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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방법론에 있어서...

<글 쓰는 방법에 관하여...>대한 구상. 글 쓰는 동기. 글을 잘 쓰는 법

오늘은 김포로 출장을 나갔다.

2011.03.02 23:40

文學 조회 수:3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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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모음 (117) 

김포 YI 라는 곳이었다.

옥천역에서 오전 5시 40분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갔는데 영등포 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서울역까지 갔다가 전철을 타고 내려왔다. 그러다보니 서울 구경을 모처럼만에 잘 했다. 

 

김포에서...

YI에 출장을 나왔다.

2월 28일 NC 기계가 공교롭게도 두 대 모두 고장이 나서 세웠다는 것이었다. 한 대는 회전을 시키는 주축의 브레이크 모터가 고장이 났고 다른 한 대는 PLC 부분인데 정확한 내용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상황을 살펴보고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부분도 아니고 센서 부분과 접촉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작업자의 부주의로 전선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점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원인을 찾기 위해서 매우 곤경을 겪었는데 그것은 우선 PLC를 교체하였고 두 번째는 터치판넬을 옆에 있는 다른 기계로 바꾸어 보았지만 해결되지 않자 그 다음 문제로 센서 부분을 확인하게 되었다. 실린더에 부착된 감지 센서의 전선이 제대로 고정이 되지 않아서 불량했을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두 번째는 칼날의 접촉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듯싶었다. PLC의 접점 확인 램프를 확인해 보면서 그 내용을 확인하였는데 뒤 늦게 파악이 가능했다. 처음부터 그 부분을 짐작했으면 바로 고쳤을 부분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원인 분석을 찾게 된 이유는 정확한 내용을 진단할 수 없어서였다.


두 번째로는 척 부분의 느슨함이었다. 양 쪽에9(아래 위) 두 개의 실린더 중에 위의 실린더 상태가 불량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운전 중에 척이 불량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런 상태로 작업을 계속해 왔을까? 싶을 정도로 척이 물리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A/S를 하기 위해서 하루를 소모하게 되지만 그것이 돈으로 환산을 할 때 터무니없이 값이 싼 편이었다. 그래서 부득이 청구 금액을 더 추가하는데 그것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다른 곳에 들를 때 한 번 들러 보세요!”

  오늘 출장을 나간 YS 와 다르게 GI 라는 곳은 전혀 비용을 주지 않았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서운한 느낌을 떨쿨 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YS는 조금 달랐다. 청구 금액을 아무 소리 않고 지불해 줬기 때문이다.

  “출장비를 주지 않고 그냥 보냈네요!”

  그가 급히 나와서 버스에 올랐는데 김포 시내쯤에서 전화가 왔었다. 그렇지만 서둘러서 나온 이유는 열차 시간을 맞춰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차가 김포에서 고촌까지는 매우 밀리더니 오히려 영등포 시내로 들어서자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로인하여 차 안에서 노트북컴퓨터로 글을 쓰는 중에 나는 조금 손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김포에서는 서다가다를 반복하여 무료한 시간을 지루하게 느끼게 되어 컴퓨터를 꺼내들었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YS까지 가는 길을 살펴보았더니 논둑과 수로에 얼음이 얼었다. 그리고 보다 남쪽인 내가 사는 곳과 이곳은 2~3도 기온 차이가 났다. 그러므로 체감 기온은 영하의 날씨가 아닐까? 기계 앞에서 컴퓨터를 만지는 손이 곱을 정도였으니... 실내의 온도 치고는 매우 춥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늘 해결한 기계의 두 가지 부분에 있어서 나는 다행스러웠다. 왜냐하면 YS로부터 계속 기계 수리를 요구 받았었기 때문이다. 특히 척 부분에 에어 실린더를 교체해 놓고 기존의 작업과 비교해 볼 때 천양지간의 차이가 났으므로 수리를 하지 않아도 될 성싶었든 것이다. 그래서 돌아서 버스에 오면서 그와 통화를 하는 중에 내가 다음으로 미루었다,

  “이제 척 부분 수리는 다음에 합시다. 지금 너무 바빠서……. 미리 준비는 해 놓겠습니다만…….”

   그렇게 말하고 다음 의향을 듣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는 은근히 100만원이라는 수리비용을 아까워했었다. 그렇다면 이참에 나는 그 부분을 일달락하여 마무리를 짓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아니,(이 아니란 말을 사람들은 아주 많이 쓰는 편이었다. 말끝마다 아니라는 말로 일괄하던 아내에게 나는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형편으로는 보류하는 편이 더욱 유리한 입장이었다. 대구 SW 와 부산 J.I 라는 곳의 기계 주문을 맞추기에도 벅찬 편이었으므로…….


  오늘 이 시간 나는 열차 안에서 많은 내용의 글을 쓴다. 일기체 형태지만 어찌 보면 지금의 내 생활 전반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중에 두 아이는 어떻던가!


볼스크루우에 대하여...

전조 스크루우와 연삭 스크루우의 차이점 가격.

연삭 스크루우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고가품이었다.


생각 2) 아들에 대하여...

  아들에 관하여 나는 좀더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조언을 줄 참이었다. 제 에미하게 한 말을 들었지만 도저히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들 놈의 생각은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구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제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지만 그게 제 입장만 대변한 것이지 상대방을 고려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카센타를 한다는데 못하게 만류할 리가 있겠는가 싶었지요!”

  “그랬어!”

  “사실 군대에서 제대를 한 뒤에 무얼 할까?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에요!”

  “음...”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그 말뜻에 대하여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다가 내게 말한 것이 아닌 제 엄마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에 불과할 뿐이지 않은가! 그런데 하필이면 가관인 것이...

  “여기 아빠 공장에다가 카센타를 차리고 아빠는 도와 주기만 해도 되는데...”

  그것은 딸이 일찍이 내게 하던 말이었다. 얼도당토 않았으므로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허허헛하며 너털웃음을 웃지 않았던가!

  돌이켜 보면 하나도 맞지 않는 말이었으므로 나로서는 수긍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생각한 것고 현실은 동떨어져있기 마련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치에 맞는 말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전혀 수긍하지 않았다. 신뢰성이 부족한 아들 놈의 빈말을 듣고 내가 판단을 흐리게 갖을 필요가 있던가!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아들 놈에게 나는 하나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내 재산을 나와 아내가 갖고 풍요롭게 살 필요가 있었다. 내 수명이 아내의 수명보다 짧을 것이므로 오히려 말년을 준비하는데 아내가 더 힘이 들것이었다. 또한 내가 갖고 있는 재산을 탐하는 아내의 주장은 그만큼 신빙성이 없었다. 나는 결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정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내가 이룩한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너도 곧 너 같은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면 알겠지만……. 유산을 물려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 지 알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결혼 초에 내가 벌은 재산 외에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자식 놈의 감언이설에 아내는 녹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전혀 의견을 달리한다. 그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헛소문과 허망 된 꿈에 불과한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본 견지에서는 나를 결부시켜서 제 목적에 이용하려한다는 저의가 짙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코 자식 놈의 주장에 속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식 놈을 믿고 내가 모험을 해야만 하는가!

  내 입장은 기술 제일주의였다.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을 더욱 높이고 크게할수록 경쟁력이 나아졌다. 그렇게 하기 전에 남이 간 길을 가게되면 치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똑같이 경쟁해야만 하고 악하지 않은 선한 사람의 경우에는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그 치졸한 방법으로 남을 올라타려는 졸부들이 난무한 까닭이다. 이런 한경에서 가장 나은 길은 보다 혁신적인 방법의 새로운 기술 개발에 있었다.


생각 3) 딸에 대하여…….

  딸의 남친과 헤어졌다는 것이었다.  그토록 좋아하고 늘 붙어 다니던 그 작은 연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나와 아내는 백년손님을 치르는가보다고 조마조마 했었다. 그런데 너무 성급한 게 병이었던가! 헤어졌다는 한마디 말이면 모든 게 끝이었다. 괜히 상처 입은 작은 새를 나는 나무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해온 과정과 결과를 놓고 볼 때 조금 안쓰러울 뿐이었다.

  어머니가 내가 상처 입었을 때 주위에서 안쓰럽게 지켜보던 모습이 그랬을까? 불장난처럼 획하니 일어났다가 돌연 사그라지는 그런 연인이라면 차라리 없던 일로 치부함일까? 그 때의 느낌과 사랑은 아무래도 동질의 형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아내와 나는 결혼으로 만났지만 서로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H.Geng 이와의 사랑은 그렇지 못했는데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과 결혼은 별개의 것이지도 모른다. 함께 지속적으로 가야할 길은 준비되고 서로를 안배하며 배려하는 마음이 짙게 깔려 있어야만 그게 사랑 아닐까? 언제나 어느 때나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속속들이 상대를 다 알면서도 무엇인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차고 넘치는 그런 부부지간의 사랑이 정작 젊은 청춘남녀에게는 부족한 것 같았다.


생각 4) 자식에 대하여…….

  우리 자식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한도 없지만 바로 옆집의 자식들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그렇지만 그게 어쨌던가! 그 애들의 인생이었다. 내가 구태여 그 것을 탓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문제는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는 데 있었다. 사실은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을 밝혀내고 싶었지만 자식들이란 한결같이 부모 등골을 파먹는 주장만을 늘어놓기 십상이었다.

우리 자식들만 해도 그랬다. 그리고 옆집의 자식들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이 꼭 그런 모순 적인 내용만 상상한다. 현실 도피적으로…….

  “카센터를 하고 싶어요! 아빠가 하는 일은 돈 벌기가 어렵고…….”

  기실 돈벌기가 어렵다는 것은 제가 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배우기 무척 어려운 것을 그렇게 편다하고 폄하하는 저의에 대하여 나는 그만 조소를 한다.

  “그 놈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글세 그러더라니까요! 그래서 먹고 살 궁리를 하다보니 군대에서도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다는 거예요!”

  여기서 나는 일꾼을 한 사람도 쓰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이것은 현재의 내 모습이었다.


생각 4) 천막기계 도란스에 대하여...

  처음 나는 천막 기계의 도란스를 감을 때 실을 감을 때 쓰는 물레를 돌려 가면서 도란스를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기계로 감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그 기계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무척 애를 먹었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조금은 난감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완벽하게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았던가!


생각 5) 여기서 나는 중단기적인 계획을 세워야만 한다.


생각 6) 김포 YI 에서는 추웠었다. 그리고 지금 영등포역에서 옥천 역으로 내려가는 하행선 무궁화호 열차에서는 너무도 무더워서 잠바를 벗어 놓아야 할 판이었다. 이런 높낮은 기온차이가 내게 혈압을 높이고 피곤하게 하는 건 아닐까? 아침에 오전5시 40분차를 차고 영등포역까지 오는 동안에 나는 계속 졸렸었다. 그래서 영등포역을 놓치고 서울역에서 내렸던 것이다. 그렇게 졸음으로 인하여 비몽사몽간에 헤맬 정도로 피곤이 엄습하게 된 이유는 열차 내의 기온이 상승하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좀더 밖이 공기와 맞출 필요가 있었지만 기차내의 난방은 너무나 무더움 일색이었다. 그것은 아침에는 1호차 였고 지금은 2호차였기 때문에 기관실과 가깝다보니 난방이 너무 높게 책정될 수 밖에 없는 그런 불가분의 관계(예를 들면 아파트의 난방은 위층에서부터 시작되므로 꼭대기 층은 무덥지만 1층은 효과가 극히 적은 것과 같은 이치처럼)

그렇다면 나의 집은 어떻던가! 난방이 너무 안되어 겨울 동안 너무 춥게 지내기 일쑤였었다. 그나마 나무 보일러를 설치한 뒤에는 좀 나은 편이었지만 전에는 더 그랬었다. 그런 환경에서 이렇게 무더운 열차 안은 너무나 견디기 어려웠다. 차라리 밖의 통로로 나가서 기다리는 편이 유용하리라 싶을 정도였다.


  열차를 타고 가다보면 각 역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있다. 그 옥천이라는 간이역에서 때로는 부산으로 그리고 때로는 서울로 열차를 타고 갔었다. 차창밖으로 바라 보이는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