밴드를 검색해 보았고 퇴근한 아들에게도 물어 보았다.
  제 엄마는 스마트 폰을 구입하여 1년 정도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카톡에 심취하여 가끔씩,
  “카톡!” 하면서 튀어난 신호에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게 일상화 되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나는 효도폰이었다.
2. 두 번째 이야기
  회장 말로는 며칠 전부터 눈에 띄는 5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이 탁구를 치기 시작하더니 회원에 가입하는 절차를 묻더라고 했다. 탁구는 잘 치는 것도 그다지 못치는 것도 아니었다. 시세 말로 초보를 갓 면한 올빼미. 올빼미란 가끔가다가 얼굴을 비치기만 할 뿐 그다지 탁구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로 부른다. 그처럼 가끔씩 나와서 탁구를 쳤는데 그동안 이곳에서 보이지 않던 한 남성분이 그녀 주변을 맴도는 것이 목격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탁구를 치다가 나가기도 하고 옥신각씬 싸우는 것처럼 묘한 느낌을 주웠으므로 이상하게 생각하였고 그 이유가 곧 드러났으니...


8. 사랑, 그 영원성에 대한 착각.
  앞서 다목적실의 아아치 형태의 벽면을 설명하였었다. 한 쪽 벽면은 직선이었지만 반대편 벽면은 완만한 곡선으로 중앙은 폭이 대략 7미터 쯤 되었고 다른 곳은 점차 좁아 져서 끝으로 가게 되면 더욱 좁아져서 창고로 쓰여졌다. 또한 중간 정도에서 이동식 벽체가 중앙의 천정을 가로질러 막아 줄 수 있는 이동식 판넬로 벽을 칠 수 있도록 커텐용 칸막이가 겹겹히 접혀서 압축된 체 매달려 있었다. 필요에 의하여 언제든지 중앙을 가로질러 벽을 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같다고 설명을 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탁구장만 사용하는 곳이 아닌 다용도실로 불렸는데 사실상 다른 행사가 있는 경우 탁구장은 절반으로 축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택구대는 바퀴가 달려 있어서 필요에 의하여 접혀져서 벽에 붙여 놓게 되면 장소를 많이 찾이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곳의 바닥은 마루로 되어 짧은 쪽으로 직선이 긋듯  줄이 보였다. 뛰어 다닐 때는 쿵쿵 소리가 들렸으며 발을 세게 내려 뻗게 되면 그 울림이 귀에 유난히 크게 들리곤 했었다.

  얼굴에 살짝 화장이 발라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준은 처음으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아, 예!”
  두 사람은 뻔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여자는 모르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처럼 보였고 남자는 잘 아는 사람을 일숙하게 바라볼 때와 같이 매우 친숙한 느낌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 두 사람은 탁구를 함께 치게 되었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짐짓 외면하기에 이른다.

41. 사랑, 그 영원성에 대한 착각.
  앞서 다목적실의 아치 형태의 벽면을 설명하였었다. 한 쪽 벽면은 직선이었지만 반대편 벽면은 완만한 곡선으로 중앙은 폭이 대략 7미터 쯤 되었고 다른 곳은 점차 좁아 져서 끝으로 가게 되면 더욱 좁아져서 창고로 쓰였다. 또한 중간 정도에서 이동식 벽체가 중앙의 천정을 가로질러 막아 줄 수 있는 이동식 패널 벽을 칠 수 있도록 커튼용 칸막이가 겹겹이 접혀서 압축된 체 매달려 있었다. 필요에 의하여 언제든지 중앙을 가로질러 벽을 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앞서 설명을 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탁구장만 사용하는 곳이 아닌 다용도실로 불렸는데 사실상 다른 행사가 있는 경우 탁구장은 절반으로 축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탁구대는 바퀴가 달려 있어서 필요에 의하여 접혀져서 벽에 붙여 놓게 되면 장소를 많이 차지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이곳의 바닥은 마루로 되어 짧은 쪽으로 직선이 긋듯  줄이 보였다. 뛰어 다닐 때는 쿵쿵 소리가 들렸으며 발을 세게 내려 뻗게 되면 그 울림이 귀에 유난히 크게 들리곤 했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 틈에 끼여서 며칠 째 바라만 보았을 뿐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다. 저녁에 탁구 동호회에 가입하여 탁구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긴 했었지만 전혀 낌새조차 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자는 1년 전에 이곳에 나오기 시작하였고 남자는 불과 두 달 남짓 정도 밖에 되니 않았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결코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매우 특별해 보였다. 그는 자신이 부자였고 이곳에서 유지라는 점을 드러내면서 탁구 시합에서 내기를 걸면 실수를 해서라도 졌다. 그리곤 체육관 근처의 마트에서 돈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환심을 샀었다.

  얼굴에 살짝 화장이 발라져 있는 심순애를 바라보면서 이주일은 처음으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7대 정도가 가로 놓여 있는 탁구대에서 다섯 번째에서 함께 마주서서 인사를 하였는데 그것은 탁구를 치기 전에 의례적인 행동이었다.
  여자는 쉐이크 라켓을 잡았고 남자는 *** 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여자가 굽어진 벽면 쪽에 서 있었는데 그곳은 남쪽 방향이었다. 반면 남자는 직선이며 대형 거울이 벽에 붙어 있는 북 쪽 방향의 직선의 벽체를 등으로 향하게 하여 여자를 향해 인사를 하였는데 인사가 서툴렀다.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서 여자는 숙여진 고개만을 바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계속 진땀을 흘렸다.
  “자 치시지요!”
  그 말은 하면서 남자가  흰 색의 탁구공을 한 번 자신의 테이블에 바운딩 해서 여자 편으로 보내면서 굵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자는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약간 굽힌 자세로 오른 손을 어깨와 직각으로 구부린 채 우측으로 몸을 틀어서 탁구 볼을 쳤다.
  “탁!”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계속하여 <훠 핸드 포핸드롱>으로 탁구 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자세를 보면서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를 감당하기에 벅차 보였고 숨을 할 딱 거리면서 말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자세네요!”
  “그래요?”
  “사십년 전에 대전의 ㅁㅁ 교회에 다니지 않았었나요?”
  “아, 다녔었는데……. 그럼, 당신은 그 여자? 그런데 언제 쉐이크로 바꿨어?”
  “전에부터 바꿨지. 안 되겠더라고 실력이 늘지 않고 손가락이 아프고 치기 불편해서……. 그런데 넌 아직 펜홀더로 치고? 어  어머, 제가 심순애인데……. 그럼 이 주일씨!”
  “으응, 난 이게 좋아! 마음에 한 번 들면 영 바꾸기가 힘들더라고……. 무엇보다 변화를 갖는 게 싫고…….”
  “아무거나 치면 돼지 뭐 어때!”
  “그런데 눈빛은 그게 아닌데……. 날 놀리고 빈정대는 것 같아?”
  “빈정대긴? 요즘 시대가 쉐이크로 가잖아! 펜홀더로 치는 사람은 한 물 간 사람으로 치부하거든... 이 것 봐, 이렇게 ***로 휙 돌려서 치면 상대방이 깜짝 놀라! 그만큼 쉐이크가 대세라니까?”
  “대세!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난 펜홀더를 고집할거야! 적어도 예전에 이것으로 배웠는데 쉽게 바꾸기가 그렇잖아!”
  그는 주변에 탁구 동호회 사람들이 펜홀더에서 쉐이크로 치려고 라켓을 바꾸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ㅇㅇㅇ이도 그랬고 동갑내기인 ㄱㅁㄷ도 라켓을 바꿨다.

  사연인 즉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에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 알던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연 이곳 옥천군 탁구 동호회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땀이 흐르기 시작한 것을 알았지만 서로 탁구를 치면서 자신들이 교회에서 탁구를 쳤던 옛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면서 서로 같은 학년으로 지내면서 흡모하던 사이였음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그렇지만 40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모두 오십 칠세의 나이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세월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그 세월만큼 나이를 먹게 된 것입니다.

  탁구는 이제 학창시절처럼 교회 지하실의 작은 탁구 실에서 치던 그 때와 전혀 달랐습니다. 목사님은 1층과 2층을 예배실로 만들었으며 지하실은 간단한 사무실과 한 쪽에 탁구장을 만들어 두고 마음껏 탁구를 치게 하였었습니다. 그 당시 검은 교복 차림의 남학생 여학생들은 목사님이 탁구를 좋아해서 주말마다 경기를 벌였고 그 때 이긴 사람들은 우승으로 내건 상품들을 나줘 갖는 기쁨으로 방학을 탁구 치러 나왔던 적이 있었지요. 그 때 복식조를 이루던 이주일과 심순애는 경기 전에 연습을 한다고 자주 만났었고 반 늦도록 탁구를 치면서 즐겁게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안전한 학생이라는 신분을 뛰어 넘을 수 있을 만큼 크지 않았었고 남자는 군대를 갔고 그 뒤 교회를 다니지 않았으므로 그런 추억은 곧 잊힌 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그 때의 추억이 불현듯 생각났으며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여자로서 애틋한 심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한 번쯤 만나고 싶다고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세월의 무게만큼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이곳에서 함께 탁구를 치게 되면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의 문을 닫았고 그녀 역시 말과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두 사람은 탁구를 함께 치면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지만 참된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가식과 가면으로 서로를 가리고 위장했으며 자신의 뒷면을 아름답게 포장하려고 거짓말로 일관하였지요.
   둘 사이로 벽으로 갈라놓고 있었고 우연히도 이곳 옥천의 다목적실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결혼을 하였으며 이미 남편이 있다는 사실과 두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세월을 두고 오면서 자신들이 마음속에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그 당시에는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으니까요.
  “그럼, 넌 결혼 했겠네?”
  “음, 나도 했지……. 이곳에서 제법 괜찮게 살고 있어…….  잘 나가는 사업도 하면서…….”하고 이주일이 말했습니다.
  “그래, 나도 남편을 잘 만나서……. 행복 해!”
  남자는 여자의 말뜻에 그다지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상 자신도 위선자였습니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명목상 그런 것이고 아내와 함께 고물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벌이도 없었으며 거지와 다름없는 생활로 늘 빡빡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처지를 여자에게 말을 하지 못하였으므로 짐짓 거짓말로 일관하여하였던 것이지요.
  두 사람은 탁구를 치고 난 뒤 서로 헤어지면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탁구장에서 만나곤 했었지만 그 이상 가까워 질 수 없었습니다. 모두 각자의 인생이 있었으며 그 빡빡한 시간에서 비집고 할애할 만큼 남아도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런 허세, 옛날에 대한 향수, 돌아서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시간, 그리고 이만큼 유지해온 지금까지의 기반을 송두리 체 바뀔 만큼 용기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뻔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여자는 모르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처럼 보였고 남자는 잘 아는 사람을 익숙하게 바라볼 때와 같이 매우 친숙한 느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탁구를 함께 치게 되었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짐짓 외면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 이곳에서 알게 된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되어졌습니다. 학창시절에 보낸 추억은 아마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렸지만 추억만큼은 영원히 간직하여 두는 게 나았을 것입니다. 지금 두 사람은 탁구장에서 쓸쓸하게 자신들이 얼마나 변했는가를 바라보면서 거울처럼 마주 보면서 탁구를 쳤습니다.
  그리고 밤 10시가 늦어서 다목적실에 마지막에 나오는 몇 사람들은 탁구장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은 주차장에서 서로 다른 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합니다.
  “다음에 봐요!”
  “예, 잘 쳤습니다!”
  그들이 나온 다목적실에 불이 꺼졌고 어둠 속에 잠긴 실내에서는 조용함이 묻어납니다. 방금 전까지 탁구를 치던 소리들, 비명 소리처럼 들려오던 날카로운 음성과 탁구 볼이 라켓을 가르며 들려오던 날카로운 소리는 이제 꺼져 버렸습니다.
  “탁!”
  “탁!”
 이주일과 심순애는 낮은 불빛아래 탁구대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탁구를 칩니다. 그들은 행여 누가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그렇게 탁구를 치고 있었습니다. 경비는 입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잠들어 있는 모양입니다. 두 사람이 탁구를 치는 것조차 모른 상태로 의자 위에서 잠들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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