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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서 산밭

군서 산밭에 쏟는 정성은 가히 경이적이다. 불과 1년 만에 많은 발전이 이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처럼…….

어제 벌초를 하면서... ***

2023.09.28 22:55

文學 조회 수:32

  454. 어제 가족묘에 벌초를 하기 위해 11시 반 경에 출발, 오후 4시 쯤 집에 왔다. 혼자서 잔듸를 깍는데 예초기를 갖고 갔지만 잘 깍아내지 못할 정도로 자른 풀이 많아서 밀어내면서 억지로 팔을 놀리려니 되려 잘린 풀에 무게가 더 많아서 힘들었다. 


  처음에 집에서 나올 때만해도 빨리 풀을 깍아 놓고 집에 오면 점심 때쯤 되려니 했었다. 그런데 왠걸, 3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 이유는 잔디를 모두 깍아냈지만 갈퀴를 갖고 오지 않아서 깍인 풀을 걷어 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톱은 가지고 갔으므로 나무를 배어서 빗자리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나무잎이 달린 작은 가지로는 바닥에 잔디가 쓸리지 않았다. 


  두 번째 가지를 톱으로 자른다. 이번에는 좀 더 굵은 가지들이다. 큰 줄기를 자른 뒤에 다시 작은 가지들을 잘라서 빗자루처럼 주워 모아서 예초기로 자른 풀을 쓸어 본다. 납작 엎드린 풀이 무게로 인하여 잘 쓸리지 않는다. 그래서 좀더 큰 줄기가 있는 나무를 선택하여 위에 굵은 가지로 우선 긁듯이 밀어가면서 쌓여 있는 풀을 이동 시키듯이 먼저 치운 뒤, 작은 나무 가지로 박박 쓸어야만 했다.


  사람이 여럿이 왔으면 서로 분담하여서 작업했을 테지만 혼자서 왔으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끝내야만 했다. 그런데 예초기로 작업 할 때보다 자른 풀을 걷어내는 게 더 힘들었다. 시간도 그래서 많이 걸린 것이다. 


  455. 내겐 묘 자리에 대한 감정이 남달랐다. 어려서부터 장남이면서 장손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게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조상묘들이 모두 있어서 성묘를 가는 데 우리 것만  할머니 묘만 있고 할아버지 묘는 없어서다. 부친은 무능력했다. 그래서 자신이 부친의 묘를 혼자서 산에 묻었는데 그 장소를 알지 못했고 결국 찾지 못했고 할머니 묘를 허름한 골짜기 물이 내려가는 똘 근처에 무연고 묘로 묻었었다. 

  '다른 사람들 묘는 번듯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왜, 우리 묘만 좋지 않은 곳에 있어서 찾는데 어렵고 그늘이 져서 잔디조차 잘 살지 않을까?'

  그렇게 성묘을 다니면서 늘 불만을 느꼈었다. 

  그런데 동생들 셋은 나처럼 조상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다. 오히려 내가 가족묘를 군서 산밭에 쓴다고 하자 대뜸 반대를 했었다. 모친이 작고한 뒤, 장례식장에서 싸운 것도 그 때문이다. 이유는 임실의 참전군립묘지에 부친이 계시는 데 그곳에 합장하자는 거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임실까지는 거리가 멀어서 아무리 참전군립묘지라고 해도 영구적으로 그곳에 모실 수 없다는 점과 자주 갈 수 없어서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그 것 때문에 장례식장에서 실강이를 하게 된 사실부터가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오히려 이곳에서 가족묘를 만들어 놓고 부친을 모셔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안타까웠다. 왜냐하면 할아버지 묘도 부친이 잃어 버렸는데 아버지 묘도 마찬가지로 둘 째 동생과 셋 째 동생의 거부로 무산되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 동생들에게 카톡으로 보낸 내용 - 

  추석을 맞이하여 모두 잘 있는지 모르겠다. 내일 10시 반에 군서 가족묘에서 성묘를 하자고 세 째에게서 전화 연락을 했으니 함께 하기 바란다. 어제 벌초를 했는데 조화가 너무 지저분하여 앞으로는 가족 묘에 꽂지 않았으면 싶다. 생화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조화는 썩지도 않으므로 다시 가져 집으로 가져 와야만 한다. 내일 올 수 있는 사람은 와도 좋고 그렇지 못하면 나중에라도 성묘를 하도록...